거진 하루 KBS2 채널이 나오지 않고 나서야, 난 우리집이 케이블 가입자라는걸 알았다. 그래서 알았다 내가 꽤 그 드라마를 보고 싶어했었구나. 발을 동동구르며 이리저리 찾아다니며 볼 정도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난 꽤 그 산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드라마를 보고 있었구나. 브레인은 처음 1,2회를 보고 나서 이강훈이라는 캐릭터를 이해할 수 가 없어서 내팽개친 드라마였다. 어머니에 대한 태도를 포함한 그의 모든 것이 '저 캐릭터는 도대체 뭐지?' 라는 의문을 던질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정 부분 그 드라마는 내게 공백이었다. 처음부터 보지 않은 이상 관심도 없지만, 더군다나 그런 비상식적인(?) 모습만 잔뜩 본 나에게 <브레인>은 그냥 그런 드라마였다. 그래서 그 두 남녀 중니공의 러브신은 죄다 단 한 장면도 보지 못했다.(아 슬프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간간히 스치듯 보게 된 드라마 - 아마 이강훈의 어머니가 돌아 가시고 나서 위기가 겹으로 닥치는 부분 부터이지 싶다 - 가 이제는 작가의 엄한 스토리를 따라가면서도 꼭 보고 있어 버리게 된거다.

 

문제는 이강훈이라는 캐릭터인데, 끝까지 갈등을 해결하는 듯 하지만 모든 내면의 갈등을 그대로 안고 살아가는 캐릭터를 제대로 연기한게 아닌가 싶다. 마치 정진영이 연기한 캐릭터는 결국 이강훈의 다른 면이었던 셈으로 성공을 향해 무한질주를 하는 자신의 다른 면이었던게 아닐까.

 

지혜라는 캐릭터가 더 이상 자신의 옆에 없을 거라는 현실을 직면했을 때, 자신의 성공과 직면한 바로 그 순간 정진영이 나타나 '이름을 떨치게 되서 행복한가. 소중한걸 잃을지도 모르는데 그럼에도 행복한가' 라고 묻는 장면이 결국 이강훈의 갈등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와  '그럼...그럼에도 행복해야지'라고 말하는 정진영이 만나는 마지막 장면이 이강훈이라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갈등이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이다. 문제는 지혜가 이강훈에게 돌아옴으로써 그의 이런 갈등이 해결된 것처럼 - 소위 일과 사랑을 모두 얻은 - 보이지만 과연 그런가라는 의문을 계속 남긴다는 점이다.

 

그는 멈추지 않을 것이며 - 그의 대사에도 나오지 않는가 - 살아가는 순간순간 이런 끊임없는 갈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텐데, 과연 그의 모든 갈등은 해결된 것인가. 이야기가 해피엔딩이다 열린 결말이다 라고 말하지만 과연 난 해피엔딩인건지 의문이다. 해피엔딩의 기준은 남녀 주인공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면 끝나는 건 분명 아닐텐데. 이강훈이라는 캐릭터가 드라마를 끌고 온 이상, 그 인물이 가지고 있는 해결되지 않는 갈등에 대한 이 결말은 무엇을 말하는걸까. 이번 설에는 다시 한번 처음부터 봐야겠다.

 

 

 

(이 포스터는 정말 드라마를 한 장면으로 압축하는구나)

 

난 내가 이강훈이라는 캐릭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그의 도도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인생에 거침이 없고 양보란 없고 목표지점을 향해 쉬지 않고 달리는 그의 열정, 그 열정에서 나오는 도도함. 그 도도함이 결국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든게 아닐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이강훈을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하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을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캐릭터를 현실에서 만나기는 정말 어려우니까. 이런 캐릭터를 실제로 만나본다면 삶에 대한 열정을 느껴볼 수 있을텐데. 의외로 삶에 열정적인 사람은 만나기 어렵다는 반증이 아닐까. 이강훈이라는 캐릭터의 인기는.

 

 

+ 첨언을 한마디만 더 하면, 이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최수종씨가 주연을 맡았던 <프레지던트>가 떠오른다. 이 드라마도 다시 봐야겠다. 욕망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 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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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점심을 제대로 먹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지만 후회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었다. 먹을게 뭐 없을까 하고 여기저기를 뒤져 보아지만, 김이 든 통과 박스 사탕, 그리고 간장이 있을 뿐이었다. 종이 봉지에는 오이와 그레이프 푸르츠가 있었다.

「배가 고프데요, 오이를 먹어도 괜찮겠습니까?」하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미도리 아버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나는 세면실에서 오이 세 개를 씻어 왔다. 그리고 접시에 간장을 조금 붓고, 김으로 오이를 감아 간장에 찍어 아작아작 깨물에 먹었다.

「맛있는데요」하고 나는 말했다. 「간단하고, 신선하고, 생명의 내음이 물씬 납니다. 좋은 오인데요. 키위보다는 훨씬 좋은 음식인것 같습니다.」

나는 하나를 먹어치우고 두 개째에 손을 댔다. 아작아작하는 상쾌한 소리가 병실에 울려 퍼졌다. 오이를 송두리째  두 개를 먹고 나서야 나는 겨우 한숨 돌렸다. 그리고 복도에 있는 가스 풍로에 물을 끓이고 차를 넣어서 마셨다.

 

- 무라카미 하루키 / 상실의 시대

내가 하루키 소설 중에 이거다 싶은 글은 항상 [상실의 시대]였다. 고 3때인지 아니면 대학에 들어가서 처음 읽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아무튼 하루키를 처음 읽은건 [상실의 시대]였다. 나중에서야 하루키의 주류(?) 소설은 [상실의 시대] 류가 아니라는걸 알았지만  그 때는 이미 늦었다. 그의 많은 소설을 읽었지만 항상 내 결론은 다시 [상실의 시대]였다. 그리고보면 20대에 하루키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이상하지만, 30대가 되서도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은 더 이상하지? 라고 나에게 누군가 말했었다.

 

나는 [상실의 시대]를 꽤 여러번 반복해서 읽었다. 머리맡에 두고 내키면 아무 페이지나 펼쳐들고 내킬 때까지 읽었다. 그러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읽게 되는 일도 허다했지만 이게 가장 하루키의 책을 읽는 적합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의식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항상 머리맡 책장에 있는 하루키의 소설. 이게 가장 하루키가 내게 차지하는 비중이고 의미이다.

 

[상실의 시대]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머리를 수술하는 미도리의 아버지 병원에 우연히 병문안을 간 와타나베. 미도리는 병원을 산책나가고 와타나베가 미도리 아버지를 돌보는 장면. 모든 장면이 한 눈에 보이는거 같고 그 병실 한 구석에 내가 있는 것 같은 이 장면 말이다. 아삭아삭하게 오이를 먹고 한 숨 돌리고 차를 마시고, 그리고보면 어느 수필인가 소설에서도 주인공이 잠들지 못하는 어느 새벽 커피와 비스킷 조각을 놓고 책을 읽는다는 장면이 있었다. 영리한 달이 고아처럼 - 이 부분은 정확하지 않다- 떠있는 풍경.

 

난 [노르웨이의 숲]이 와타나베에게 아니 나에게 잃어버린 것, 놓쳐 버린 것을 말하는 소설이라고 난 생각했다. 손에서 흘러가듯이 사라져 버린 걸 말하는 이 소설에서 유독 난 이 장면이 마음에 들었다. 아삭아삭한 오이를 하나씩 해치워가고 한 숨을 돌리고, 모든 것이 사라져가지만 그리고 놓쳐 버리지만 그래도 난 이 오이를 먹으며 한 숨 돌리고 살아간다. 난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 난 슴살에도 오이를 김에 말아 간장을 찍어 먹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난 오이를 김에 말아 간장에 찍어 먹는다. 난 마흔이 되도 오이를 먹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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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 2기가 시작했다. 시리즈화 되는 드라마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데 [심야식당]만큼은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부터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다. 1기 방송 할 때 '세상에 이렇게 멋진 식당이라니' 라면서 방송을 봤던터라 이번에는 정신을 잘 차리고 드라마를 봐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이번에도 홀딱 반해서 한 회씩 시청하고 있다.

[심야식당]은 밤 12~6시까지 운영하는 가게. 밥에 된장국이 기본, 그 외에는 재료가 되고 사정이 되는 한 만들어 준다는게 방침. 가게에 들르는 사람들은 평범하게 아침 9시 회사 출근을 하고 저녁 6시 퇴근을 하는 사람들이기 보다는 늦은 밤까지 깨어있는 사람들이 많다. 조폭,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아가씨, 그녀를 추총하는 남자들 물론 일반 회사원으로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튼 그들은 이 심야식당에 모여 퇴근길 술을 한잔 하고, 먹고 싶은 음식을 이야기한다. 하나같이 추억의 음식들 뿐이다. 버터에 간장을 부린 밥 (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다), 참지와 마요네즈를 버부린걸 밥 위에 올려준 음식, 문어 소세지, 계란 말이. 하나같이 집에서 어릴 적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런 음식들 뿐이다. 이래서야 어디. 이 드라마는 그야말로 '소울 푸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음식에 이야기가 있고 사연이 있고, 누군가와 인연이 생기고 헤어지기도 하고.

어디 이런 식당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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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서재 첫 페이지에 들어가면 오른쪽 상단에, 북 캘린더라고 뜬다. 언제 적용이 된지는 모르겠는데, 어느 날부터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평소에는 무심히 봤었는데, 오늘은 이런 날이다.


1922.11.18. 마르셀 푸르스트 사망.


그렇구나. 오늘은 프루스트 사망한 날이구나.
푸르스트는 내게 애(愛)보다는 증(憎)의 작가에 가깝다. 내가 읽은 책 중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책만큼 많은 시도를  했던 책이 없었고, 그만큼 많이 중도 포기를 한 책도 없었다. 오죽하면 [한권으로 읽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책을 읽어볼 생각까지 했을까. 물론 당연히 이 요약본도 얼마 읽지 못하고 포기했다.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이야기가 나오니 생각나는데, 영화 [러브레터]의 주인공의 그림이 그려진 대출증이 있던 책으로 유명했는데. 그 많은 책중에 그 책이 '스완네집 쪽으로' 라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정확히 몇 권이었는지 생각해보니 궁금하군.



 

 

 

 

 

  


그리고보면 알랭 드 보통의 책 중에는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라는 책이 있었다. 읽기 전에는 프루스트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읽어보고 속았다고 생각했던 책이었다. 알랭 드 보통 다운 책이기는 했지만 제목은 제대로 잘못 번역했다랄까. 출판사의 의역이었을텐데 내게는 책을 오해하게 한 주 원인이었다.

그런데 지금 책을 찾으려 조회해보니 다른 출판사에서 다시 책이 나왔나보다.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음, 이건 좀 더 낫지 싶다. 내게 프루스트는 가까이 하기에는 조금 멀게 느껴지는 당신이다. 그리고보면 내게 프랑스 소설은 프루스트 보다는 뒤마로 인식하고 싶다랄까. 난 마스셀 프루스트만 생각나면 '프루스트를 찾아서'라는 (제목이 사실 확실하지는 않다) 제목의 프랑스 영화가 생각난다. 먼가 조금 답답하기도 하고 모호하기도 하고, 딱 마르셸 프루스트 이야기 같은 영화였는데 그리고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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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왜 이리 비가 내리는지 모르겠다. 제주도는 11월 관측사상 최대의 비가 내렸다고 하던데, 무슨 겨울비가 이렇게 내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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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은 그리 풍족하게 책을 구입해 주지는 않으셨다. 내가 어렸을 때 로망으로 삼았던 별별 전집들은, 이를태면 과학전집이라던지 문학전집이라던지 혹은 위인전집까지도, 지금까지도 어느 정도 나의 로망으로 남아있다. 그 전집이라는게 가진 사람들은 잘 안 읽는지 모르겠는데 난 그 전집들을 보고 있으면 황홀하기 까지 했었다. 다행히 옆집이나 다른 친구 집에는 전집이 적어도 한 질씩은 다들 있어서, 난 그게 참 신기했었다, 놀러가서 한권씩 야금야금 읽고 야금야금 빌려 읽고 했던 듯 하다. 아무튼,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은 '책만큼은 부족하지 않게 구입해주마' 이런 집은 아니었다는거다. 그래서 아마 조금은 그런걸 부러워 했는지도 모르겠다고 오늘 그런 생각을 했다.

오늘 와우북 행사를 다녀왔는데, 참 아이들과 함꼐 나온 어머니와 아이들이 많더라. 아이들 손을 꼭 잡고 나와서 책을 고르는 부모를 보는건 많은 감정을 내게 항상 불러 일으킨다. 모든 부모가 저런건 아니지만, 이런 행사에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서 아이들의 책을 골라주는걸 보면 참 대단한 부모님이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랄까. 저 아이는 알고 있을까 저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아니야 모를거 같은데 라는 그런 기분.

사실 난 어렸을 때 비교적 자유롭게(?) 자라서 인지 모르겠지만 부모가 아이들을 이런저런 행사에 데리고 다니면서 교육을 시키고 하는 일이 극성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라도 아이에게 더 많은 경험을 주고 싶고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은건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겠지만, 난 그렇게 자라지 않았고 그 자유로웠던 분위기 덕분에 꽤 즐거웠다고 생각해서인지, 여튼 조금은 복합적이고 묘한 기분이다. 조금은 부족하게 자라는게 아이에게 갈증을 키워준다는걸 믿는 타입이라고 해야하나. 물론 아이에게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은 그렇지 않겠지만 말이다.

아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많은 생각을 불러 일으키는 와우북 행사였다.
음, 너무 많은 생각을 불러 일으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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