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마실까?"... '천일의 약속'을 맺은 시작

   
 

사실, 거의 모든 커다란 위기 때 우리의 심장에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따스한 한 잔의 커피인 것 같다.       - 알렉산더 왕(?) 

 
   

밤 9시, 늦은 시간이다. 커피를 마시기엔. 물론, 커피 마시면 잠 못잔다고 징징대는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얘기다.

누군가에겐 밤 9시가 깨어나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정신이 또렷해지고, 이성과 감성이 서로를 견제한다. 세계가 새롭게 열리기도 하는 창조의 시간.

우리 커피하우스를 찾는 많은 사람은 후자의 시간일 것이다. 나는 그 구체적인 하나하나를 위해 단 하나의 커피를 내린다. 그들이 창조의 비행기를 몰다가 잠시 숨을 고를 때, 창조의 윤활유를 공급하는 공중급유기.  

밤 11시에 도달한 시간이었다.

"에스프레소 도피오 주세요."

이 시간, 에스프레소, 흔하지 않은 경우다. 그것도 도피오라니. 50대로 보이는 여인은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말투는 단호했고, 어떤 옵션도 필요없다는 투였다. 설탕 혹은 시럽, 크림이나 (스팀)우유도, 꼭 사치라는 뉘앙스. 이럴 땐 말 없이 추출하는 수밖에. 그저 황금빛 에쏘 도피오를 놓으면 그 뿐이다.  

알레고리.

표면에 드러난 것으로 내면의 숨은 뜻을 전달하거나 해석하는 방식이다. 그건 곧 하나의 의미만 있는 게 아니란 얘기다. 주관성이 개입될 여지가 많다. 다층적이고 모호한, 풍부한 해석이 가능하다. 헛다릴 짚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천일의 약속>에는 커피가 알레고리가 되는 지점(들)이 있다. 아마 대부분 시청자들은 그런 생각, 않을 것이다. 하긴 내가 괜한 꼼수다.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에 갖는 혼자만의 알레고리. 작가의 의도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의 커피를 통해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편다.

"자살 폭탄을 짊어진 놈"같은 얼굴을 하고 있던 지형(김래원)이 결국 폭탄을 터트렸다. 충분히 터질 줄, 누구나 알았던 그것. 향기(정유미)를 향한 파혼 선언. 정혼자가 있음에도 사랑했던, 아니 사랑하는, 그러나 기억을 잃어가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여자, 서연(수애) 때문이다.

뭐, 수애 정도라면 나라도 그러겠다, 고 말하지만, 알다시피 폭탄의 사정거리는 주변부 싹쓸이! 직격탄을 맞은 지형의 엄마 수정(김해숙)은 용케 연락처를 알아내어 득달같이 서연을 찾는다. 

  


수정과 서연이 처음 마주대하는 순간. 서빙이 이뤄지는 고급스런 커피하우스다.

"어, 나는 에스프레소 더블, 서연씨는?"

어떤 차를 마실지 묻는 서연의 질문에 한 치의 주저함도 없는 단호한 말투다. 당연히 그것이어야 한다는, 그것이 아닌 다른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는.

알렉산더 왕의 것인지 의심(BC에 커피를 마셨을까?)이 가는, 커피에 대한 말이 떠올랐다. 커다란 위기, 심장에 필요한 것, 한 잔의 따스한 커피. 커피 메뉴로 위기의 정도를 가늠한다면, 에스프레소, 그것도 도피오는 최강이다.  

곧 그것은, 수정여사의 마음이다. 아들의 폭탄같은 파혼선언으로 벌렁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고 싶은. 빠르게(express) 내린 에스프레소마냥 위기에서 빨리 벗어나고, 특별히 너(손님)를 위해(especially for you) 만든 에스프레소(Espres)를 마시는 날 봐서, 내 애원을 들어달라는.
 
에스프레소 더블이 내겐 그런 알레고리였다. 폭탄 맞은 여자의 어떤 안간힘 같은 것.

그렇다면, 알츠하이머와 싸우는 여자의 주문은 무엇일까.

에쏘 더블을 시킨 수정이 뭘 마실지 묻자, 서연은 살짝 벙 찐 표정을 짓는다. 엇, 이게 뭐지? 하는 얼굴. 처음 보는, 심각하거나 불편할 수 있는 관계의 사람이 에쏘 도피오를 시킨다면, 충분히 흠칫 놀랄 수도 있겠다. 에쏘가 주는 알레고리 때문이다.

서연은 곧 이를 수습하면서 아메리칸을 주문한다. 에쏘와는 확연하게 다른 커피. 그것이 두 사람이 현재 처한 세계의 다름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아메리칸은 진한 커피를 싫어하는, 아주 연하게 추출한 커피다. 드립이나 커피메이커로 내려서 거기에 다시 물을 섞은. 나는 당신이 왜 온 것인지 모릅니다, 라고 말하는 듯한.
 

그것은 유럽과 미국의 차이이기도 하다.

유럽의 이탈리아나 프랑스 등지에선 에스프레소(도피오)를 즐기나, 미국은 매우 엷은 아메리칸을 선호한다. 그래서 아메리칸이다. 레귤러보다 더 연하다. 
 
그녀는 지형과 나눈 사랑의 단초가 된 커피를 마실 때도 해롭다며, 오래 살아야 한다며 설탕을 넣지 않는다고 농담처럼 말한다. 아메리칸 역시 설탕이나 크림을 넣지 않는다. 그녀의 커피 취향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맑고 자극적이지 않다.

두 사람의 관계와 성향이 커피를 통해 드러나는 순간. 두 사람이 처한 상황과 이야기를 커피를 통해 다시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알게 된 서연이 지형을 만나 오피스텔로 가는 그때. 그 위태롭고 애처로운 순간에도 서연은 익숙하게 커피를 갈고 추출한다. 두 사람의 익숙한 리추얼. 그러면서도 위기에 그들의 심장에 필요한 따스한 커피 한 잔.

날마다 바보가 되어가는 치매 환자인 여자와 그녀를 사랑해서 다른 여자와 파혼한 남자에게 필요한 것은 커피 한 잔이다. 그것은 어쩌면 안간힘이다. 왜 저들이 저런 상황에서 한가로이 커피를 마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은, 커피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11시에 가까운 시간, 에쏘 도피오를 마셔야 하는 저 여인의 심연도 그럴 것이다. 내가 구체적으로 알진 못하나, 그녀의 심장이 근본적으로 필요로 한다. 나는 그것을 인정하기에 황금빛 'especially for you'를 그녀의 심장 앞에 대령한다.

커피의 심장이 그녀의 심장을 관통한다. 오늘, 그것으로 충분하다.

참, 서연의 사촌오빠 장재민(이상우)이 초반에 서연에게 아이스커피와 따뜻한 커피를 들고 가서 둘 중의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

그걸 놓고 자상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얘기한다. 허나,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서연을 아끼고 보살펴주는 척 하는데, 그녀의 취향조차 모른다? 예술가적 예민함과 섬세함을 지닌 서연이라면, 아마 아이스든 따뜻한 음료든 자기 것이 있을 것이다. 그걸 모르고 냉온 모두를 들고 간 것은 무심함을 감추기 위한 행동이다!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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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1월10일, '나의 가장 빛나는 죄악' 랭보 한 잔
    from 맺고,따고,볶고,내리고,느끼고,사랑하라! 2011-11-10 02:51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먼저 인생을 바꿔야 한다. - 장 니콜라 아르튀르 랭보       오늘, 특별히 이 커피콩을 볶는다. 에티오피아
 
 
 

   
 

우리는 지금도 마틴을 그리워한다. 커피잔을 볼 때마다 멋진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 마틴은 'e'가 두 개인 커피(coffee)를 하나의 'e'로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바로 L-O-V-E, 즉 사랑이었다.     

                                                                                     - 루스 코 챔버스

 
   
  

월요일, 밤 9시가 지났다. 

그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올 시간이다. 가을이 온 뒤, 매주 월요일 밤 9시가 넘은 시간이면 늘 커피를 마시러 오는 남자다. 무슨 이유일까. 처음 들어온 순간부터 그 남자의 표정, 가을빛이었다. 

가을빛? 그게 무슨 소리냐고? 글쎄, 그건 그 남자의 표정을 봐야 설명할 수 있다. 그 남자의 표정을 보면, 아 저기 가을이 내려앉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커피 마시고 싶어요." 

그 남자의 첫 마디였다. 무슨무슨 커피를 달라는 것도 아니고, 커피를 마시고 싶다? 그 남자를 멍하니 바라보자니, 그 남자, 어떤 커피든 달라고 했다. 그리고 가을 어둠이 묵직하게 내려앉은 구석자리 창가에 앉았다.  

그 가을빛 때문이었다. 그 표정,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한길 사람속, 심연을 알 수는 없지만, 때론 말보다 표정이 더 절실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더구나 어떤 커피가 아니라, 무턱대고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말을 던지는 남자라면.  

졸졸졸, 커피를 내렸다. 커피를 섞었고, 고노를 택했다. 여러 구멍으로 새나가선 안 됐다. 하나의 구멍으로 가을을 내렸다. 가을빛이 따라내렸다.  

그리곤 월요일 그 시간, 남자는 꼬박 문을 열었다. 가을빛이 내린 표정을 하고선, 커피 마시고 싶다는 한 마디. 자리를 차지한 다른 손님이 없으면 늘 같은 자리에 앉았고, 책을 보거나 드라마를 봤다. 나는 다른 말 없이 가을빛 흘러내린 커피를 내놨다. 그 남자 역시 아무말 없이 커피를 들이켰다. 아주 살짝 보이락말락한 미소를 띠고.  

며칠 전 월요일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커피를 마시던 이 남자가 느닷없이 오더니, 이렇게 말한다. 

"커피 마실까?"

눈을 땡그랗게 뜨고 바라봤더니, "아저씨, 이 말 참 슬퍼요, 그죠?"  

역시 멍한 표정으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남자, 곧 말을 잇는다.  

"<천일의 약속>이라는 드라마 보세요? 음, 이 드라마, 기억을 잃어가는 한 여자와 그녈 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긴데요..."   

남자가 풀어놓은 드라마 이야기는 그랬다. 

서연(수애)와 지형(김래원)의 사랑이 시작된 우연의 만남. 서연이 영화 같다고 말했다는 만남이었다. 사촌 오빠의 친구로, 친구의 사촌동생으로 처음 만났단다. 그리곤 미술관에서 우연히, 8년하고도 반년만에 마주친, 혹은 3년 전 여의도 63층에서 사촌오빠 혹은 친구를 끼고 식사를 했다는 두 사람.  

"커피 마실까?"

"지형이 서연에게 그렇게 말해요. 잠시 다른 곳을 보고 있던 서연이 지형의 말을 듣곤, 표정이 말해요. 오랫동안 기다려왔다고. 왜 이제야 그 말을 꺼내냐고. 그토록 환하게 바뀌는 서연의 표정이 참 많은 말을 해요."

나는 안다. '커피 마실까?'라는 말에 들어간 수많은 함의.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사람의 귀를 자극하고, 머리와 심장에 도달한 울림. 아울러, 그 남자가 말하는 서연과 지형의 관계를 재배치했을 커피. 오랜만이라는 시간을 한순간에 건너뛴 커피의 마성. 사랑의 시작을 창조하는 마성적 커피.  

"서연이, 참 예뻐요." 잠시 뜸을 들이던 그 남자, 다시 말을 잇는다.  

"해롭다고 그래서, 오래 살아야 한다며 설탕을 넣지 않는 서연이를 향해 지형이 눈을 못 떼요. 아저씨도 사랑에 빠진 남자의 표정, 알죠? 그 순간, 지형이의 눈이 딱 그래요. 오로지 한곳에 박혀선 다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그런 눈, 있잖아요. 눈에는 온통 하트가 그려져 있는 게 빤히 보이는..."   

커피에서 시작한 지형의 수작(?)은 "점심 먹을까?"로 이어지고, "저녁 먹을까?"로 이어진다고 했다. 커피 한 잔이 새끼를 친 셈이다. 얘길 들으니, 서연이라고 다르지 않았나보다. 커피에서 저녁으로 이어지는 논스톱 약속잡기 행렬에, 스스로 싸구려라면서 가두행진에 기꺼이 동참한다니.         

"커피로 시작한 만남이 하루를 몽땅 그들만의 것으로 만들어요. 손도 잡고요. 천년 전부터 기다렸다는 느낌이라며,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나요." 

데자뷰니, 전생의 기억이니, 오글거리는 이야기의 드라마 같은데, 이 남자, 태연하게 얘기한다. 꼭 자기 이야기처럼. 볼이 살짝 상기된 것을 보니, 뭔가 사연이 있구나 싶다. 그럴 땐, 굳이 물어보는 게 아니다. 커피 한 잔 더, 졸졸졸 흘러내려준다. 옛소, 기분이오. 

"똑같이 말했었어요. '커피 마실까?' 커피, 참 좋아하던 사람이었거든요. 그게 우리의 사랑이 시작된 말이기도 했죠. 저들처럼이요. 그때 알았어요. 커피 마시자는 말이 얼마나 많은 뜻을 품을 수 있는지. 그 말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는지."  

3년을 사귀었다고 했다.  

천일이 넘은 시간. 약속했던 것을 지키지 못한 것이 있어서 가슴 아프다고 했다. <천일의 약속>이 아픈 이유라고 했다. 월요일마다 아이패드로 뭔가 보는가 싶더니, 그게 <천일의 약속>이었던 거다.   

"음, 얼마 전 헤어졌어요. 그녀때문에 이젠 커피중독자가 됐는데... 제가 월요일마다 오는 것, 아시죠? 월요일이 그녀가 쉬는 날이어서 커피 참 많이 마셨거든요. 커피순례 다니고 그랬어요. 전 지금, 월요커피병 환자에요." 

그녀 때문에 커피까지 배웠다고 했다. 내가 내려주는 커피가 뭔가 독특하다고 했다.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게 마음에 들었고, 처음왔을 때, 어떤 커피인지 말하지 않은 건, 어떤 커피가 나오는지 궁금했다고 했다. 다음에도 같은 커피가 나올지 궁금해서 말을 않았고, 계속 같은 커피가 나와서 참 좋았단다. 

커피 한 잔을 더 따랐다.  

환자에겐 계속 주는 수밖에 없다. 내가 줄 수 있는 처방약이자 위로니까. 한동안 이 남자, <천일의 약속> 때문에 마음으로 앓고 눈물로 말할 것 같다. 가을빛을 띤 이유가 있었구만. 커피로 시작한 사랑과 이별, 커피로 씻어야지. 

이 가을빛 남자에게 내가 처방한 커피는, 알싸한 신맛과 장점인 에티오피아 리무와 멕시코 치아파스, 도미니카 바라오나를 블렌딩했다. 이 남자의 가을빛이 알려준 레시피였다.  

월요일, <천일의 약속>이 방영되는 날이다. 이 남자, 또 오겠군. 커피를 준비해야겠다. 나는, 이 남자의 커피가 아프다. 가을이 아픈 이유가 있었구먼. 이 남자의 커피를 볶는데, 소리가 난다. 파파, 아파. 아... 파파, 팍.  

나도 기억을 잃어가는 여자와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고 싶어졌다. 뭐, 딴 이유가 있을 이유가 있나. 수애. 그 이름 하나만으로 충분한 거지. 아, 수애 같은 여자가 오면, 참 예쁜 커피를 내려줄텐데...  

나도 수애씨한테 이 말부터. "커피 마실까?"

허허, 커피 만드는 노총각이 별 깜찍한 상상을 다 한다.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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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츠하이머를 앓는 여자가 아메리칸 커피를 시킨 이유
    from 맺고,따고,볶고,내리고,느끼고,사랑하라! 2011-11-09 03:44 
    사실, 거의 모든 커다란 위기 때 우리의 심장에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따스한 한 잔의 커피인 것 같다. - 알렉산더 왕(?) 밤 9시, 늦은 시간이다. 커피를 마시기엔. 물론, 커피 마시면 잠 못잔다고 징징대는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얘기다. 누군가에겐 밤 9시가 깨어나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정신이
 
 
 

1. 가난한 사람은 죽고 부자는 헛산다
<인 타임>이 뱉은 이 말은 정곡이다. 지금, 누가 저 말을 부정하리오. (영화를 만들면서)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으나, 영화는 "점령하라(Occupy)"는 지금-여기의 외침을 닮았다. 시간이 화폐를 대신하는 상상력이 빚은 혁명적 태도. 금융시간자본의 100만년, 그것은 훔치는 것이 아니라 빼앗긴 것을 다시 찾는 것이다. 혁명이다. 가난한 사람은 죽고 부자는 헛사는, 누구도 사는 것이 아닌 구조를 뒤엎는 것.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닌 현실을 전복하는 것.  

<인 타임>. 다시 언급하겠지만, 만듦새는 허술하고, 개연성 떨어지는 장면이 속출하나, 그래도 내겐 미덕이 더 크다. 다만, 20세기 폭스가 배급했다. 역시 자본답다.

슬픈 것 하나는, 아메리칸 스윗하트, 아만다 시프리드는 이번 영화에서 헛다리다. 미스 캐스팅 혹은 그녀의 헛발질. <맘마미아>나 <레터스 투 줄리엣>의 아만다를 돌려줘~


2. 사회적기업
부천의 사회적기업 한마당에 퍼진 커피 한 내음. 예기치 않게 안태호 선수도 다시 만나고. 노리단도 오랜만이다. 사회적기업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청년사업단의 고민이 단순히 (인증)사회적기업 만들기가 아니면 좋겠다. 우리의 마음이 담긴, 사회와 분리되지 않고 사회적가치와 목적을 우리 스스로 내면화하면서 실천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되길.   


3. 안나푸르나

망연자실함. 안나푸르나에서 만난 사랑을 다시 안나푸르나에 잃은 여인의 얼굴. 슬픔보다 더 슬픈, 모든 것이 사라진 뒤에 남은 얼굴. 남은 자가 감내할 수밖에 없는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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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2 - Harry Potter and the Deathly Hallows: Part II
영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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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이 시작된다!

2001년이었다. 그 유명했던 해리 포터는 시작을 그렇게 알렸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문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땐 20대였다. 모든 것이 뜨거웠다. 아니, 지금 생각해보면 과잉이었던듯도 싶다. 일도 그랬고, 술도 그랬으며, 사랑도 그랬다. 쿨한 척했으나, '척'이었다. (불완전연소가 되고 말았지만) 뜨겁게 사랑하고 있을 때.

해리 포터의 시작, 그녀와 함께였다. 아이처럼 좋아했던 그녀였다. 지금은 없어진 정동 스타식스 였던 것 같다. 그녀와 나, 우리 한 쌍의 바퀴벌레 머글은 마법 하나하나가 신기했다. 런던 킹스크로스역 9와 3/4 플랫폼에서 호그와트로 가는 기차가 가장 놀라웠다. 우리, 머글인 것이 안타까웠을정도? 그 플랫폼에 가면, 나도 다른 세계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또한 심술궂은 이모 부부와 못된 사촌, 그 머글들에게 구박 받는 해리 포터가 어찌나 애처롭던지. 그런 그에게 날아온 마법세계의 초대장. 더구나 그는 마법세계를 구원할 전설적인 영웅이라니. 응원했다. 해리, 널 응원해. 우리가!
 
꺄르르르르, 10년 전 그 사랑과 나는 그렇게 마법행 특급열차를 탔다. 마법의 세계를 몰래 훔쳐본 머글들은 당최 앞을 내다볼 재간이 없다. 머글에겐 마법의 기운이 없으니까.

그 마법세계, 해리 포터(와 그의 친구들인 헤르미온느와 론)에게 롤러코스터였을 뿐 아니라, 내게도 그랬다. 살짝 좌충우돌, 생은 다이내믹했다. 번번이 실패했지만, 작고 사소하게 성공하는 대부분 청춘의 시간에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청춘은 어쩌면 마법의 연속이니까. 

음울한 다락방을 빠져나와 호그와트행 특급열차를 타고 마법의 세계에 도달한 해리 포터를 만나는 머글의 마술기행은 계속 됐다. 다만 그것을 함께 즐기는 상대가 바뀌거나 혼자였다. 

시리즈는 흘렀고, 지날수록 희한했다. 마법세계와 현실은 왜 그리 닮은 거야! 그러다 결국 소리쳤다. 이게 뭬야! 우리 사는 곳이 마법세계인 거야, 마법세계가 너무 현실화 된 거야?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것도 점차 풀렸다. 나이를 먹으면서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임을. 해리 포터가 친구들과 함께 마법세계를 지키기 위해 펼치는 모험과 분투는, 우리의 것을 닮았다. 이 세상을 지키기 위해 우리 주변의 가족, 친구들과 소소하게 나누는 이야기와 작당. 마법세계는 머글들의 세계와 다르지 않았다. 악은 번번이 이기고, 해리는 소심하게 헐떡거리며 똥침을 찌른다. 그래도 좋아! 



 

시리즈의 마지막이다.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2부>. 7편 시리즈를 끝내는 10년의 내달림. 한마디로, 뭉클하고 멋지다. 뜨거운 안녕이었다. 거의 마지막 개봉 극장의 마지막 편에서 만난 해리 포터. 

볼드모트와 마지막 대전에 다다른 해리 포터의 결사항전은 스펙터클로 가득했고, 롤러코스터처럼 박진감이 넘쳤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심장에 박힌 것은 스네이프였다. 해리 포터보다 더. 10년의 세월을 송두리째 뺏아간 신 스틸러. 심장이 터질 뻔했다. 그 미친 놈의 사랑, 때문이었다. 스네이프의 아픈 과거와 사랑,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그 압축은 10년을 모두 집어삼켰다. 재배열시켰다. 해리 엄마인 릴리에게서 파생된 해리와의 관계 또한. 

스네이프의 이야기를 외전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절로 생겼다. 사랑 때문이었다. 나는 그 사랑이 아프고 또 아팠다. 물론 스네이프는 그 아픈 사랑 때문에 그 모진 세월을 견디고 버텼을지도 모르나.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의 시작과 끝.

해리 포터의 영원한 선생님, 덤블도어도 어쩌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금지된 숲속에서 만난 해리에게 이런 말을 던진 것, 아닐까.   

"해리, 죽은 자들을 비통하게 여기지 마라(Do not grieve to the dead, Harry). 산 사람들을 위해 슬퍼하렴(grieve to living). 그 중에서도 사랑없이 사는 사람들을 위해 슬퍼하거라(And above all.. all those who live without love)."

이런 뜨거운 안녕이라니. 눈물은 주룩주룩, 심장은 벌렁벌렁. 아쉬운 점이라면, 이 마지막을 함께 한 여자는 그런 날 이해 못했다. <해리 포터>시리즈를 처음 봤는데, 그것이 하필 뜨거운 안녕을 고하는 마지막이었던 까닭이었다. 그녀의 10년에는 '해리 포터'라는 존재 자체가 없었다. 

문득 궁금했다. 10년 전 나와 해리 포터의 처음을 보고 꺄르르르르했던 그녀는 마지막을 봤을까. 혹은 해리 포터의 성장 과정에 함께 한 다른 그녀들은? 

 

 

사랑이 지나가면, 훌쩍 중년의 어른이 된 해리가  런던 킹스크로스역 9와 3/4 플랫폼에 다시 나타난다. 지니와의 사이에서 난 아이가 호그와트행 특급열차를 탈 요량이다. 론과 헤르미온느도 맺어졌는지, 그들의 아이도 함께다. 마법세계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더 이상 그들의 아이에까지 관심을 두기에 나라는 머글은 글러먹었다. 

장영엽 씨네21 기자의 말따마다, 가짜가 아닌 한 시절이 끝났으므로.  
"소년 마법사는 조앤 롤링의 머릿속에서 태어났지만 영화 현장에서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보낸 세명의 소년소녀와 시리즈와 함께 ‘성장한’ 팬들은 가짜가 아니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모두의 한 시절이다." 

한 시절을 끝낸 머글은, 이제 어떤 한 시절을 맞이할까. 아니 맞이하고 있구나. 사랑없이 사는 사람들을 슬퍼하면서. 산 사람은 살아야하지만, 사랑할 때밖에는 삶이 아니란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매조지한다.

마법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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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해
김지수. 슈퍼스타K 시즌2 출신의 가수 혹은 배우 아닌 보그코리아의 기자.
그녀가 최근 낸, 《시, 나의 가장 가난한 사치》 독자만남에 자리하고, 책을 읽었다. 詩를 말하고 있었지만, 왠지 허세 혹은 허영 같았다. 어쩌다, 꿈틀하는 대목은 있었지만, 어쩌다 걸린 것이지, 전반적인 기조는 '詩, 너의 가장 허영덩어리'라고 생각했다.

보그코리아. 거의 볼 일도 없고 찾아서 보지도 않는 잡지를 어쩌다 보게 됐다. 휘리릭 휘리릭 건성으로 넘기다가, 한 기사에 꽂혔다. 북~ 뜯었다.

내 것이 아닌, 공공의 잡지를 뜯는 경우. 살짝 죄를 저지른 셈인데, 드물게 일어나는 이런 경우는 내게 꼭 필요한 정보가 있거나, 글에 꽂혔을 때다. 아, 멋지다. 다시 찬찬히 씹어먹고 싶다, 뭐 이런 이기심의 발동. 뜯을 땐 몰랐다. 아니, 김지수였다. 그러니까, 후자였다. 글쓴이가 묻어 있는 진심의 글(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허세니 허영이니, 오해였다. 미안하다. 그날 독자만남, 다른 일 때문에 기분이 영 언잖고 다운돼서 그리 뒤틀려서 그랬나보다. 무척 미안하다. 혼자 생각한 거였으니 거두고 자시고 할 것도 없지만,  김지수가 이글을 볼 리도 없지만, 그래도 사과. 괜히 앞뒤로 랭보 이야기만 시불렁 거린 것도 좀 미안해지네.

그녀 글에서, 10년 전 동티모르 독립을 지원하고 있다는 노르웨이의 한 버스 운전사를 만나고 싶어졌다. 10년 전이면 동티모르가 독립하기 직전인데, 노르웨이와 동티모르. 글자수가 같다는 것 외에는 안드로메다와 지구 사이다. 와~ 나는 히치하이커가 되고 싶어졌다.(으응?) 액세서리로서의 삶이 아닌, 뭔가 없는 걸 얻으려고 심하게 노력하는 것이 아닌,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개성을 품은 삶. 

결론은? 난 변덕쟁이 남자! ^^;
 
 

2. 미안
그런 아픔이 있는지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미안.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서 있는 것 조차도 힘들었을텐데, 그 수많은 사람들의 눈은 또 얼마나 고문이었을까. 구체적인 존재들의 심연을 내가 어떻게 알겠느냐마는, 이것 하나만은 분명해. 넌 전혀 잘못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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