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자
붉은 로자. 불꽃의 여인. 마르크스 이후 최고의 두뇌.
레닌, 한마디 덧붙인다.

"그녀는 혁명의 독수리였으며, 독수리로 남을 것이다."
로자 룩셈부르크. 순정한 혁명주의자의 이름.  
급진적이었고, 극좌라는 표현도 잘못된 건 아닐 것이다.
폴란드 출신 독일의 사회주의자인 그녀는,

타협을 모르는 불굴의 혁명가였다.

엊그제 장원봉 교수의 협동조합 강연,

로자 누나의 이름이 언급됐다. 반가웠다.
뜨거운 수정주의 논쟁을 펼친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과 협동조합과 관련해 펼친 논쟁의 일부.

 

로자는 협동조합을 수정주의로 인식했다. 그녀는 주장했다.
"협동조합에게서 무슨 사회성을 발견할 수 있지? 결국 그것들은 개인주의적인 것뿐이야. 결국 개인주의 기업으로 퇴행할 거야."

베른슈타인은 반박했다.
"생산자협동조합은 판매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소비자 협동조합의 구매를 위해 생산한다고!"

다시 로자는 공격했다.
"그렇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세상을 봐. 거대한 제조산업이 성장하고 있고, 그것이 협동조합으로 가능할까?"

베른슈타인, 뜸을 다소 들이며,
"하지만 우리는 산업자본은 노동조합이 통제하고, 상업자본은 소비자협동조합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어."


100년 전이었다. 결과적으론 로자의 주장이 옳았다. 
급격한 시장화와 제도화가 진행되면서 이전에 발흥했던 사회적경제는 퇴조했다.
복지국가의 도래도 협동조합이 약해지는데 한몫했다. 국가가 협동조합의 몫을 대신했으니까.

로자는 어쨌든 대처 이전 '철의 여인'이었다. 물론 대처와 판이하게 다른 철학과 사상으로 실천한.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사회. 로자의 신념과 이상은 그에 기반했다. 실패도 그녀에겐 자극일 뿐.  

로자가 마지막에 남긴 글은 이랬다.
"그러나 혁명이 가진 특수한 생명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거듭되는 패배를 통해서만이 최후의 승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말, 바꿔말하면, "씨바, 쫄지 마!"
즉, 패배는 혁명의 '스펙'이다. 스펙을 그만큼 쌓아야, 승리도, 혁명도 가능하다는 법칙.

결론은 이렇다.
나로선, 로자 룩셈부르크와 커피의 친연성은 알 수가 없다.
다만 순정한 혁명주의자였기에 그녈 떠올린다면 1월15일의 커피는 '리스트레또'.
커피 향과 맛을 좌우하는 성분 중심으로 뽑는 리스트레또가 맞다.
잡맛을 가능한 제거한 순정한 에스프레소의 엑기스.  

로자는 93년 전인 1919년 이날,

살해당했다. 비극, 그 자체였다.
한때의 동지가 집권한 가운데, 군인의 개머리판에 머리를 맞고 확인사살당했고 강에 버려졌다.

그 죽음,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이렇게 노래했다.
"붉은 로자도 사라졌네/ 그녀의 몸이 쉬는 곳마저 알 수 없으니/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유를 말했고/ 그 때문에 부유한 사람들이 그녀를 처형했다네."  


한명숙
1월15일. 1919년 로자는 죽었고 2012년 한명숙은 민주통합당 당대표가 됐다.
한 여성이 죽고, 한 여성이 일어났다. 1월15일의 커피가 '리스트레또'가 돼야 할 또 하나의 이유.

아 물론, 로자와 한명숙은 너무도 다른 인물이다.
'무죄녀' 한명숙 대표, 청렴한 행정가일 수 있겠다. 반MB정서를 업고 야당 대표로까지 올라섰다. 잘된 일이다. 그것도 여성이. 격하게 찬성!

그러나, 냉정하게. 한 대표가 정권을 바꾸게 하는데 일조할지는 모르겠다. 
한명숙(으로 대표되는 세력)이 인민의 삶을 바꾸진 못할 것이다. 혁명은 없다.   
지금 엄혹한 1대99 시스템을 바꿀 정치인, 아니다. 나는 그들의 개혁(가능성)조차 회의한다.
근본적 모순에 대한 언급도 없고, 반성도 미미하다. 그 모순을 해결할만한 콘텐츠도 미약하고.

더 냉정하게 투표로 이들 세력에게 권력을 준들,
그들이 김대중·노무현 시대의 반성과 성찰, 깨달음을 통한 실천을 못한다면,
우리는 투표 기계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투표만 하면 뭐든 바뀐다고? 조까라 마이싱. 내가 보기엔 그들은 로자가 아니다.
결국 인민이 말을 하고 행동해야 한다. 투표보다 직접 액션을 통해 점령해야 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월호, 세르주 알리미 발행인의 말을 담아둬야 할 이유. 
"만약 올 한 해 동안, 권력을 휘두르는 금융자본을 제어할 적절한 수단과 정치적 의지가 표출되지 않는다면 모든 선거는 쓸데없는 짓이 될 것이다."
 


직접 눈으로 확인한 바는 아니지만,
독일 베를린의 지하철 한 역 이름이 '로자 룩셈부르크'라더라.
그 언젠가 1월15일엔 로자 룩셈부르크 역에서 리스트레또 한 잔을.

아 물론, 강철 여인, 혁명의 독수리에게도 사랑은 있었다.
리투아니아 출신 사회주의자 레오 요기헤스. 로자의 오랜 스승, 동료, 연인이자 사실상 남편.
고종석에 의하면, "독립 여성의 상징이라 해도 좋을 로자가 레오 앞에서만은 순한 양이 되었다." 로자가 레오에게 보낸 연애편지, 참으로 달큼하다. 로자라는 한 여자안에서 나온 것인지, 우와~

혁명은 사랑과 함께다. 커피도 사랑과 함께라면, 이날의 리스트레또는 달금하다.  


룩셈부르크
로자 '룩셈부르크' 얘기기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룩셈부르크의 속담 중 하나. (으응?)
"룩셈부르크인은 혼자 있을 때 장미밭을 가꾸고, 둘이 모이면 커피를 마시고, 셋이 모이면 악단을 만든다." 그렇게 커피를 들입다 마시니, 이런 통계도 나온다.

2010년 기준 27.2kg.
룩셈부르크 한 사람당 1년에 소비하는 커피의 양이다. 세계 최대란다. 한국? 
같은 해 기준 1.9kg이다. 전 세계 34위. 그래봐야 룩셈부르크의 1/14이다. 


루니 마라(루느님!) 
여자 얘기 또 안 할 수 없는데, 나, 한 여자한테 단단히 뿅 갔다.
이토록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이라니! 일은 물론이요, 자기 앞가림도 끝내주게 잘한다.  
용 문신한 여자가 이리 치명적일 줄이야. 격하게 애정할 수밖에 없는 여자, 루니 마라!!!
데이비드 핀처판 <밀레니엄>히로인이다. 남자주인공 미카엘 역의 다니엘 크레이그, 저리 가~

얼굴과 몸 곳곳엔 피어싱, 등에는 용 문신, 가죽점퍼로 간지를 뽐내고 줄담배를 피우며 오토바이를 모는 폭주족, 리스베트 역의 루느님.

그녀가 극중 법적보호자인 변호사 닐스(요릭밴 와게닌젠)의 변태성행위에 복수하면서부터, 나는 훅~ 갔다.

미카엘을 죽음 직전에서 구하고,
그에게 May I Kill? 하고 묻는데, 씨바, 얼릉 죽여 줘, 죽여 줘, 뒤따라다니면서 외치고 싶었다.

한 마디로 '마성'!
예쁘진 않은데, 이뻐~
그 미친 존재감에 내 눈은 번쩍, 귀는 쫑긋, 말초신경은 아~
아드레날린 강하게 돋는다. 보장한다. 이 여자만으로도 충분하다.

리스베트가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미카엘을 사랑할 때, 나는 한없이 미카엘이 부러웠더랬다.
그녀의 온몸을 더듬고 애정하는 미카엘이 되고 싶었다.
물론 마지막 장면, 그녀는 끝까지 쓸쓸하고 멋지다. 
뻔하디뻔한 금발 편집장과 시간 보내려 리스베트의 사랑을 소외시킨 미카엘, 바보에 멍충이다.
여자 볼 줄 모르는 병신. 내게 이런 여자만 있어봐라. 평생 뫼시고 산다!

이런 파격은 드물다.
루니 마라, 단숨에 줄리아 로버츠, 스칼렛 요한슨과 동급으로 내 여신전에 올랐다. 루느님~

강한 여자에 대책없이 끌리는 나는 역시 '강한 여자종속형 수컷'일세.ㅋ



남자3호
남자 3호, 재밌고 신나는 경험.
내가 찍은 여자는 매력투성이에 마성이 보이건만, 아무도 안 찍는다.
선물만 줬다. 나도 염치를 아는 사람이니까!ㅋ   
그녀, 독립적이고 자주적이며, 자신의 서사를 가진 사람 같았다.
살면서 어떤 변수가 그녀에게 개입할진 몰라도, 내 느낌이 맞다면,
그녀는 더 멋있는 마성의 여자이면서 아름다운 사람이 될 것이다.

헤이데이의 캘리그래피. 멋있다!


아울러,
10만 년 전에 내가 여자였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얼마나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여자였을까? 궁금해졌다.

그나저나, 내 이름은 왜 이리 제 각각이야. 쯧.  
인디언식 이름. 웅크린 태양의 그늘(그림자) (음력. 웅크린 늑대의 고향)
조선식 이름. 소싯적 마당쓸던 기생오라비. (팡 터졌다.)
일본식 이름. 아이노 켓쇼오. 사랑의 결정.
중세식 이름. 알버트 콘라드. 대단히 뛰어난 수다스런 조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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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3주기 추모사업 :

http://mbout.jinbo.net/webbs/view.php?board=mbout_6&id=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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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마구마구 카페에 가고 싶어진다. 비가 올 때, 낙엽이 우수수 쏟아질 때, 햇볕이 넘쳐날 때, 구름이 멋진 날, 너무 추운 날……. 모든 날씨는 카페를 부른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거기에 있다.                 - 이명석, 《모든 요일의 카페》 중에서 -

 

그들은 이곳에서 모이곤 한다. 

한꺼번에 함께 오는 것은 아니다. 하나둘 따로따로 온다. 

물론 때로는 혼자, 커피를 즐기는 경우도 있다. 자연스러운 모임이다.

여긴 일종의 아지트인 셈이다. 무슨 현안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친목 모임도, 비밀 결사체도 아니다. 그냥, 그들은 '따로 또 같이'다.  

 

때론 그들은 격론을 펼치기도 한다. 

몇 주 전에는 아예 새벽을 넘길 기세여서, 커피하우스 클로징을 맡겼다. 옛다, 문 닫고 가세요. 

다음날 이야길 들어보니, 꼴딱 새벽을 샜단다. 동이 틀 때까지 다양한 토론과 격론을 펼쳤단다.

무슨 혁명을 꾀하는 혁명가들 같은 면모도 있다. 

 

가만 들어보면, 주제도 다양하다.

선거와 민주주의, 사랑의 종말, 학교(교육)의 불가능성, 공정무역과 경제체제, 음악과 나가수, 아이돌의 품평회, 여자와 남자의 차이, 그야말로 종횡무진, 종횡사해다. 

다양한 담론이 오간다는 것, 견해의 다름(차이)을 인정한다는 것.

이들이 느슨하게 계속 이렇게 만날 수 있는 요인이 아닐까, 이 커피집 아저씨는 생각해 본다.  

 

오늘은 3명이 모였는데, 두 여성 이야기로 꽃이 핀다.

커피를 가져다주면서 잠시 껴들었었는데, 코코 샤넬과 전혜린.

말하자면, 20세기 여성해방에 기여한 사람들이다.

어제가 두 사람의 기일이었다. 전혜린은 1965년에, 샤넬은 1971년에. 각기 47주기, 41주기.

물론 차이는 있다.

전혜린은 31세에  스스로 세상에 절연을 선언했고,

87세로 생을 마감한 샤넬의 마지막 말은, "결국 사람은 죽는구나!".

 

 

 

 

 

우선 코코 샤넬.  샤넬, 스타일 혹은 혁명의 또 다른 이름

커피 하는 내 입장에서 비약하자면, 그녀는 테이크 아웃 커피점을 융숭시킨 시발점이다. 

무슨 말이냐고? 

생각해 봐라. 이른 아침, 머리를 찰랑이며 회사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는 여인이 있다.

검은 트위드 자켓을 걸치고, 무릎을 약간 넘기는 적당한 길이의 치마와 레깅스로 조합한 그녀,

숄더백을 어깨에 걸치고 있다.

그녀, 회사 부근에 위치한 공정무역 커피점에서 마다가스카르 천연바닐라빈라떼 한 잔을 시킨다.

잠시 향과 맛을 보더니, 테이크아웃 잔을 들고 회사로 들어선다. 천연바닐라빈과 커피의 조합이 향기롭다.

 

그 모습, 코코 샤넬 덕분이다.

그녀는 여성의 몸과 마음을 죄던 코르셋으로부터 여성들을 탈주시켰다.

장례식에만 입던 검은 옷을 일상화시키고, 거리를 빗자루질하던 드레스를 무릎 위로 업했다.

핸드백에 끈을 달아서 두 손을 자유롭게! 두 손으로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들 수 있게 한 것이다.

 

두말하면 잔소리겠지만,

저지드레스, 카디건 슈트, 샤넬 슈트, 나팔바지, 단발머리, 트렌치코트, 터틀넥스웨터, 리틀블랙드레스, 샤넬 No.5 등.

하나로 정리하면, 이른바 샤넬 스타일의 시작이요, 독창적인 시그니쳐 룩. 불필요하고 허세 가득한 쓸모없는 복장은 꺼져라!

20세기 복식 혁명을 일군 장본인, 샤넬.

 

에브리바디, 샤넬 스타일!

여성을 옷뿐만 아니라, 시대의 속박으로부터도 해방시킨 그 스타일.

당신에게 샤넬 제품이 없을지 몰라도, 샤넬 스타일은 있다.

 

 

"아저씨, 샤넬을 어떻게 그리 알아요?" 

 

"내 안에 샤넬이 있거든. 하하. ^^;; 샤넬이 세상을 휩쓸 땐, 이런 말도 있었어. "샤넬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여자는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여자가 아니다." 몰랐지? 니들에게도 샤넬이 있어! 너 안에 샤넬 있다!"

 

"이 아저씨, 여하튼 예쁜 여자라면 다 알아요. 밝힘증이라니까. 호호."

 

"야, 니들이 날 제대로 아는구나." 

 

"샤넬도 살아있을 때, 너희들처럼 커피하우스를 들락거리고 그랬어. 다른 사람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세계를 생각하느라."

 

"아, 그래요?" 

 

"그럼. 샤넬의 유명세만큼 사교계 거물이었거든. 다들 그녀를 만나려고 안달이기도 했지. 장 콕토, 피카소, 달리, 스트라빈스키, 헤밍웨이, 콜레트, 그레타 가르보, 마를레네 디트리히... 숱하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교류를 나눴거든. 돈이 많으니까, 그들을 후원하기도 했고."

 

"우와~ 우리한테도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호호."

 

"이 아저씨가 있잖아. 하하. 샤넬은 장 콕토가 알코올 중독이 됐을 때 치료비를 부담해주기도 했고, 스트라빈스키가 <봄의 제전>을 작곡할 수 있도록 후원도 했어. 대신,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겐 도움을 안 주고, 자신이 도와야겠다고 마음 먹은 이들한테는 드러나지 않게 도왔대. 나는 완전히 다 드러나게 도와줄게. 하하." 

 

"에이, 밤9시가 넘으면 1000원에 커피 팔면서, 아저씨가 뭘 도와요?ㅋㅋ"

 

 

레 되 마고(Les Deux Magots)였다. 

 

샤넬이 그들과 교감을 나누고 토론했던 커피하우스, 혹은 카페, 또는 살롱.

1875년에 문을 연 이 곳은, 원래 중국산 비단을 파는 가게였다.

그 비단 가게의 이름이 레 되 마고였는데, 카페로 바뀌면서도 그것을 유지했다.

19세기에는 베를렌느, 랭보, 말라르메 등 상징주의 시인들이 단골이었고,

20세기 들어와서도 바타이유, 브로통, 피카소, 생떽쥐베리, 자코메티 등이 이곳을 찾았다.

사르트르, 보부아르 등도 단골이었는데, 1933년에는 레 되 마고 문학상이 제정될 정도로 이곳은 하나의 문화적 유산이 됐다.

 

재밌는 건, 커피하우스도 이념에 따라 구분됐다.

20세기 초반 유럽에 파시즘 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지식인들은 레 되 마고에 모여 파시즘을 성토하거나 대책을 논의했다. 

이른바 진보주의자들의 아지트였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도 이곳의 단골이었다.

두 사람이 날마다 독서와 토론으로 열을 올리자, 그들을 보기 위한 구경꾼도 들끓었다. 

그런데, 여기에 반발한 진보진영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레 되 마고 대신 옆의 드 플로르를 찾았다. 

당시 보수파들이 주로 드나들던 드 플로르에, 진보진영 지식인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점령했다. 

더 재밌는 건, 사르트르도 레 되 마고의 난방이 형편없다는 이유로 드 플로르로 둥지를 옮긴 것.

자신들의 진영을 뺏긴 보수주의자들은 레 되 마고로 건너갔다.

 

두 카페, 정체성(?)이 바뀌었다.

레 되 마고는 보수주의자들의 아지트가 됐고, 드 플로르는 진보주의자들의 아지트가 됐다.

물론 다소 기계적인 구분이지만, 공간을 만드는 것이 결국 사람이다보면,

사람들이 커피하우스라는 공간을 그렇게 규정하는 일도 생긴다.

오늘날도 그런 전통(?)이 좀 남아있단다.

진보 지식인들은 레 되 마고는 피하고, 반대 진영은 카페 드 플로르를 꺼린다는. 사소하고도 강박적인 전통.

 

 

 

"그러니까, 니들도 여길 만들 수가 있어. 너희들 보고 사람들이 몰려들 수도 있고."

 

"와, 그럼 여긴 우리 같은 얼치기 진보들의 놀이터가 되겠네요. ㅋ 아저씨, 괜찮겠어요?"

 

"나는 대세를 따르는 사람이라서 상관없어. 하하."

 

"근데, 샤넬은 어떤 진영이었을까요? 애매해. 애정남이 있어도 정하질 못할 거 같애."

 

"장 콕토가 한 말이 그에 대한 답이 될 것 같은데... 이랬거든. "매력적이면서 호감을 주고, 인간적인가 하면 잔인하며, 때론 너무 지나쳐 보이기도 하는 여자. 분노, 변덕스러움, 친절함, 유머, 반짝이는 생각, 검소함, 그리고 관대함이 샤넬이라는 다시 없을 독특한 여자의 모든 것이다." 캬, 멋지지 않아? 다시 없을 독특한 여자의 모든 것! 니들도 좀 그래봐라. 그럼 내가 커피 후원은 '학실히' 할게."

 

"칫, 뭐야. 그럼 아저씨, 전혜린 알아요?"

 

"응, 그럼 알지, 당연히!"

"우와~ 아저씨 같은 사람도 알아요? 호호."

 

"야야, 말도 마라. 한참 열풍이 지났을 땐데, 나 때만 해도 전혜린, 하면 자지러지는 여자애들 많았어.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었지. 요절 때문에 신화가 된 거고. 그리고 아무 말도 없었다. 캬. 감수성 돋는 소녀들이 어찌 뻑 가지 않겠니."

 

"장 콕토가 했던 그 말을 한국에 적용하면, 전혜린이 그럴 것 같아요."

 

 

전혜린은 문학소녀들의 만신전 같은 존재였다.

나는 그 여자를 스무살 초반에야 읽었다. 멋도 모르고 읽었고, 강렬했다. 어찌 이런 글을.

열정과 광기 사이. "1세기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는 천재"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 평가에 비해 그녀가 세상에 남겨 놓은 유산은 터무니 없이 부족해 뵌다.

인식의 갈망으로 불타올랐지만, 그녀를 감당하기에 세상은 지나치게 견고했다.

그녀의 재능을 받아줄만큼 세상은 대범하지도, 과감하지도 못했다. 아니, 쫌생이였지.

 

그녀는 스스로 휘발했다. 

이 빌어먹을 가부장적이고 경직된 사회의 견고함을 깨부수고자 했으나, 그녀 이전의 혁명적 여성들도 그러했듯. 제길.

그녀는 지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어느 조용한 황혼에 길가의 주막에 쓰러져 있는 집시가 있거든 나라고 알아줘!"

집시에겐 머물 곳이 없다. 혁명을 용서하지 않는 이땅은 그녀를 애써 무시한 것이 아녔을까.

 

 

"오늘 우리 주제가 그거였어요. 어떻게 세상과 싸울까. 여성은 어떻게 이 견고한 세상과 싸워야 하나."

 

"와우, 이 아저씨도 도울게. 뭘 해줄까? 찐한 커피 한 잔, 더 줄까? 하하."

 

"좋아요. 그게 어디야. 커피로 혁명하는 거지, 뭐. 우리가 잘 되면 여기도 뜬다니까요. 아저씨, 우릴 믿어봐요."

 

 

 

전혜린의 단골 커피하우스, 학림.

그녀가 죽기 하루 전, 1월9일.

하늘은 맑았지만, 날씨는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질만큼 추운 날이었다.

그녀는 당시 서울대 문리대 앞의 동숭동 학림다방 오른편 맨 구석 창가 자리에 앉았다고 한다.

밤색 코트를 입고 검은 혈액을 마시면서 바깥 풍경을 내다보며 혼자 있었다.

지금도 학림은 그 자리에 있다. 1월10일, 전혜린이 앉았던 그 자리에 앉아보는 것도 괜찮겠다.


한파가 몰아치는 오늘.

전혜린과 샤넬을 떠올리고 이야기하는 청년들에게, 나는 은근슬쩍 혁명의 꿈을 싣는다.

부디, 너희들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다오. 못난 어른들이 땡깡으로 허술하게 만든 세상에 함몰되지 말고.

'남들만큼, 남들 보기에'를 들먹이며, 똑같아지기를 원하는 어른들의 마수에 걸려들지 않길.

몰개성 말고 스타일. 샤넬 스타일. 전혜린 스타일.

 

 

 

내 커피는 그런 너희들을 위한 것이거든. 바로 이 순간의 샤넬을 위해, 전혜린을 위해.

내가 커피하우스를 하는 이유. 커피아저씨로 남아있고픈 이유.

 

1월10일의 메뉴는, 그래서 '샤넬 No.전혜린'.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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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살. 가족(의 아픔)을 생각하기엔 어린 나이다.

그러나 11살 줄리안은 커서 배우가 돼 돈을 벌어 가족을 돕고 싶단다.

 

엄마는 이미 암으로 돌아가셨다.

아임 파인(I'm fine), 괜찮다고 이 소녀, 웃었지만 이내 눈물을 뚝뚝 흘리고야 만다.

어쩔 수 없는 11살 소녀다.

어찌 괜찮을 수가 있나. 그건 평생 괜찮지 않을 상처인데.

 

 

아이 해브 어 드림. 꿈을 그리고 있다. 이 소녀.  

돈을 벌어 밑의 세 동생들 학교에 보내주겠다는 다짐도 한다. 

꿈을 이루겠다고 약속한다.

그 약속, 꼭 지켜졌으면 좋겠다고 울음을 터트리는 13살 한국의 소녀도 있다.

 

 

줄리안 로렌쇼.

한국 아이쿱생협 조합원들이, 그들이 건립한 공정무역 마스코바도 설탕공장의 첫 설탕 생산 공정을 보기 위해, 필리핀 빈곤율 2위의 파나이섬을 찾았다. 

그들과 사흘동안 부대끼며 지냈던 11살 소녀는, 그들이 떠나자 이내 그들이 그립다며 눈물을 펑펑 흘린다.  

 

KBS2TV < 다큐멘터리 3일 : 달콤한 공생 - 파나이 섬의 이상한 설탕공장 >.

 

파나이 섬에 안티케 빨간지붕의 설탕공장이 만들어졌다.

좋은 품질의 사탕수수로 유기농 설탕을 만들 수 있는 그곳은, 공정무역이 이뤄지는 현장이다.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행복하자는 모토의 공정무역.

 

줄리안에 감정적으로 꽂혀 단순히 돕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줄을 잇겠지만,

지속가능한 삶(사회)과 사회 인프라 확충 등 공정무역이 지닌 진짜 의미와 그들을 빈곤에 빠트린 주류 경제(무역)구조에 대한 사유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

 

우리가 공정무역 커피를 내리고,  

미욱하지만 공정무역과 관련한 활동을 계속하는 건,

그것이 우리가 지금 세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정무역 커피를 통해 세계의 일부임을 자각하고 세계는 우리의 일부임을 확인한다.

 

부디,

의사나 교사보다 마스코바도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년의 꿈이 이뤄지길. 가족들을 돕고 싶다는 줄리안의 꿈이 열매를 맺길.

그 꿈에 당신의 흔적이 보태지길.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공정무역 제품을 통해 당신은 그들과 맺어질 수 있으니까.

그것이 내가 아는 세계가 작동하는 원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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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빈

경복궁, 1년에 1~2번은 가게 된다. 올해는 연초부터. 따지자면, 봉빈(난)의 흔적을 좇는 자리.

자선당(資善堂)을 다시 봤다. 자비로운 성품을 기르는 곳이라는 뜻을 지닌 곳. 동궁전(東宮殿)이라고도 불리는 그곳.

세자(와 세자빈)의 공간이다. 다음에 왕이 될 사람이기에 떠오르는 해에 비유해 궁궐의 동쪽에 배치했다. 동양의 전통이다. 세자를 동궁마마라 부르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일제강점기. 일제는 경복궁 해체작업의 첫 번째 건물로 자선당을 지목했다. 당연한 것이었다.

다음 왕의 건축물이니까.

일본인이 그것을 샀고, 박물관으로 흘러갔다. 지진이 일어났다. 소실됐고, 내동댕이 처진 상태에서 김정동 교수가 부서지다시피한 바위(흙)을 가져왔다. 자선당은 복원됐다.

 

어쨌든 이곳. 문종이 세자시절부터 28년을 보낸, 어쩌면 자선당의 유일한 주인이라 불릴 법하다.

순종이 자선당에 있었다하나, 일제의 철저한 관리감독하에 있었으니. 28년을 세자로 자선당에서 살면서 그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위대한 왕이었던 아버지와 비교당하고, 제대로 사랑하지 못해서. 첫 번째 부인은 미신신봉자로 쫓겨났다. 봉빈은 두 번째 부인이었다.   

 

봉빈은 자선당 한켠을 차지했다. 문종이 거처한 건너편 방.

그러나 그녀는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시아버지(세종)에 의해 쫓겨났다.

《채홍》은 그런 사실을 두고, 김별아 작가가 소설적 상상력을 불어넣었다. 

채홍(彩虹), 즉 무지개. 성적 소수자들의 상징. 

 

그녀의 거처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그녀는 사랑을 원했고, 그에 따라 행동했으나 우주는 합당한 응답을 보내지 않았던 것 아닐까.

사랑은 양자역학이 작용한다. 현재 상태를 명확하고 정확하게 알 수 있어도 미래에 일어날 일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종의 아들을 지아비로 두고, 세자빈이라는 명백한 지위였음에도,

봉빈은 사랑을 택했던 것일 게다. 사랑이 죄가 됐다. 사랑때문에 죽었다.

그렇기에 김별아 작가는 봉빈을 기억하라고 한다. 기록되지 못했기에 기억할 수밖에 없는 사랑.

 

 

 

여자

스티븐 호킹. 8일이면 70세 생일을 맞이한다는 천재 물리학자. 

우주의 신비 일부를 풀었던 그도, '완벽한 미스터리'가 있다고 털어놨다.

한 과학잡지와의 인터뷰, 하루 중 무슨 생각을 가장 많이 하느냐는 질문에, 

호킹 박사는, "Women. They are a complete mystery."라고 말했단다.

 

우주의 신비와 비밀을 밝히고자 일생을 바친 사람이 정작 알고 싶은 것은, 여자가 아녔을까.

여자라는 우주. 여자라는 신비. 여자라는 비밀. 여자는 미스터리요, 수수께끼.

그만큼 이해하기 어렵다는 여자라는 말은 곧, 사랑이 그랬다는 얘기와도 통하리라.

 

유럽의 인권사를 봐도, 특히 여성 투표권을 둘러싼 논쟁을 보면, 

중세 철학자들은 여성에게 영혼이 있는지 여부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고 한다. 결론도 못 냈고.

프랑스혁명의 인권선언만 해도,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고 적어놨지만, 

여성이나 흑인은 '인간'이 아니었다.

 

여자사람은 어쩌면 권력을 지닌 수컷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수컷들, 여자들이 권력을 가지거나 힘이 세지는 것에 대해 극렬한 반응을 보이잖나. 여자사람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이리 말한다.

수컷이 여자사람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해력의 부족 때문이 아니다.

수컷은 자기 본위로만 생각하고 타인을 인식하는 것밖에 모른다.

그래서 다른 베이스를 가진 여자사람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뭐, 맞네. 맞아. 전대에서 돈봉투 돌린 건 다 수컷의 짓이다.

자기 본위로만 타인을 인식하는 이들에게 돈봉투 따위야 뭐.

 

허나, 봉투는 또 무슨 죈가.

봉투, 사랑의 이야기를 고이 담아 사랑하는 자의 손에 올라섰던 존재였다.

그러나 이제 그런 낭만은 없다. 더러운 지폐만 잔뜩 담겨서 누군가의 주머니로 쏙 들어간다.

봉투도 참 못할 짓이다. 자긴들 그러고 싶겠느냐마는.

 

봉빈이 폐위되고, 죽어야 했던 이유? 동성애, 아니다!

감히 말하건대, 수컷들이 여자사람을 모르는 '무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수컷들에겐 이런 죄명이 주어질 것이다. 여자사람을 알려고 노력하지 않은 대역죄!

 

여자도 미스터리, 사랑도 미스터리.

양자역학은 여자에게도 사랑에게도 작동한다.

 

그나저나, 호킹 박사님, 생신 축하합니다. :)

미스터리(여자)를 풀려는 노력, 거두진 마세요. 당신의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을 거예요.

 

이럴 땐, 아델(Adele)의 노래가 쵝오.

겨울밤에 어울리는 아델의 이토록 매혹적인 소울 튠하곤.

귀는 쫑긋, 말초신경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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