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 지식여행자 5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마음산책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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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보다 동물! 수컷보다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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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 지식여행자 5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마음산책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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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여사!
얼마 전 만났던 한 양반은 저를 일컬어 ‘남자 사람’이라고 표현해 주더군요. 그 호칭을 보고선 안도의 한숨, 휴~. 인간 수컷 아닌, 남자 사람이라니. 뭔가 괜히 업그레이드라도 된 기분이었다고나 할까요. 특히나, 요즘 마리 여사의 이웃나라인 여기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들을 보아하자면, 에휴~ 일단 한숨부터 나옵니다.

인간수컷 잔혹기

하늘에서 이웃나라까지 파악하고 계실라나요. 가장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까요. 강용석이라는 의원나리. 딴에는 후배들에게 격의 없이 뭔가를 전달해주고 싶었을지 모르나, 정신줄 놓고 아주 미친 게죠. 아니, 놓은 정신줄이 아니라 원래 그런 정신줄을 품고 사는 수컷이겠죠. 여자는 몸과 외모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가식 없이 천진한(?) 발언을 보자면, 마리 여사의 말은 참으로 당연하게 들립니다.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 그 맥락이 다르긴 해도, 어쩜 저리 딱 맞아떨어질까요. 

강 의원(이라고 쓰고, 개나리라고 읽는다)의 성희롱성 발언. 그의 기찬 어록을 보자니, 그건 이 땅의 주류 남성 정치인이 지닌 단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요. 개나리가 속한 당에선 이런 식의 ‘수컷질’이 한 두 번이 아니거든요. 어쩌면 열폭(열등감 폭발)일지도 모르죠. 왜곡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삐뚤어진 시선이 여성의 능력 앞에서 괜히 배알이 틀려선.

사실, 곳곳에서 터지는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 심하게는 살인까지 행하는 수컷들의 작태를 보자면, 아놔~ 마초인 저도 얼굴 빨개지는 걸 피할 수가 없습니다. 같은 수컷인데도 쪽 팔려서 원. 뭐, 저라고 거기서 자유롭겠습니까마는, 흠흠, 자꾸만 마리 여사의 그 말,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 가 자꾸 떠오르는 건 무슨 까닭입니까. 

인간보다 나은 동물

괜히 딴 얘기부터 해서 죄송해요. 제목이 워낙 인상적이어서. 마리여사, 난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를 이렇게 읽었어요. 어쩌면, 개나 고양이, 그러니까 인간 아닌 동물이 인간 동물보다 낫다! 그래서 그 동물과 함께 하는 사람, 참 대단하다!

마리 여사는 스스로를 이렇게 표현하셨다죠? 포용력이나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말과 행동이 직선적이고 여유가 없으며, 감정조절도 잘 못하는데다,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 부족한 사람. 제가 마리 여사를 만난 적이 없으니, 뭐라 말씀은 못 드리겠으나, 진짜 그랬을 거라는 혐의(!)가 있습니다. 바로 마리 여사도 인간 동물이니까요. 대부분 인간 동물이 그러하잖아요. 하하. 아, 저라고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흑.

그런데, 그런 여사가 변했다고 주위에서 이구동성을 했다죠? 말과 행동은 폭신한 쿠션처럼 사람을 살포시 감싸는 것 같고, 인상도 부드러워졌으며, 날카로운 눈빛도 선해졌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가장 흔히 할 수 있는 의심(?)은 바로 남자, 애인이 생겼다? 물론 당신은 그게 아니라고 하셨지요. 일곱 아이의 엄마가 됐을 뿐! 인간 아이가 아닌, 견묘 일곱의.

당신은 큰소리를 쳤습니다. “두 자릿수의 남자를 겪어보고 ‘내 인생에 남자는 필요 없다’는 결론을 얻었어.” 생의 끝까지 그 결론을 지켰을지는 모르겠으나,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겠죠. 책 읽는 내내, 당신의 모습을 상상하면 참 재밌더군요. 기억이 가진 순간부터 인간 아닌 동물과 함께 살아본 적이 없는 내겐, 그것은 신기하면서도 부럽고, 언젠가는 살아봄직한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지요.

많은 사람들은 이런 말을 내뱉곤 하지요. “개, 돼지만도 못한...” “개나 고양이도 아니고, 인간이 인간다워야지...” 그런 류의 말을 들을 때마다, “지랄한다”고 속으로 말하지요. 개, 고양이, 소, 돼지... 모든 동물보다 못한 것이 원래 인간 아니었던가요. 인간다움? 글쎄, 그건 웃자고 하는 농담인 것 같고. 인간 동물이 다른 동물보다 낫다거나, 특히 달라야 할 그런 근거는 없는 것 같은데요. 만물의 영장? 하하, 그건 일종의 안간힘이죠. 스스로를 위문하기 위한. 안 그래요? 마리 여사.

약자와 함께 하는 마리여사

흔히, 우리는 ‘기른다’라고 표현하지요. 애완동물이든 반려동물이든. 하지만, 당신이 무리, 도리, 겐, 타냐, 소냐, 노라와 함께 하는 모습에서, ‘함께 산다’는 표현이 더 맞을 듯싶었어요. 당신의 입맛에 맞춰 훈련시키거나 가르치려는 모습도 없었죠. 그저 그들의 몸짓과 표정, 실존과 부재에 따라 울고 웃는 모습이라니요. 더구나, 대부분 그들은 지인이나 동물을 사고 파는 가게에서 입양된 것이 아닌, 버려지거나 병에 걸린 혹은 어쩔 수 없이 다른 둥지를 찾아야하는 약자들. 

나는 그것이 가장 인상 깊었어요. 약자를 거두는 마리 여사의 마음 씀씀이. 멀쩡한 것은 내 소관이 아니라는 듯. 하긴 당신은 그런 유전자를 타고 났는지도 몰라요. “길 가장자리의 무성한 잡초 속에서 “야옹, 야옹” 하고 가슴을 쥐어뜯는 것 같은 울음소리가 들려오면 완전 끝장이다. 무심히 지나치려고 하면 할수록 다리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뿌리치고 걸어가면 반드시 물리학에서 배운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고개를 쳐든다.”(p.38)

또 하나, 유기된 개들의 가혹한 일생을 생각하자 어느새 눈물이 그칠 줄 모르고 흘러나왔다던 당신. 대부분의 인간 동물은 실컷 지 사랑만 퍼붓다, 유통기한이 지나면 폐기할 줄만 알았지, 그들의 삶과 마음 따윈 상관 않는다지요. 그래서 그것이 인간(동물)이기도 하고.

단언컨대, 우월한 유전자에요. 그런 유전자 덕분에 당신의 가족들은 당신을 주축으로 그렇게 멋진 앙상블을 보여줄 수 있었던 거겠죠. 인간이 아닌 동물과 함께 산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당신을 통해 새삼 깨달았어요. 뭐랄까. 무리와 도리를 입양하게 됐을 때, 무리 혹은 도리가 무릎 위에 뛰어내리면서 당신의 얼굴을 응시한 그 순간. 그 맑은 녹색 눈동자에 대한 당신의 비유. “그 어떤 보석도 이보다 아름답지는 못해.”(p.47) 아, 그땐 정말이지, 그 무리인지, 도리인지가 보고 싶어, 세로토닌이 마구마구 형성될 정도였다니까요.

혹시, 고양이와 함께 산다면, 나도 언젠가 페리네 혹성에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공상까지 했다고요. 약 50억 년 전에 형성되어 고양이들이 살았던, 지구 생태계보다 앞서 발전을 해나갔다는. 함께 살진 않지만, 나도 어쩌다 그들의 눈빛과 그들의 행성에 대해 궁금한 적이 있었거든요. 저 녀석들은 분명 지구별 아닌 다른 별에서 왔을 거야, 하는 공상을 당신이 확인시켜주다니요. 그것도 이름까지 확실하게. 나도 그러니까, 당신에게 한 표. ‘고양이는 외계인들의 지구 정복을 위한 전략의 일부.’

문득 궁금해졌어요. 당신이 없는 지금. 당신과 함께 했던 견묘들은 어떻게 됐을까. 당신과 함께 저 구름의 저편에서 다시 알콩달콩 정을 나누며 사는 견묘도 있겠지만, 아직 남은 견묘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아, 맞아, 또 궁금한 거 하나. 거기선 고양이와 개 사이의 통역은 문제없겠죠?

겐은 어떤가요

참, 제가 가장 아팠던 것은 겐의 실종인데요. 노라가 대신 들어왔다고는 하나, 저는 무리와 도리에 다소 가렸던 겐이 가장 마음에 남았답니다. 그래서 걱정이었어요. 당신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가까스로 극복한 겐이 인간 동물에게 다시 학대당한 것은 아닌지, 다른 트라우마를 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금, 당신은 잘 알고 있겠죠. 겐의 행방. 당신과 함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픈 제게, 그런 우연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연’이란, 하느님의 다른 이름이에요.”(p.251)

세 라비C’est la vie. 마리 여사에게도, 겐에게도, 무리와 도리에게도, 타냐와 소냐에게도, 노라에게도, 그것은 인생, 견생, 묘생. 세 가지 동물군의 생과 일상, 표정을 볼 수 있어서 고마웠습니다. 역시나, 인간 수컷 따위 필요 없었다는 마리 여사의 말, 동감할 만해요. 비록 나도 수컷이지만, 지금 정말 그 말이 딱 부러지게 맞아 떨어지네요.

'좋은' 남자 사람이 돼야지

참, 교육방송(EBS)의 한 강사가 군대를 ‘비하’했다는 죄목으로 방송에서 잘리고, 담당 프로듀서도 문책을 당했다는데, 그 발언을 보자니, 어안이 벙벙하더군요. 그녀는 강의에서 언어변화와 관련해 여자와 남자의 차이에 대한 지문내용을 설명하면서 이런 말을 했대요.

“남자들은 만날 자기가 군대 갔다 왔다고 뭐 해달라고 떼쓰지 않느냐”
“여자들이 그렇게 힘들게 낳아 놓으면, 남자들은 군대 가서 죽이는 거 배워 온다”
“죽이는 거 배워 온 게 대체 뭘 잘했다는 거냐”
“처음부터 그런 거 안 배웠으면 세상이 평화롭다”

아니, 이거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말만 했는데, 왜 잘려? 응? 나라는 수컷, 군대 다녀왔지만, 그녀의 생각과 똑같은 걸요. 대체, 군대에서 배우는 건 남 죽이는 거 말고 있던가요. 총으로 쏴 죽이거나 말로 죽이거나, 아주 더러운 것만 배워주는 군대. 그런데, 바른 말하던 그녀는 잘리고, 강용석 개나리는 당에서만 제명당했어요. 수컷이라고 봐 주는 거냐, 응, 이라고 항의하고 싶었다니까요.  

아, 저도 갑자기 흥분했네요. 근데, 인간 수컷은 필요 없지만, 남자 사람은 가능하면 좀 살아남게 해 주세요. 전, 인간 암컷은 필요 없어, 라는 말은 못해요. 인간 암컷이라도 인간 수컷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헤헤. 마리 여사에게도 보니까, 잘은 모르지만, 동물병원의 아라카와 선생님이나 왜건 택시 운전사 가시오 씨와 같은 ‘좋은 남자 사람’도 있던 걸요. 

마리 여사, 당신 포유류 가족들 이야기. 제겐 인간 아닌 다른 동물 가족이 없지만, 참 좋았어요. 아마, 인간 수컷 아닌 남자 사람이라는 확신이 스스로 들 즈음엔, 고양이와 함께 살아보려고요. 결심, 굳혔어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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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견문록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음식기행 지식여행자 6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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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입안에 집어넣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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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견문록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음식기행 지식여행자 6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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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것인지 모르겠으나, 여기 이 말. “음식은 1분 만에, 음악은 3분 만에, 영화는 2시간 만에 새로운 세계를 맛볼 수 있다.” 결론부터. 요네하라 마리 여사는, 『미식견문록』은 이 말의 작은 증명이자, 확인이다.(물론 1분, 3분, 2시간이라는 숫자는 무시해도 좋다. 음식이나 음악, 영화가 주는 새로운 경험과 사유를 말하는 것이니까.) 그녀의 음식기행은 여느 미식가의 것과 다르다. 각 음식에 대한 품평이나 음식점 혹은 요리사에 대한 인상비평이 아니다. 촌철살인의 음식비평을 기대할 것은 아니란 말씀. 

내가 본 『미식견문록』은 이랬다. 아버지의 튼튼한 위를 물려받았고 맛있는 음식 앞에선 이성 따윈 잃는 ‘쓰바키 히메(냠냠공주)’가 음식을 먹어가며 세계를 사유한 기록. 마리 여사는 자신을 이렇게 묘사한다. “맛있는 것이라면 정신 못 차리지만 미식가를 자처할 정도로 전문가도 아니요, 미각에도 자신이 없다. 먹는 양과 속도만큼은 평균 이상이지만 요즘 뜨는 푸드파이터(상금을 목적으로 도전하는 프로 대식가들) 발끝에도 못 미친다.”(p.245) 

그러다보니, 그녀의 음식 이야기, 군침을 돌게 하기보다는 새로운 세계를 유랑하는 기분을 맞보게 한다. 러시아의 속담이라고 했던가. ‘(보드카를) 마셔도 죽고, 안 마셔도 죽어. 어차피 죽을 운명, 안 마시면 아깝지.’

러시아에서 살아서일까. 그녀의 음식기행도 마찬가지다. 어린 날, 병아리의 죽음에 눈물 펑펑 흘리며 다시는 닭고기나 달걀이 들어간 어떤 것도 입에 대지 않던 그녀는, 어느 날 카스텔라(달걀이 들어간)를 맛있게 먹으며 깨닫는다. 그리고 어른이 된다. “먹는다는 것과 산다는 것, 이는 어찌 이리도 잔혹하고 죄 많은 일인가. 살생의 죄책감과 맛있는 것을 먹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 이 모순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어른이 된다는 것일까.”(p.23)

아하, 맞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선, 정면으로 응시해야 한다. 링 밖에서 맴돌지 말고 링 위로 올라가야 한다. 일종의, 첫사랑 극복법.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던가. 내게도 물론 그랬지만, 첫사랑은 대부분 자연스럽게 속물이 되기 직전, 순수함이 철철 묻어날 때, 재테크가 어떠니, 연봉이 얼마니, 자동차가 뭐니, 따지기 이전의 단계다. 그래서 평생 지워지지 않을지도 모를 첫사랑. 하지만 대부분 안타까이 막을 내리는 첫사랑. 무너져 버린 첫사랑, 그렇게 가슴 속에서 죽은 첫사랑을 제대로 애도해야만 우리는 다시 사랑을 할 수 있듯이.

다시 달걀을 입에 넣음으로써, 마리 여사는 인간의 모순도 깨닫고 어른이 된다. 그러니 꼭 어느 하나만 옳다고 단정 짓지 말 것. 나는 비교적 채식에 우호적이지만, 채식주의자가 곧 착한 사람이고, 육식이 성질을 포악하게 만든다는 단정적인 말에는 완전 비호감! 마리 여사도 말하지 않았던가. “히틀러도 채식주의자였다.”  


  

그런 한편으로, 그녀는 음식을 먹는 것에서 사람을 보고 세계를 읽는다. 그것 참 재밌다. 혈액형으로 사람을 보는 놀이는 너무 나갔다. 그저 놀이일 뿐이었는데, 많은 이들은 그것을 지고지순한 진리로 보는 것이 문제다. 여기서 마리 여사의 새롭진 않지만, 나름의 옹골찬 방식이 있다. 그녀에게, 인간은 딱 두 타입이다. 타고난 성향의 문제. ‘살기 위해 먹는’ 타입과 ‘먹기 위해 사는’ 타입. 자신은 ‘먹기 위해 사는’ 부류라고 커밍아웃한 그녀는, 각 타입별 성격 분석까지 해 댄다. 전자가 공상벽이 있는 염세주의적 경향의 철학자에 많다면, 후자는 낙천적이고 인생을 즐기려는 현실주의자가 많단다. 아, 나는 어딜까, 생각해보니, 나 역시도 후자다. ‘잘’ 먹는 것이 곧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미래의 불안을 담보로 현재를 유보할 생각이 없으니까.

음식을 통한 사람읽기는 또 가지를 친다. 그것이 그런데, 그럴듯하다. 러시아 주요 인사들의 통역으로 동행하면서 그녀는 세계사의 변혁에 중요한 위치를 지닌 인사들의 먹는 방식과 정치스타일을 비교한다. 오호, 어쩌면 이것은 비약하자면 음식이 만들어낸 세계사의 변혁이 아닐까. 리가초프, 고르바초프, 옐친의 음식 취향이 그것인데, 그들 각자의 낯선 음식에 대한 반응과 정치에 대한 혁신성이 정비례한다는 사실.

물론, 아까도 언급했지만, 히틀러가 채식주의자이듯, 보수적인 식생활을 즐기는 혁명가도 있을 터이며, 희한한 음식을 즐기는 보수정치가도 있다는 것을 마리 여사는 간과하지 않는다. 어쨌든 한 번 따져보고 싶더라. 내 음식취향과 정치적 입장은 어떻게 매칭이 되는지 살펴보고선, 문득 궁금해졌다. 이 나라의 가장 큰 쥐구멍에 서식하는 대왕쥐(?)는 어떤 음식취향을 갖고 있는지, 한식 세계화를 부르짖는 여사쥐(?)는 진짜 제대로 먹을 줄 아는지.
 
‘맞아, 맞아’, 손뼉 치며 고갤 끄덕인 부분이었다. 음식에 대한 선택이 한 사람을 드러내거나 보여주는 창이 되겠구나. “음식은 자기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니, 처음 보는 음식을 먹을 때는 무의식적으로 본성이 나온다. 그 사람의 호기심과 경계심 사이의 균형감각이 드러나고 마는 것이다. 미지의 것에 얼마나 마음을 열고 있는지를 볼 수 있는 리트머스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겠다.”(p.191) 혈액형 놀이가 식상하다면, 이젠 음식으로 놀이할 수 있는 방법도 있겠다. 빙고.

다만, 나고 자란 환경과 문화의 영향 또한 무시할 순 없다.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극한 상황에서, 인육까지는 아니더라도 먹어본 적이 없는 동물을 입에 댈 수 있는지 여부는 개인의 성향보다는 태어나 자란 문화에 좌우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본다.”(p.119)

그녀는 음식을 통해 사람을 아는 것에서 나아가 세계의 평화를 찾는 사유까지 나간다. 그것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 흥미로웠다.(사실, 전혀 논리적이진 않다.) 말하자면, 그녀는 ‘푸드평화주의자’인 셈인데, 어떻게든 세계평화를 바라는 그녀의 마음이 음식을 통해 투영된 듯하다. 그녀는 다른 자연 조건, 역사와 문화를 배경으로 형성된 식생활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 음식을 ‘맛없다’고 잘라 말하는 것은 오만불손임을 잘 알면서도, 영국과 미국 음식을 혹평한다. “이런 변변찮은 음식을 먹고 자란 사람들은 세계 각지 어디로 파견되든 먹는 것에 불만을 품는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해봤다.”(p.210)

이에 엄청난 비약일지라도, “맛없는 요리, 이것이 영국이나 미국으로 하여금 세계를 제패하게 만든 원동력이 아닐까? 영국이나 미국 요리가 맛있어진다면 세계가 좀더 평화로워질지 모르겠다.”(p.210) 찬성. 동감. 한 표.

『미식견문록』이 신났던 것은, 음식문화에 대한 세계의 확대 덕분이었다. 전채부터 수프, 메인요리, 치즈, 디저트 순으로 음식이 한 접시씩 나오는 것이 프랑스가 아닌 러시아식 ‘서비스’였단다. 오호, 그런 일이! 토마토가 처음엔 그저 관상용이었고, 감자는 악마의 음식이라며 외면당했다는 ‘굴욕의 역사’라니. 지금의 서양 요리를 봐라. 토마토나 감자가 없는 게 말이 되나. 그만큼 미각은 보수적이라는 말도 되렷다. 다만, 어떤 식으로든 미각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고 새로운 맛을 만나게 되면, 미각은 시간을 두고 극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 아, 우리의 전통음식은 과연 어떨까.

터키꿀엿보다 맛있었던, 천상의 맛이었던, 할바를 통해 그녀는 이리 말했다. “고대에서 중세에 걸쳐 유라시아 대륙이 여러 유목민이나 상인들로 맺어져 있던 정경이 눈앞에 어린다.”(p.93) 음식을 통해 연결되는 세계라니, 근사하다. 내게, 공정무역이 그렇고, 친환경․유기농이 그랬듯이, 세계는 그렇게 잇닿아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 마리 여사가 그렇게 방점을 찍어주시는구나.

무엇보다,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권력자의 서슬 퍼런 으름장보다 더 강력했던, 러시아 최초의 무장봉기를 일으켰던 데카브리스트, 이상주의 로맨티스트 귀족 청년들의 음식 혁명이었다. 표트르 대제도 못한 감자 보급을 그들은 해냈다. 농민들의 식생활, 전 세계의 음식에 그들이 미친 영향이라니. 체 게바라보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에 준하는 관심을 주어줘야 하지 않을까. “거창한 봉기보다. 이상주의 로맨티스트 귀족 청년들이 험난한 현실에 직면해 꺾이지 않고 오히려 현실을 깨달음으로써 자신들의 이상을 관철한 이야기에 나는 매료된다. 마치 땅속에서 열리는 감자처럼, 드러나지 않지만 깊은 맛이 우러난다.”(pp.75~76)

마리 여사의 『미식견문록』은 혀의 미뢰나 코가 판별하는 음식의 향미만을 서술하지 않는다. 나로 말하자면, 세계를 넓히는 경험과도 같았다. 음식이 사람과, 세계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서술이었다고나 할까. 그 음식 틈새로 드러나는 세계에 대한 사유가 음식 그 이상의 음식, 미식 그 이상의 미식을 보여줬다. 아마 음식에 대한 촉수가 조금 더 예민해질 것이고, 그것이 먹기 위한 내 삶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들 것 같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머리에 맴도는 이것. 고도의 정보기술사회임을 내세우는 지금, 나는 그 ‘고도’에 의문을 품는다. 인간 삶도 과연 고도에 도달하고 있는지. 첨단 기술이 판을 치지만, 그것이 누구나 배 곪지 않을 수 있는 사회를 구축하고 있는지. 의심과 의혹이 토핑처럼 뿌려진 음식을 먹고 불안해하는 지금에, 누구나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어디에 있을까.

마리 여사는 농업을 천시함으로써, ‘누구나 배불리 빵을 먹을 수 있는 사회’라는 이상에 모순적인 형태를 보인 소비에트 연방, 즉 소련은 붕괴했고, 지옥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농민들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준 일본도 지옥에 떨어질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단다. 한국도 마찬가지인데, 그렇다면 우리는 지옥행 열차를 타고 있는 셈인데, 열차를 되돌리기 위해, 아니 최소한 늦추기 위해서라도, 나는, 우리는 어떻게 음식을 만나야할까.
 
에잇, 모르겠다. 어렵게 생각말자. 단순명료하게 내린 나의 결론. ‘좋은’ 음식 만나면 ‘나눠’ 먹자. “아무튼 엄청난 먹보가 많은 우리 친지들은 맛있는 음식을 발견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먹이고 싶어 하는 습성이 있다. 또 그것이 사람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p.174)

나는 그렇게 행복 하고 싶다. 미식이 별건가. 미식가가 별건가. 나는 侎食(어루만질 미, 밥식)할 것이다. 내 주변을, 작지만 내가 품은 세계를 어루만질 수 있는, 그런 섭생을 하고 싶다. 아, 역시 세계는 넓고 먹을 것은 많구나. 마리 여사가 생전에 한 번 음식이라도 나눌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그래도 이렇게라도 먹는 것과 산다는 것에 대한 통찰을 알려줘서 참 고맙다.   

참, 글의 ‘서곡’으로 제시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에 대한 답을 냈다고, 최근 영국 과학자들이 발표했다. 그들은 ‘닭이 먼저’라며, 달걀 껍질이 형성되는 과정을 밝혀내면서 달걀이 닭의 난소에서만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근거로 제시했단다. 글쎄, 마리 여사가 이 기사를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아마, 달걀이 잔뜩 들어간 카스텔라를 먹으면서 ‘집 잃은 닭도 한 번 키워볼까?’라고 말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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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희망 유재현 온더로드 6
유재현 지음 / 그린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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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해 여름, 몽골에 발을 디뎠다. 1990년대 사회주의 체제를 버린 몽골.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는 개발에 여념이 없었고, 혼란스러웠다. 체제 변화의 과정에서 완충장치가 없었던 탓에, 내가 만난 몽골인들의 가치 또한 흔들리고 있었다. 아니, 흔들린다는 표현보다는, 돈독이 오를 대로 올라있는 상태였다. 모든 판단기준은 돈이었고, 곳곳에 파헤쳐진 개발의 흔적은 움푹 파인 그들의 마음 같았다.

뭐 그거야 그렇다손치고 당시, 내 손에 들린 책은, 소설가 유재현의 《느린 희망》. 몽골에 가면서, 왜 '쿠바'책이냐고, 묻는다면, 글쎄.^^; 그냥 우연찮게 그랬다. 당시, 몽골 외에 쿠바도 마음에 품고 있었고, 아직도 사회주의를 버리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사회주의를 버린 국가에서 읽는 사회주의라. 나름 재밌는, 아이러니한 조합이지 않나. 그렇다고, 여행의 즐거움을 포기할 것도 아니었으면서 말이다.  


당시 나는, 사진에 나온 바와 같이 책에 이렇게 써놓고 있었다. 

뭐랄까. 굼벵이처럼 몽골을 느리게 탐닉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사회주의 체제를 버린 국가의 개발이란, 사람들에게 좀더 악독해지기 마련이지만, 한편으로 몽골은 그러지 않길 바랐던 심정이었던 걸까. 나는 몽골의, 정확하게는 울란바토르의 개발에는 치를 떨었지만, 초원, 그 끝간데 없이 펼쳐진 초원 앞에서는 단발마같은 탄성을 지르고 감탄을 숨기지 않았었다. 


그때, 나의 여행 단상은 이랬다. 

바람이 멈췄다. 나는 돌아와야만 했고, 일상은 바람이 불기 전처럼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그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 주는 것이 일상을 버티고 견디는 자의 예의.

이번 여행길에서 읽었던 소설가 유재현의 《느린 희망》에서 인상적인 구절 중 하나.

“...아바나. 그 문턱을 앞두고 줄곧 보아왔던 탓에 이제는 익숙하기 짝이 없는 선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시경계 표지판이다.

'어서 오세요. 서울입니다.'

이런 말인 셈인데, 정확하게는 이렇게 씌여 있다.

'모든 쿠바인들의 수도에 오셨습니다.
Usted ha Llegado a La Capital de todos Los cubanos'

'쿠바'의 수도 아바나가 아니라 '쿠바인'들의 수도에 온 것이다. 국가가 아니라 사람을 앞세운 발상이 신선하다.

자유, 조국, 혁명과 사회주의가 난무하는 쿠바에 또 하나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인간'이다. 현실에서는 조화를 이루기 쉽지 않은 단어들이다. 인간적 자유, 인간적 조국(국가), 인간적 혁명, 인간적 사회주의.”

한국인의 나라에 들어오면서 봤다. 거기에는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Welcome to Dynamic Korea"라고 씌여져 있었다. 그렇지. 국가가 늘 우선이었더랬지. 아니 사람이란 애초 없었던 것인지도.

그래서 다음 여행길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쿠바로 정했다. 바람이 불면 떠나야 할 곳.

쨌든, 이번 바람에 나는 몽골인들의 나라에 다녀왔고, 생각보다 혼란스러운 풍경과도 맞닥뜨렸다. 자본은 인간의 몸과 마음을 빌어 욕망을 표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길은 끝도 없이 나 있는 것 같았다.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길. 나는 그 길을 달릴 때가 가장 좋았더랬다. 길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어쨌든, 당시 나는 쿠바도 그리면서 몽골을 누비는 단기 노마드였다. 낮에는 몽골, 밤에는 쿠바. 낮과 밤의 이중생활. 밤은 그렇게 상상을 돋궜다. 밤 11시 이후, 무서운 10대들이 많으니 나가서 돌아다니지 말라는 몽골 아우의 충고도 한몫했다. 소심밴댕이 가슴의 이방인인 나는 그말을 충실히 따라야했으니.  

그래서, 몽골에서 나의 밤은 쿠바를 뒤졌다.  

쿠바에서 가장 좋은 담배를 생산한다는 피나르 델 리오의 부엘타바호에서 담배를 돌돌 말아 그 향미를 맛보고, 쿠바혁명의 기념비적 도시인 산타 클라라에 발길을 멈추고 숨을 들이키고, 트리니다드의 춤꾼들에 어우러져 추지도 못하는 살사의 향연에 빠졌다.

그뿐이랴. 시에라 에스캄브라이의 길가 커피농가에 들러 숯불에 들들볶은 뜨거운 물을 와라락 부어 커피 한잔의 향미에 취하고, "어떤 사내라도 처녀가 내미는 잔을 받아 담긴 물을 마시면 종내는 돌아오고야 만다는 도시 카마구에이"에서 짜릿한 '로맨스'를 만들었다.

무엇보다, 쿠바혁명(1959)과 체 게바라. 혁명의 어떤 시작지점이었던, 시에라 마에스트라.
"1956년 11월25일 83명의 사내들이 25명 정원의 그란마(GRANMA)란 이름의 보트를 타고 멕시코의 툭스판을 떠났다. 12월2일 그들은 예정보다 사흘을 늦게 콜로라도 해변에 도착했고 대기하고 있던 바티스타군의 공격을 받았다. 12월18일 시에라 마에스트라의 깊은 산중에 도착했을 때 12명이 살아있었다. 그들을 이끌었던 피델카스트로가 남은 11명에게 말했다. "동지들, 우린 승리할 것이오. 싸움을 시작합시다."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무모해 보이는 혁명이 시작되었다." (p135)

물론, 그전에 쿠바혁명 발화점이 된 '7.26운동'(1953)의 지점, 산티아고. 역시나, 혁명의 표지.
 

SANTIGO(산티아고)
REBELDE AYER(어제는 반란의 도시였고)
HOSPITALARIA HOY(오늘은 친절한 도시)
HEROICA SIEMPRE(항상 영웅의 도시)
 

'뉴타운' 건설이 아닌, 혁명의 건설. 유재현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혁명은 관념이 아니라 현실이며 잠깐의 전복과 영원한 건설이다. 건설자들은 변함 없는 끈기와 신념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아아, 어쩌란 말이냐. 한국의 건설자들 역시, (뉴타운을 향한) 변함 없는 끈기와 신념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이토록 다른 건설자들의 목적 혹은 가치.

아울러, 아바나. 사르트르가 20세기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고 칭송했던, 체게바라가 새겨진 혁명광장. 
""승리할 때까지 Hosta la victoria Siempre"
그 말을 남기고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작별 인사였다.
그럼으로 그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세상의 모든 사람과 만날 수 있었다." (p214)
 
바로 그 혁명광장에 선 내 모습. 체 게바라는 진짜, 쿠바사람들에게 어떤 존재일까. 궁금했다. 그가 아무리 혁명영웅이지만, 어쩌면 누군가는 그 때문에 궁핍하다고, "이게 다 게바라 때문"이라며 언성을 높이진 않을까. 그러면서도 또 어떤 이들은, 승리할 때까지 싸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쿠바를 제외한 다른 모든 세계의 무위와 폭력으로부터.

그러나 나는, 관념적으로는 천만번백만번 동의하면서도, 의문을 지울 수는 없었다. 정치가이자 혁명가인 호세 마르티의 얘기. "단 한 사람이라도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그 누구도 편안하게 잠을 잘 권리가 없다." 혁명의 시절엔 충분히 선동적이고 피를 끓게 했겠지만, 사실 나는, 몸으로 흡수할 수 없었다. 나는 내 하나의 혁명에도 벅차하는 찌질남이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밤마다 쿠바를 꿈꿀 수밖에 없었다. 사회주의가 허물어진 나라의 밤길이 무서웠기 때문에.^^;;;

어찌된 일인지, 쿠바 이야기에도 '이건희'가 등장했다. 세금 수천억원을 내지 않고, 회사에 수천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으면서도 불구속 기소될 것으로 예견(!)되고 있는 그 이건희. 유재현이 쿠바서 만난 꼬마친구의 장래희망인, 달고나 만드는 아저씨랑 평등한가, 아닌가의 문제. 유재현은 간단하고 명쾌했다. 평등! 땅땅!!. 이건희의 덕(德)과 달고나 아저씨의 덕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같지 않은 것은 우열로 비교할 수 없다는 명명백백한 논리. "우리 모두 서로 다르다. 우린 모두 평등하다. 이 평등을 깨뜨리는 덕은 이미 덕이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독을 마실 만했다."(p259)  



쿠바가 나의 'Must-visit'가 된 것은, 그렇게 《느린 희망》의 영향이 컸다. 얼마전 읽은, 2개의 신문 각각에는, 우연찮게도 '쿠바'가 언급되고 있었다. 전혀 다른 내용들이었지만, 나는 그동안 묻어두고 있던 '쿠바'를 꺼냈다. 이들은 내게, 다시 '쿠바'를 꿈꾸게 하고 있다. 쿠바쿠바. 암세포와 같은 성장 일변도의 사회에서 나 같은 사회부적응자는 다른 세계의 바람이 필요하기도 하니까.
[김선주 칼럼] 아바나를 떠나며…

물론, 쿠바라고 모든 것이 행복하냐. 아닐 것이다. 이중경제와 암시장은 쿠바 사회주의의 시험대가 되고 있으며, 무엇보다 그들의 행복을 이방인이 부풀린 관념으로 잣대를 들이댈 순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만 계속 혁명을, 사회주의를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들 역시 어쩌면 힘겨워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 더 나은 세상이 쿠바에 있다고 누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이미, 우리는 루비콘 강을 건넜지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우리 안에서 찾아야 하지 않겠나. 지속가능한 사회, 지속가능한 지구, 지속가능한 인류를 위해. 아니, 지속가능한 나를 위해서라도.  

그럼에도, 나는 쿠바가 부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런 교육과 의료 시스템 때문에라도. 

"한국도 쿠바도 9년의 의무교육을 헌법에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의무교육이라면 최소한 교복과 학용품 그리고 급식 정도는 국가에서 무상으로 제공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찢어지게 가난하지만, 쿠바라는 나라에서는 그렇게 한다... 쿠바에는 학생 수가 10명 이하인 학교가 2천 개가 넘는다. 한국의 농촌에는 폐교가 널려가고 있지만 쿠바에서는 가르칠 학생이 있는 한, 산꼭대기에도 학교를 짓고 교사를 보낸다."(p293)

"예방의학을 적극적으로 도입함으로써 의료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예방의학의 중추를 이루는 1차 진료기관은 10~20 가정을 담당하고 가정의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쿠바인들이 평생 같은 가정의와 함께 지낸다는 것이다. 가정의는 담당 가정에 대해 지속적으로 병력을 관리할 수 있다. 모든 지역에 의료 인력을 배치함으로써 효율적인 의료교육을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담배와 알코올에 대한 보건교육 등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p299)

나는, 솔직히 '빨리빨리'가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장점도 있다는 말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때문에 이모양 이꼴이다. 니가 못나서, 앙탈이냐고. 맞다. 나는 내가 못났음을 안다. 그러나, 그 못남을 인정하고 포용하고 내치지 않는 것이, 인간이 사는 세상이라고 믿는다. 지금-여기의 땅은 그렇지 않지만. 같은 뜻임에도, 나눔과 분배를 구획짓는, 안드로메다적 개념에 나는, 치를 떤다. 그것이 쿠바를, 내가 발디디지 못한 땅을, 품고 있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권좌에서 물러난, 카스트로 이후의 쿠바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카스트로의 이 말에 한표를 던진다.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1차 지구환경회의에서 행한. 쿠바 국내적으로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는. 토건국가 대한민국에서는 안드로메다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인류를 이 같은 자기파괴에서 구해내려 한다면 세계의 부와 기술을 더 많이 나누어야 한다. 일부 국가들은 덜 사치스럽고 덜 소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럼으로 세계의 대다수가 덜 빈곤하고 덜 굶주리게 될 것이다... 인간의 삶을 보다 합리적으로 만들자. 정의로운 국제경제질서를 만들자. 모든 과학지식을 환경오염이 아닌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사용하자..." (pp.65~66)

혹시, 쿠바를 가고 싶다면, 쿠바가 궁금하다면, 혹은 그냥 우리가 발딛고 있는 이 세계의 어떤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면, 당신에게도 이 책을 권한다.  

나는 다시, 내게 바람이 불어주길 바라고 있다. 다시 꺼내든 《느린 희망》은 내게, 쿠바를 권하고 있다. 화가 사석원은 "쿠바는 한번 중독되면 헤어나지 못하는 독이다."라고 했단다. 나는 독배라도 꿀꺽꿀꺽 들이키고 싶다. 골속골속 속물인 내가, 알량한 기득권 하나 제대로 포기하지 못하는 소시민인 내가, 쿠바에 간다손 바뀔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쿠바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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