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 지식여행자 5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마음산책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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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여사!
얼마 전 만났던 한 양반은 저를 일컬어 ‘남자 사람’이라고 표현해 주더군요. 그 호칭을 보고선 안도의 한숨, 휴~. 인간 수컷 아닌, 남자 사람이라니. 뭔가 괜히 업그레이드라도 된 기분이었다고나 할까요. 특히나, 요즘 마리 여사의 이웃나라인 여기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들을 보아하자면, 에휴~ 일단 한숨부터 나옵니다.

인간수컷 잔혹기

하늘에서 이웃나라까지 파악하고 계실라나요. 가장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까요. 강용석이라는 의원나리. 딴에는 후배들에게 격의 없이 뭔가를 전달해주고 싶었을지 모르나, 정신줄 놓고 아주 미친 게죠. 아니, 놓은 정신줄이 아니라 원래 그런 정신줄을 품고 사는 수컷이겠죠. 여자는 몸과 외모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가식 없이 천진한(?) 발언을 보자면, 마리 여사의 말은 참으로 당연하게 들립니다.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 그 맥락이 다르긴 해도, 어쩜 저리 딱 맞아떨어질까요. 

강 의원(이라고 쓰고, 개나리라고 읽는다)의 성희롱성 발언. 그의 기찬 어록을 보자니, 그건 이 땅의 주류 남성 정치인이 지닌 단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요. 개나리가 속한 당에선 이런 식의 ‘수컷질’이 한 두 번이 아니거든요. 어쩌면 열폭(열등감 폭발)일지도 모르죠. 왜곡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삐뚤어진 시선이 여성의 능력 앞에서 괜히 배알이 틀려선.

사실, 곳곳에서 터지는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 심하게는 살인까지 행하는 수컷들의 작태를 보자면, 아놔~ 마초인 저도 얼굴 빨개지는 걸 피할 수가 없습니다. 같은 수컷인데도 쪽 팔려서 원. 뭐, 저라고 거기서 자유롭겠습니까마는, 흠흠, 자꾸만 마리 여사의 그 말,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 가 자꾸 떠오르는 건 무슨 까닭입니까. 

인간보다 나은 동물

괜히 딴 얘기부터 해서 죄송해요. 제목이 워낙 인상적이어서. 마리여사, 난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를 이렇게 읽었어요. 어쩌면, 개나 고양이, 그러니까 인간 아닌 동물이 인간 동물보다 낫다! 그래서 그 동물과 함께 하는 사람, 참 대단하다!

마리 여사는 스스로를 이렇게 표현하셨다죠? 포용력이나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말과 행동이 직선적이고 여유가 없으며, 감정조절도 잘 못하는데다,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 부족한 사람. 제가 마리 여사를 만난 적이 없으니, 뭐라 말씀은 못 드리겠으나, 진짜 그랬을 거라는 혐의(!)가 있습니다. 바로 마리 여사도 인간 동물이니까요. 대부분 인간 동물이 그러하잖아요. 하하. 아, 저라고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흑.

그런데, 그런 여사가 변했다고 주위에서 이구동성을 했다죠? 말과 행동은 폭신한 쿠션처럼 사람을 살포시 감싸는 것 같고, 인상도 부드러워졌으며, 날카로운 눈빛도 선해졌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가장 흔히 할 수 있는 의심(?)은 바로 남자, 애인이 생겼다? 물론 당신은 그게 아니라고 하셨지요. 일곱 아이의 엄마가 됐을 뿐! 인간 아이가 아닌, 견묘 일곱의.

당신은 큰소리를 쳤습니다. “두 자릿수의 남자를 겪어보고 ‘내 인생에 남자는 필요 없다’는 결론을 얻었어.” 생의 끝까지 그 결론을 지켰을지는 모르겠으나,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겠죠. 책 읽는 내내, 당신의 모습을 상상하면 참 재밌더군요. 기억이 가진 순간부터 인간 아닌 동물과 함께 살아본 적이 없는 내겐, 그것은 신기하면서도 부럽고, 언젠가는 살아봄직한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지요.

많은 사람들은 이런 말을 내뱉곤 하지요. “개, 돼지만도 못한...” “개나 고양이도 아니고, 인간이 인간다워야지...” 그런 류의 말을 들을 때마다, “지랄한다”고 속으로 말하지요. 개, 고양이, 소, 돼지... 모든 동물보다 못한 것이 원래 인간 아니었던가요. 인간다움? 글쎄, 그건 웃자고 하는 농담인 것 같고. 인간 동물이 다른 동물보다 낫다거나, 특히 달라야 할 그런 근거는 없는 것 같은데요. 만물의 영장? 하하, 그건 일종의 안간힘이죠. 스스로를 위문하기 위한. 안 그래요? 마리 여사.

약자와 함께 하는 마리여사

흔히, 우리는 ‘기른다’라고 표현하지요. 애완동물이든 반려동물이든. 하지만, 당신이 무리, 도리, 겐, 타냐, 소냐, 노라와 함께 하는 모습에서, ‘함께 산다’는 표현이 더 맞을 듯싶었어요. 당신의 입맛에 맞춰 훈련시키거나 가르치려는 모습도 없었죠. 그저 그들의 몸짓과 표정, 실존과 부재에 따라 울고 웃는 모습이라니요. 더구나, 대부분 그들은 지인이나 동물을 사고 파는 가게에서 입양된 것이 아닌, 버려지거나 병에 걸린 혹은 어쩔 수 없이 다른 둥지를 찾아야하는 약자들. 

나는 그것이 가장 인상 깊었어요. 약자를 거두는 마리 여사의 마음 씀씀이. 멀쩡한 것은 내 소관이 아니라는 듯. 하긴 당신은 그런 유전자를 타고 났는지도 몰라요. “길 가장자리의 무성한 잡초 속에서 “야옹, 야옹” 하고 가슴을 쥐어뜯는 것 같은 울음소리가 들려오면 완전 끝장이다. 무심히 지나치려고 하면 할수록 다리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뿌리치고 걸어가면 반드시 물리학에서 배운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고개를 쳐든다.”(p.38)

또 하나, 유기된 개들의 가혹한 일생을 생각하자 어느새 눈물이 그칠 줄 모르고 흘러나왔다던 당신. 대부분의 인간 동물은 실컷 지 사랑만 퍼붓다, 유통기한이 지나면 폐기할 줄만 알았지, 그들의 삶과 마음 따윈 상관 않는다지요. 그래서 그것이 인간(동물)이기도 하고.

단언컨대, 우월한 유전자에요. 그런 유전자 덕분에 당신의 가족들은 당신을 주축으로 그렇게 멋진 앙상블을 보여줄 수 있었던 거겠죠. 인간이 아닌 동물과 함께 산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당신을 통해 새삼 깨달았어요. 뭐랄까. 무리와 도리를 입양하게 됐을 때, 무리 혹은 도리가 무릎 위에 뛰어내리면서 당신의 얼굴을 응시한 그 순간. 그 맑은 녹색 눈동자에 대한 당신의 비유. “그 어떤 보석도 이보다 아름답지는 못해.”(p.47) 아, 그땐 정말이지, 그 무리인지, 도리인지가 보고 싶어, 세로토닌이 마구마구 형성될 정도였다니까요.

혹시, 고양이와 함께 산다면, 나도 언젠가 페리네 혹성에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공상까지 했다고요. 약 50억 년 전에 형성되어 고양이들이 살았던, 지구 생태계보다 앞서 발전을 해나갔다는. 함께 살진 않지만, 나도 어쩌다 그들의 눈빛과 그들의 행성에 대해 궁금한 적이 있었거든요. 저 녀석들은 분명 지구별 아닌 다른 별에서 왔을 거야, 하는 공상을 당신이 확인시켜주다니요. 그것도 이름까지 확실하게. 나도 그러니까, 당신에게 한 표. ‘고양이는 외계인들의 지구 정복을 위한 전략의 일부.’

문득 궁금해졌어요. 당신이 없는 지금. 당신과 함께 했던 견묘들은 어떻게 됐을까. 당신과 함께 저 구름의 저편에서 다시 알콩달콩 정을 나누며 사는 견묘도 있겠지만, 아직 남은 견묘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아, 맞아, 또 궁금한 거 하나. 거기선 고양이와 개 사이의 통역은 문제없겠죠?

겐은 어떤가요

참, 제가 가장 아팠던 것은 겐의 실종인데요. 노라가 대신 들어왔다고는 하나, 저는 무리와 도리에 다소 가렸던 겐이 가장 마음에 남았답니다. 그래서 걱정이었어요. 당신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가까스로 극복한 겐이 인간 동물에게 다시 학대당한 것은 아닌지, 다른 트라우마를 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금, 당신은 잘 알고 있겠죠. 겐의 행방. 당신과 함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픈 제게, 그런 우연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연’이란, 하느님의 다른 이름이에요.”(p.251)

세 라비C’est la vie. 마리 여사에게도, 겐에게도, 무리와 도리에게도, 타냐와 소냐에게도, 노라에게도, 그것은 인생, 견생, 묘생. 세 가지 동물군의 생과 일상, 표정을 볼 수 있어서 고마웠습니다. 역시나, 인간 수컷 따위 필요 없었다는 마리 여사의 말, 동감할 만해요. 비록 나도 수컷이지만, 지금 정말 그 말이 딱 부러지게 맞아 떨어지네요.

'좋은' 남자 사람이 돼야지

참, 교육방송(EBS)의 한 강사가 군대를 ‘비하’했다는 죄목으로 방송에서 잘리고, 담당 프로듀서도 문책을 당했다는데, 그 발언을 보자니, 어안이 벙벙하더군요. 그녀는 강의에서 언어변화와 관련해 여자와 남자의 차이에 대한 지문내용을 설명하면서 이런 말을 했대요.

“남자들은 만날 자기가 군대 갔다 왔다고 뭐 해달라고 떼쓰지 않느냐”
“여자들이 그렇게 힘들게 낳아 놓으면, 남자들은 군대 가서 죽이는 거 배워 온다”
“죽이는 거 배워 온 게 대체 뭘 잘했다는 거냐”
“처음부터 그런 거 안 배웠으면 세상이 평화롭다”

아니, 이거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말만 했는데, 왜 잘려? 응? 나라는 수컷, 군대 다녀왔지만, 그녀의 생각과 똑같은 걸요. 대체, 군대에서 배우는 건 남 죽이는 거 말고 있던가요. 총으로 쏴 죽이거나 말로 죽이거나, 아주 더러운 것만 배워주는 군대. 그런데, 바른 말하던 그녀는 잘리고, 강용석 개나리는 당에서만 제명당했어요. 수컷이라고 봐 주는 거냐, 응, 이라고 항의하고 싶었다니까요.  

아, 저도 갑자기 흥분했네요. 근데, 인간 수컷은 필요 없지만, 남자 사람은 가능하면 좀 살아남게 해 주세요. 전, 인간 암컷은 필요 없어, 라는 말은 못해요. 인간 암컷이라도 인간 수컷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헤헤. 마리 여사에게도 보니까, 잘은 모르지만, 동물병원의 아라카와 선생님이나 왜건 택시 운전사 가시오 씨와 같은 ‘좋은 남자 사람’도 있던 걸요. 

마리 여사, 당신 포유류 가족들 이야기. 제겐 인간 아닌 다른 동물 가족이 없지만, 참 좋았어요. 아마, 인간 수컷 아닌 남자 사람이라는 확신이 스스로 들 즈음엔, 고양이와 함께 살아보려고요. 결심, 굳혔어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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