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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희망 유재현 온더로드 6
유재현 지음 / 그린비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그 어느해 여름, 몽골에 발을 디뎠다. 1990년대 사회주의 체제를 버린 몽골.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는 개발에 여념이 없었고, 혼란스러웠다. 체제 변화의 과정에서 완충장치가 없었던 탓에, 내가 만난 몽골인들의 가치 또한 흔들리고 있었다. 아니, 흔들린다는 표현보다는, 돈독이 오를 대로 올라있는 상태였다. 모든 판단기준은 돈이었고, 곳곳에 파헤쳐진 개발의 흔적은 움푹 파인 그들의 마음 같았다.

뭐 그거야 그렇다손치고 당시, 내 손에 들린 책은, 소설가 유재현의 《느린 희망》. 몽골에 가면서, 왜 '쿠바'책이냐고, 묻는다면, 글쎄.^^; 그냥 우연찮게 그랬다. 당시, 몽골 외에 쿠바도 마음에 품고 있었고, 아직도 사회주의를 버리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사회주의를 버린 국가에서 읽는 사회주의라. 나름 재밌는, 아이러니한 조합이지 않나. 그렇다고, 여행의 즐거움을 포기할 것도 아니었으면서 말이다.  


당시 나는, 사진에 나온 바와 같이 책에 이렇게 써놓고 있었다. 

뭐랄까. 굼벵이처럼 몽골을 느리게 탐닉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사회주의 체제를 버린 국가의 개발이란, 사람들에게 좀더 악독해지기 마련이지만, 한편으로 몽골은 그러지 않길 바랐던 심정이었던 걸까. 나는 몽골의, 정확하게는 울란바토르의 개발에는 치를 떨었지만, 초원, 그 끝간데 없이 펼쳐진 초원 앞에서는 단발마같은 탄성을 지르고 감탄을 숨기지 않았었다. 


그때, 나의 여행 단상은 이랬다. 

바람이 멈췄다. 나는 돌아와야만 했고, 일상은 바람이 불기 전처럼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그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 주는 것이 일상을 버티고 견디는 자의 예의.

이번 여행길에서 읽었던 소설가 유재현의 《느린 희망》에서 인상적인 구절 중 하나.

“...아바나. 그 문턱을 앞두고 줄곧 보아왔던 탓에 이제는 익숙하기 짝이 없는 선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시경계 표지판이다.

'어서 오세요. 서울입니다.'

이런 말인 셈인데, 정확하게는 이렇게 씌여 있다.

'모든 쿠바인들의 수도에 오셨습니다.
Usted ha Llegado a La Capital de todos Los cubanos'

'쿠바'의 수도 아바나가 아니라 '쿠바인'들의 수도에 온 것이다. 국가가 아니라 사람을 앞세운 발상이 신선하다.

자유, 조국, 혁명과 사회주의가 난무하는 쿠바에 또 하나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인간'이다. 현실에서는 조화를 이루기 쉽지 않은 단어들이다. 인간적 자유, 인간적 조국(국가), 인간적 혁명, 인간적 사회주의.”

한국인의 나라에 들어오면서 봤다. 거기에는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Welcome to Dynamic Korea"라고 씌여져 있었다. 그렇지. 국가가 늘 우선이었더랬지. 아니 사람이란 애초 없었던 것인지도.

그래서 다음 여행길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쿠바로 정했다. 바람이 불면 떠나야 할 곳.

쨌든, 이번 바람에 나는 몽골인들의 나라에 다녀왔고, 생각보다 혼란스러운 풍경과도 맞닥뜨렸다. 자본은 인간의 몸과 마음을 빌어 욕망을 표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길은 끝도 없이 나 있는 것 같았다.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길. 나는 그 길을 달릴 때가 가장 좋았더랬다. 길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어쨌든, 당시 나는 쿠바도 그리면서 몽골을 누비는 단기 노마드였다. 낮에는 몽골, 밤에는 쿠바. 낮과 밤의 이중생활. 밤은 그렇게 상상을 돋궜다. 밤 11시 이후, 무서운 10대들이 많으니 나가서 돌아다니지 말라는 몽골 아우의 충고도 한몫했다. 소심밴댕이 가슴의 이방인인 나는 그말을 충실히 따라야했으니.  

그래서, 몽골에서 나의 밤은 쿠바를 뒤졌다.  

쿠바에서 가장 좋은 담배를 생산한다는 피나르 델 리오의 부엘타바호에서 담배를 돌돌 말아 그 향미를 맛보고, 쿠바혁명의 기념비적 도시인 산타 클라라에 발길을 멈추고 숨을 들이키고, 트리니다드의 춤꾼들에 어우러져 추지도 못하는 살사의 향연에 빠졌다.

그뿐이랴. 시에라 에스캄브라이의 길가 커피농가에 들러 숯불에 들들볶은 뜨거운 물을 와라락 부어 커피 한잔의 향미에 취하고, "어떤 사내라도 처녀가 내미는 잔을 받아 담긴 물을 마시면 종내는 돌아오고야 만다는 도시 카마구에이"에서 짜릿한 '로맨스'를 만들었다.

무엇보다, 쿠바혁명(1959)과 체 게바라. 혁명의 어떤 시작지점이었던, 시에라 마에스트라.
"1956년 11월25일 83명의 사내들이 25명 정원의 그란마(GRANMA)란 이름의 보트를 타고 멕시코의 툭스판을 떠났다. 12월2일 그들은 예정보다 사흘을 늦게 콜로라도 해변에 도착했고 대기하고 있던 바티스타군의 공격을 받았다. 12월18일 시에라 마에스트라의 깊은 산중에 도착했을 때 12명이 살아있었다. 그들을 이끌었던 피델카스트로가 남은 11명에게 말했다. "동지들, 우린 승리할 것이오. 싸움을 시작합시다."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무모해 보이는 혁명이 시작되었다." (p135)

물론, 그전에 쿠바혁명 발화점이 된 '7.26운동'(1953)의 지점, 산티아고. 역시나, 혁명의 표지.
 

SANTIGO(산티아고)
REBELDE AYER(어제는 반란의 도시였고)
HOSPITALARIA HOY(오늘은 친절한 도시)
HEROICA SIEMPRE(항상 영웅의 도시)
 

'뉴타운' 건설이 아닌, 혁명의 건설. 유재현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혁명은 관념이 아니라 현실이며 잠깐의 전복과 영원한 건설이다. 건설자들은 변함 없는 끈기와 신념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아아, 어쩌란 말이냐. 한국의 건설자들 역시, (뉴타운을 향한) 변함 없는 끈기와 신념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이토록 다른 건설자들의 목적 혹은 가치.

아울러, 아바나. 사르트르가 20세기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고 칭송했던, 체게바라가 새겨진 혁명광장. 
""승리할 때까지 Hosta la victoria Siempre"
그 말을 남기고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작별 인사였다.
그럼으로 그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세상의 모든 사람과 만날 수 있었다." (p214)
 
바로 그 혁명광장에 선 내 모습. 체 게바라는 진짜, 쿠바사람들에게 어떤 존재일까. 궁금했다. 그가 아무리 혁명영웅이지만, 어쩌면 누군가는 그 때문에 궁핍하다고, "이게 다 게바라 때문"이라며 언성을 높이진 않을까. 그러면서도 또 어떤 이들은, 승리할 때까지 싸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쿠바를 제외한 다른 모든 세계의 무위와 폭력으로부터.

그러나 나는, 관념적으로는 천만번백만번 동의하면서도, 의문을 지울 수는 없었다. 정치가이자 혁명가인 호세 마르티의 얘기. "단 한 사람이라도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그 누구도 편안하게 잠을 잘 권리가 없다." 혁명의 시절엔 충분히 선동적이고 피를 끓게 했겠지만, 사실 나는, 몸으로 흡수할 수 없었다. 나는 내 하나의 혁명에도 벅차하는 찌질남이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밤마다 쿠바를 꿈꿀 수밖에 없었다. 사회주의가 허물어진 나라의 밤길이 무서웠기 때문에.^^;;;

어찌된 일인지, 쿠바 이야기에도 '이건희'가 등장했다. 세금 수천억원을 내지 않고, 회사에 수천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으면서도 불구속 기소될 것으로 예견(!)되고 있는 그 이건희. 유재현이 쿠바서 만난 꼬마친구의 장래희망인, 달고나 만드는 아저씨랑 평등한가, 아닌가의 문제. 유재현은 간단하고 명쾌했다. 평등! 땅땅!!. 이건희의 덕(德)과 달고나 아저씨의 덕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같지 않은 것은 우열로 비교할 수 없다는 명명백백한 논리. "우리 모두 서로 다르다. 우린 모두 평등하다. 이 평등을 깨뜨리는 덕은 이미 덕이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독을 마실 만했다."(p259)  



쿠바가 나의 'Must-visit'가 된 것은, 그렇게 《느린 희망》의 영향이 컸다. 얼마전 읽은, 2개의 신문 각각에는, 우연찮게도 '쿠바'가 언급되고 있었다. 전혀 다른 내용들이었지만, 나는 그동안 묻어두고 있던 '쿠바'를 꺼냈다. 이들은 내게, 다시 '쿠바'를 꿈꾸게 하고 있다. 쿠바쿠바. 암세포와 같은 성장 일변도의 사회에서 나 같은 사회부적응자는 다른 세계의 바람이 필요하기도 하니까.
[김선주 칼럼] 아바나를 떠나며…

물론, 쿠바라고 모든 것이 행복하냐. 아닐 것이다. 이중경제와 암시장은 쿠바 사회주의의 시험대가 되고 있으며, 무엇보다 그들의 행복을 이방인이 부풀린 관념으로 잣대를 들이댈 순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만 계속 혁명을, 사회주의를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들 역시 어쩌면 힘겨워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 더 나은 세상이 쿠바에 있다고 누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이미, 우리는 루비콘 강을 건넜지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우리 안에서 찾아야 하지 않겠나. 지속가능한 사회, 지속가능한 지구, 지속가능한 인류를 위해. 아니, 지속가능한 나를 위해서라도.  

그럼에도, 나는 쿠바가 부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런 교육과 의료 시스템 때문에라도. 

"한국도 쿠바도 9년의 의무교육을 헌법에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의무교육이라면 최소한 교복과 학용품 그리고 급식 정도는 국가에서 무상으로 제공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찢어지게 가난하지만, 쿠바라는 나라에서는 그렇게 한다... 쿠바에는 학생 수가 10명 이하인 학교가 2천 개가 넘는다. 한국의 농촌에는 폐교가 널려가고 있지만 쿠바에서는 가르칠 학생이 있는 한, 산꼭대기에도 학교를 짓고 교사를 보낸다."(p293)

"예방의학을 적극적으로 도입함으로써 의료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예방의학의 중추를 이루는 1차 진료기관은 10~20 가정을 담당하고 가정의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쿠바인들이 평생 같은 가정의와 함께 지낸다는 것이다. 가정의는 담당 가정에 대해 지속적으로 병력을 관리할 수 있다. 모든 지역에 의료 인력을 배치함으로써 효율적인 의료교육을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담배와 알코올에 대한 보건교육 등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p299)

나는, 솔직히 '빨리빨리'가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장점도 있다는 말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때문에 이모양 이꼴이다. 니가 못나서, 앙탈이냐고. 맞다. 나는 내가 못났음을 안다. 그러나, 그 못남을 인정하고 포용하고 내치지 않는 것이, 인간이 사는 세상이라고 믿는다. 지금-여기의 땅은 그렇지 않지만. 같은 뜻임에도, 나눔과 분배를 구획짓는, 안드로메다적 개념에 나는, 치를 떤다. 그것이 쿠바를, 내가 발디디지 못한 땅을, 품고 있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권좌에서 물러난, 카스트로 이후의 쿠바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카스트로의 이 말에 한표를 던진다.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1차 지구환경회의에서 행한. 쿠바 국내적으로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는. 토건국가 대한민국에서는 안드로메다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인류를 이 같은 자기파괴에서 구해내려 한다면 세계의 부와 기술을 더 많이 나누어야 한다. 일부 국가들은 덜 사치스럽고 덜 소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럼으로 세계의 대다수가 덜 빈곤하고 덜 굶주리게 될 것이다... 인간의 삶을 보다 합리적으로 만들자. 정의로운 국제경제질서를 만들자. 모든 과학지식을 환경오염이 아닌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사용하자..." (pp.65~66)

혹시, 쿠바를 가고 싶다면, 쿠바가 궁금하다면, 혹은 그냥 우리가 발딛고 있는 이 세계의 어떤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면, 당신에게도 이 책을 권한다.  

나는 다시, 내게 바람이 불어주길 바라고 있다. 다시 꺼내든 《느린 희망》은 내게, 쿠바를 권하고 있다. 화가 사석원은 "쿠바는 한번 중독되면 헤어나지 못하는 독이다."라고 했단다. 나는 독배라도 꿀꺽꿀꺽 들이키고 싶다. 골속골속 속물인 내가, 알량한 기득권 하나 제대로 포기하지 못하는 소시민인 내가, 쿠바에 간다손 바뀔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쿠바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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