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스타가 되지 않겠다.
전설이 될 것이다.
로큰롤의 '루돌프 누레예프'가 되겠다!"

- 그룹 퀸, 프레디 머큐리

 

이것은, 그저 넋두리입니다.
어떤 의미도 부여할 필요, 없고요. 그저 커피 한 잔에 담긴 단상이라고만 해두죠. 특히, 여기 등장하는 남자 셋, 어떤 관련 없이 나열한 것에 불과해요. 커피를 만들다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른 생각의 가지들.

 

어제, 한 남자가 다시 '양보'를 했습니다.
그것, 깊이 파고들자면 양보라는 단어로 단순화할 수 없는 무엇이겠지만, 어쨌든 그는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습니다. '단일화'라는 말이 저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보다 더 좋은 말이 선뜻 떠오르진 않지만, 그는 자신이 걸어왔던 길에서 일단 '멈춤'을 합니다. 한 남자, 안철수입니다.

 

안철수라는 이름.
저는 단 한 번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안철수'가 세상을 바꿀 이름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었습니다. 세상의 흐름에 자신만의 인장을 새기며, 그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어떤 초석이 될 순 있으리란 기대 정도는 했었죠. '혹시 어쩌면…'하고 살짜쿵 가슴이 뛰기도 했으니까. 진짜 이뤄야 할 무엇을 향한 과정으로서의 안철수. 그래서 그 이름, 개인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열망과 또 어떤 바람이 섞이고 뭉쳐 '안철수'라는 단어로 표현이 된 것이겠죠. 

 

그의 눈에 눈물이 맺히고 살짝 울먹입니다. 
개별의 인간에게 새겨진 구체적인 존엄 같은 게 있었어요. 그 눈물과 그 발언의 실체는 내가 알 수 없는 심연이겠지만, 그렁그렁한 눈망울에 맺힌 구체적 존엄 앞에 나는 겸손해야 했어요. 그의 발표는 내게 꼭 어떤 '고백'처럼 느껴졌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맞아요. 그는 내 스타일, 내 타입, 아니죠.
그럼에도 덩달아 슬펐습니다. 슬픔이 찰랑거렸습니다. 이상하게도. 살짝 아프기까지. 이상하게도. 아마, 안철수라는 개인때문이 아니라, 안철수라는 이름에 묻은 어떤 마음들 때문이었겠지만. 실토하자면, 안철수라는 이름 아래 3040자문단의 일원으로 살짝 참여했습니다. 어쩌다 그런 것이었지만, 그에게 조금씩 마음을 주고 있었나 봅니다. 슬프고 아픈 걸 보니. 그는 일단 멈추고 물러섰겠다고 고백했지만, 안철수라는 이름에 담긴 어떤 열망과 마음, 그것은 끝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안철수라는 이름의 약속이 계속 지켜졌으면 하는 바람, 아마 그럴 것이라는 기대, 갖고 있습니다.    

 

그 고백이 있고, 다음날입니다.
한 남자의 소식에 덩달아 그 남자를 떠올렸습니다. 아니, 그 남자는 며칠 전부터 계속 맴돌던 이름이죠. 더 정확하게는 노래. 그의 노래들, 며칠 전부터 듣고 있었거든요. 그는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태어났습니다. 인도에서 자랐고, 런던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는 뮤지션입니다. 영원히 빛날 이름을 가진 멋쟁이입니다. 그 남자, 프레디 머큐리입니다.

 

 

 

프레디 머큐리라는 이름. 
그룹 퀸의 보컬리스트입니다. 지루하고 따분한 삶을 사는 것이 싫었고, 1971년 퀸을 만듭니다. 전설이 되겠다는 호언장담, 허세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전설이 됐습니다. 그가 음악을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대요. 음악을 듣는 사람들 심장박동을 더 빨리 뛰게 하기 위함.

 

그는, 퀸은 음악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건 존 레논이 하면 될 일이지, 자신들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 거죠. 음악을 듣는 그 순간만이라도 심장박동이 뛰고 즐겁고 신나면 되는 것.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의 죽음이 세상을 조금 바꿔놓았습니다.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누그러뜨리기 시작한 것!

 

그는 한 마디로 잘났습니다.
비아냥이 아니라, 진짜 그랬어요. 직접 음악을 만든 싱어송라이터였고, 공연을 기획하고 폭풍 무대를 만들었습니다. 무대에서의 끝내주는 퍼포먼스와 카리스마는 어떻고요. 뮤직비디오를 만들 때는 직접 아이디어를 내는 기획까지. 음악으로 사람들 심장박동을 뛰게 하겠다는 그의 장담은 허세가 아니었던 거죠. 20년 내내 노래를 했고, 무대에 설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겠죠.

 

그의 이런 바람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난 온세상이 내 노래를 들었으면 좋겠고, 내가 무대에 섰을 때는 모든 이들이 내 노래를 듣고 날 바라봐 주길 바란다. 어떤 형태로든 내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이 좋다. 다만 30분이라도 사람들이 나로인해 운이 좋다고 느끼거나 기분이 좋아진다면, 찌푸린 얼굴을 펴고 잠시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에게 가치있는 일이다."

 

그는 약속을 지킬 줄 아는 의리남이었습니다.
잘난 그였기에, '퀸=프레디 머큐리'라는 등식을 떠올리기에 충분했기에, 주변에선 퀸을 탈퇴하고 솔로활동을 하라는 유혹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팀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죽는 날까지 밴드를 떠나지 않은 '의리자(者)'. 퀸의 성공에 기여한 자신의 몫은 1/4이라고 말했다죠. 물론 퀸의 리더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도 가장 중요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은 해봤다지만.

 

프레디가 세상을 떠난 1991년 11월 24일.
지금으로부터 21년 전. 나는, 그해 그를 처음 알았어요. 그가 세상을 떠난 직후. 당시, 더벅머릴 길러서 완전 어설픈 반항아 록스타 같던 시절, 한 무리의 또래들 중에 나름 가장 예뻤던 여학생으로부터 다양한 노래를 녹음한 테이프를 선물 받았었죠. A면 첫 곡이 'Love of My Life'(B면 첫 곡은 광석 형의 '사랑했지만'). 퀸의 노래를 처음 들었습니다. 프레디 머큐리라는 뮤지션도 처음. "오래 사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너무 지루할것 같다"면서도 "난 제발 에이즈만 걸리지 않게 해달라고 늘 기도한다"던 그는, 결국 에이즈로 세상을 떠납니다. 고백한 다음날, 에이즈로 그 좋아하던 음악을 멈춥니다. 프레디 머큐리의 폭풍 보이스도 이젠 안녕.

 

물론, 오해하지 마세요.
한 남자와 그 남자의 고백은 완전 다를 뿐더러, 퍼포먼스가 끝났다고 끝난 것 아닙니다. 안철수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계속 걸어갈 터이고, 프레디 머큐리의 노래는 21년이 지난 오늘도,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내가 그를 기억하고, 세상이 그의 음악을 영원한 전설로 인정합니다. "로큰롤의 '루돌프 누레예프'가 되겠다!"는 그의 말에 완전 수긍. '루돌프 누레예프'는 죽을 때까지 춤을 춘 전설의 발레리노입니다. 

 

두 사람, 위풍당당했습니다.
한 남자, 국민을 사랑하고,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자유주의자 면모를 보이면서 약속을 지킨다며 일단 멈춰섰습니다. 그 남자, 여자와 남자를 사랑하고, 물고기와 고양이를 사랑하며, 자신의 호언장담을 죽는 그날까지 지켰습니다. 두 사람 모두, 누군가의 심장을 뛰게 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 남자, 준수는 그렇게 두 남자를 기억합니다.
오늘, 내 좋은 커피 동료들과 찾은 커피하우스. 안타깝게, 탄자니아가 없습니다. 프레디 고향에서 날아온 향미로 한 남자와 그 남자의 향을 음미할까 했는데 말이죠. 아쉬워서 같은 네 글자짜리 온두라스 커피를 마셨습니다. 물론, 탄자니아와 온두라스, 서로 대륙은 다르지만 말이죠. 하하. 

 

11월 23일, 안철수가 대선후보로서의 행보를 멈췄습니다.
(정치인으로서 그는 계속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약속 때문에라도!!) 
11월 24일, 프레디 머큐리가 뮤지션으로서의 노래를 멈췄습니다.
(전설로서 그는 영원히 살아 있을 것입니다! 호언장담 때문에라도!!)
그리고, 준수의 2012년은 이것으로 끝났습니다. 달력에 남은 날짜는 그냥 덤.
(커피 만드는 남자로서 그는 계속 이야기를 만들 것입니다! 삶 때문에라도!!) 

 

오늘 밤9시의 커피는 탄자니아 킬리만자로를 준비했습니다. 그에 어울리는 노래는,
Don't stop me now. 지금, 날 막지 마.
그래, 모두 멈추지 마. 프레디도, 안철수도, 나도, 커피도.
나도 그들처럼, 관료주의에 잠식 당한 내 다른 일을 그만두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그것,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상업영화 시스템으로 들어간 내 몸을 빼고, 독립영화를 다시 찍기로 합니다. 나는 그것이 어울리는 사람이니까요. 그것은 곧 다시 시작이며, 영원한 향기를 뿜어내는 일이기도 해요. 좋은 것만 누리기에도 인생은 너무 짧습니다. 즐겁고 재미있게. 오늘 봰 윤광준 선생님도 내게 힘을 실어주셨어요! 

 

윤 선생님, 내게 이런 말을 남겨주셨습니다.
"커피의 향이 곧 좋은 삶입니다."

 

 

암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잘 찍은 사진 한 장' 같은 '잘 뽑은 커피 한 잔', 그것이 커피를 처음 할 때처럼, 내 삶의 영원한 목표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잘 뽑은 커피 한 잔'!  :-)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 커피 한 잔에 담긴 한 세계의 모든 것. 커피 한 잔을 통해 사유하는 한 줌의 삶.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나의 커피.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

 

아울러, 철수 형과 프레디 형에게도 커피 한 잔씩 건네고 싶은 내 마음 한 자락.
내가 준비한 오늘의 커피 메뉴는, Don't stop me now.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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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철학 - 음식 속에 숨어 있는 영양 가득한 철학
신승철 지음 / 동녘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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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우리에겐 '밥상머리 철학'이 있었다.
아이는 밥상머리에 앉은 어른을 통해 먹을거리를 둘러싼 자연과 세계를 알았고, 배웠다. 음식(요리)을 통해 자연스레 아이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어른이 되어갔다. 인류의 식문화라는 것이 본디 그렇다. 먹을거리에는 인류의 지혜와 사유가 담겨 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생존해야 하니까. 생존을 위한 제1법칙, 먹어야 산다. 요즘 하루에 한 끼 먹자는 11이라는 책 덕분에 그것이 유행처럼 번진다지만(내 주변에도 벌써 몇 명 생겼다.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으나~^^;), 역시 먹지 않으면 안 된다. 인류의 시작부터 식문화는 빠질 수 없는 유산이었던 셈이다. 그러니, 세상을 향한 사유와 철학도 자연히 먹을거리에 녹아있을 수밖에.

인류의 모든 지혜와 생명과 자연에 대한 사유가 들어있는 소중한 밥상문화.
그러나 안타깝게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 이유 중의 하나, 먹을거리가 넘쳐나면서(그럼에도 굶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뼈아픈 사실!) 먹을거리에 대한 존중과 사유를 하지 않게 됐다. 그냥 액면 그대로 먹을 뿐이다. 배고프니까 먹고, 먹으니까 좋을 뿐이다. 밥상머리를 통해 생각하게 만들었던 능력은 퇴행했다. 요리도 그렇고, 먹는 것도 그렇다. 내가 생각하건대, 본디 그것들은 생각하는 능력이었다. 단순히 먹을거리를 만들고, 먹을거리를 먹는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전설적인 요리사나 미식가들을 보라.
그들, 칼질이나 테크닉이 좋아서, 기막힌 미각을 지니고 있어서 전설이 된 것이 아니다. 요리에 담긴 자기만의 철학! 즉, 자연, 생명, 재료, 음식에 대한 철학과 사유. 생각 없이 가질 수 없는 무엇. 그런 요리를 먹는 사람들도 역시 사유를 했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 사이의 교감. 그것이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 요리는 전멸하다시피 하고, 요리기능공 혹은 요리숙련공만 넘쳐난다. 먹는 사람과의 교감 따윈 안드로메다로 갔다. 먹을거리를 통해 사유할 줄 알았던 인류는 먹을거리가 풍성해진 대신 사유하는 능력을 잃었다. 밥상머리 철학? 흘러간 옛노래로 전락했다.

요즘 아이들 먹을 것 귀한 줄 모른다는 어른들의 툴툴거림.
그것은 자충수다. 어른들이 먹을거리에 대한 제대로 된 가르침을 주지 않았다. 먹을거리를 통해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지 않은 과오다. 자신의 배와 제 가족의 배만 부르면 그만이었다. ‘먹이면 된다는 것이 결국 많이먹이는 쪽으로 발달했다.

식탁 위의 철학은 음식을 통해 사유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철학()을 직접적으로 들이대며 음식과 철학의 연관성을 획득한다. 저자 신승철은 일상에서, 그것도 가장 원초적이고 낮은 단계의 일상(먹는 것)에서 철학을 길어낸다. 재미있고 흥미롭다. 맞다, 아니다를 떠나, 그것이 음식과 세계를 대하는 하나의 자세이자 태도임을 자각하도록 만든다. 가령, ‘잡채를 통해 전체주의와 독재적 권력의 사상으로 향할 요소를 내부에 갖는 동일성의 철학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한다. 그것이 차별과 시민사회를 위협하는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잡채처럼 다름이 섞여 새로운 맛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잡채에 대해 갖고 있던 내 생각을 확인시켜줘서 반가웠다. 물론 나는 그처럼 철학 용어를 사용하지는 못했지만.종 다양성, 생물다양성, 문화다양성이 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인지를 생각할 수 있는 잡채의 시간!

발효에 대한 생각도 그렇다.
천천히 다른 것이 되어가는 것, 기다림의 미학을 필요로 하는 것, 그리하여 삶 또한 내면의 발효에 의해 형성하는 것. 저자는 발효를 통해 삶은 본디 느림의 과정이며, 타인과 똑같지 않은 자신만의 맛과 향기를 갖게 되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소수자는 곧 양적 소수가 아닌 자신의 특이함을 드러내는 사람이라는 견해와 더불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색다른 것이 생산될 수 있다는 이질발생의 개념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가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둘러봐라. 지금 우리를 감싼 글로벌이라는 이름의 폭력.
그것은 경쟁을 통해 내 것이 남의 것보다 우월함을 증명하고자 하는 개수작인데, 그런 개수작을 요구하는 자본의 폭정에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식 없이 투항하곤 한다. 진짜 글로벌, 진짜 세계화는 이 세계가 작고 사소한 일이라도 연결돼 있음을 알고, 지구 저 어딘가 나와 상관 없을 것 같은 남의 고통과 아픔, 슬픔에 교감하는 것이다. 어딜 가도 똑같은 이름의 커피브랜드, 패스트푸드체인을 만나는 것이 대체 무슨 감흥이 있단 말인가. 여기 저기 비슷한 풍경으로 도배한다면 우리는 대체 왜 그곳을 가는가 말이다. 아파트 평수와 자동차 브랜드만 중요한 똑같은 질문. 복제와 반복에 의한 동질발생. 그것이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주입하는 주술인데, 우리는 그 주술에 주화입마를 입은 상태다.

따로 또 같이를 통해 뒤섞임의 미학을 자랑하는 비빔밥에 저자가 감탄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달라서, 다르기 때문에 어울릴 수 있는 것. 이질발생의 아름다운 맛과 향기.

그래서 이런 사유는 정말이지 반가워서, ‘만쉐를 부를 뻔했다.
맛의 변형과 재창조는 음식의 역사가 흐름의 역사라는 것을 말해줍니다.”(p.95)

, 이 저자는 먹을거리를 통해 제대로 사유할 줄 아는 사람이구나.
밥상머리에서 철학을 길어 올릴 줄 아는 양반이구나. 감히 그런 생각까지도 했었다. 특히 커피를 만드는 사람인 내 입장에서 가장 반가운 대목은 ‘(인스턴트)커피에 대한 것이었다. 커피에 담긴 세계의 불공정함, 그 불편한 진실을 꺼내준 것이 반가웠다. 커피는 식민과 착취의 부산물일 뿐 아니라, 지배계급이 노동계급을 부려먹기 위해 모르핀처럼 주입한 검은 액체였다. 더 큰 문제는 기호와 취향을 획일화시키고 조정한다는 것이다. 거대 프랜차이즈 브랜드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제철 공장과 자동차 공장,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1980년대 노동자들은 노동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잠이 오지 않는 값싼 인스턴트커피를 먹고 일을 해야 했습니다. 인스턴트커피는 노동 현장마다 한 켠에 준비되어 있었고 권장되었으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을 취향과 기호를 평준화시키면서 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습니다. 만약 당신이 고용주라면 인스턴트커피의 장점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는 굉장히 많습니다. 이를 테면 노동자들의 입맛을 만족시켜주는 것 같으면서도 생산 능률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야근과 철야를 하는 노동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카페인의 힘에 의지하여 버티는 것이었습니다. 2000년대를 살고 있는 중학생, 고등학생들도 이와 다르지 않은 방법을 통해 자신의 신체와 정신을 재생산하고 있습니다.”(p.127~128)

, 지금의 많은 커피는 내부 식민지를 구축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커피는 본디 사유하게 만드는 음용수였지만, 지금의 인스턴트커피 혹은 거대 프랜차이즈 커피가 생각하게 하는 것은 내 업무()로 국한돼 버렸다. 지배 질서의 커피 주술에 놀아난 결과다. 취향과 기호마저 저급해졌다. 고작 인스턴트커피를 놓고 갑론을박하는 수준이라니. 저자의 다음과 같은 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일이다.

인스턴트커피를 권장하는 사회속에는 무의식적으로 더 빨리 일할 것, 더 오래 공부할 것을 강조하는 부드러운 지배 방식이 존재합니다.”(p.130)

먹을거리는 세심하며 섬세하고 예민한 지점이다.
커피를 하고 계속 공부를 해가면서 나는 그것을 절감하고 있다. 그것은 곧 세상에 대해서도 그리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즐겁다. 세상이 넓어지는 한편으로 혀의 감각처럼 촉수가 민감해지면서 미시적으로 접근하게 된다. 넓고 깊어진다는 의미다. 물론 아직 부족하며, 영원히 채워지진 않을 것이다. 그러면 또 어떤가. 커피와 먹을거리를 통해 나는 달리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됐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보건대,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 하나는 다름이다.
다름이 섞이면서 또 다른 새로움을 만들어내고, 획일적이지 않은 소수의 특이성으로 발현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제가 된다고 나는 읽었다. 은근히 먹을거리를 통해 혁명을 부추기는 심보(!). , ‘이렇게 밥상머리 철학이 이뤄진다면 참 즐겁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아주 소수이지만 그런 사람들과 함께 커피를 만들고, 그런 사람들과 만나고 싶다. 획일적이고, 증식에만 관심 있는 종자들 아닌 특이성 생산을 통해 새롭게 배치하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

저자의 또 다른 키워드는 정치.
음식을 통한 정치. 나는 먹는 것이 곧 정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어떤 것을 먹느냐, 그 작은 일이 미시정치를 일구는 중요한 지점이라고 본다. 취향, 기호, 맛까지 다국적 기업 혹은 재벌의 농간과 협잡에 놀아나는 것, 끔찍하지 않나? 지배질서에 의해 노예로 내부 식민지화하는 것, 스스로에게 미안한 일 아닌가?

우리가 먹는 것이 자본과 정치에 의해 조작되는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투표를 잘하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투표도 그래서 잘해야 한다. 깨놓고 말해서, 남 차려준 밥상만 깨작거렸을 생각 없는 박근혜 따위 찍으면 그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는데 돕는 것이다. 그럼 문재인이나 안철수는? 물론 아직 다르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부 식민지화를 조금씩 늦출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 후보 김소연을 찍는 것도 좋겠고.

이 책은 먹을 것 얘기하면서 은연 중 각성을 요구한다.
내가 먹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뭘 먹고 살지? 하는 질문을 던지며 삶에 대한 주체적인 인식을 강조한다. 커피 만드는 사람인 나는 이 책의 기조에 완전 공감! 내가 먹는 것이 어떤 것이며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것, 그것이 생의 감각을 깨우고, 삶의 주체로 서게 만든다. 먹는다는 건, 종종 강조하지만, 먹혀지는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의 응원을 받아 힘껏 사는 것이다. 먹는 것을 존중하고 고마워하며, 미안해할 줄 알아야 하는 이유다.

들뢰즈가 가타리를 만나 타락과 방탕의 길로 들어섰다고 세간에서는 평가한다고 했다. 이 책을 만나서 당신도 타락과 방탕의 길로 들어서라고 권하고 싶다! 아름다운 타락이요, 근사한 방탕이로다. 혹시 그동안 먹을거리를 통해 생각하고 사유하지 않았다면,유죄. 그 죄를 사하기 위해 이 책, 필요하다. , 113쪽의 영화 <빵과 자유><빵과 장미>의 오류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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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도 11월에는.

독일 작가, 한스 에리히 노삭의 이 소설, 죽기 전에 꼭 진심 뱉고 싶은 이 한마디가 툭 던져집니다. "당신과 함께라면 이대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삶이 '안전'하기만 바라며 하루하루 버텨왔던 재벌가의 며느리 마리안네. 처음 만난 낯선 남자 묀켄이 건넨 그 한마디에 재벌가 생활 따위 내팽개치고 남자를 따라나서는 여자. 그야말로, '미친' 낭만.

 

뭐, 낭만? 현실 감각 없는 무능력자들이 술 한 잔에 기대어 부리는 치기 정도로 전락한 '낭만 소멸의 시대'. 칼럼니스트 김경이 전한 독일 철학자 프레데릭 바이저의 [낭만주의의 명령, 세계화를 낭만화하라]에 의하면, 초기 낭만주의자의 미학적 혁명은 당대의 현실을 개혁하기 위한 정치적 운동의 일환이었다고 합니다. 세계를 낭만화한다는 것은 곧, "우리의 삶을 소설이나 詩로 만드는 것을 의미했으며, 그리하여 우리의 삶이 파편화된 근대 세계에서 잃어버린 의미와 신비, 마법을 되찾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알다시피 어릴 때, 우리 모두는 예술가였죠. 그러나 '낭만끼'를 자본과 권력에 의해 강탈 당하면서 우리는 예술적 재능과 낭만적 삶을 잃었다는 불편한 진실!

 

독일 낭만주의 사상가 프리드리히 슐레겔, 낭만 명령으로서 "세계를 낭만화하라"고 선언했습니다. 다른 낭만주의자 노발리스는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시적 국가(poetic state)'라고 표현했고요. 바이저는 '낭만시'라는 용어와 '세계는 낭만화되어야 한다'는 명령을 정치와 윤리, 철학을 포괄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에게 '낭만'은 유미주의적으로 해석되는 것이 아닌, 개인과 사회, 자연에 대한 세계관을 집약한 표현이라는 것. '낭만화', 현실과 무관한 공상 속에서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는 보수적인 세계관이 아닙니다. 이 낭만주의자들은 자유로운 교제가 가능한 유기체적 국가 안에서 사람들이 아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길을 모색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낭만을 되살리고픈 누군가, 이렇게 외칩니다. "마을을 청춘화하라." 

마을을 품은 청년들이 이야기를 풀고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낭만, 어떤가요? '마을청년활동가'에겐 이런 정의, 어떨까요? 자유로운 교제가 가능한 유기체적 마을 안에서 사람들이 아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모색하는 자.   

 

청년과 마을 네트워크 첫번째 이야기,< 마을살이 몇 핸가요 >. 새로운 친구를 만나, 마을을, 세계를 낭만화합시다! 4회에 걸쳐 진행됩니다. 새로운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짝궁 프로젝트까지 곁들인 낭만의 최적화. 자, 신청하세요. 세상을 향한 감각의 촉수를 벼리고, 이를 차곡차곡 쌓아서 세계를 낭만화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 아울러, 녹색공유도시를 향한 낭만의 초대, < 녹색공유도시 100 >(11월26일 오후 6시)도 함께 곁들이오니, 신청하세요.

 

다시 돌아가, 늦어도 11월에는. 마리안느와 묀켄의 '미친 낭만'에 대한 노삭의 이런 읊조림.  

"일단 스쳐 지나가고 나면 계속 그리워지는 그런 순간 말이다. 다른 어떤 것은 그 순간만큼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그리고 그 순간은 오직 두 사람만이 알고 있는 것이다." 당신과 함께 나누고 싶은 그런 순간을 닥치게 만드는, "당신과 함께라면 이대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대 좋아하는 계절이 와요(나윤권 노래 제목). 아참, 겨울이한테 인사 하는 것, 잊지 않으셨죠?

 

눈과 함께 하길, 기다렸어, 나의 겨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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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want bread, but want roses, too!
 (우리는 빵도 원하지만, 장미도 원한다!) 

 

- 켄 로치 감독, <빵과 장미> 중에서 - 

 

막걸리를 마시며 전태일을 꺼냈고, 함께 마신 이들과 우리의 노동을 생각했습니다.
11월13일이어서 그랬을 겁니다.

1970년 그날, 42년 전 불길 속에서 산화한 노동의 이름.

 

'전태일'이라는 이름 덕분에 나는 '노동'을 처음 알았습니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노동이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모두 노동자였고, 세상의 태반이 노동자였으며, 나도 노동자로 살아가야 할 것임에도, 어른들은 '노동'을 알려주지 않더군요. (자본주의 사회라면서 '자본' 역시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나는 늘 노동자였고, 지금도 노동자이며, 앞으로도 쭉 노동자일 것입니다.
그리고 별 볼 일 없는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타이틀, 커피노동자!

 

얼마 전, 밤에 창신동을 찾았었습니다.
창신동에서 마을을 가꾸는 두 청년(러닝투런-키다리와 콩)을 만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죠.

 

키다리의 안내로, 창신동 봉제공장을 처음 가봤습니다.
한창 성수기라며 그 야심한 밤에도 노동에 취한 봉제공장들의 불빛.
그리고 원단을 자르고 가공하는 노동자들의 바쁜 모습.
50년을 그 자리에서 재단 노동을 하고 있다는 엘림패션의 김 사장님.

어찌나 열성적으로 자신의 노동에 대해 말씀을 하시던지.

나는 "형님~!", 손을 잡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전태일, 떠올랐었습니다.

 

키다리와 콩은 그 노동자들이 발을 굴리는 동안,
어쩌면 방치될 수밖에 형편의 그곳의 아이들과 함께 놀면서 여러가지 재미난 실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기회를 만들어서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을 겁니다.
마을과 청년이 어떻게 창신동이라는 풍토에서 만나고 있는지.


그리고 마을과 노동. 반드시 다루어져야 할 주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마을에서 노동은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노동과 마을은 서로 어떻게 삼투하는지.
'노동'이라는 영원히 계속돼야 할 사유와 더불어.

 

그리하여, 광고하자면, (노동에 대한 어설픈 접근이지만, 처음이니까! ^^;)
다음주 월욜(19일), 마을공동체 TV강연 '마을, 일자리를 부탁해'가 광화문 역사박물관에서 열립니다.

무료니까, 마을일자리에 대해 한 번 들어보세요.
신청은, '위즈돔'에서. ☞(클릭) [서울 마을공동체] 마을, 일자리를 부탁해!

 

 

 

 

"빵은 나누어져야 하고, 자유는 확대되어야 합니다. 빵과 자유를 위한 투쟁은 영원합니다."

 

명민한 좌파감독이자 영원한 노동자의 감독, 켄 로치 <빵과 장미>.

 

빵도 필요하지만, 장미도 당연히 필요하고 요구해야 하는 것.

그러나 이 땅은 여전히 빵조차 나누길 거부하는 사회.

낮은 자들이 높은 곳에 기어이 올라가도 콧방귀조차 끼지 않는 몰염치한 세상.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8일째 철탑 고공농성의 한파를 맞이하고 있으며,

23개의 세계가 무너진 쌍용차 노동자들.

 

42년 전의 전태일을 끊임없이 호명하고야 마는,

'자본 천국, 노동 지옥'의 아, 대한민국.

속된 말로, 일하다 죽는 것이 당연한 '일천국(잡코리아?)', 오, 대한민국.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는 말합니다. 대한민국 노동자의 연간 근무시간은 2256시간으로 OECD 회원국 중 1위(OECD 평균 1750시간). 독일보다 800시간, 일본보다 500시간 많은 반면 여가 시간에서는 뒤에서 1위, 자살률 1위. 1등만 기억하는 조까라 마이싱, 대한민국!)


당신의 노동은 안녕하신가?

 

그러니까,

내가 당신에게 권하는 건, 일 대신 커피.

노동을 뉘이는 한편 노동을 사유하는 커피 한 잔.

다시 꺼내는, 요즘 내가 꽂힌 이 노래를 들으면서 커피 한 잔.
우리의 음악.


노동이 음악으로 바뀔 수 있는 세상을 바라는 마음에서.

우리의 노동, 우리의 음악.

 

그대여, 사랑을 미워하진 마. 우리가 함께 했던 계절을. 때로는 눈부시던 시절을. 모든 게 조금씩 빛이 바랬고, 우리가 함께 듣던 노래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어.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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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나는 여전히. 세상에 음악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이 세상을 견뎌낼 수 없었을지도 몰라.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다른 삶이 가능하다고, 음악은 살포시 속삭인다. 


오늘처럼, 이 음악. 우리의 음악. 


에피톤프로젝트, 고마워. 



어쩔 수 없는, 아직은 가을을 놓치고 싶지 않은 내 마음. 

 

에피톤프로젝트의 위로, 혹은 음악. 

 


이 음악으로 나는 오늘을 감사해.

 

내게 즐겁고 행복한 하루를 선사해준 당신들에게 또한 감사를.

 


3040의 어떤 이야기.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 낯선 당신들에서의 하루.

 

우리, 월요일에 만나. 가을, 우리가 함께 했던 계절로 채워지는 나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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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2-11-09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래..너무 좋군요...

책을품은삶 2012-11-14 01:03   좋아요 0 | URL
그쵸! 정말이지 참 좋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