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인생이야 - 삶의 본연을 일깨워주는 고요한 울림
세스 지음, 최세희 옮김 / 애니북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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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빠지지 않고 반드시 보는 코너가 있다. 부고란이다. 이미 죽은 사람의 이름을 본다. 그 이름에 얽힌 사람들도 자연히 보게 된다. 사라진 한 우주와 그 우주를 둘러싼 세계를 보면서 나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있을까, 아주 잠시 상념에 빠진다. 물론 세상엔 신문 부고란에 나오지 않는 죽음이 더 많다. 그 사실도 철저하게 잊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죽음은 허투루 다뤄서는 안 된다. 죽음에 대해 성숙하지 태도를 지닌 사회야말로 천박한 사회다. 그렇게 보면 한국 사회가 죽음을 다루는 태도는 아쉬운 점이 많다. 오비추어리(Obituary, 부고 기사)만 봐도 알 수 있다. 부고란을 맡고 부고 기사를 쓰는 담당 기자는 대부분 신입이나 경력이 얕다. 부고 기사를 한국 미디어들이 얼마나 소홀하게 다루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어쩔 수 없다. 해외의 예를 들어야 겠다. 해외 유력 언론에게 오비추어리는 중요하다. 사내 최고의 기자들이 부도 담당을 한다. 특히, <뉴욕타임스>의 오비추어리는 유명하다. 부고 기사만 모아 책으로 발간할 정도다. <이코노미스트>는 마지막 페이지를 한 사람의 부고 기사에 모두 할애한다.

 

부고 담당 기자는 그래서 엄청난 자료를 갖고 있고, 한 사람을 입체적으로 다루기 위해 다양한 취재원과 접촉한다. 한 우주의 소멸을 다루는데, 예의를 갖추는 것은 기본이요, 다양하고 입체적인 정보를 담아야 하는 것은 필수다. 오비추어리는 죽음을 다루지만 결국 독자들에게 지금의 을 돌아볼 것을 권하는 기사인 것이다. 스티븐 킹은 그래서 부고 기사를 커튼콜에 비유했다. 이런 말까지 덧붙여. “때론 쇼의 최고 장면은 커튼콜이다.”

 

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인생이야는 오비추어리다. ‘잭 캘로웨이라는 생소한 작가를 기록한 뭉클한 오비추어리.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진 한 만화가를 좇는 세스의 여정은 특별한 것이 없다. (자료를) 찾고, (캘로웨이의 흔적을) 찾아가고, 이를 친구와 나눈다. 대단한 작가도 아닌 캘로웨이를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찾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그런데도, 이 작품, 묘한 여운을 남긴다. 그림은 더디게 흘러가고, 빠른 장면 전환도 없다. 천천히 묵묵하게 간다. 여느 만화의 속도와는 다르다. 영화의 롱테이크(길게 찍기)’와도 같다. 그림은 아주 천천히 흘러간다. 그리고 정교하다. 한 장면이라도 허투루 그렸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모든 것이 연출 같다. 한 컷 한 컷에 뭔가 다채롭고 풍성한 이야깃거리가 숨어 있다는 생각도 들 정도다. 한 컷 한 컷도 그래서 주인공이다. 만화로 세상을 배운 세스를 통해 드러난 만화경도 하나의 사소한 재미다. 덕분에 만화에 대한 메타만화로서도 기능한다.

 

세스의 캘로웨이 찾기는 인간이 지닌 어떤 한 본성을 엿보는 것 같다. 사실 캘로웨이를 찾는 일에는 뚜렷한 이유가 없다. 그 이유의 불분명함 때문에 이 만화가 시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세스 스스로도 자신이 왜 그런지 의아할 때가 있다.

 

캘로를 찾아헤매는 것도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가 대체 뭐라고그냥 반짝 뜨다 만 사람을 가지고. 더 중요한 작품을 남긴 사람을 찾아봤어야지. 그게 더 현명한 일이었을 텐데.”(p.125)

 

그럼에도 인간은 어떤 이유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떤 이끌림에 따른다. 자료를 찾고, 그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전화번호부를 통해 집 주소를 찾아낼 정도의 열성이다. 세스가 선택을 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무엇일까. 세스를 움직이게 한 것은 무엇일까. 나도 궁금했다. 돈 되는 일도 아니요, 그의 작품과 흔적을 찾는다고 세상이 떠들썩할 것 같지도 않다. 그는 그저 발을 떼고 찾을 뿐이다.

 

인생은 좋은 선택과 나쁜 선택의 연속이 아니야.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이 방향으로 간다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저 방향으로 간다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야. 그냥 끌려다니는 거야.”(p.155)

 

어쩌면 캘로웨이는 세스에게 좋은 것의 대명사였는지도 모르겠다. ‘쇠락해가는 옛 것들을 보며 사라져가는 과거를 슬퍼하는 세스다. ‘옛날 삶이 더 단순했고, 나름의 행복을 추구하는 게 쉬웠다고 생각하는 세스다. ‘좋은 건 절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세스다. 그 시절의 좋은 것들이 자신의 삶에 계속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로선, 캘로웨이의 작품을 찾는 것이 자신의 삶의 돌파구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과거 속에 가라앉아 허우적대고 있다. 어린 시절에 해답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지나간 시절을 곰곰이 들여다보다가 뭔가 실마리를 찾아내면 현재의 지긋지긋한 문제들도 해결될 것 같다. 5분만 놔둬도 곧바로 우울해지는 게 나란 사람이다. 세상만사 슬프지 않은 게 없다. 안다. 내가 유난 떤다는 것. 하지만 많은 게 날 우울하게 만든다. 여기 이 기름때 낀 숟가락만 해도 그렇다.”(p.41)

 

그가 캐나다를 오가면서 찾은 캘로웨이의 이야기도 특별한 것이 없다. 그럼에도 그것은 특별한 순간이다. 생의 모든 순간을 기적이라 칭할 순 없지만, 가슴이 뛰는 찰나의 순간을 기적이라 칭하지 말란 법도 없다. 캘로웨이를 만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세스가 만난 사람들에게서 나는 가슴이 살짝 뛰었다. 세스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특별할 것도 없는 그의 이야기가 특별하게 느껴질 어느 순간을 감식한 세스는 아마 행복했던 것 같다. 미처 몰랐던 아들의 야한 만화를 보면서 재밌어하는 어머니는 아들에게 그런 면이 있는지 몰랐다고 말한다. 아들의 몰랐던 면모를 발견하게 되는 어머니의 모습을 향해 세스는 웃고 있다.

 

그는 한 뼘 성장했을 것이다. 물론 성장이 아니어도 좋다. 성장은 한 순간에 훌쩍 크는 것이 아니다. 순간순간이 모인 결정체다. 인생은 그러니까, 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다. IT‘S A GOOD LIFE, IF YOU DON’T WEAKEN.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제목이다. 누구에게나 약해지려는 순간, 느닷없이 닥친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순간은 다가온다. 그럴 때마다 약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기보다 조금 비참한 게 영혼에는 좋아요라는 캘로웨이의 말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또 괜찮은 인생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본다면 알 수 있겠지만, 캘로웨이의 말은 불행하다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말없이 수긍하며 사는 삶에 만족했던 캘로웨이의 미소를 상상해볼 수 있다. 나도 세스가 말했던 것처럼 그의 어머니 바이올렛이 고마웠다. 이 책의 제목이자, 세스에게 종종 해주시던 말씀이라고 하셨다. 그 말이 삶을 버티는데 도움이 된다. 이 책, 로고테라피(의미치유)의 기능도 한다. 이런 오비추어리, 긴 여운을 남긴다. 하늘에 있을 캘로웨이도 참 좋아하지 않았을까!

 

아 참, 옆에서 그저 묵묵히 그것을 받아주는, 체트의 존재도 은근 인상 깊다. 그는 친구의 연애 상담을 들어주고, 자기비하를 일삼는 친구에게 넌지시 넌 괜찮은 놈이야라고 건네준다. 친구의 만화 열광을 묵묵히 들어주다가 그러게느낌이 좋다고 말해주며, 어쩌면 그로서도 이해하기 힘든 캘로웨이 찾기에 나선 친구를 응원해 준다. 좋은 친구의 좋은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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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의 선율에 젖은 날이면
잊었던 기억들이 피어나네요
바람에 날려간 나의 노래도
휘파람 소리로 돌아오네요

내 조그만 공간 속에 추억만 쌓이고
까닭 모를 눈물만이 아른거리네

작은 가슴 모두 모두와
시를 써봐도 모자란 당신
먼지가 되어 날아가야지
바람에 날려 당신 곁으로

작은 가슴 모두 모두와
시를 써봐도 모자란 당신
먼지가 되어 날아가야지
바람에 날려 당신 곁으로

 

-김광석 < 먼지가 되어 >

 

아무렴. 1월 6일은 '김광석'으로 채우는 하루.

그래서 '커피 김광석'을 마시면서, 김광석의 노래로 마음을 다스린다. 

 

2013년 1월 6일, 김광석 17주기.

광석이 형이 없음에도, 노래가 여태 불리고, 추모의 기운이 번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렵지 않다.  

그의 노래 한 곡 한 곡이 누군가의 추억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추억에선 <사랑했지만>이, 또 누군가에겐 <서른 즈음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그녀가 처음 울던 날> <거리에서> <이등병의 편지> 등이 어쩔 수 없이 박혀 있음으로 인해서다. 

 

모든 노래가 모든 이의 추억 속 한 자락이 되는 경우, 김광석이다. 

김광석이기에 가능한 그것은, 많은 이의 삶의 결에 김광석이라는 노래가 묻어 있다.

 

오늘, 동숭동 학전블루에서 '김광석 따라부르기'가 열렸다.

1월 26일 대구와 2월 1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김광석 다시 부르기 콘서트' 무대가 열린다. 4월엔 김광석 쥬크박스 뮤지컬 <그날들>(6월까지)이 무대에 오른다.

 

언제부터인가, 이맘 때면 늘 찾아갔던 홍대 부근의 그곳. '들꽃이 피는 자리'.

주점이다. 김광석이 있고, 체 게바라가 있다. 주인 아저씨에게 김광석에 얽힌 뭔가 추억이 있음을 유추할 수 있는 공간이다. 김광석 노래가 늘 울려퍼지는 이곳. 원하면 또 틀어준다. 조만간 들꽃이 피는 자리에 들러야 겠다.     

 

오늘 김광석으로 모든 것을 채우는가 했는데, 

또 하나의 먼지가 된 사람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조성민.

그는 내 또래다. '한국야구 황금세대 92학번'의 절정이었던 조성민.  

뭣보다 내 고등학교 때의 여신, 진실 누나의 한때 사랑이었다. 

성민은 먼지가 되어 진실 누나에게 날려갔다. 참, 슬프다.

 

광석이형 만으로도 헛헛한 이내 마음.

성민이의 죽음이 내 마음에 먼지를 불러 일으킨다.

(유)덕화 형의 <심플 라이프>가 그런 내 마음을 다독여줬다.

커피 김광석이 1월 6일을 달래주었다. 

 

그리고, 광석이 형 노래(<사랑했지만>)에 묻어 있는 너.

그런 너는 잘 있는지, 문득 궁금해지는 하루.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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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 잔 할까?

-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중에서  

 

 

오늘, 엄마가 죽었다.
전보가 그렇게 왔다. 내 탓은 아니지만, 가지 않을 수 있나. 사장은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지만, 휴가를 내고 버스를 탄다. 피곤했을까. 계속 잠을 잔다. 도착해선 엄마의 시신도 보지 않는다. 눈물? 글쎄, 눈물샘이 마른 건가. 엄마의 주검이 담긴 관. 경비가 커피를 권한다. 홀짝. 커피엔 역시나 담배. 그래도 엄마 시신 앞인데... 잠깐 망설인다. 그렇다고 꺼릴 이유도 분명치 않다. 담배 한 모금. 후~ 커피가 담배를 부른 것인지, 담배를 피우기에 앞서 커피를 애피타이저로 마신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맞다. 뫼르소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첫 문장 중의 하나인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이방인≫이다. 커피, 태양, 담배, 바다, 정사... 그리고 숱하게 명명된, 그래서 지겨울 법한 부조리. ≪이방인≫을 떠올리자면, 그렇다. 태양이 너무 강렬해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문학)역사상 가장 병맛(!)스러운 살인의 이유를 들이댄 뫼르소. 다양한 병맛짓으로 그야말로 인생사 병맛을 실감케 한 재능은, 온전히 그에게서 나왔다. 이 책을 내놓았을 때, 카뮈는 스물아홉이었다. 스물아홉의 청년이 내놓았던 이 책에 대해 문학평론가 롤랑 바르트는 "건전지의 발명에 맞먹는 사건"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데, 그 호들갑, 틀리지 않았다. ≪이방인≫은 에너자이저다. 부조리는 지독하게 현재적으로 점점 더 강도를 더해가니까. 프랑스에선, 이 책에 대해 매년 20만명의 새로운 독자가 생겨날 정도다.

 

 

그렇다. 그. 알베르 카뮈.
그는 커피 한 잔과 함께(물론 담배도 곁들여서) ≪이방인≫을, 뫼르소의 병맛짓을 휘적거렸다. 빠뤼의 골목, 생제르맹 거리에 위치한 '레 되 마고·Les Deux Magots(2개의 도자기 인형)'와 '드 플로르·de Flore'에서였다. 생제르맹 교회 앞 광장에 위치한 카페들.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카뮈는 담배를 뻑뻑 피워가며 커피의 힘을 빌어가며, 뫼르소를 탄생시켰다. 부조리의 탄생. 커피로 조리한 부조리? 물론, 이곳엔 카뮈와 한때 절친이었던 사르트르를 비롯해 보부아르, 랭보, 베를렌, 알퐁스 도데, 앙드레 지드, 헤밍웨이, 피카소 등 내로라하는 문인·사상가·철학자·예술가 등이 즐겨찾았다. 오죽하면 "집으로 삼았다"는 얘기(사르트르)까지 나왔겠나. 지금은 관광객들이 호기심으로 머무는 장소가 됐다지만. 뫼르소는 커피의 힘을 빌린 부조리였던 것이다.

 

 

카뮈는 반항아였다. 
윗 사진이 뿜어내는 포스를 보라.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반항 아니면 죽음을! 그는 부조리에서 세 가지 귀결을 이끌어낸다고 했다. 반항, 자유, 열정. 자유주의자이자 사회주의자였던 그를 오해하는, 아니 그를 이용해 먹은 한국 지배세력의 유언비어도 있었다. 스탈린주의에 반대했던 그를, 반공주의자로 끼워맞춘 것이다. 카뮈는 말하자면, 반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 반전체주의적 사회주의에 가까웠다. 폭력에 근간한 정복자의 모습을 한 절대주의적인 이데올로기에 대한 두드러기 혹은 알러지. 부조리에 반항하되, 반항의 기원을 잊지 말아라! 카뮈가 우리에게 속살거린다.

 

다만, 나는 안다.

커피가 카뮈를 꼬드겼다. 약간 과장하자면, 커피 없이 ≪이방인≫이 나왔을까. 다른 판본으로 말하자면, 그의 지성을 자극한 것은 커피였다. 어느 커피하우스에선, 또 다른 카뮈가 담배 한 모금과 함께 커피의 힘을 빌어 지금 이 시대의 부조리를 끄집어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1959년 한 인터뷰, "내 나이 마흔다섯, 아직 놀랄 정도로 활력이 남아 있습니다"라고 자신만만하던 카뮈는 이듬해 초, 소설(≪최초의 인간≫) 원고를 품고 가다가 차에 치여 아듀. 요절이었다. 커피가 그를 죽인 것은 아니었다. "나는 가난 속에서 자유를 배웠다"고 말한 이의 부조리한 죽음이었다. 

 

그런데 왜, 카뮈?
1월4일은 카뮈의 53주기다. 뭣보다, 올해 카뮈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11월7일)다. 그래서 특별한 커피를 볶았다. 이름하여, 부조리 커피다. 레시피는 알려주지 않겠다. 힌트가 있다면 알제리 커피가 가미됐다. 알제리는 커피를 '샤딜리에'라고 부르는데, 카뮈는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알제리로 이주한 프랑스노동자의 후손이다. 이 커피, 마셔보면 뫼르소의 심경이 이해가 간다. 지금 우리를 둘러싼 온통 부조리한 현실 덕분이다. '부조리 커피'가 그것을 명징하게 일깨워줄 것이다.

 

그나저나, 카뮈 사진의 저 포스, 저 간지.
아주 부러워 죽는다. 저 정도 간지, 누구나 '소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저 정도 간지가 돼야, 뫼르소라는 인간형을 내놓을 수 있다. 장례를 앞두고 밤을 새며 커피를 마시고(그래, 밤 새며 커피를 마신 것이 무슨 죄란 말인가!),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난 다음 날 섹스를 하며(섹스랑 밥 먹는 일이 뭐 그리 다른가? 장례 다음 섹스를 하면 정말 (관습법에서라도) 죄가 되는겨?), 어머니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울지 않는 인간도 있다. 분명!).

 

 

카뮈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일러스트 이방인≫이 출간됐다.

지난해 ≪이방인≫출간 7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에서 나온 특별 에디션이 드디어 한국에도 나왔다. 프랑스에서는 무려 750만부가 팔려나갔다. 흑과 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모든 것을 표현했다. '부조리 커피'를 마시면서 ≪일러스트 이방인≫을 보시라.

 

다만, 햇살은 피해서.

꼭. 당부한다. 너무 강한 태양은 몸에도, 마음에도, 해로울 수 있다. '행쇼(행복하십쇼)'하고 싶거든, 지나치게 강렬한 태양은 피하고 볼 일. 비(정지훈)의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읊는 것은 좋지만, 비도 몰랐던 것이 있다. 김태희와 연애할 때 국방의 의무를 회피하는 방법까진 몰랐던 거지. 연애할 때 주의할 것, 내 안의 부조리. 아, 물론 연애질할 땐, 당연히 그따위 것 모른다. 세상이 온통 김태희뿐인데, 부조리가 보이겠나. 태양은 피해도, 김태희는 못 피했겠지. 비에겐. 뫼르소라면 몰라도. 그러니, '밤9시의 커피'를 마시면서 태양도 피하고, 피할 수 없는 '부조리'도 꿀꺽 마셔야 한다. 삶처럼. 딴 이유 없다. 알다시피, 삶은 부조리니까!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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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뼈 그리고 버터
개브리엘 해밀턴 지음, 이시아.승영조 옮김 / 돋을새김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사실, 요리() 이야기라기에, 솔깃했다. 나는 그런 인간이다. 먹는 문제라면 신경이 발딱 선다. 그것이 살아내기 위해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펼치면서, 다른 사전 정보 따윈 거의 없었다. 약간 유명한 셰프가 음식이야기를 펼친다는 정도?

 

그래서 어떤 먹을거리의 향연이 펼쳐지면서, 나를 사유하게 만들까. 식품에 대한 어떤 세계와 철학이 펼쳐질까. 궁금했다. 책 두께(528페이지)도 만만치 않지만(심지어 사진 한 장도 없다!), 먹을거리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그 정돈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읽을수록 아뿔싸! 내가 잘못 생각했었다. 식품이 아니었다. 요리가 아니었다. 거기엔 구체적인 개별의 인간이 있었다. 개브리엘 해밀턴. 뉴욕 이스트빌리지 프룬 레스토랑의 오너 셰프. 한 인간이 세계와 긴장을 이루면서 살아낸 삶이 팔팔 끓고 있었다. , 뜨거 뜨거!!!

 

그러니까, 결론부터 말하자. 나는 이 여자, 아니 사람, 여자사람에 반했다. 책만 놓고 보면 그렇다. 직접 만나면 무서울 것 같다. 섣불리 범접하지 못할 카리스마에 나는 찍소리 못하고, 음식만 먹을 것이다. 아마도. 먼발치에서 그녀를 힐긋 바라보면서. 흠모의 마음을 품고. 저런 멋진 셰프 작가를 눈앞에서 보다니, 오오.

 

피와 뼈 그리고 버터, 유기농, 친환경, 자연산 등의 수식어 따윈 저버리고, 그저 자신의 마당에서 막 자란 채소와 근처 농장에서 갓 잡아와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소고기를 적당히 구워 자신이 만든 소스를 버무려 만든, 개성 뚝뚝 떨어지는 개브리엘표 요리다. 글은 생생하게 팔딱거리며, 자신만의 생명을 갖고 움직인다. 스트레이트로 쭉쭉 뻗어나가는데다 한 번씩 날리는 잽은 맞으면 기분이 좋다. 내 눈앞에서 으로 살아 움직이는 사람을 만난 기분이랄까. 그만큼 현장감 있고, 돌직구처럼 달려든다. 번역한 사람도 꽤나 공을 들인 것 같다. 어지간하면 이런 생각 들지 않는데, 원서로 읽고 싶어졌다. 아마 평생을 가도 다 읽진 못하겠지만.

 

책은 뒤로 갈수록 흥미진진하다. 자주 웃었고, 종종 뭉클했으며, 가끔 눈물이 찔끔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든 생각은, 이 책, 식품이나 요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외로웠던 한 사람의 가족 예찬사. 평소의 나 같으면, 부정적인 의미로 이를 다뤘겠지만, 이 책, 다르다. 어린 시절부터 복선처럼 깔린 그녀의 분투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요리에 대한 멋지고 풍성한 이야기도 있지만, 이 책을 지배하는 기조는 가족이다. 특히 가족(시월드), 그중에서도 저자가 시어머니와 함께 요리를 하고 그것을 나누는 장면, 압권이다. 그 장면만으로도 그림이 나온다.

 

그러니까 그녀, 어릴 때부터 어른이었다. 세상엔 어쩔 수 없이 어른이 돼야하는 아이들이 있다. 개브리엘이 그랬다. 부모의 이혼이 계기였고, 십대의 나이, 주급 74달러 11센트의 주급이 쥐어진 순간부터 그녀, 어른이 됐다. ‘나를 책임지는 사람은 나 말고 또 누가 있는가.’ 그녀를 지켜줄 혹은 옭아맬 신념이 아로새겨졌다. “내가 몸소 벌어서 살아간다면, 나는 내 맘대로 살 거야.”(p.71)

 

열세 살, 초보 요리사가 된 그녀, 공장노동이나 다름없는 케이터링 업체의 요리기계를 거치고, 작가의 길로 잠시 들어섰다가 우연찮게 오너 셰프로 레스토랑을 꾸려간다. 지지고 볶고 고달프게 버텨나가는 그 전쟁 같은 요리사 생활 가운데서도 그녀가 간절하게 원하는 것은 시종일관 가족이다. 스쳐지나갈지라도 따뜻하게 던져진 말 한마디, 남자보다 욕을 잘 하는 그녀지만 그 안에 있는 소녀를 단 한 순간이라도 보듬어줄 수 있는 손길 하나. 그녀는 꽤나 많이 터프하고 와일드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녀를 관통하는 건 소녀다. 가족을 배경으로 둔 소녀. 채워질 수 없는 소녀의 아픔이나 외로움이 그 터프함을 뚫고 나온다.

 

그런 그녀에게 알다는 유사 어머니이자 가족이다. 남편이라는 것을 소유하게 된 그녀가 덩달아 만나게 된 사람, 시월드에서 만난 놀라운 인물. 알다와 그녀는 다른 나라 사람이지만, 알다의 아들이자 개브리엘의 남편을 매개로 하지 않고, ‘요리라는 언어를 매개로 맺어진다. 그것이 인상적이다. 개브리엘은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그녀의 요리는 워낙 단순하고 순식간에 끝나서 조리법을 말하고 자시고 할 건더기도 없을 정도다. 그녀에게서 조리법을 알아내는 것은 교육적이라기보다 시적인 경험이다.”(p.302)

 

레즈비언이었으나 어쩌다 이탈리아 출신 의사이자 박사 남편을 소유하게 된 그녀.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은 결혼생활이지만,(책 곳곳에 그녀는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녀는 진정 멘탈갑이다. 괴롭고 힘들고 슬프고 외롭고 지치지만, 그녀는 그것을 이야기함으로써 견뎌낸다. 부모와의 불화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오해를 털어내는 장면, 오빠의 죽음, 남편과의 심난한 결혼생활. 요리 덕분에 견딘 것도 같지만, 일찍 어른이 된 그녀의 멘탈은 충분히 단련이 된 듯하다. 죽음(자살) 대신 또 다른 죽음이라며 실종을 선택하고 여행을 떠난 나이가 열아홉이었다. 그 이후로도 그녀는 세계와 긴장을 놓지 않으면서 삶이라는 치명적인 질병을 견뎌냈다.

 

개브리엘의 이야기를 통해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이자크 디네센의 말을 자연스레 떠올린 이유다.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 7월의 이탈리아 휴가길, 이젠 더 이상 시월드와 관계를 맺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예감 앞에 그녀는 시월드 별장의 가지를 치고 바다를 바라본다. 시어머니 알다와 함께. 그 장면, 시적이다. 이후 그녀의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으나, 불안하지 않다. 다만, 가족. 그토록 갈망하던 가족이라는 배후. 7월의 이탈리아 3주 여행. 그녀는 지금도 시월드를 방문하면서 알다와 요리를 하고 바다를 바라보고 있을까. 살짝 궁금하다.

 

올리브나무로 둘러싸인 저녁 식탁에 모여 앉아 있는 이탈리아 대가족의 그림은 정말 매력적이고 유혹적이다. 그러나 그건 내 가족이 아니고, 나는 그들의 가족이 아니다. 아무리 많이 아들을 낳아주고, 저녁을 차려주고, 낙엽을 치워주고, 정원을 가꿔주고, 비행기 요금을 대주어도 그것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p.511)

 

(책만 보고 단정해버렸지만) 개브리엘 같은 이 멋진 여자사람을 만난다면, 나는 그녀만을 위해 요리를 해주는 남자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미켈레(개브리엘의 남편) 같은 남자는 아니고 싶다. 슬픔 품은 이토록 매력적인 여자를 외롭게 만들다니. . 개브리엘이 완벽한 식당의 본보기로 여긴다는 그리스 키클라데스 제도의 작은 섬 세리포스의 작은 식당으로 데리고 가야지. 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잡고, 그물로 무엇을 얼마나 잡든 그것이 저녁 요리로 나오는. 오후 8시에라도 물고기가 떨어지면 그걸로 요리는 끝인 식당. 손님이 양고기를 원하면 양념만 해서 아무런 야채도 없이 달랑 양고기만 내주고, 콩과 감자를 원하면 따로 주문해야 하는. 그곳에.

 

대부분 사람은 그렇다. ‘일이 잘 안 풀리는 날은 많고, 조화로운 날은 좀처럼 없다. 누구나 기대에 못 미치는 일이 생기고, 누구나 상처를 받고그래도, 개브리엘에게도 그렇고, 우리에겐 그렇다. 요리가 있다. 2013년 신년 첫 책 덕분에, 나는 실컷 웃고 뭉클했으며 찔끔했다. 요리도 잘하고(먹어보진 못하였으나), 글도 잘 쓰는 이 사람. 부럽다. 나는 커피라도 잘 내렸으면 좋겠다. 오직 한 사람에게만. 내 커피는, 내 요리는, 오직 당신만을 위한 것이다. 9, 문을 열고 들어오시라. 당신만을 위한 만찬의 시간이다. 개브리엘, 라 브라바(La Brava).

 

요리는 나로 하여금 이 땅에 발붙이고 살게 하는 것이고, 내게 기쁨을 안겨주는 것이다.”(p.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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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공유경제를 만나다] 첫 번째 시간 : 양석원(이장) 코업 대표 (1월10일)


솔직히 말해보자. 한국은 망해가고 있다. 무슨 말인가 할 텐데, 그 징조만 나열해도 끝이 없을 테니, 뭉뚱그리자. ‘OO발 경제위기’는 일상이 됐다. 위기의 일상화, 더 이상 위기가 아니라는 얘기다. 비정상이 정상을 대신한다. 사람들, 더 이상 ‘위기’라는 말에 놀라지 않는다. 면역이 됐다. 걱정하는 척은 한다. 그러나 이면, ‘나는 아니겠지’라는 마음이 똬리를 틀고 있다.

 

중산층 붕괴, 하우스푸어 등 푸어족의 만연, 자영업자의 몰락 등 언론을 연일 장식하는 기사들, 이젠 놀랍지도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자살률 1위 자리, 공고하다. 한국청소년상담소 연구결과에 의하면 자살을 고민하는 고등학생은 2008년 214명에서 2010년 476명으로 배 이상 늘었다.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거나 고통스런 세상에 살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아이를 낳기 싫다고 말하는 사회. 이런 사회에 미래가 있다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나? 이른바 ‘싸가지’가 없어야 할 청년들이 기성세대의 위로와 측은지심을 받아야 하는 건 또 어떻고.

 

멘붕(멘탈붕괴)이 일상용어가 된 지금, 뉴욕타임즈도 대선 이후 한국 젊은 세대의 절망을 다루며, ‘men-boong’이라는 단어를 게재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은 곧 세계가 인정할 ‘멘붕 사회’가 될 것이다. 그토록 바라는 세계화, 이미 도달했다.

 

왜 절망만 늘어놓느냐고? 우리는 절망이라는 명확한 현실 인식에서 시작해야 한다. 근거 없는 낙관과 뼈대 없는 희망의 개소리에 더 이상 혹해선 안 된다. 분명히 하자. 희망은 없다. 고생 끝에 오는 건 낙이 아니라, 병이다. 고통은 그저 고통일 뿐. 거짓 희망이나 미화가 없는 시선이 필요하다. 그것이 삶을 버틸 수 있게 하고 자기 치유(힐링)할 수 있는 기운을 준다. 기득권이 내세우는 창조 혹은 창의니 상상력이니, 그것은 고장 나고 파탄 난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미끼다. ‘창조성을 바탕으로 한 소규모 아이디어 창업’ 따위의 동어반복만 거듭한다. 핵심도 없다.

 

‘창의적 인재 육성’이 어떤 결과를 냈는지도 봐라. 이명박 정부 내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청소년 사망원인 1위였다. 대학은 취업일꾼 양성소로 전락했고, 취업사관학교라는 타이틀을 자랑스럽게 내건다. 정부가 나서 취업률을 대학평가기준으로 삼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일어난다. ‘대학’이라는 이름, 떼야 한다. 그냥 취직학원이며 대기업 예비사원 연수원이면 족하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이야기할 ‘공유경제’가 지금 절망의 세상을 수렁에서 건져낼 구원투수냐? 천만에. 그럼에도, 공유경제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희망을 말하기 위해서가 아닌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와 당신 우리가 세상의 야멸찬 풍파에 휩쓸려 변하지 않기 위함이다.

 

서론이 길었다. 일부 언론이 써대는 ‘공유경제(Sharing Economy) 시대가 왔다’는 수사는 약간의 허풍이 섞였다. 그러나 이 수사, 마냥 허세로만 여길 순 없다. 공유경제에 대한 거듭된 호명은 기존의 것이 준 폐해에 대한 반발이자 다른 새로운 경제 원리, 사회의 흐름이 작동하기 시작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유도시 서울’의 탄생

 

20세기 영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E.M.포스터의 《하워즈 엔드》에 나온 유명한 경구(警句), “오직 연결하라(Only connect)”. 공유경제를 말하기 위해서는 포스터의 이 말부터 새겨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도시, 그리고 서울. 파편화와 개인화를 우리는 도시의 특성으로 오해한다. 그것은 도시의 태생과 도시성을 모르기 때문이다.

 

도시는 애초 공유성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즉, 도시성의 중요한 지점이 공유공간이다.사람과 사람, 사람과 물건, 물건과 물건,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 도시였다. 가령, 뉴욕의 아파트, 아주 좁다. 때문에 밥은 식당에서, 빨래는 빨래방에서, 야구경기는 바에서 해결한다. ‘홈(Home)’이 우리가 아는 집, 가정만 일컫는 것이 아닌 셈이다. 홈이 도시 곳곳에 퍼져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바깥에 있는 지저분함에 대해 서로 지적하고, 규율을 함으로써 도시는 아름다워진다. 우리의 공간은 즉, 나의 공간으로 여기는 공유성이 진짜 도시의 속성이다. 즉, 최소화된 개인 공간. 이것은 역설적으로 도시 전체를 ‘나’와 ‘너’, ‘우리’의 공간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나의 공간은 도시로 확장되며, 자연스레 공유 공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나타난다.

 

물론 지금의 서울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도시로서 근본을 저버린 것이라고나 할까. 예를 들어, 뉴욕에서 브런치를 먹는 행위는 멋이 아닌 이웃과 사귀는 계기다. 공유공간에서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웃이 된다. 그러나 지금 서울의 많은 우리에게 브런치는 과시적이거나 그것이 뉴욕스타일인양 허세로 소비된다. 귤이 태평양을 건너 탱자가 됐다.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는지, 서울시는 지난 9월 20일 ‘공유도시 서울’을 선포했다. 나누고 공동으로 사용하고 같이 소비하며, 자원을 개방해 함께 사용하고 사장되어 있는 자원의 가치와 효율을 높이는 도시를 만들자고 시민들에게 말을 건넸다. 유럽과 미국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공유경제의 흐름을 서울시가 정책 차원에서 받아들이기로 한 셈이다.

 

서울시가 공유에 주목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도시는 원래 ‘공유를 위한 플랫폼’이라는 담론을 통해 △새로운 공유경제 활성화 △아름다운 공유문화 회복 △행정효율 제고 및 예산절약 효과 등을 위함이다. 서울시는 이를 위해 공유촉진 조례 제정과 공유허브 구축 등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공유단체·공유기업 인증 등 공유단체나 기업을 지원하는 한편 공유참여 안내시스템 구축 등 시민참여를 확산할 계획이다. ‘공유’가 도시행정의 중요한 핵심 축으로 자리 잡을 것임을 예고한다고 볼 수 있다. 도시생활 또한 자연스레 연동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것은 삶을 바꾸는 어떤 기제가 될 수 있다.

 

소유보다 공유, 사유보다 공유

 

공유경제 개념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튼 것은 2008년경부터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도래로 고장 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개선의지가 들끓는 시점과도 맞물린다. 재화의 팽창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이 싹텄다. 성장은 한계에 다다랐고, 고용의 불안정성에 따른 위기가 터졌다. 세계 경제가 기운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반성과 성찰의 담론이 나오는 가운데,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한 것을 돌아보게 됐다. 쓰지도 않는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비용면에서도 손해 아닌가? 남은 방과 자동차 등을 공유하는 모델이 나타났고, 다양한 물건과 공간, 정보, 지식 등을 공유하자는 흐름이 확산됐다. 인터넷에 이은 스마트폰의 보급이 공유경제의 흐름을 더욱 가속화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하버드대 법대 로렌스 레식 교수가 2008년 ‘공유경제’라는 단어를 처음 언급했다. “공유경제는 재화를 소유하지 않고 공유, 교환, 임대, 활용하는 협력적 소비다.” ‘대량생산-대량소비’를 동력으로 삼았던 20세기 자본주의 경제가 한계에 다다랐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공유경제라는 언어의 형성은 또한 ‘소유보다 공유, 사유보다 공유’가 또 다른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음을 알려준 시발이기도 했다. 이는 경기침체와도 맞물렸다. 저성장의 시대, 불황을 뚫을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도 부각됐다. 경제활동에 대한 인식을 바꾼 계기였기에 지난해 타임지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10개 아이디어’의 하나로 ‘공유경제를 통한 소비문화’를 꼽았다.

 

지난해(2012년) 10월14일 영국, 세계에서 처음 ‘세계 공유의 날’행사가 열렸다. 공유경제의 미래를 논했고, 서로 연결해야 함을 확인했다. 영국만 해도 공유경제 규모가220억 파운드(약 38조원)에 달할 정도로 커졌다. 올해(2013년) 3월 열릴 산업박람회 세빗(CeBIT) 주제도 공유경제로 정해졌다. 세빗의 주최 ‘도이치메세’는 “공유현상이 기업 성장의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흐름은 전통적인 기업들이 공유경제에 뛰어드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BMW, 폴크스바겐 등 자동차 업체들이 카셰어링 시장에 뛰어들었다. 공유경제를 비즈니스모델(BM)에 적용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집이라고 다르지 않다. 일본에서는 거실과 테라스를 공유하는 셰어하우스가 인기를 끌고 있으며, 한국에도 금호동의 ‘Y-하우스’ 등 ‘함께 더불어 사는 집’을 모토로 한 주거소통법이 재시도 되고 있다. 이른바 ‘공유주택’의 탄생이다. 아울러, 경험과 지식, 기술, 재능 등 무형자산도 공유의 대상이 확산되고 있다.

 

공유경제와 관련,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에어비앤비’는 온라인 민박사이트에서 출발했다.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사태로 위기에 처한 하우스푸어와 저렴한 비용으로 잘 곳을 구하는 여행객을 연결시켜주는 사업이었다. 성장은 눈부셨다. 전 세계 190여 개국에서 하루 100만 명이상이 이용하는 서비스가 됐다. 현재 에어비앤비는 숙박뿐 아니라 차량, 주차, 의류, 도서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카셰어링 서비스업체인 ‘집카’도 공유기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공유경제가 씨앗을 뿌리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낯선 것은 아니다. 이미 이웃과 음식을 나눠먹던 문화가 있었고 TV를 같이 보던 시절이 있었다. 함께 일하고 나누는 두레와 품앗이의 전통 또한 우리의 DNA에 있다. 2010년 양석원 대표가 공유사무실(코워킹 스페이스) ‘코업(CO-UP)’을 열었다. 코업은 공유경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카셰어링 업체인 ‘그린카’나 ‘쏘카’, 아이들 의류나 잡화를 교환할 수 있는 ‘키플’이나 정장공유서비스 ‘열린옷장’, 개인용품을 빌려주는 ‘원더렌드’ 등도 주목받고 있다. 공간을 공유하는 ‘비앤비히어로’ ‘코자자’, 서가공간과 책을 나누는 ‘국민도서관 책꽂이’도 있다.

 

특히, 경험, 지혜, 시간 등 무형의 것을 공유하면서 관계 맺기를 촉진하는 사업들도 있다. 경험과 지혜를 공유하고 관계를 맺는 ‘위즈돔’과 함께 식사를 나누고 대화할 수 있는 ‘집밥’ 등이 그것이다. 엄마가 지닌 육아의 재능을 공유하는 ‘품앗이파워’도 있다. 누구나 여행가이드가 될 수 있는 ‘마이리얼트립’과 사람과 지역을 연결하는 공정여행의 플랫폼인 ‘플레이플래닛’도 있다.

 

한국의 공유경제 전도사 역할을 하는 양석원 코업 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공유경제는‘소유하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모토로 한다. 갖고 있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많다. 공유경제, 어렵지 않다. 보통 ‘소유’하면 집과 자동차를 먼저 떠올리는데, 집을 온라인 플랫폼에 내놓고 공유하는 회사들이 있고, 차를 공동소유하는 사업도 있다. 지금은 자동차를 갖고 있는 것보다 어떤 수단으로 이동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툴 라이브러리(공구 도서관)’도 마찬가지다. 보쉬 전동드릴이 남자들의 로망이긴 하나,(웃음) 이젠 갖고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국내 공유경제 기업현황(2012.9 현재, 서울시 제공)은 다음과 같다.

 

연번

회사/프로젝트명

공유분야

관련 URL

비고

1

그린카

자동차

greencar.co.kr

 

2

키플

아동의류

kiple.net

 

3

BnB Hero

숙박

bnbhero.com

 

4

코자자

숙박

kozaza.com

 

5

북메이트

해외한인민박

vookmate.com

 

6

한인텔

해외한인민박

hanintel.com

 

7

CO-UP

사무실공유

co-up.com

 

8

국민도서관 책꽂이

도서

bookoob.co.kr

 

9

북체인지닷컴

도서

www.bookchange.com

 

10

위즈돔

경험/지혜

wisdo.me

 

11

품앗이 파워

품앗이 육아

pumpa.co.kr/new

 

12

스티커잡

재능품 공유

stickerjob.com

 

13

집밥

소셜다이닝

zipbob.net

 

14

나룸

공간

naroom.co.kr

 

15

열린옷장

면접용정장

thecloset.mizhost.net/

 

16

Wonderlend

개인간 물품 대여

wonderlend.kr

 

17

마이리얼트립

여행/경험

myrealtrip.com

 

18

푸른바이크쉐어링

자전거

purunbike.com

 

19

티클

페이스북 정보공유

tikle.co.kr

 

20

돔서핑

기숙사

facebook.com/dormsurfing

시범

서비스 중

21

쉐어마이

아동의류

sharemy.co.kr/

22

(womb)

시간/재능

wombtime.org

23

와우텐

재능

wow10.com/

서비스

준비 중

24

let's play planet

공정여행/경험

letsplayplanet.com

25

컬투어

여행/경험

cusoon.kr/cultour


서울, 공유경제를 만나다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말이 있다. 공공자원을 구성원 자율에 맡길 경우 자원이 고갈될 위험에 처할 수 있음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개인과 공공의 이익이 상충될 때, 개인이 사리사욕을 취하고자 하면 경제 주체 모두 혹은 공동체 전체가 파국에 이를 상황이나 위험에 처하면 이 말을 쓴다. 민영화라는 이름의 사유화를 조장하기 위해 흔히 인용하는 이론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유경제는 그것이 모든 게 아님을 알려준다. ‘공유지의 비극’의 허구성을 까발리는 것이 공유경제이다. 빌려주고 공유할 때 관리도 되고, 가치가 창출될 수 있음을 공유경제는 증명한다.

 

공유경제는 필히 관계를 동반한다. 마을공동체 등에서 재화부터 지혜, 일 등을 공유하면서 자연스레 ‘관계맺음’을 하는 것처럼, 공유경제를 ‘경제’라는 협소한 범주에서 바라보거나 해석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지금 사람들의 의식과 인식을 바꾸거나 변화시키는 삶의 태도라고도 볼 수 있다. 공유경제는 곧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인류 문명의 발생 이후 인간이 믿어온 신은 늘 변화해왔다. 신은 인간본성에 대한 정의를 표상해왔다. 즉, 인간이 이렇게 돼야한다거나 되고 싶은 믿음의 산물이었다. 구석기 시대에는 이것이 벽화로 드러났었고, 신석기 시대, 사람을 닮은 신이 등장했다. 청동기 시대, 동물과 인간이 합쳐졌다. 스핑크스가 대표적인데, 동물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철기시대 들어서, 동물에서 벗어난 인간 자체의 모습을 신으로 상상했고, 그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여겼다.

 

인류는 그렇게 다양한 신을 거쳤다. 지금의 신은 ‘지름신’이다. ‘소유하라, 그러면 행복할 것이다’라는 지름신이 20세기부터 본격 강림했다. 소유를 가치로 등가교환 하는 인식이 뿌리를 내렸기에 불필요한 소비가 확산됐다. 그러나 인간은 뒤늦게 그 신이 세상을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음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인간 본성보다 탐욕을 자극했음을 깨달았다.

 

공유경제, 아직은 미미하지만, 그러한 흐름의 궤에 중요한 지점을 차지하고 있는 시대정신이다. 단순히 ‘경제’로만 바라보고 해석할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그동안 파국으로 치달았던 관계를 복구하려는 ‘회복탄력성’이며, ‘소비의 과잉’ ‘소유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사람은 무엇을 하였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았는가로 평가받는다”는 오시다 시로시의 시구를 변용하자면, “사람은 무엇을 소유하였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소유하지 않고 공유하였는가로 평가받는다.”

 

사람이 땅에 남긴 무늬를 ‘터무니’라고 한다. 공유경제는 ‘터무니 있는’ 사회를 위한 발걸음이다. 인류 문명은 터에 무늬를 새기는 일로부터 시작했고, ‘터무니없다’는 말은 근거 없다, 허황하다의 뜻이다. 사람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존재이기에 이런 말이 생겼는데, 공간, 물건, 협업, 의식, 경험, 지혜 등의 공유는 곧 터에 무늬를 새기는 일인 것이다.

 

 

 

2013년 1월 10일부터 서울시가 주최하고 위즈돔과 코업이 주관하는 ‘서울, 공유경제를 만나다’는 이런 방향에서 비롯된다. 공유함으로써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는다. ‘공유도시 서울’을 함께 만들어가자는 ‘손 내밈’이면서 한국의 공유경제 모델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참가자들은 공유경제 모델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4월25일까지 매주 목요일 저녁 7시30분부터 9시30분까지 서울시 신청사 3층 회의실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가해서 ‘뇌주름’을 함께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서로에게 번지고 스며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자발적 참여가 공유경제, 공유도시를 만든다. (☞ 신청 : 서울, 공유경제를 만나다 http://wisdo.me/863)

 

박원순 서울시장은 말했다. “공유경제가 얼마나 빨리 안착하느냐의 관건은 공유자원의 정보를 집적하는 시스템과 시민의 동참이다.” 1월10일 목요일 첫 시간, 공유사무실을 통해 공유경제 기업들의 협업과 대중적 확산을 꾀하고 있는 코업의 양석원 대표를 만난다.

 

상상해보자. 자신이 소유했으나 사용하지 않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서 생명을 얻고 날개를 다는 순간. 혹은 내 것이 우리의 것으로 변모하는 순간. 그것은 번짐이며, 우리는 연결해야 살고, 번져야 산다. 나는 네게로 번지고, 너는 내게로 번진다.

 

장석남의 ‘번짐’을 이 겨울의 詩로 권한다.

 

水墨정원 9 - 번짐 (장석남)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또 한번 - 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산기슭의 오두막 한 채 번져서
봄 나비 한 마리 날아온다

 

(☞ 신청 : 서울, 공유경제를 만나다 http://wisdo.me/863)

 

by. 커피향 공유하는 남자, 김이준수
밤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가 있는, 당신과 나의 공간을 꿈꾼다.
커피 한 잔으로 우리는 세계를 사유하고, 세계를 공유한다.
그 알싸하고 향긋하며 좋은 커피향, 나만 맡을 수 없어 당신과 함께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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