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샹니(我想你, 보고 싶어)

- <호우시절> 동하 (정우성)가 메이(고원원)에게 보낸 편지에서 -

 

어제(4월20일) 봄비.


봄비 냄새를 맡아본 사람은 알 거야. (꼭 귀도 함께 열어야 하느니!) 

코에 쏙쏙 박혀서, 알알이 혈관을 타고 내려가 심장부근에서 터지고야 마는 봄비 내음.


참으로 알싸했어.  

쌀랑한 봄기운과 따스한 봄온기가 공생하는 공기의 촉감. 


전날(4월19일)의 커피가 데워준 온기가 잔향을 남겼기 때문일까. 

서교동 수운잡방과 용답동 '마당'(청소년 휴카페 예정)을 오간 피로는 봄비에 씻겼다. 싱긋. :)


4월19일, 

53년이 된 '4.19혁명'으로 불리는(그날 용답동 술자리에서 누군가는 이를 강력하게 부정했지만. 그의 군대 이력과 꽐라 정도를 생각해서, 그냥 흘렸다.) 날에, 


 

그날과 함께 나는 커피를 볶고 내리면서, 다윈을 생각했어. 


남을 할퀴고 짓밟는 경쟁에 중독된 사람들, 다윈의 '적자생존'을 자기식대로 끌어들여 그것을 정당화하고자 여전히 애쓰고 있지.

《종의 기원》에 대한 치명적 오해.


다윈의 진화론은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에 이용당했고,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이긴 자의 유전자만 진화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양 오도됐어.


허나, 다윈이 말하고자 한 바는 그것이 아녔어라구!

인간의 유래에서 그는 이리 말했어. "뿌리 깊은 육체적 본능이 아니라 높은 수준의 윤리적 기준이 인간 진보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다윈에게 인간의 자연선택은 완력이나 권력이 아닌, 종족이나 집단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사유하는 마음 혹은 지혜의 크기에 달려 있는 것이었지. 남을 위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이들이 개인의 유전자를 희생함으로써 부족 전체의 성공을 이끈다는 것이 다윈의 생각이었어.   


 

그런 다윈을 떠올리며 볶고 내린 커피는, 에콰도르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자란 커피. 

다윈의 131주기(1882. 4. 19)를 맞아, 다윈이 진화론의 아이디어를 얻고, 《종의 기원》을 낳게 한 곳.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커피가 재배되는 곳은, 산 크리스토발(San Cristobal)섬으로, 고도 800m 이상에서는 짙은 안개에 둘러싸여, 커피가 안개의 도움을 받아 잘 익어갈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어.

다른 식물군도 풍부하며, 특히 중앙에 솟아 있는 화산입구에서는 자연 용수가 흘러나와 호수를 형성하고 있다지. 이 호수는 섬 전체에 물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말이야. 


이곳의 커피 재배는, 

1875년 Don Manuel Jcobos가 버번종 종자를 들여와 심은 것이 시작이었어. 

수확시기는 11월에서 1월 사이인데,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커피는 아니야.  


 

 


 

꼭 이것이 아니라도, 이런 날엔 라틴아메리카의 것이 최고.

체 게바라가, 혁명이 으스러졌던 볼리비아의 슬픔을 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고.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어떤 생각. 세계를 사유하는 어떤 방법. 이것, 에릭 홉스봄의 것. 


"생물학자 다윈처럼 역사가인 나도 라틴아메리카를 방문한 이후 이 지역에 대한 생각뿐 아니라 세계 전체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라틴아메리카 대륙은 늘 역사 변화의 실험실이었다. 그곳에선 늘 짐작과는 다른 일이 벌어져 우리가 진리라고 믿고 있는 대부분의 통념을 밑동부터 흔들었다."       

        -《미완의 시대》(에릭 홉스봄) 중에서 -

  

문득, 그 커피, 최재천 교수님과 함께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 

다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말이지. 



그렇게 지낸 다음날 흐른 봄비 속에 '장애인의 날'. 

시내를 관통하면서 만났던 장애인들의 평화적인 행진. 

버스 내 뒷자리에 앉은 한 꼰대는 그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왜 그렇게 하는지 알려고도 않은 채, 온갖 경멸 섞인 쌍욕을 해대더라. 대한민국의 잘난 애국자 나셨도다! 혼자 생각해도 그만일 것을, 줄곧 십여 분을 다른 사람 다 들리게끔 꽁알꽁알. 


그의 초라한 자아가 버스 안에서 서성였어. 

타인에 대한 경멸을 입밖으로 내뱉으면서 초라한 자아를 드러내고, 남을 낮춰야만 간신히 자신을 높일 수 있다는 결핍으로 얼룩진 모습을 버스 안 모든 사람들에게 내보이면서. 저이의 지질한 자아가 울고 있는 듯 보였어. 어떤 슬픔. 



그리고 봄비온 뒤 다음날. 

봄하늘은 맑았고, <호우시절>이 생각났었는데  말야.

와우 놀라운 건, 그런 날 채널을 돌리다가 만난 <호우시절>.



아, 그녀의 자전거가 다시 내 가슴속으로 들어오더라.  


나는 봄비 이후의 커피를 내렸어.  

그 커피 이름은 호우시절. 


메이(고원원)의 말이 그 커피의 향을 더욱 짙게 만드네. 


"동하, 꽃이 펴서 봄이 오는 걸까, 봄이 오니 꽃이 피는 걸까?"


나도 궁금해졌어. 봄비가 와서 좋은 걸까, 좋아서 봄비가 온 걸까?

좋은 비는 시절을 알고 내리는 법인가 봐. 


이 커피에 그리움을 담아, 워샹니...     


 

 

 


春夜喜雨(봄날 밤에 기쁜 비) 

                              - 두보 -


好 雨 知 時 節

當 春 乃 發 生

隨 風 潛 入 夜

潤 物 細 無 聲

野 徑 雲 俱 黑

江 船 火 燭 明

曉 看 紅 濕 處

花 重 錦 官 城


즐거운 비가 그 내릴 때를 알아

봄이 되면 내려 생을 피우는구나

바람 따라 밤에 살며시 내리니

세상을 소리 없이 촉촉하게 적시네

들길은 낮게 드리운 구름으로 어둡고

강 위에 배 불빛만 외로이 비치네

새벽녁 붉게 비가 적신 곳을 바라보면

금관성에 꽃들도 활짝 피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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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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