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의) '매혹'은, 치명적이다.
빠지면, 도리가 없다. 있는 것, 없는 것, 줄 것, 안 줄 것, 그런 것, 가릴 게재가 없다. '진짜 매혹'을 만나면, 어쩔 수 없이, 벌거숭이가 돼야 한다. '남의 마음을 사로잡아 호림'이라는 '매혹'의 정의를 따르자면, 매혹은 곧, 권력과도 통한다. 사로잡는 자와 사로잡히는 자의 관계는,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의 관계와 다를 바 없다. 매혹은 그렇다. 마음을 사로잡혔는데, 어찌하란 말이냐. 어쩌면, 마음은 감옥으로 향한다. 이른바, '마음의 감옥'. 매혹은, 그렇게 우리를 옥죈다. 매혹을 뿜는 자, 세계를 가질지니. 매혹을 당한 자, 무릎을 꿇어야 하나니. 경배하고, 추앙하라. 매혹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매혹이, 때론 나를 지탱한다.
나는, '매혹'을 원한다. 매혹 없는 생은, 많이 끔찍하다. 마음이 사로잡히는 것, 하나 없다면 그것은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쭈그렁한가. 그 무엇이건, 매혹은, 전 생을 걸쳐 꾸준하게 있어줘야겠다. 그건 감성 노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무릇 신산한 생을 지탱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나에게 오라, 팜므파탈. 제발 와줘, 팜므파탈.^^; 나는, 그러면서도, 걷잡을 수 없는 '매혹'이 덤비면 어찌하나, 노심초사하는 왕소심한 마초다. 그렇기에, 나의 매혹은, 얼쭈 '스크린'에서 이뤄진다. 알다시피, 스크린 속의 '매혹'은 어떤 치명상이나 내상을 부여하지 않는다. 즉, 안전하다. 소심한 작자는, 스크린을 통해 뇌살을 당하고, 매혹에 한없이 빠져든다. 매혹신의 강령.
탕웨이, 나의 새로운 매혹, 하악~
나의 스크린 속, 첫 번째 매혹은, 우리 (장)만옥 누님이었다. 좋아하는, 아름다운 배우들은 차고 넘쳤지만, 나는, <화양연화>를 보면서, 허거거걱...꺼윽꺼윽... 만옥 누님은, 매혹 그 자체였다. 무엇으로 그 아름다움과 뇌쇄를 설명할 것이오. 그 쪽진 머리와 실루엣은, 나를 매혹으로 물들여놨다. 뱀처럼 내 마음을 휘감는, 늪으로 내 마음을 유도하는, 그럼에도 절대 거부할 수 없는, 매혹. 또 다른 매혹은, 스칼렛 요한슨. 나는, 그 입술을 보면, 그것에 풍덩 빠지고 싶다. 그리고 약간 물 건너 지나갔지만, 나카야마 미호. 그런데, 얼마전, 그 유명한 <색, 계>(色,戒, 2007)를 보고, '포스트 장만옥'으로 덜컥, '탕웨이'를 임명하고 말았다. 만옥 누님이 아직 정정하심에도, 나는 탕웨이의 뱀같은 유혹에 넘어갔다. 아흑. 넘어간다~는 말도 안하고 그냥 넘어가더라, 털썩. 바야흐로, 탕웨이가 내게로 왔다. 넘어가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이런, 이 미친 놈의 매혹!
아아, 탕웨이.
코는 낮고, 입술은 작았으며, 젓살까지 찰랑. 얼굴은 또 어찌나 작던지. 나도 모르겠다. 이건, 평소 내가 넘어가던 매혹의 '조건'이 아니다. 어찌 이런 일이. 허나, 따지고 보자. 매혹에, 조건이 있을 수가 있나. 이러이러하니, 난 매혹당하련다, 이런 건 없다. 마음을 사로잡는 건, 순간이다. 어떤 순간이 확, 마음을 낚아채는 것이다. 나는, 낚였다. 탕웨이에. 숨도 쉬지 못할만큼의 격렬한, 그 쎅스 씬이 아니었다(나는, <색, 계>의 그 유명한 쎅스 씬들보다, 이대장(양조위)와 막부인(탕웨이)가 처음 나눴던, 전화통화 씬이 더욱 섹시하고, 관능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쎅스 씬은 너무 슬퍼서.ㅠ.ㅠ 그 형형한 눈빛, 내 마음을 불을 지른 탕웨이의 눈빛.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그의 몸짓에 나는, 홀딱 넘어간건가. 포스트 장만옥, 탕웨이. 다음 작품을 보고선, 앞의 수식어를 탈착여부를 결정하겠지만, 기냥 이참에, 선언할까보다. "나는, '탕닥후'(탕웨이 오타쿠)~" 탕웨이는, 마음을 사로잡은 눈부신 색, 그리고 천상과 지상을 오가는 계. 스물 여덟, 이제 막 농익기 시작한 여신. 하악.
나를, 매혹시키는 또 다른 것.
물론 나도 이 영화, 지나친 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나 여성을 탈색시킬만큼 과도하게 감상을 덕지덕지 발라놨다. 지나치게 감상적인 신파극 맞긴한데, 매혹에 빠진 내가 제대로 그런 것이 보였겠어.^^; 뭐, <색, 계>는 많은 컨텍스트도 품고 있지만, 여기서 그런 것은 언급않고. 그저 매혹, 그 하나에만. 하악. <색, 계>를 보면서 2년 전 부산영화제에서 만났던, 관금붕 감독의 영화, <장한가>를 떠올렸다. 당시 나는, <장한가>에 '매혹'됐었다. 개거품을 물었다,면 거짓말이고, 그해 나의 최고의 영화로 꼽았을 정도니까. 당나라 백거이의 장편 서사시 제목인 <장한가>에서 정수문이 분한 '왕치아오'에 나는, 뻑갔다. 그 일생도 일생이지만, 40년대 상하이의 풍경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러고보니, <색, 계>도 40년대 상하이. 나는, 어쩌면 40년대에 약간은 매혹됐는지도 모르겠다. 경성의 40년대 또한 나를 사로잡곤 했으니까. 상하이와 경성의 고혹적인 풍경이, 이들 주인공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내겐, 어떤 매혹의 요소가 됐을 수도 있겠다. 이보다 약간 앞선, <완령옥>(그러고보니, 만옥누님이 완령옥 역할을 했었다!)도 그렇고.
아, 매혹이여, 절정이여~
<색, 계>에서 탕웨이는 말한다. "뭘로 사로잡아요? 내 몸으로? 당신은 그를 몰라요. 연기라면 그가 몇 수 위죠. 날 안을 때마다 그는 마치 뱀처럼 내 안으로 파고들어요. 난 노예처럼 그를 받아들이고 충실히 내 역할을 다해 그의 맘을 얻어내죠. 내가 피를 흘리고 고통의 비명을 질러야만 그제서야 절정에 올라요. 그는 내 반응이 가짜가 아니란 걸 알죠. 이러다 사로잡히는 건 내가 되고 말 거예요!" 어흑, 내가 치고싶은 대사였다. 탕웨이는, 얼마나 많은 이들을 매혹시킬 것인가. 한편으로, <색, 계>가 혹시 탕웨이의 절정은 아닐까, 화양연화가 아닐까, 때이른 걱정도 한다. 별걸 다 걱정하는군. 쯧. 탕웨이는, 이제 시작인 것을. ☞ [탕웨이] 말로 할수 없는 것을 연기하다
아 어쩌면, 나는 당신이, 빠져든다... 나, 빠져나오기 싫어....
그리고, 알고보면 더 재밌는, <색, 계>의 실제 사건. ☞ 영화 '색, 계'의 실제 모델 띵무춘과 쩡핀루
뱀발. <색, 계>. 다시 보고 싶지만, 탕웨이 아닌 다른 것을 볼 수 있을까. 저리도 슬픈 섹스는, 대체 마음이 어떤 시츄에이션일 때 가능한거야. <색, 계>의 양조위에 대한, 이야기는 불필요하겠지만, 마지막 장면은 정말 침대가, 우는 것 같았다. 막부인(혹은 왕치아즈)이 총살 당하던 그날, 이(양조위)가 막부인의 빈 침대에 앉아 글썽이던 눈물. 이가 일어난 뒤 보여지는 구겨진 침대시트. 그리고 그것을 뒤돌아보는 이의 그림자. 흑. 어찌, 침대 하나로 이렇게 사람을 울리오. 징하다, 이안. 가만보니, 그 침대. 알고보니, 침대는 과학도 아니었소. 침대는 눈물이더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