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국가의 발견과 제국의 형이상학
강신주 지음 / 태학사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미 장자에 대해 쓴 책들을 읽으며 강신주씨의 생각에 동의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책도 집어들고서 읽었는데 읽는내내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관념들이 앞을 막는 것이다. '노자는 자연주의 철학자, 인위를 배격하고 자연스런 도를 체득하길 바랬다'라는 관념들이 이건 아니지 않을까 했던 것이다. 그러고보면 우리가 책을 읽을 때 기존에 가지고 있던 관념들이 하나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책은 다 읽고나서도 왠지 기분이 좋기 보다 '이건 아닌데....'라는 강력함 의구심에 찝찝하기도 하니깐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책을 읽으면 책을 그 내용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한 구절에 대한 의구심으로 전체의 내용을 왜곡하게 되곤 한다. 바로 이런 문제점을 장자에게 실컷 이야기 했었는데도, 여전히 고치지 못하고 헤매이고 있는 셈이다. 아직도 수양이 덜 된 탓인 게지.

  이 책에서 묘사된 노자는 결코 자연주의 철학자가 아니다. 그리고 언어의 명징함, 언어의 사회적 관계에 대해서 회의 했던 철학자도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노자는 무어란 말인가? 이런 회의가 들 때 이 책은 유쾌한 빛을 발한다. '회의에 빠질 수 있는 자, 끝없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자 그대야 말로 살아있는 사람일지니~ 그 회의와 의심을 쉬지 말지라!' 라는 말처럼, 회의와 의심은 그 순간 불쾌한 것일진 몰라도, 그걸 넘어서고나면 더 유쾌해질 수 있다. 불쾌한 감정은 지금까지의 나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느끼게 됨으로 느껴지는 감정이다. 하지만 유쾌한 감정은 그런 불쾌함이 완전히 해소되고 더 큰 사고를 할 수 있게 된 데에서 느껴지는 감정인 것이다. 불쾌한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인가, 아니면 유쾌함에 이르도록 더욱 치밀하게 생각하며 의심해볼 것인가?

  '우리 시대의 철학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민주주의라는 이념이 실현되어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환각을 벗어나게 해서 우리의 사회를 진정한 민주주의로 이끌기 위한 이론적인 전망을 주는 것이어야만 하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우리 사회에 철학이 있다면, 그것은 자본주의를 혹은 민주주의를 호도하는 허구적인 담론들과 싸우면서 인간을 주인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담론을 생산해내는 것일 것이다. 반복하자면 국가와 자본을 생각하지 않는 철학은 철학일 수도 없다. (122p)'

  강신주씨의 철학에 관한 담론이다. 철학은 결코 현실을 벗어난 허구적인 언어 게임이 아니다. 바로 현실을 직시하고 그 안에서 인간의 가치를 바로 잡고자 하는 노력이며 열정인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깊게 생각한 것도 '철학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살찌울 수 있는가?'하는 거였다. 바로 그런 문제제기가 있었기 때문에 노자의 사상을 바로 보고자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노자는 결코 민중의 삶을 지지하지도, 자연을 긍정하지도 않았다. 그는 지배 계급을 편들었으며 나라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적당히 베풀어야 할 것을 주장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노자의 책을 '민중의 책, 자연의 책'이라 잘못 알고 읽고 있으니, 우리의 의식 깊은 곳에 어떤 생각이 박히게 될지 안 보아도 뻔하다. 바로 '지배 계급에 대한 묵인' '그들의 이권 수호를 위해 우리가 조금 희생하는 건 당연하다는 논리' 일 것이다. 알게 모르게 읽으면서 당연시 하는 것들이 이렇듯 무섭게 우리의 삶을 옥죈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알고 그 안에서 노자가 풀어냈던 국가의 모습을 파헤쳐봐야 한다. 바로 이 책에선 그게 주안점이고 그 담론을 통해 누군가에 의해 살게 되어지는 '매체'로서의 삶을 벗어나 스스로 사는 '주체'로서의 삶을 살아갈 것을 말해주고 있다.

  "사랑이라는 만남의 영향 아래 내가 그 만남에 실질적으로 충실하고자 한다면, 이 상황에 '거주하는' 나 자신의 방식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바꾸어야 한다는 사실은 명백하다.(188p)"

  주체로서 산다는 것은 바로 현실의 삶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식견을 가진다는 말이며, 그 안에서 나의 능동성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낸다는 것이다. 노자라는 책에선 현실에 순응할 것과 수동적인 인간형이 될 것, 그리고 지배자는 주종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잘 배풀어서 더많이 수탈할 수 있는 현실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바로 그런 주장 자체가 지극히 잘못된 것이라면 그 안에서 비판의 논리를 날카롭게 세우고 어떻게 현실을 바꾸어 나가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다. 사랑이 하나의 집착으로, 구속으로 변질되지 않기 위해서는 주체들간의 능동적인 변이가 필요하듯이 말이다.

  이 책을 통해 노자의 진면목을 다시 한번 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의 말을 기본 삼아 다시 한번 노자라는 텍스트를 읽어봐야 할 것이다. 이 책은 노자라는 책을 형해화하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면서도 날카롭게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집어주고 있다. 철학이 결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그런 식으로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노자란 책을 읽어봤던 사람일지라도 이 책을 읽으면 전혀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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