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출셋길, 장원급제 - 영광과 좌절이 교차한 공부 귀재들의 과거 시험과 출세 이야기
정구선 지음 / 팬덤북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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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고시,외무고시,행정고시 그리고 각종 고시라는 타이틀속에 지금 이 시각에도 신림동을 비롯한 대학가 주변에서 전용면적 10㎡미만의 고시원에서 불철주야 책속에 파묻혀 사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럼 왜 많은 시간적, 금전적 투자를 감행하면서 확률적으로 극히 낮은 게임에 도전하는 것일까? 그 해답은 뻔하지 않을까 싶다. 고시합격이라는 OUT-PUT이 가져다 주는 다양한 메리트가 기회비용을 상쇄하고도 남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고위직 공직생활의 기본전제이고 세상사람들이 다 인정하는 고시합격은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속에서 어쩌면 유일하게 신분상승의 공식적인 창구로서의 역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지 않겠는가? 물론 이러한 빗나간 생각에 반기를 드는 이들도 수 없이 많겠지만 굳이 이러한 반론에 대해 세부적으로 나열치 않더라도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소위 출셋길의 탄탄대로가 보장되는 고시가 근대화의 산물이었을까?  

해답은 이미 고려시대 광종때 부터 자리잡기 시작한 과거제도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틀린말은 아닐 것이다. 과거와 고시의 차이점은 아마도 근대적 패러다임의 영향으로 인해 응시자격의 정확하게 신분의 차별만 있을 뿐 나머지 부분은 대동소이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로 지금 고시의 역사적 연원의 뿌리는 아주 깊은 내력을 가지고 있는 사회문화적 유산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러면에서 이번 <조선의 출셋길 장원급제>는 과거제도 특히 조선시대의 과거제도을 통해서 바라본 일종의 문화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지방에서 치루어지는 향시부터 시작해서 군주앞의 최종시험인 전시까지 조선의 과거는 지금의 고시와 비교하면 게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보다 힘든 여정이었다. 그래서 과거급제는 개인의 출셋길을 넘어서 대대로 가문의 영광으로 인식되었고 왠만한 양반가에서는 과거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 생활 양식이 바뀔 정도였다. 개국의 이념이자 정권유지의 정신적 어젠더였던 성리학을 표방하는 조선에서도 과거의 급제를 위해선 민간신앙의 구복이나 이단시 되었던 불교의 귀의등 그 어떠한 수단을 가리지 않았을 정도로 과거급제는 일생일대의 목표일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과거에 급제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난제를 극복해야 하는데 하물며 과거급제의 꽃이라 불리우는 장원급제는 그야말로 장미빛 인생이라는 달콤한 미래가 보장되어 있었기에 과거를 준비하는 모든 이들의 최종목표였다. 그리고 장원급제를 위한 개인, 집안마다의 독특한 교수법까지 등장하게 된다. 오죽했으면 태조 이성계는 아들 방원을 과거에 급제시키기 위해 물신양명으로 노력을 했고 결국 태종은 조선시대 국왕중 유일하게 과거에 급제한 왕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된다. 임금이 이러한데 하물며 일반 사대부들은 말을 해서 뭐하겠는가... 

조선에서 과거는 국시인 성리학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그리고 관리로서의 기본적인 소양은 물론이거니와 개개인의 인격적인 판단까지 아울러 제단했던 제도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고시는 그저 성적의 상하로 합격기준이 나뉘어 지지만 과거제도는 성적뿐 아니라 다방면에서 인재를 선택할 수 있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출신자들의 고위직 진출이 월등히 많았으며 이들이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 동량이었던 것이다. 이런면에서 보면 과거라는 제도는 조선이 500년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인적시스템의 최상에 위치한 보기드문 제도였다. 하지만 물이 고이면 썩는다고 이러한 과거에도 많은 문제점들이 대두되면서 과거제도는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특히 조선후기로 접어들면서 인사적체가 만연되고 일부 가문의 세도 및 특정 당파의 독점으로 인해 순수한 과거선발제도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과거제도가 갖는 의미는 조선시대 그 어떠한 제도보다 많은 면에서 사회문화적으로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지금과 비교하면 당시 과거는 엘리트라고 지칭하는 사대부로서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는 점에서 더욱더 사회전반에 미치는 여파가 컸다는 것이다. 현대처럼 직업의 다양성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조선시대 과거는 사대부로서 도가 아니면 모라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게임이었던 것이다.  

시험이라는 제도는 아무리 철저하게 관리감독을 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다 보면 부패가 하나둘씩 생겨나기 마련이다. 조선시대 과거에서 부정을 하면 그에 대한 댓가는 참혹했다. 적어도 법규정에 의하면 과거라는 대안없이 사회에 진출할 기회가 전무한 사대부들에게 과거의 부정은 위험한 거래였다. 하지만 이러한 위험을 무릅쓰고도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서 좀더 과거시험을 잘 보려고한 사례들이 무수히 많고 이러한 부정들로 인해 조정은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대리시험이든지 답안지 맞바꾸기에서 부터 기상천외한 방법들이 동원되었고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과거급해한 인물들이 속속 출현하기도 했다. 또한 과거급제를 하고 관직에 나가서도 처음 예상처럼 장미빛 인생만이 펼쳐진 것은 아니다. 정치적 선택, 가문의 힘, 개인의 영달등 여러가지 변수로 인해 급제자들의 인생항로가 순식간에 역전되는 경우가 역사에는 허다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조선시대 과거제도의 허와 실 그리고 과거시험에 새롭게 등장하는 부정 그리고 과거를 통해서 장차 관직생활을 했던 이들의 다양한 삶을 통해서 과거라는 제도가 조선 사대부들에게 미쳤던 영향을 사회문화적으로 접근하여 과거와 사대부들간의 역학관계를 재조명하고 있다. 과거는 비단 서생들만 발탁하는 제도가 아니라 이미 관직생활을 하고 있는 당하관이하의 관리들도 응시할 수 있는 제도였다. 조선은 이러한 제도를 통해서 인재등용의 POOL를 확대했고 이러한 바탕에서 과거제도는 인재산실의 요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후대에 기상천외한 부정적인 방법들이 동원되어 그 의미를 퇴색시켰으나 결과론적으로 과거제도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이끌어가는 근간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또한 과거급제를 위해 온갖방법을 동원하는 그들의 모습과 급제 이후 삶을 통해서 과거의 정책적인 차원이 아닌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면을 볼 수 있는 유익한 담론들이 한편으로 역사에 재미있게 다가가는 방편이라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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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대폭발의 비밀 - 한국 고대사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서
소원주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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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애국가 첫 소절에 나오는 말이다. 백두산이 우리 한민족에게 있어 그 차지하는 위상이 어떠한지를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또한 백두산이라는 존재가 갖고 있는  의미는 한민족의 역사와 더불어 대외적으로 포장되어 있는 현학적 의미 이상의 그 무엇이 존재하고 있다. 靈山으로서 민족의 정체성을 내포하고 있는 메타포로서의 위상은 그 높이 만큼이나 한민족의 정신속에 각인되어 있다. 여기서 한민족이라하면 지협적인 한민족개념이 아닌 고대사를 거슬러 올라가 예,맥,숙신,말갈등이라 통칭 되었던 광범위한 개념으로까지 확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백두산을 바라보고 느끼는 일종의 애착이 이들 지협적인 갈래의 민족정서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토록 민족의 영산이라 숭배하고 있는 백두산에 대해서 정작 알려진 바는 그리 많지 않다. 고작 해발 2750m이니 휴화산으로 정상에 화산의 흔적인 칼데라호인 천지가 있고 구한말 국경분쟁에서 그 한복판에 놓여 있다는 것외에 일반대중에게 그 실체가 알려지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극히 과학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더라도 최근래에 화산활동이 있었던 시기는 1702년으로 간헐적인 활동에 그치고 말았다는 것 뿐이다. 이러한 백두산에 대한 무지는 지금에 와서 휴화산에서 사화산쪽으로 그 이미지가 고착화되고 있고 재해영화에서 보는 화산폭발과 같은 화산활동과는 그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 그럼 과연 백두산은 화산으로서 그 맥을 다한 것일까? 

<백두산 대폭발의 비밀>은 실로 충격적인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저자는 백두산이 과거 10세기경에 화산활동을 했다고 한다. 폼베이의 비극으로 알려진 베수비오화산 폭발과 세인트헬렌스의 화산폭발등 인류가 기록 문화라는 형식을 가지면서 기록되기 시작한 화산폭발중에 엄청한 폭발력과 그이후 재앙과도 같은 피해에 대해서 우리는 많은 부분들을 알고 있고 그로 인한 문명의 후퇴를 목격했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은 그저 남의 나라, 문명의 이야기일 뿐이지 우리에게 그다지 와닿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지진이나 화산하면 이웃나라인 일본에서나 보편화 되어 있지 한반도는 안전지대로 생각했고 그러한 자연재앙이 실제로 없었기(정확히 표현하면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았기에)에 더욱 더 관심밖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바라보고 매일같이 부르는 애국가 속의 백두산은 그저 영묘하고 신령이 깃든 우린 한민족의 메타포일 뿐 다른 어떠한 의미가 부여되질 못했던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일류역사상 가장 강력한 화산폭발 저자는 대폭발(화산폭발의 강도를 일컫는 지표인 VEI 7급)이라고 지칭한다. 이 규모는 폼베이를 역사에서 지워버렸던 배수비오 화산의 50배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폭발로 놀라운 것은 이러한 대규모의 폭발이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짧은 주기를 두고 10세기 초반에 벌어졌다는 것이다. 갑자기 이 무슨소리인가? 그러한 대폭발이 있었다면 분명하게 역사기록에 남아있어야 하지 않는가? 역사책을 이리저리 뒤집어 보면 이러한 기록은 현존하는 한국사와 중국사,일본사를 통틀어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 저자는 그저 시쳇말로 한번쯤 뜨기 위해서 말도 안돼는 논거를 들고 나온 것일까?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이 책이 갖는 의미가 있다고 봐야 한다. <통섭>의 저자인 에드워드 윌슨은 인류가 좀더 합리적인 판단과 문명의 발전을 위해서는 과학을 비롯한 인문학의 통합적인 교류가 있어야 하고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새로운 통합적인 지식이 구축되어야 한다고 역설했고 이러한 측면에서 최근에는 통섭에 대한 학자들의 진지한 자세가 엿보이고 있다. 이러한 통섭의 사고가 그동안 밝혀지지 않거나 그저 매장되어버린 중대한 역사의 한장을 찾을 수 있다면 그 가치만으로 의미있는 것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백두산 대폭발의 비밀>이 갖는 의미는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10세기에 발생했던 백두산의 화산폭발과 한국고대사중에 가장 그 근거와 기록이 전무한 <발해>의 연관고리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발해를 정복한 거란의 <요사>에는 926년에 상경을 함락하면서 발해라는 대제국이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고 명시되어 있고 이를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그 요사를 상세히 살펴보면 왠지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들이 등장한다. 역사학자들은 대게 이럴 경우 동양적인 시각에서 상세한 표현보다는 대의명분적인 표현을 사서의 기록으로 채택하는 경향으로 인해 그 의미가 포괄적으로 기록되어져 있기 마련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왠지 이러한 시각은 자가당착적인 느낌을 지울수 없게 한다. 그럼 반대적인 해석으로 백두산의 화산폭발로 인해 국가라는 기능을 상실한 상태에서 거란이 발해를 침공해서 죽어가는 맹수의 숨통을 끊어놓았다라는 명제는 참일까? 이 역시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못하고 있는 것 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과연 무엇을 책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오랜세월동안 땅속에 묻혔있었던 과학적인 자료들과 사실들이 말해주는 백두산 대폭발과 풀리지 않는 숙제를 않고 있는 발해의 운명에 대해서 과학과 역사가 손을 잡고 새로운 시도를 해봐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실증사학이라는 개념이 결국 역사적인 문헌적 자료와 고고학적 유물자료를 토대로 당시의 역사를 재구성한다는 의미에서 역사학과 과학이 서로의 영역을 허물고 새로운 시각으로 사실을 견지해야 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과학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다양한 기법과 역사학의 추론이 만나게 되면 미스테리로 남아있는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는 길이 좀더 빨리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논거를 계기로 과학과 인문학의 통섭이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에 이번 책이 출간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추상화의 대상이었던 백두산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좀더 사실적이고 객관화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다. 더불어 영역을 넘나드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대에 아직도 현실적으로 그 벽이 크게 느껴지는 대목들이 앞으로 후학들과 독자들의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뿐인 통섭이 아닌 실천적인 통섭을 통해서 좀더 발전적인 학문적 성취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을 지울 수 없게 한다. 매번 이러한 논거를 접하게 되면 과연 우리는 뭘하고 있는가에 대해 자책하게 되는데 이번에도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든다.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면서 과연 우리는 백두산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해왔는지 일본학자들의 노력을 보면서 정말 쥐구멍이라도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민족이나 국가의 정체성문제에 그토록을 열을 올리면서도 정작 우리는 그 실천방안에 대해선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왔다는 사실이 이번에도 여실하게 드러났다. 지나간 역사는 그저 과거라는 시간적 개념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듯이 항상 되풀이 되고 그러한 역사를 기반으로 미래를 설계해야 하기 때문에 역사는 중요한 것이다. 역사의 진위를 논쟁하기전에 먼저 그 진위에 접근하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한 때인것 같다. 

▣ 또한 그동안 화산활동은 먼나라 이야기쯤으로 인식되어왔던 독자들에게 새로운 접근의 기회를 마련해 주는 저서이다. 특히 어마어마한 폭발력을 가지고 있는 백두산의 존재가 향후 우리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서 이제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그 검토와 연구가 필요하다고 하고 싶어진다. 메타포적인 백두산이나 관광코스 일환의 백두산이 아닌 실존하고 있는 백두산의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휴화산은 언제가는 또 다시 화산활동을 할 수 있는 화산을 말한다. 그 시점은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지만 그동안의 활동 형식을 미루어 봤을때 분명한 것은 다음 폭발 역시 10세기의 폭발만큼 어마어마한 재앙이 올 수 있음을 잊지 말고 이에 대한 학문적 실용적 대비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 책을 통해서 화산학과 지질학에 대한 개략적이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접근이 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무엇보다 돋보이는 저서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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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참모실록 - 시대의 표준을 제시한 8인의 킹메이커
박기현 지음, 권태균 사진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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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시대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을 원한다. 예를 들어 여말선초의 혁명의 시기와 왕권과 신권이 대립했던 조선초 상황이나 외침으로 인해 국가존립자체가 위협받던 시기에는 군주를 비롯하여 이를 보좌하면서 이끌어 갈 수 있는 진취적이고 적극적이면서 개혁적인 인사가 필요한 법이다. 정도전, 하륜, 유성룡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것이다. 속칭 난세라 일컫는 시기에 영웅이 나오듯이 바로 이러한 인물들이 난세를 헤쳐나가는 방식은 후대인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고 대체로 이러한 인물들에 대한 관심과 평가에 후대인들의 관심이 쏠리게 마련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난세가 아닌 지극히 평탄한 시절의 인물들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 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를 상고해 보면 한왕조나 시대를 개혁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수성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참모실록>는 바로 난세의 개혁적인 참모들이 아닌 조선왕조의 수성에 이바지한 참모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기업으로 비교한다면 초기 설립의 시대를 넘어 시장지배력을 공고히 하는 단계의 전략과 전술등을 창조해 나가는 역활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골육상잔의 권력암투를 벗어나 조선의 주춧돌을 놓는 단계였던 세종조의 맹사성, 훈구와 사림의 피할 수 없는 대결로 인한 반목의 시대의 이준경, 임진왜란이라는 국가붕괴 시대의 이원익과 이항복, 17세기 새로운 시대의 길목에서 새로운 정치를 역설한 김육과 최석정 등 후대에 잘알려진 인물도 있지만 그 역활에 비해 제대로된 평가를 받지 못한 참모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대체적으로 이러한 시대의 인물들의 공통점은 융화력과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는 넓은 포용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난세나 개혁의 시대의 참모들은 정해진 한방향을 위해서 그 어떠한 타협도 불사하는 도전적인 성향이 강했다면 수성의 시대 참모들은 그 어떠한 반대의견도 수렴하면서 다양성과 민의를 융합하는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 선조 이후 본격화 되는 당쟁의 갈림길에서도 이들에겐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의견제시에 지나지 않았기에 견제와 핍박속에서도 자신의 정치철학을 견지해 나갔던 것이다.  

이러한 성향으로 인해 군주의 태도만을 쫒아가는 권력지향적이라던가 이도 저도 분명하지 않는 우유부단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진 보신주의로 일괄했다는 비판마저도 받았지만 오히려 이들은 이런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모두가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상생의 원칙을 져버리지 않고 추진해 나갔던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상고해 보면 이들의 행위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기도 하다. 

대체적으로 수성의 시대를 대변하는 인물들에게는 역사적 평가가 후하지 못하다. 잘해봐야 본전이라는 말이 있듯이 수성의 시대는 난세보다 쉽게 보이지만 오히려 어려운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군주를 보좌하는 참모의 역활은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인물보다는 융화와 포용력이 강한 인물이 적격임에는 역사적 사례를 비견해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킹메이커가 있으면 이를 유지보수하는 참모가 있어야 왕조의 기반이 반석위에 놓이기 되는 것이다. 이번 저서에서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8인의 인물들은 바로 이러한 시대의 요청에 부응해서 시의적절하게 수성한 참모들로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참도들이 존재하였기에 조선이라는 국가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장수를 누리게 되었고 바로 이들이 그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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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정도전 2 - 하늘을 버리고 백성을 택하다 정도전 2
이수광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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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덕수출서물(君德首出庶物)  임금의 덕은 만물 위에 뛰어나야 한다.""
"" 인군지성임현이성기공(人君至誠任賢以成基功) 임금은 정성을 다하여 어진 인물을 발탁해야 공을 이룬다.""
 

우리가 알고 있는 왕조국가는 군주 일인이 무소불위의 권력과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군주를 중심으로 군주을 위하여 모든 정책이 결정되고 시행되는 정치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한 세계사의 대부분의 왕조국가들이 이러한 시스템을 견지했기 때문에 민주주의, 민본주의라는 패러다임 앞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속의 국가들 대부분이 그 수명이 길지 못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나라나, 수나라등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단명한 왕조를 수도 없이 보아왔다. 그런데 이에 비해 조선이라는 왕조국가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장수를 누렸다. 그럼 왜 조선은 왕조국가인데도 장수할 수 있었을까? 누구나 한번쯤은 이러한 생각을 가져봤을 것이다.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철저한 신분사회를 유지했다? 집권층을 제외한 나머지 민중들의 역사적소명 내지 의식이 철저히 사장되었다? 글쎄 절로 갸우뚱해지지 않는가. 한마디로 미스테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시리즈>로 독자들에게 익숙한 작가가 이번 작품에서 바로 그 해답을 던져주고 있다. 바로 <정도전>이름 석자에 조선의 장수의 비결이 담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삼봉이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모 방송국의 대하드리마 방영과 때를 맞추어 대한민국 정치판을 뜨겁게 달구었던 내각책임제가 이슈화되면서 세인들의 관심에 들어 왔다. 그동안 역사는 정도전을 어린 세자를 옹립하여 자신의 권력유지에 집착하다가 분연히 일어난 이방원에게 제거된 간사한 소인배 정도로 기억되어 왔다. 또한 조선시대 정조와 고종대 이전까지도 정도전이라는 이름 석자는 역모에 준하는 금기사항 그 자체였던 것이 사실이다. 왜 조선은 정도전에 대해서 500여년 동안 금기시해 왔던 것인가? 그가 그렇게 죽을 죄를 범했던 것일까? 끝까지 고려의 충심을 위해 죽은 정몽주는 향후 조선의 문묘에 배향이 되었는데 오히려 조선개국의 1등 공신인 정도전은 역적의 수괴로 남아 있어야 하는 걸까? 

아마도 그 해답은 왕조국가라는 조선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위험한 사상의 소유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도전, 남은, 심효생, 방석등을 제거한 사건을 역사에서 우리는 정변이라고 부르지 않고 1차 왕자의 난이라고 한다. 또한 우리는 난이라는 개념을 反이 正에 대해 도전할 때 우리는 이러한 행위를 난으로 규정한다. 이런 측면에서 조선은 이율배반적인 역사를 기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사가들의 정확한 역사적 기술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만큼 정도전이라는 인물이 가지는 역사적 비중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분명 타이틀은 역사소설이 맞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소설보다는 역사에세이 혹은 정도전 평전을 접하는 느낌을 지울수 없게 하는 작품이다. 작가 역시 팩트에다 약간의 픽션을 가미한 소설이라고 밝혔지만 왠지 픽션의 부분마져도 팩트로 받아 들여지게 하는 작가의 필력이 놀라울 정도이다. 특히 신권정치를 표방했던 정도전의 사상을 반영하듯이 이 작품의 무게중심은 이성계나 정도전의 반대측에 있었던 이방원에게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도전을 비롯하여 정몽주, 이숭인, 하륜등의 신권에 가까이 있는 인물들의 내면과 사상을 부각시켜 자칫하면 누구나 아는 뻔한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기존의 작품들과 별반 다르지 않는 방향을 흘러갈 수 도 있었던 구도를 새롭게 정립했다는 것이다. 마치 정도전이 살아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처럼 역사적으로 기억되는 굵직한 사건들 보다는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토록 빛을 발하는 달빛처럼 은은하고 무덤덤하게 내러티브를 이끌어 가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그래서 더욱 더 소설 같지 않는 소설인 것이다. 여말선초와 정도전에 대해서 재미있게 그러면서도 섬세하게, 꼼꼼하게 알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아마도 조선건국에 정도전이라는 인물이 없었다라면 조선은 그 수명이 길지 못했을 것이다. 이성계나 그 후임인 이방원의 능력이나 성격을 보더라도 답은 뻔하게 도출된다. 정도전은 비단 자신은 역적의 누명을 쓰고 사라졌지만 정도전이라는 이름 석자가 조선왕조를 장수의 길로 접어들게 한 밑거름이 된 것이다. 왕권과 신권의 적절한 줄다리기를 통해서 왕조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중에 하나가 바로 정도전의 정책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삼봉은 살아서 60년를 채 살지 못하고 갔지만 죽어서 500년을 조선과 함께 살았다. 그가 당초 설계했던 조선의 밑그림은 요동정벌 하나만 제외 하고는 거의 다 반영되어 조선의 뼈대를 이루었고 이러한 정책들을 바탕으로 장수를 누리게 된 것이다. 역사에 가정이란 의미가 없지만 간혹 이러한 책을 접하게 되면 한번쯤은 해보기 마련이다. 삼봉이 살아서 요동을 정벌했으면.... 

모처럼 픽션과 팩트를 넘아들면서 재미있게 읽어 나간 소설이다. 또한 한편으로 지금 이나라의 위정자들이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으로 보여진다.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은 다음이고, 군주는 가장 가볍다"  라는 삼봉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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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정도전 1 - 하늘을 버리고 백성을 택하다 정도전 1
이수광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 군덕수출서물(君德首出庶物)  임금의 덕은 만물 위에 뛰어나야 한다.""
"" 인군지성임현이성기공(人君至誠任賢以成基功) 임금은 정성을 다하여 어진 인물을 발탁해야 공을 이룬다.""
 

우리가 알고 있는 왕조국가는 군주 일인이 무소불위의 권력과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군주를 중심으로 군주을 위하여 모든 정책이 결정되고 시행되는 정치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한 세계사의 대부분의 왕조국가들이 이러한 시스템을 견지했기 때문에 민주주의, 민본주의라는 패러다임 앞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속의 국가들 대부분이 그 수명이 길지 못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나라나, 수나라등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단명한 왕조를 수도 없이 보아왔다. 그런데 이에 비해 조선이라는 왕조국가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장수를 누렸다. 그럼 왜 조선은 왕조국가인데도 장수할 수 있었을까? 누구나 한번쯤은 이러한 생각을 가져봤을 것이다.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철저한 신분사회를 유지했다? 집권층을 제외한 나머지 민중들의 역사적소명 내지 의식이 철저히 사장되었다? 글쎄 절로 갸우뚱해지지 않는가. 한마디로 미스테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시리즈>로 독자들에게 익숙한 작가가 이번 작품에서 바로 그 해답을 던져주고 있다. 바로 <정도전>이름 석자에 조선의 장수의 비결이 담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삼봉이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모 방송국의 대하드리마 방영과 때를 맞추어 대한민국 정치판을 뜨겁게 달구었던 내각책임제가 이슈화되면서 세인들의 관심에 들어 왔다. 그동안 역사는 정도전을 어린 세자를 옹립하여 자신의 권력유지에 집착하다가 분연히 일어난 이방원에게 제거된 간사한 소인배 정도로 기억되어 왔다. 또한 조선시대 정조와 고종대 이전까지도 정도전이라는 이름 석자는 역모에 준하는 금기사항 그 자체였던 것이 사실이다. 왜 조선은 정도전에 대해서 500여년 동안 금기시해 왔던 것인가? 그가 그렇게 죽을 죄를 범했던 것일까? 끝까지 고려의 충심을 위해 죽은 정몽주는 향후 조선의 문묘에 배향이 되었는데 오히려 조선개국의 1등 공신인 정도전은 역적의 수괴로 남아 있어야 하는 걸까? 

아마도 그 해답은 왕조국가라는 조선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위험한 사상의 소유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도전, 남은, 심효생, 방석등을 제거한 사건을 역사에서 우리는 정변이라고 부르지 않고 1차 왕자의 난이라고 한다. 또한 우리는 난이라는 개념을 反이 正에 대해 도전할 때 우리는 이러한 행위를 난으로 규정한다. 이런 측면에서 조선은 이율배반적인 역사를 기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사가들의 정확한 역사적 기술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만큼 정도전이라는 인물이 가지는 역사적 비중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분명 타이틀은 역사소설이 맞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소설보다는 역사에세이 혹은 정도전 평전을 접하는 느낌을 지울수 없게 하는 작품이다. 작가 역시 팩트에다 약간의 픽션을 가미한 소설이라고 밝혔지만 왠지 픽션의 부분마져도 팩트로 받아 들여지게 하는 작가의 필력이 놀라울 정도이다. 특히 신권정치를 표방했던 정도전의 사상을 반영하듯이 이 작품의 무게중심은 이성계나 정도전의 반대측에 있었던 이방원에게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도전을 비롯하여 정몽주, 이숭인, 하륜등의 신권에 가까이 있는 인물들의 내면과 사상을 부각시켜 자칫하면 누구나 아는 뻔한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기존의 작품들과 별반 다르지 않는 방향을 흘러갈 수 도 있었던 구도를 새롭게 정립했다는 것이다. 마치 정도전이 살아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처럼 역사적으로 기억되는 굵직한 사건들 보다는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토록 빛을 발하는 달빛처럼 은은하고 무덤덤하게 내러티브를 이끌어 가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그래서 더욱 더 소설 같지 않는 소설인 것이다. 여말선초와 정도전에 대해서 재미있게 그러면서도 섬세하게, 꼼꼼하게 알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아마도 조선건국에 정도전이라는 인물이 없었다라면 조선은 그 수명이 길지 못했을 것이다. 이성계나 그 후임인 이방원의 능력이나 성격을 보더라도 답은 뻔하게 도출된다. 정도전은 비단 자신은 역적의 누명을 쓰고 사라졌지만 정도전이라는 이름 석자가 조선왕조를 장수의 길로 접어들게 한 밑거름이 된 것이다. 왕권과 신권의 적절한 줄다리기를 통해서 왕조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중에 하나가 바로 정도전의 정책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삼봉은 살아서 60년를 채 살지 못하고 갔지만 죽어서 500년을 조선과 함께 살았다. 그가 당초 설계했던 조선의 밑그림은 요동정벌 하나만 제외 하고는 거의 다 반영되어 조선의 뼈대를 이루었고 이러한 정책들을 바탕으로 장수를 누리게 된 것이다. 역사에 가정이란 의미가 없지만 간혹 이러한 책을 접하게 되면 한번쯤은 해보기 마련이다. 삼봉이 살아서 요동을 정벌했으면.... 

모처럼 픽션과 팩트를 넘아들면서 재미있게 읽어 나간 소설이다. 또한 한편으로 지금 이나라의 위정자들이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으로 보여진다.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은 다음이고, 군주는 가장 가볍다"  라는 삼봉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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