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애국가 첫 소절에 나오는 말이다. 백두산이 우리 한민족에게 있어 그 차지하는 위상이 어떠한지를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또한 백두산이라는 존재가 갖고 있는 의미는 한민족의 역사와 더불어 대외적으로 포장되어 있는 현학적 의미 이상의 그 무엇이 존재하고 있다. 靈山으로서 민족의 정체성을 내포하고 있는 메타포로서의 위상은 그 높이 만큼이나 한민족의 정신속에 각인되어 있다. 여기서 한민족이라하면 지협적인 한민족개념이 아닌 고대사를 거슬러 올라가 예,맥,숙신,말갈등이라 통칭 되었던 광범위한 개념으로까지 확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백두산을 바라보고 느끼는 일종의 애착이 이들 지협적인 갈래의 민족정서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토록 민족의 영산이라 숭배하고 있는 백두산에 대해서 정작 알려진 바는 그리 많지 않다. 고작 해발 2750m이니 휴화산으로 정상에 화산의 흔적인 칼데라호인 천지가 있고 구한말 국경분쟁에서 그 한복판에 놓여 있다는 것외에 일반대중에게 그 실체가 알려지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극히 과학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더라도 최근래에 화산활동이 있었던 시기는 1702년으로 간헐적인 활동에 그치고 말았다는 것 뿐이다. 이러한 백두산에 대한 무지는 지금에 와서 휴화산에서 사화산쪽으로 그 이미지가 고착화되고 있고 재해영화에서 보는 화산폭발과 같은 화산활동과는 그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 그럼 과연 백두산은 화산으로서 그 맥을 다한 것일까? <백두산 대폭발의 비밀>은 실로 충격적인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저자는 백두산이 과거 10세기경에 화산활동을 했다고 한다. 폼베이의 비극으로 알려진 베수비오화산 폭발과 세인트헬렌스의 화산폭발등 인류가 기록 문화라는 형식을 가지면서 기록되기 시작한 화산폭발중에 엄청한 폭발력과 그이후 재앙과도 같은 피해에 대해서 우리는 많은 부분들을 알고 있고 그로 인한 문명의 후퇴를 목격했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은 그저 남의 나라, 문명의 이야기일 뿐이지 우리에게 그다지 와닿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지진이나 화산하면 이웃나라인 일본에서나 보편화 되어 있지 한반도는 안전지대로 생각했고 그러한 자연재앙이 실제로 없었기(정확히 표현하면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았기에)에 더욱 더 관심밖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바라보고 매일같이 부르는 애국가 속의 백두산은 그저 영묘하고 신령이 깃든 우린 한민족의 메타포일 뿐 다른 어떠한 의미가 부여되질 못했던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일류역사상 가장 강력한 화산폭발 저자는 대폭발(화산폭발의 강도를 일컫는 지표인 VEI 7급)이라고 지칭한다. 이 규모는 폼베이를 역사에서 지워버렸던 배수비오 화산의 50배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폭발로 놀라운 것은 이러한 대규모의 폭발이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짧은 주기를 두고 10세기 초반에 벌어졌다는 것이다. 갑자기 이 무슨소리인가? 그러한 대폭발이 있었다면 분명하게 역사기록에 남아있어야 하지 않는가? 역사책을 이리저리 뒤집어 보면 이러한 기록은 현존하는 한국사와 중국사,일본사를 통틀어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 저자는 그저 시쳇말로 한번쯤 뜨기 위해서 말도 안돼는 논거를 들고 나온 것일까?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이 책이 갖는 의미가 있다고 봐야 한다. <통섭>의 저자인 에드워드 윌슨은 인류가 좀더 합리적인 판단과 문명의 발전을 위해서는 과학을 비롯한 인문학의 통합적인 교류가 있어야 하고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새로운 통합적인 지식이 구축되어야 한다고 역설했고 이러한 측면에서 최근에는 통섭에 대한 학자들의 진지한 자세가 엿보이고 있다. 이러한 통섭의 사고가 그동안 밝혀지지 않거나 그저 매장되어버린 중대한 역사의 한장을 찾을 수 있다면 그 가치만으로 의미있는 것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백두산 대폭발의 비밀>이 갖는 의미는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10세기에 발생했던 백두산의 화산폭발과 한국고대사중에 가장 그 근거와 기록이 전무한 <발해>의 연관고리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발해를 정복한 거란의 <요사>에는 926년에 상경을 함락하면서 발해라는 대제국이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고 명시되어 있고 이를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그 요사를 상세히 살펴보면 왠지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들이 등장한다. 역사학자들은 대게 이럴 경우 동양적인 시각에서 상세한 표현보다는 대의명분적인 표현을 사서의 기록으로 채택하는 경향으로 인해 그 의미가 포괄적으로 기록되어져 있기 마련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왠지 이러한 시각은 자가당착적인 느낌을 지울수 없게 한다. 그럼 반대적인 해석으로 백두산의 화산폭발로 인해 국가라는 기능을 상실한 상태에서 거란이 발해를 침공해서 죽어가는 맹수의 숨통을 끊어놓았다라는 명제는 참일까? 이 역시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못하고 있는 것 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과연 무엇을 책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오랜세월동안 땅속에 묻혔있었던 과학적인 자료들과 사실들이 말해주는 백두산 대폭발과 풀리지 않는 숙제를 않고 있는 발해의 운명에 대해서 과학과 역사가 손을 잡고 새로운 시도를 해봐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실증사학이라는 개념이 결국 역사적인 문헌적 자료와 고고학적 유물자료를 토대로 당시의 역사를 재구성한다는 의미에서 역사학과 과학이 서로의 영역을 허물고 새로운 시각으로 사실을 견지해야 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과학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다양한 기법과 역사학의 추론이 만나게 되면 미스테리로 남아있는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는 길이 좀더 빨리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논거를 계기로 과학과 인문학의 통섭이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에 이번 책이 출간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 그동안 추상화의 대상이었던 백두산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좀더 사실적이고 객관화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다. 더불어 영역을 넘나드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대에 아직도 현실적으로 그 벽이 크게 느껴지는 대목들이 앞으로 후학들과 독자들의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뿐인 통섭이 아닌 실천적인 통섭을 통해서 좀더 발전적인 학문적 성취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을 지울 수 없게 한다. 매번 이러한 논거를 접하게 되면 과연 우리는 뭘하고 있는가에 대해 자책하게 되는데 이번에도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든다.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면서 과연 우리는 백두산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해왔는지 일본학자들의 노력을 보면서 정말 쥐구멍이라도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민족이나 국가의 정체성문제에 그토록을 열을 올리면서도 정작 우리는 그 실천방안에 대해선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왔다는 사실이 이번에도 여실하게 드러났다. 지나간 역사는 그저 과거라는 시간적 개념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듯이 항상 되풀이 되고 그러한 역사를 기반으로 미래를 설계해야 하기 때문에 역사는 중요한 것이다. 역사의 진위를 논쟁하기전에 먼저 그 진위에 접근하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한 때인것 같다. ▣ 또한 그동안 화산활동은 먼나라 이야기쯤으로 인식되어왔던 독자들에게 새로운 접근의 기회를 마련해 주는 저서이다. 특히 어마어마한 폭발력을 가지고 있는 백두산의 존재가 향후 우리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서 이제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그 검토와 연구가 필요하다고 하고 싶어진다. 메타포적인 백두산이나 관광코스 일환의 백두산이 아닌 실존하고 있는 백두산의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휴화산은 언제가는 또 다시 화산활동을 할 수 있는 화산을 말한다. 그 시점은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지만 그동안의 활동 형식을 미루어 봤을때 분명한 것은 다음 폭발 역시 10세기의 폭발만큼 어마어마한 재앙이 올 수 있음을 잊지 말고 이에 대한 학문적 실용적 대비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 책을 통해서 화산학과 지질학에 대한 개략적이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접근이 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무엇보다 돋보이는 저서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