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 평전 - 사람을 얻어 난세를 평정한 용인술의 대가 중국 역대 제왕 전기 시리즈
장쭤야오 지음, 남종진 옮김 / 민음사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조조는 자의든 타의든 당시에도 그러했고 후대인 지금도 항상 세인들의 중심에 서 있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조조를 간웅으로 묘사했지만 정작 그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조조에 대한 식지 않는 열의는 진행중에 있다. 마치 삼국지연의를 정사로 곡해하는 이들에겐 천하에 둘도 없는 몰인정하고 간사하기 이를데없는 간웅으로 회자되고 있고 이에 반해 정사를 제대로 알고 있는 이들에겐 희대의 영웅으로 남아있다. 그동안 삼국지의 주연들인 조조와 유비, 손권, 제갈량에 대한 많은 서적들이 출판되었고 특히 촉나라의 유비와 제갈량이 그 중심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의 힘은 아직도 건재하게 세인들의 눈을 틀어 잡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반면 조조에 대한 평가와 위치에 대해선 얼마전부터 새로운 시각과 재조명이 이루어 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미흡한 면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황건적의 난등으로 제국의 앞길이 한치앞도 예견할 수 없는 난세에서 걸출한 영웅들이 출현했고 그런 난세를 사실상 평정하고 천하를 통일한 사실상의 황제였던 조조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는 너무나 인색했던 것이다. 그동안 조조에 대한 연구나 그의 제대로된 평전하나 제대로 일반독자들에게 접해보지 못했던 차에 이번 장쭤야오의 <조조평전>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출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조조와 당시 시대상을 정사에 의거하여 기술된 이번 평전은 그동안 조조의 간괴나 전술전략등에 초점을 맞추었던 극히 일부분인 평가서에 비해 조조 개인의 삶과 그의 정치철학을 담고 있는 그야말로 조조에 관한 종합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로 조조의 거의 모든것을 말하고 있는 책으로 삼국지의 열렬한 메니아층 뿐만 아니라 삼국지에 대해서 일말의 관심이라도 있는 독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이는 저서이다. 특히 조조에 대한 불편한 선입관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겐 조조의 정확한 면모를 보게되고 조조를 어느정도 알고 있다는 이들에겐 진정한 조조의 진면목을 보게 한다. 

삼국이라는 구도는 솥의 다리처럼 3세력이 균형의 추를 맞추어 세상을 정립하고 있는 상태를 보통 삼국이라는 표현으로 대변한다. 대표적으로 한나라 붕괴이후 위,촉,오의 시대를 삼국시대라고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 보면 삼국시대라는 표현이 좀 민망할 정도로 조조의 위쪽에 무게 중심이 쏠려있다. 사실상 3국중 출신성분으로 따져 본다면 손권이나 유비에 비해 조조는 그 내막을 알 수 없을정도로 한미한 출생으로 그나마 환관인 조숭의 양자라는 갓끈을 부여잡고 시작해서 마침내 거대한 제국를 건설하게 된다.  

대부분의 영웅들에게 볼 수 있는 면모가 인재경영이 남다르다는 점이다. 손권의 경우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굳건한 인적 인프라가 기반이 되어 있는 상태였고, 유비의 경우는 당시 시대상에 맞지 않는 감성에 호소하는 인화술를 바탕으로 인적 인프라를 구축했다. 실례로 자신의 아들을 살릴려고 적진을 뚫고 나온 조자룡 앞에서 자신의 못난 아들때문에 훌륭한 장수를 잃을 뻔 했다는 멘트 한마디로 이미 조자룡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손권이 주어진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했다면 유비는 감성마케팅의 달인이었다. 이에 반해 조조의 인적 네트워크는 철두철미한 계산에 따라 형성된 듯이 보이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손권과 유비의 장점을 취하면서도 조조만의 특색있는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어 갔다.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여 자신만의 원칙하에 시행하였다. 무엇보다 조조의 강점은 다름아닌 "절대"라는 개념의 상실 그 자체라고 해야겠다. 조조에게 절대라든지 불변이라는 개념은 자리잡고 있지 않을 정도로 조조는 임기응변의 대가였고 항상 열려있는 사고방식으로 일변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런 점이 조조 주위로 인재들이 몰려들게 하였고 그런 인재를 조조는 적극 활용했다. 자주 비견되지만 제갈량 사후 촉의 급격한 쇠퇴와는 달리 조조의 위는 철저한 인적 네트워크의 구성으로 인해 한 개인의 공백이 조직자체를 뒤흔드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다. 바로 이점이 조조의 치밀한 인적 구성원들의 조정능력이었던 것이다. 조조는 군사,경제,사회,문화등 여러방면에 걸쳐 다방면의 전문가를 육성하는 메트릭스구조체를 가동했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로 가장 큰 수혜를 본 인물은 유비와 제갈량이지만 가장 혹독한 비판과 누명을 감내한 인물은 조조이다. 그러나 정사에서 거론되고 있는 상황은 이와 정반대이다. 진수는 위를 정통으로 삼국지를 찬수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 조조라는 인물에 대한 재평가가 단행되고 있다. 특히 기업경영측에서 조조의 인재관리 와 전략분석을 중점으로 그의 리더십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조조는 분명 정치,군사, 경제,문학등 다방면에 걸쳐 영웅적인 기질을 드러냈고 자신의 거대한 목표를 향해서 철저하게 계획된 수순을 밟았고 무리한 포석(칭제)을 두지 않았다. 

흔희 우리는 삼국지연의를 통해서 조조를 간괴와 그리고 의리도 없고 사람목숨을 파리 목숨 다루듯이 하는 일개의 모략꾼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물론 타당한 면도 충분히 있다. 조조는 정적이나 적군들에게 그다지 관대하지 않았고 또한 과도할 정도로 무자비한 복수의 향연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시대상에서 이러한 모습은 비일비재하였고 조조만의 전매특허로 낙인 찍기엔 어딘가 부족함이 있다. 실례로 여포를 참하는 과정에서 유비가 보여준 모습은 오히려 의리를 저버린 행동으로 더 비난받을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조조는 건안문학이라는 중국문학의 한줄기를 뒷받침했던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악부시나 오언절구시등의 통해서 문학적인 측면에서도 발굴의 기재를 어김없이 보여주고 있고, 경제사로서의 경제정책(토지정책)에 남다른 기지를 보여주었다는 면에서 군사적 지략가를 뛰어넘는 광범위한 분야에서 돋보이는 역량을 발휘했다. 이는 조조가 정치가로서의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 입증할 수 있는 것이다. 사마광의 <자치통감>과 주희의 <통감강목>에서 조조를 희대의 간신, 찬역한 도적등으로 폄하하기 시작한 부분이 후대 나관중의 모티브가 되어 조조에 대한 이미지는 되돌리기 힘든 형국에 이르게 되었지만 거의 동시대 인물인 진수의 <삼국지>등에서 묘사되고 있는 조조는 천하의 영웅으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평가가 얼마나 극과 극을 달리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조조가 이처럼 역사와 소설속에서 양극단의 평가를 받는다는 자체가 바로 그 만큼의 애증과 관심을 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조조는 간웅과 영웅이라는 양면을 다가지고 있는 인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러한 면모를 한쪽면으로만 몰아가는것 역시 잘못된 인식일 것이다. 당시 난세의 형국에서 이러한 양면성을 보이지 않았던 인물은 단 한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지 못한 인물은 그야말로 역사의 저편으로 살아지는 그런 한치 앞도 못보는 시기에 한시대를 풍미했고 그리고 수천년이 흘러서까지 세인들의 하마평에 오르내릴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조조는 분명 영웅임에는 틀림없는 것이다.  

저자는 조조의 삶을 통해서 후대에 치열하게 공방되는 조조에 대한 재평가 부분을 철저한 역사적 고증을 통해서 공명정대하게 이끌고 있다. 인적네트워크관리, 문학발전의 기여도, 경세가로서의 경제정책등 조조가 여타 인물들과 다르고 뛰어났던 부분에 대한 공정한 평가와 더불어 흔히 간사하게 여겨지는 인재술과 속임수등 부적절한 면에 이르기 까지 조조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서술하면서 독자들 스스로에게 조조에 대한 판단을 일임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역사적 조조와 개인적 조조를 둘 다 언급하면서 조조 개인의 삶에 대한 조명에도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그것도 지금까지도 상당한 인지도를 가진 인물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소설이라는 점 때문에 무시하는 것 보다 그로 인해 삼국시대가 가장 보편화되고 알려지게 된 기여를 했다는 점을 저자는 솔직히 인정하면서 소설과 역사속의 진실을 독자들 스스로 찾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조조평전>은 한말에서 삼국이 정립되기까지의 시대적 상황과 조조를 중심으로 한 관도대전, 적벽대전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생생한 설명이 아우러져 또 하나의 삼국지를 읽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정의란 무엇인가>로 시대의 방향타를 던져준 마이클 샌델교수의 후속작 <왜 도덕인가>는 또 다시 우리 사회에 작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道德이라함은 누구나 알듯이 사람이 지켜할 도리를 말한다. 즉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하고 그리고 그렇게 행동해야할 지침으로 사람에게 특별히 요구되는 의무사항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도덕이 없는 경우 사람치급을 하지 않았다. 특히 공맹사상을 뿌리적 근원으로 둔 유교문화권, 동방예의지국이라 자처하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면서도 기본적인 덕목은 다름아닌 도덕이다. 가정의 관계에서 출발하여 사회적 범위를 넓혀가는 과정속에 출발점은 도덕에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바로 이점이 인간과 짐승을 구분하는 가장 고결한 판단이었음을 우리의 선조들은 파악했고 그 인간됨을 위해 삼강오륜이라는 세부적인 실천항목까지 설정하여 매진했던 것이다. 

이런면에서 우리는 도덕적인 삶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해왔고 그런 도덕적인 사회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럼 이러한 아프리오리한 명제를 지금의 시대에 과연 얼마만큼이나 받아들이고 수긍할 수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선뜻 명쾌하게 대답할 수 있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존재할까라는 의구심이 먼저 들기 마련이다. TV화면상을 장식하는 각종 폐륜범죄에서 부터 성폭행 정치인과 경제인들이 비리를 논외로 치더라도 이제는 도덕적인 삶이라는 말자체가 마치 경전의 한 귀절을 대하듯이 여겨 지는 세상을 우리는 아무런 저항없이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 어쩌면 가장 큰 문제이지 않을까, 여기 저기 폭탄이 많이 자주 떨어지다보면 왠만한 폭탄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 무감각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왜 도덕인가>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특히 공동체라는 개인의 집합체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도덕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정치,사회,경제,교육등 다방면에 걸쳐 도덕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어디까지가 도적적이고 어디부터가 비도덕적인가라는 판단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지만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이러한 공동체적 삶속에서 극히 개인이 지향하는 도덕이라는 개념자체에 대한 근원적인 고찰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결국 도덕이라는 철학을 머리속의 사유로만 이식시킬 것인가 아니면 실천으로 옮길 것인가에 대한 선택은 다름 아니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개인은 물론이고 어느 사회에서나 선과 악 그리고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기준은 다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편차가 다른 공동체와 극히 이질적이거나 납득하지 못할 정도로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은 인간본성속에 자리잡고 있는 도덕에 대한 유전인자의 공통적인 영향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도덕을 철학의 한 분야로 승격시켜 인간의 존귀함을 상징하는 영역으로 승화시키고 연구와 학문의 대상으로 여겨왔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이념과 실천이 괴리된 이분법적인 사고를 불러어면서 막연한 대상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원인이 되어버렸다. 도덕은 이런 고귀하고 존엄성있는 학문이나 철학의 개념이 아니다. 그저 우리 인간들이 살아가는 동안 인간이면 누구나 안고 가야할 대상인 것이다. 그래서 도덕이 결여된 사람을 인간으로 볼 수 없듯이 도덕은 그 실천적인 면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지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개념이 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면에서 우리는 그동안 도덕을 형이상학적으로만 치부해왔고 그에 대한 댓가는 엄청나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왜 도덕인가라는 물음보다 왜 도덕일수 밖에 없는가라는 물음이 더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도덕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마이클 샌델은 이렇게 우리 인간들에게 도덕이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졌지만 정작 그에 대한 해답은 인간이 우리의 몫으로 남는다. 인간으로 살 것인가 아님 그저 짐승으로 남아 있을 것인가.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란도란 2010-11-18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서향님!^^ 알찬 서재 잘 구경하고갑니다
저는 이음출판사에서 나왔어요~
저희가 이번에 미국에서 베스트셀러를 연일 차지하여 화제가 되고있는 도서
<모터사이클 필로소피> 한국판 출판 기념으로 서평단을 모집하고있거든요^^
책을 사랑하시는 서향님께서 참여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 이렇게 리플 남기고가네요
저희 블로그에 방문해주세요~! :)
 
조조 평전 - 사람을 얻어 난세를 평정한 용인술의 대가 중국 역대 제왕 전기 시리즈
장쭤야오 지음, 남종진 옮김 / 민음사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드디어 제대로 된 조조의 평가가 이루어진다. 난세의 간웅이 아닌 희대의 혁신가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랩어카운트 - 당신의 포트폴리오는 안녕하십니까?
이정수 지음 / 새빛 / 201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종합주가지수(코스피)가 1960대를 넘어섰다. 한때 주변에선 주식으로 엄청난 대박을 터뜨리고 이와는 정반대로 전 재산을 날려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수도 없이 회자 되었다. 물론 지금도 가끔씩 가십거리로 잊혀질만한 하면 등장하는 단골메뉴이지만... 투자는 누구가 알고있듯이 그 리스크에 대한 헤징의 문제가 대두하게 된다. 다들 투자를 하면서 고수익 상품에 대한 유혹을 떨쳐버릴 수 없다. 하지만 고수익 상품의 이면에는 그에 상응하는 하이 리스크가 상존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마련이다. 모든 투자상품에는 물론 투자상품뿐만 아니라 인간이 경제사회활동을 행할때 판단하게 되는 의살결정의 이면에는 항상 복기부기의 대차평균의 원리처럼 수익==리스크라는 야누스의 이중성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제2차 산업혁명시기까지는 투자라는 말은 곧 수익을 의미했고 대부분의 투자가 실물자산에 집중되었다. 이러한 실물자산에서 비단 잘못된 의사결정에 의한 투자라도 실물이라는 눈에 보이는 정형화된 상품이 있었기에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더라도 자위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디지털혁명시대를 맞이하여 증폭된 부의 폭발과 이에 상응하는 금융자산의 대두로 인해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중 가장 큰 비중을 차치하는 것은 리스크관리로 그 무게 중심이 옮겨졌다고 해야 겠다. 또한 몇차례의 세계적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이러한 리스크를 어떻게 헷지하는가 하는 문제가 그 키를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특히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투자의 결정은 바로 투자자산에 대한 포트폴리오의 구성문제와 포토폴리오의 선정에 대한 문제가 수익창출과 직결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복잡화경제,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그나마 손에 쥐고 있는 자산을 효과적으로 증식시키는 방법은 무엇이며 또 어떻게 행동을 옮겨야 하는가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랩어카운트>는 약간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사실 투자금융쪽에 종사하지 않는 이들에게 펀드이외에 랩어카운트라는 말은 다소 생소할 것이다. 쉽게 말해서 펀드라는 간접투자와 유사한 일종의 일임형 자문형 종합자산관리정도로 생각하면 크게 그 의미가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하긴 금융상품자체가 워낙 많다보니 이게 저것 같고 도무지 설명을 들어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바로 금융상품의 특징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간접투자상품중 가장 리스크폴링한 상품처럼 느껴지는 면이 있다.  

포토폴리오라는 자체에 이미 리스크관리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지만 랩어카운트는 리스크 헷지의 기능에서 전반적인 리스크 관리라는 폴링의 개념을 가미한 제도라도 하면 빨리 인식될 것이다. 전체적으로 랩어카운트의 상세한 설명과 금융투자용어들의 설명들이 가미되고 그 내용도 간략하여 금융상품투자에 관심있는 독자들에게 기초를 다지는 기본서로서의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쉬운점은 너무 안정성에 대한 믿음을 은근히 독자들에게 이전시킨다는 점이다. 결국 금융상품의 투자에는 누누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만큼의 리스크가 상존하기 때문이다. 투자에 대한 선택은 결국 투자자의 책임으로 실행되겠지만 그 의사결정에 있어 그 어떠한 왜곡된 정보가 주입되어선 안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책의 중간중간에 숨겨져 있는 투자에 대한 원칙들을 유심히 읽어보게 되면 과연 어떻게 자산운영을 해야할지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포토폴리오는 리스크를 제로로 만드는 신의 손이 아님을 명심해야한다. 모든 투자상품자체에 리스크를 존재하고 다만 우리는 그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추구할 뿐이라는 사실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용의 유전자 - 제국을 향한 피의 역사가 깨어난다
에릭 두르슈미트 지음, 이상근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중국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리고 그들의 행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아마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세계인들에게 중국이라는 나라는 그 어느때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오고 있다. 불과 십여년전만 해도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싸구려 물품을 조달하고 세계 모든 명품의 짝퉁화에 이바지하고 심지어 먹는 음식마저도 철저하게 상품화해 세계인들의 비웃음의 대상이었던 중국. 비단 그들의 경제성장이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지만 그래도 중국은 멀었다는 인식들(특히 서구선진산업국의 시선은 더 고지식했을 것이다) 정치시스템과의 불협화음으로 인해 언제인가는 중국이라는 나라도 자본주의시스템속에 귀의하여 평범하게 한쪽 구석을 자리잡을 것이라는 예견들이 거의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이들 전문가들의 예상을 뛰어 넘어 버렸다. 그동안 세계대전이후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세계를 지배해온 미국의 위상마저도 위협받을 정도로 중국의 거침없는 하이킥은 그 끝이 어디있지 모르는 곳으로 향하고 있다,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는 서서히 그 막을 내리고 있고 이제 팍스 차이나 시대는 아니더라고 적어도 팍스 차메리카나라는 양두시대가 도래한것에 대해 부인하기 힘든 형국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용의 유전자>는 이런시기에 중국을 재조명할 수 있는 시의적절한 책으로 보인다. 비단 저자는 징기스칸의 제국에서 그 시발점을 찾고 그리고 그들의 침략전쟁에서부터 중국이라는 용의 유전학적 기원을 찾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실상 오늘의 중국을 가능케 한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곳에서 출발했다. 중국은 세계사를 통틀어 가장 먼저 제국이라는 조직체를 운영한 국가이다. 서양의 로마제국보다 먼저 출발한 진제국은 봉건시스템을 거부하고 중앙집권시스템과 관원대리라는 특유의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제국이라는 경영혁신을 가져왔고 이러한 시스템은 왕조가 바뀌어도 그 근본적인 틀은 고스란히 유지되어왔다. 이는 그 어느 조직체보다 오래된 시스템으로 서구 근대화라는 유별난 패러다임에 비록 굴복한바는 있지만 그 명맥은 세계사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오래토록 지속되어왔다. 그리고 지금 중국의 시스템은 세계각국에서 거의 채택되지 않고 있는 또 다른 독특한 시스템구조로 가지고 있다. 1990년대를 전후하여 냉전이라는 이데올로기시대가 종지부를 찍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한켠의 시스템을 고수하면서 지금처럼 그 영향력이 지대한 나라는 중국이외에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또한 지금의 중국은 그 옛날 로마와 닮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로마가 인종과 출신성분에 큰 차이를 두지 않고 다각적으로 수용하고 자기것을 만들어 갔듯이 지금의 중국역시 그 이면에는 다른 정치논리가 존재하겠지만 한족뿐 아니라 기타 소수민족과 그들의 역사를 품어가서면서 그 세를 넓히고 있는 모습이 비슷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중국과 로마가 다른점은 무엇보다 그 목표의식의 차이점일 것이다. 중국은 얼마전부터 대국굴기라는 패러다임에 의해 역사마저 왜곡하고 포장해가면서 대국에 대한 강력한 열망에 쌓여있고 또 그렇게 대국을 향해서 피라미드를 쌓듯이 한단계 한단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열망은 사회주의라는 정치시스템의 비뚤어진 모습이라기 보다는 중국민족자체에 내재하고 있는 근원적인 욕망의 분출이라고 봐야 타당할 것이다. 

광할한 영토와 막대한 부존자원 그리고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는 나라 남들이 다 포기하고 사실상 실패작으로 기억될 정치시스템을 고수하면서도 가장 자본주의 색체가 짙은 나라, 바로 그 나라 중국이 지금 잠룡에서 서서히 하늘로 비상하는 비룡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라는 개혁과 개방의 시대를 넘어 이제 중국은 단 한가지의 목표를 향해서 세상에 자신들의 모습을 들어내고 있다. 그것은 바로 제국의 완성이다. 그 제국을 향해서 중국은 내부적으로 역사와 문화등에 걸쳐 다양한 레퍼터리를 창조하고 포장해나가고 있다. 그리고 조금의 세월이 흐르면 거의 완성될 단계에 도달할 것이다. 하지만 중국을 둘러싼 주변국의 시선은 그리 탐탁치 않은것이 사실이다. 그 옛날 로마라는 대제국이 해체되었던 점을 상기할 때 지금의 브레이크없는 중국의 미래도 실상은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이다. 지금처럼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시대에 일개 한국가의 독점적인 비약 특히 중국처럼 경제규모의 파이가 큰 나라의 도약과 그에 상응하는 추락은 또 다른 공황을 가져올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제국을 논할때 항상 로마라는 제국을 그 사례로 말하는 이유는 다른것이 아니라 제국은 제국다워야 한다는것 때문일 것이다. 물론 제국이라는 자체가 가지는 불합리성을 제외하자는 말은 아니다. 단지 제국이라는 호칭에 걸맞는 국제적인 신뢰와 명망을 갖추는 것이 진정한 제국으로 자기매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중국의 모습은 비록 제국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고 있지만 그 속내에는 그리 적절한 도약으로 비쳐지는 구석이 그다지 많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우려의 목소리가 높게 나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특히 지척에 자리잡고 있는 우리에게 중국의 이러한 일련의 모습들은 많은 생각을 가져오게 하고 있다. 이번 책을 통해서 다시금 중국에 대한 새로운 조명과 그들의 사고방식 그리고 다양한 시각의 검토가 필요할 시점이다. 역사문화적으로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그들의 속내에 대해서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우리에게 중국을 새롭게 알게 하는 견인차 역활을 할 책이다. 다시금 중국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하는 책으로 다가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