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차없는 자본주의 - 파괴와 혁신의 역사
조이스 애플비 지음, 주경철.안민석 옮김 / 까치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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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의 근간이 흔들리는 시점에서 자본주의 태동에서 성장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역사를 개괄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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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시대의 중국 - 중국은 과연 세계의 지배자가 될까
사토 마사루 지음, 이혁재 옮김, 권성용 해제 / 청림출판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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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Made in China" 의 이미지가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한때 중국제품은 가격 경쟁력만을 우위에 두고 융단 폭격식으로 시장을 점령하는 그야말로 저질상품이라는 이미지와 더불어 짝퉁의 신천지라는 불명예로 인식되어 왔고 지금까지도 세계의 소비자들에게 이런 이미지는 완전히 지워지지 않고 있는 것 역시 현실이기도 하다. 한때 세계 최강의 국력을 과시했던 중국은 근대화와 제국주의라는 파도에 힘없이 쓰러진 종이 호랑이 신세로 전락했고 사회주의 시스템을 채택함으로써 인류의 또 다른 반대편인 자본주의 시스템에 다시한번 굴복하는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시장원리에 입각한 시스템은 국가 통제기획 경제 시스템에 완승을 거두었다고 생각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로위기를 겪으면서 이러한 판정승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전면으로 부상하고 있는 시점에서 "Made in China" 로 대변 되는 중국의 이미지가 크게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중국에 대한 관심의 시각은 비단 지금의 경제상황에서 비롯됐다기 보다는 덩샤오핑의 개방정치가 부각을 나타내면서 세인들의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말은 어느 날 갑자기 깨어보니 중국이라는 거대국가가 눈앞에 펼쳐진 것이 아니라 이미 중국은 잠룡의 시절을 벗어나 하늘을 비상하는 용으로 세계인들 앞에 우뚝서기 시작했던 것이다.(중국인들의 가장 인기 있었던 교양 프로그램 '대국굴기'는 이러한 그들의 자긍심을 만천한에 고했던 하나의 절차적 형식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인구와 땅덩어리만 많을 뿐이지 그외엔 어느것 하나 내세울게 없었던 가난한 사회주의 국가에서 미국이라는 종주국을 대처할 정도로 자리매김한 중국은 이제 중국을 논외로 그 어떠한 정책수립이나 협의를 할 수 없을 만큼 영향력이 큰 국가로 세계인들 앞에 다가 왔다.

 

<시진핑 시대의 중국>는 현 최고권력자인 후진타오 총서기의 뒤를 이을 제5세대 권력의 핵심인 시진핑 국가부주석의 중국을 미리 살펴보는 전략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중국통인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정치부 기자인 저자는 수많은 중국권력층과의 인터뷰와 더불어 일반 대중들이 피부로 느끼는 중국 정치와 미래의 방향에 대해서 향후 중국의 권력이동과 더불어 발생할 수 있는 사안들 그리고 경제, 군사, 외교등 다방면에 걸쳐 포스트 후진타오의 중국을 상정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동안 중국이라는 실체에 대해서 문외한일수 밖에 없는 일반 독자들에게 중국의 국가권력 구조와 공산당 구조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는 일반 국민들의 시각등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동안 통계수치를 통해서 중국을 평가해왔고 중국의 내부 권력구조에 대한 인지는 그다지 높지 않았던 편이었다. 이는 그저 경제부분으로만 중국을 바라보아왔고 실상 경제를 진두지휘하는 그 이면의 정치구조에 대해선 그다지 많은 상식을 가지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국가의 힘이나 비전은 정치권력 구조에서 입안되어 실행된다는 점에서 <시진핑 시대의 중국>은 중국의 정치구조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다가온다. 무엇보다 권력의 세대교체인 올 가을 공산당 대회를 앞두고 무성한 루머에 대한 나름의 체계적인 안목을 제공하고 있으면서 향후 포스트 후진타오의 중국호를 이끌어갈 시진핑을 비롯한 5세대 권력층의 실상과 그들의 정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이들의 끌고갈 중국이라는 배의 방향을 미리 예견할 수 있어 향후 세계경제와 정치의 향방을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필독할 만한 저서로 판단된다.

 

특히 예로부터 강력한 연결고리를 형성하고 있는 우리와 중국의 관계를 유추해 보더라도 <시진핑 시대의 중국>는 국내 독자들에게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보게 하는 보고서이기도 하다. "Made in China" 를 무시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시진핑 시대의 중국은 어떻게 다가올 것인가? 수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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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본 임진왜란 - 근세 일본의 베스트셀러와 전쟁의 기억
김시덕 지음 / 학고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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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을 맞이하여 올해는 420년전 이 땅에 발생한 임진왜란과 관련된 많은 서적들이 간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임진왜란은 우리 韓민족에겐 상당한 트라우마를 가져다 준 일대의 충격적인 사건(더욱이 중국의 각종 다양한 문물과 조선 특유의 독창적인 문화를 나름 전수해주었다는 오랑캐한테 당한 일이라 그 충격은 더했던 것이다)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향후 양대호란을 거치고 제국주의의 발호로 인해 국권 강탈로 이어지면서 상당한 근원적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임진왜란을 다소 지엽적인 혹은 우리 중심적인 시각으로 바로 보는 경향(피해자란 입장에서 더욱더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합리화적인)이 있는 것 같다. 그저 섬나라 일본 내전을 평정하고 내부의 압력을 전쟁이라는 형태로 분출시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그를 따르는 강경론자들의 도발정도로 인식하는 경향이 높고, 임진왜란을 섬나라 오랑캐들의 도발적인 만행으로 치부하고 그 도발에 맞서 의롭게 일어난 의병들과 이순신을 비롯한 영웅들의 활약상에 무게감을 더 두고 있는게 보통의 시각들이다.

 

하지만 엄밀한 시각으로 보면 임진왜란은 당시 동북아시아의 정계편도를 뒤흔든 일대 대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난세를 통일한 왜국의 무력 표출과 종이 호랑이로 전락한 명의 마지막 포호 그리고 임란을 계기로 더욱 강력한 교조주의로 빠져드는 조선은 향후 동북 아시아의 판세를 뒤바꾸는 일대의 변혁을 가져오게 된다. 이런 역사적 흐름은 청이라는 강력한 국가가 발호하면서 잠시 소강상태에 빠져드는듯 보이지만 커다란 역사의 흐름에서는 제국주의의 발호라는 대세를 거역하지 못하고 국권강탈의 대의 명분을 제공하는 기틀이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임진왜란은 그저 단순하게 섬나라 오랑캐의 도발정도로 치부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그들이 본 임진왜란>그 동안 민족적인 감정(혹은 피해자적인 감정)이 압도적이었던 우리의 시각에 보자면 상당히 불편한 내용들로 점철된 왜곡된 내용이 많이 수록되어 있고 거부감이 절로 들게 만드는 책이다. 저자가 서문에서도 지적했듯이 상당한 용기를 가지지 않고서는 완독하는 고통을 감내하기 힘들 정도의 황당감을 갖게 하는 내용들이다. 그러나 그동안 임진왜란을 바라보는 시각은 철저하게 우리의 시각에서 이루어졌고 항상 우리의 방식대로 해석되어져 왔다는 점에서 사건의 당사중에 하나인 가해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임진왜란은 과연 어떤 전쟁이었는가에 대한 물음에 명쾌하게 해답을 제시해본 적은 없었던것 같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저서는 왜의 입장에서 바라본 임진왜란(동시대를 넘어서 에도시대 막후까지 면면히 이어지는 담론)을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다만 역사적 사초에 기반한 역사사실을 기술한 것이 아니라 민가에 유행했던 소설이나 문집의 형태로 밖에 볼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깝게 여겨지지만 오히려 민간의 기록물들이 정사의 기록물보다 더 뿌리깊에 자리잡고 확대 재생산된다는 점에서 볼때는 왜(일본)인들의 임진왜란에 대한 담론을 확인할 수 있는 적절한 문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들이 바라보는 임진왜란의 시각과 담론들은 세대를 거치면서 정한론을 이론적 감정적 당위성을 제공하였고 이러한 기본적인 담론들이 제국주의에 편승하여 국권 강탈이라는 미증유의 사태로 발전하게 될 수 밖에 없는 분위기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 정반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담론들이 지금 현재까지 극우세력들(그리고 그저 따라갈 수밖에 없는 대중들의 심리상태를 조장하고 있다는 점이 더 무서운 것이다)의 뇌리속에 깊숙이 박혀 있는 근원적인 면책을 주고 있다는 점이 더 우려 되는 바이다.

 

굳이 이런 책을 접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할 수 도 있지만 자신과 다른 생각을 들을 용기가 없을때 벌어지는 사태를 우리는 420년전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뼈저리게 느껴고 이후 철저하게 우리만의 시각으로 살아온 결과에 대한 반성차원에서라도 일본이 바라보는 임진왜란은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황당무게한 담론들을 담고 있지만 이러한 황당함은 우리측의 논거일뿐이지 그들에겐 당연한 논거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 우리가 일본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또 다른 중요한 열쇠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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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소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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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종말 리포트>의 완결판. 절망이 아닌 또 다른 희망의 메세지를 담고 있는 인류의 미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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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소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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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 <홍수>는 큰 틀에서 보면 전작인 <인간 종말 리포트>의 후속편으로 인류가 겪게 되는 대재앙을 다루는 디스토피아계열의 작품으로 볼 수 도 있다. 그래서 <인간 종말 리포트>를 읽었던 독자들이라면 작품의 이해속도나 연관관계등을 서로 비교할 수 있는 재미가 한층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등장인물들이나 정원사라는 사교적 종교단체, 총알기차를 비롯한 극히 과학문명화된 신도시와 과학기술들 그리고 이러한 테크놀러지로 탄생한 너크컹크, 사자양등의 새로운 동물종들 그리고 신의 위임자 역활을 부여 받았다고 오판한 끝에 탄생한 크레이크의 산물들... 일일이 나열할 수 없는 면에서 <홍수>는 <인간 종말 리포트>의 복사판으로 느껴질 수 있을만큼의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관성이 농후한 측면도 존재하고 있지만 굳이 전작인 <인간 종말 리포트>를 접하지 않더라도 <홍수>만으로도 작가가 독자들과 공감하고자 하는 사유는 충분히 전달되고도 남을 정도의 독립적인 내러티브와 구도를 가지고 충분히 독자들에게 어필될 수 있다. 한편으로 들여다 보면 이번 작품은 시간과 공간적인 배경을 동일시 되면서도 서로 다른 화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또 다른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인간 종말 리포트>가 과학기술적인 정점의 산물인 또 다른 인간종(불멸과 순수의 상징)을 창조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는 하드웨어적이고 남성 중심적인(지미/눈사람, 크레이트) 내러티브와 입장을 가지고 있다면 <홍수>는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차용한 신을 위한 정원사라는 종교단체(엄밀히 보면 환경과 종교과 결합한 형태라 볼수있을 것이다)를 통한 영적인 부분를 다루는 소프트웨어적이고 여성 중심적인(토비,렌) 내러티브를 견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측면들은 오히려 두 작품이 별개의 느낌이나 전작의 후속편적인 느낌보다는 양 작품이 상호보완적으로 다가온다는 느낌을 강하게 느끼게 하고 또한 그 내러티브를 들여다 보게 되면 이러한 상호연관성의 깊이를 알게 되기도 하는 유니크한 구도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전작인 <인간 종말 리포트>의 보완적인 형식(전작에서 다하지 못했던 이야기의 꾸러미를 펼쳐 놓은듯한 착각)으로 비쳐질 수 있다. 내러티브속에 설치되어 있는 개연성을 빌미로 중복적인 이미지들이 색다른 흥미를 불러 일으켜 독자 스스로가 내러티브를 보다 더 풍요롭게 하는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전작인 <인간 종말 리포트>가 한편의 이야기(절망적인 미래상)를 다루고 있다면 <홍수> 말하지 못했던 또 다른 이야기(절망속에서 또 다른 희망을 보는 미래상)를 다루고 있어 비로서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는 구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작품을 미래의 우울하고 암당한 상을 그리는 디스토피아소설로 분류하기엔 뭔가 어색함마저 들고 그렇다고 공상과학소설로는 어울리지도 않는다. 현재 우리는 엄청한 혁신과 발전을 거듭한 과학문명기술이라는 하드웨어와 신자유주의의 기치하에 자본이외에는 그 어떠한 논리도 정당화될 수 없는 소프트웨어를 장착하고 앞만 보고 돌진하는 브레이크없는 기차위에 몸을 담고 있다. 이 기차에는 이러한 양대축(과학문명기술과 자본)을 숭상하는 신도들 이외에는 합석할 수 있는 자석마저 없는 그러 기차이다. 그리스도교을 비롯한 인간이 만들어 낸 종교틀에서 보면 신의 위임자 혹은 대리인 자격으로 전 지구의 모든것을 신탁통치해왔다고 그나마 자부했던 우리들도 이제는 과학기술과 자본이라는 새로운 대리인 앞에서는 명함도 내밀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면들이 작가가 언급했듯이 그러그러한 디스토피아계열의 작품보다는 많은 사유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사색소설이라고 봐야 더 합당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작가의 작품들을 대면한 독자들이라면 작가의 종교와 신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와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상당히 우호적인 견지를 발견하게 된다. 각각의 챕터 서두에서 목사나 사제의 설교을 연상케 하는 부분이나 찬송들을 독립된 구도로 배정하여 종교적인 색체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는듯 하여 고개짓을 하게 하지만 결국 이러한 구도의 설정은 내러티브 중간 중간에 배정한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독백등을 통해서 종교와 신에 대한 생각을 재정립하게 함으로써(큰 프레임은 성경의 홍수와 노아방주을 연상케 하지마 결국 내러티브의 중점은 인간 외부적인 힘의 작용보다는 인간이 자처한 위기상황과 그리고 이를 극복해 나가는 인간의 또 다른 희망적인 부분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종교와 신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보여준다) 작가 나름대로의 사유를 들어내고 있는 장치적인 역활을 할 뿐이지 종교와 신에 대한 냉철한 비판과 사유는 변함이 없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결국 신의 정원사들과 이들의 신념은 종교적인 차원을 넘어선 인류애 그 자체를 표방하면서 물질문명에 찌든 현세에 대한 일종의 경고 메세지로 들여온다. 종교적 의미에서 떠난 영혼의 중요성 (크레이트에 의해 재 탄생하는 새로운 인류종의 순박함과 순수함이 바로 깨끗한 영혼을 상징하듯이)을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이번 작품은 우리 인류의 미래의 모습을 재현하고 예견하는 디스토피아 장르의 작품으로 인식될 수 도 있지만 왠지 소설속에 나오는 씬들이 왠지 낯설지 않고 지금 우리의 현재 모습을 그리고 있는것 같아 절로 가슴한켠을 쓸어내리게 한다. 작가는 독자들이 원하는 미래상을 제시하는 것보다 오히려 현재 이러이러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정신과 육체에 관한 이야기라는 사실에서 오히려 더 큰 공감을 일으키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그동안 작가는 소설가의 의무가 독자들에게 믿을만한 거짓말을 하는것이라고 공표했지만 왠지 이번 작품만은 그동안 작가가 피력해온 믿을만한 거짓말과 사뭇 다른 진실의 한 모습을 담고 있는것 같아 오히려 씁쓸함을 지울수 없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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