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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본 임진왜란 - 근세 일본의 베스트셀러와 전쟁의 기억
김시덕 지음 / 학고재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임진년을 맞이하여 올해는 420년전 이 땅에 발생한 임진왜란과 관련된 많은 서적들이 간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임진왜란은 우리 韓민족에겐 상당한 트라우마를 가져다 준 일대의 충격적인 사건(더욱이 중국의 각종 다양한 문물과 조선 특유의 독창적인 문화를 나름 전수해주었다는 오랑캐한테 당한 일이라 그 충격은 더했던 것이다)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향후 양대호란을 거치고 제국주의의 발호로 인해 국권 강탈로 이어지면서 상당한 근원적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임진왜란을 다소 지엽적인 혹은 우리 중심적인 시각으로 바로 보는 경향(피해자란 입장에서 더욱더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합리화적인)이 있는 것 같다. 그저 섬나라 일본 내전을 평정하고 내부의 압력을 전쟁이라는 형태로 분출시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그를 따르는 강경론자들의 도발정도로 인식하는 경향이 높고, 임진왜란을 섬나라 오랑캐들의 도발적인 만행으로 치부하고 그 도발에 맞서 의롭게 일어난 의병들과 이순신을 비롯한 영웅들의 활약상에 무게감을 더 두고 있는게 보통의 시각들이다.
하지만 엄밀한 시각으로 보면 임진왜란은 당시 동북아시아의 정계편도를 뒤흔든 일대 대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난세를 통일한 왜국의 무력 표출과 종이 호랑이로 전락한 명의 마지막 포호 그리고 임란을 계기로 더욱 강력한 교조주의로 빠져드는 조선은 향후 동북 아시아의 판세를 뒤바꾸는 일대의 변혁을 가져오게 된다. 이런 역사적 흐름은 청이라는 강력한 국가가 발호하면서 잠시 소강상태에 빠져드는듯 보이지만 커다란 역사의 흐름에서는 제국주의의 발호라는 대세를 거역하지 못하고 국권강탈의 대의 명분을 제공하는 기틀이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임진왜란은 그저 단순하게 섬나라 오랑캐의 도발정도로 치부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그들이 본 임진왜란>은 그 동안 민족적인 감정(혹은 피해자적인 감정)이 압도적이었던 우리의 시각에 보자면 상당히 불편한 내용들로 점철된 왜곡된 내용이 많이 수록되어 있고 거부감이 절로 들게 만드는 책이다. 저자가 서문에서도 지적했듯이 상당한 용기를 가지지 않고서는 완독하는 고통을 감내하기 힘들 정도의 황당감을 갖게 하는 내용들이다. 그러나 그동안 임진왜란을 바라보는 시각은 철저하게 우리의 시각에서 이루어졌고 항상 우리의 방식대로 해석되어져 왔다는 점에서 사건의 당사중에 하나인 가해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임진왜란은 과연 어떤 전쟁이었는가에 대한 물음에 명쾌하게 해답을 제시해본 적은 없었던것 같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저서는 왜의 입장에서 바라본 임진왜란(동시대를 넘어서 에도시대 막후까지 면면히 이어지는 담론)을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다만 역사적 사초에 기반한 역사사실을 기술한 것이 아니라 민가에 유행했던 소설이나 문집의 형태로 밖에 볼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깝게 여겨지지만 오히려 민간의 기록물들이 정사의 기록물보다 더 뿌리깊에 자리잡고 확대 재생산된다는 점에서 볼때는 왜(일본)인들의 임진왜란에 대한 담론을 확인할 수 있는 적절한 문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들이 바라보는 임진왜란의 시각과 담론들은 세대를 거치면서 정한론을 이론적 감정적 당위성을 제공하였고 이러한 기본적인 담론들이 제국주의에 편승하여 국권 강탈이라는 미증유의 사태로 발전하게 될 수 밖에 없는 분위기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 정반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담론들이 지금 현재까지 극우세력들(그리고 그저 따라갈 수밖에 없는 대중들의 심리상태를 조장하고 있다는 점이 더 무서운 것이다)의 뇌리속에 깊숙이 박혀 있는 근원적인 면책을 주고 있다는 점이 더 우려 되는 바이다.
굳이 이런 책을 접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할 수 도 있지만 자신과 다른 생각을 들을 용기가 없을때 벌어지는 사태를 우리는 420년전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뼈저리게 느껴고 이후 철저하게 우리만의 시각으로 살아온 결과에 대한 반성차원에서라도 일본이 바라보는 임진왜란은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황당무게한 담론들을 담고 있지만 이러한 황당함은 우리측의 논거일뿐이지 그들에겐 당연한 논거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 우리가 일본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또 다른 중요한 열쇠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고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