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소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번 작품 <홍수>는 큰 틀에서 보면 전작인 <인간 종말 리포트>의 후속편으로 인류가 겪게 되는 대재앙을 다루는 디스토피아계열의 작품으로 볼 수 도 있다. 그래서 <인간 종말 리포트>를 읽었던 독자들이라면 작품의 이해속도나 연관관계등을 서로 비교할 수 있는 재미가 한층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등장인물들이나 정원사라는 사교적 종교단체, 총알기차를 비롯한 극히 과학문명화된 신도시와 과학기술들 그리고 이러한 테크놀러지로 탄생한 너크컹크, 사자양등의 새로운 동물종들 그리고 신의 위임자 역활을 부여 받았다고 오판한 끝에 탄생한 크레이크의 산물들... 일일이 나열할 수 없는 면에서 <홍수>는 <인간 종말 리포트>의 복사판으로 느껴질 수 있을만큼의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관성이 농후한 측면도 존재하고 있지만 굳이 전작인 <인간 종말 리포트>를 접하지 않더라도 <홍수>만으로도 작가가 독자들과 공감하고자 하는 사유는 충분히 전달되고도 남을 정도의 독립적인 내러티브와 구도를 가지고 충분히 독자들에게 어필될 수 있다. 한편으로 들여다 보면 이번 작품은 시간과 공간적인 배경을 동일시 되면서도 서로 다른 화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또 다른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인간 종말 리포트>가 과학기술적인 정점의 산물인 또 다른 인간종(불멸과 순수의 상징)을 창조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는 하드웨어적이고 남성 중심적인(지미/눈사람, 크레이트) 내러티브와 입장을 가지고 있다면 <홍수>는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차용한 신을 위한 정원사라는 종교단체(엄밀히 보면 환경과 종교과 결합한 형태라 볼수있을 것이다)를 통한 영적인 부분를 다루는 소프트웨어적이고 여성 중심적인(토비,렌) 내러티브를 견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측면들은 오히려 두 작품이 별개의 느낌이나 전작의 후속편적인 느낌보다는 양 작품이 상호보완적으로 다가온다는 느낌을 강하게 느끼게 하고 또한 그 내러티브를 들여다 보게 되면 이러한 상호연관성의 깊이를 알게 되기도 하는 유니크한 구도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전작인 <인간 종말 리포트>의 보완적인 형식(전작에서 다하지 못했던 이야기의 꾸러미를 펼쳐 놓은듯한 착각)으로 비쳐질 수 있다. 내러티브속에 설치되어 있는 개연성을 빌미로 중복적인 이미지들이 색다른 흥미를 불러 일으켜 독자 스스로가 내러티브를 보다 더 풍요롭게 하는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전작인 <인간 종말 리포트>가 한편의 이야기(절망적인 미래상)를 다루고 있다면 <홍수> 말하지 못했던 또 다른 이야기(절망속에서 또 다른 희망을 보는 미래상)를 다루고 있어 비로서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는 구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작품을 미래의 우울하고 암당한 상을 그리는 디스토피아소설로 분류하기엔 뭔가 어색함마저 들고 그렇다고 공상과학소설로는 어울리지도 않는다. 현재 우리는 엄청한 혁신과 발전을 거듭한 과학문명기술이라는 하드웨어와 신자유주의의 기치하에 자본이외에는 그 어떠한 논리도 정당화될 수 없는 소프트웨어를 장착하고 앞만 보고 돌진하는 브레이크없는 기차위에 몸을 담고 있다. 이 기차에는 이러한 양대축(과학문명기술과 자본)을 숭상하는 신도들 이외에는 합석할 수 있는 자석마저 없는 그러 기차이다. 그리스도교을 비롯한 인간이 만들어 낸 종교틀에서 보면 신의 위임자 혹은 대리인 자격으로 전 지구의 모든것을 신탁통치해왔다고 그나마 자부했던 우리들도 이제는 과학기술과 자본이라는 새로운 대리인 앞에서는 명함도 내밀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면들이 작가가 언급했듯이 그러그러한 디스토피아계열의 작품보다는 많은 사유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사색소설이라고 봐야 더 합당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작가의 작품들을 대면한 독자들이라면 작가의 종교와 신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와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상당히 우호적인 견지를 발견하게 된다. 각각의 챕터 서두에서 목사나 사제의 설교을 연상케 하는 부분이나 찬송들을 독립된 구도로 배정하여 종교적인 색체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는듯 하여 고개짓을 하게 하지만 결국 이러한 구도의 설정은 내러티브 중간 중간에 배정한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독백등을 통해서 종교와 신에 대한 생각을 재정립하게 함으로써(큰 프레임은 성경의 홍수와 노아방주을 연상케 하지마 결국 내러티브의 중점은 인간 외부적인 힘의 작용보다는 인간이 자처한 위기상황과 그리고 이를 극복해 나가는 인간의 또 다른 희망적인 부분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종교와 신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보여준다) 작가 나름대로의 사유를 들어내고 있는 장치적인 역활을 할 뿐이지 종교와 신에 대한 냉철한 비판과 사유는 변함이 없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결국 신의 정원사들과 이들의 신념은 종교적인 차원을 넘어선 인류애 그 자체를 표방하면서 물질문명에 찌든 현세에 대한 일종의 경고 메세지로 들여온다. 종교적 의미에서 떠난 영혼의 중요성 (크레이트에 의해 재 탄생하는 새로운 인류종의 순박함과 순수함이 바로 깨끗한 영혼을 상징하듯이)을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이번 작품은 우리 인류의 미래의 모습을 재현하고 예견하는 디스토피아 장르의 작품으로 인식될 수 도 있지만 왠지 소설속에 나오는 씬들이 왠지 낯설지 않고 지금 우리의 현재 모습을 그리고 있는것 같아 절로 가슴한켠을 쓸어내리게 한다. 작가는 독자들이 원하는 미래상을 제시하는 것보다 오히려 현재 이러이러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정신과 육체에 관한 이야기라는 사실에서 오히려 더 큰 공감을 일으키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그동안 작가는 소설가의 의무가 독자들에게 믿을만한 거짓말을 하는것이라고 공표했지만 왠지 이번 작품만은 그동안 작가가 피력해온 믿을만한 거짓말과 사뭇 다른 진실의 한 모습을 담고 있는것 같아 오히려 씁쓸함을 지울수 없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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