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를 만든 열가지 사건 - 한국 일본 중국 대만이 함께 읽는 근현대사
아사히신문 취재반 지음, 백영서.김항 옮김 / 창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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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국, 대만, 일본 이 4대국은 지리적으로 아시아대륙의 동쪽편에 위치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현 세계경제판도 속에서 이들 4개국의 위치는 굳이 경제적인 수치로 말하지 않더라도 세계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는 자리에 올라서 있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중국의 경우만 예를 들더라도 중국땅에 투자못해서 안달이 난 국가들이 시쳇말로 번호표를 뽑아들고 대기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는 아마도 지금으로부터 150년전의 상황과도 흡사하다. 단지 투자에 대한 의도나 방식이 그 당시와 180도 바뀌었다는 점만 빼고선 말이다. 혹자는 이들 4개국이 일체된 경제적 통일성을 갖는다면 EU에 버금가는 엄청난 여파가 세계경제에 미칠것이라고도 한다. 그 만큼 이들 4개국의 역량은 엄청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발전가능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들 4개국의 입장은 판이하게 다르다. 특히 지난 150년간의 과거사에 대한 역사인식은 그야말로 극과 극으로 치닫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왜 그럼 이러한 구도가 형성되었는가? 그리고 이러한 현상에 대한 책임소재는 어디에 있는가? 이런 질문조차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상당한 역사적 편견을 이들 4개국이 가지고 있다는 점 역시 공통된 현실이다. 그런점에서 이번 책은 상당한 반향을 불러 올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동아시아를 만든 열가지 사건>은 대략150년전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최근의 광주민주화운동에 이르기 까지 이들 4개국에 영향을 미친 10가지 역사적 사건을 최대한 공정적인 시각으로 바라 볼려고 하는 취지에서 편찬 되었다. 물론 일본 아사히신문에 특별연재된 칼럼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4개국의 상이한 역사인식을 통해서 공통된 합의점을 도출할려고 하는 의도가 강하다. 특히 4개국의 교과서를 비교함에 따라 10대사건이 자국사에 미치는 영향과 인식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이들 사건들이 일개국을 넘어 이들 4개국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가에 대해서 다시금 상고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러면에서 이번 기획에 높은 점수를 부여하고 싶다. 그동안 이들 4개국의 역사인식 특히 150년동안의 근대사에 관점은 어느 쪽이 진실인지 모를 정도로 첨예한 대립각을 세웠던 것이 사실이고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물론 그 진원지에 일본이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인 것이다. 흔히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선 과거의 좋지 못한 기억들은 잊고 미래를 향해서 서로 相生할 수 있는 합의점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고 매번 정권이 바뀔때 마다 들어 온 이야기이다. 물론 틀린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거의 기억을 지울 수 있는 방법은 가해자의 철저한 반성과 그에 합당한 조치가 선행되어야만 가능한 것 아닐까 싶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기획은 상당히 진일보한 측면을 보여 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아직 갈길이 멀긴하다. 하지만 이러한 작은 시도가 4개국이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역사인식에 다소 유연된 틀을 제공할 수 있다는 단초를 던져준 것이 바로 그 희망이 아닐까 한다. 세계의 어느 국가도 자국사의 인식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특히 동아시아 4개국의 경우 이러한 경향이 특히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근대화라는 개념이 이들 4개국에는 서구열강의 강요로 시작된 근대화이기 때문에 지난 150년동안의 역사에 대해서 남다른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제국주의로 부터 시작된 근대화가 결국 약자의 희생을 강요한 근대화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일본을 제외한 3개국의 역사인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기억의 저편으로 떠나보내고 새로운 출발을 하자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4개국의 교과서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듯이 자국의 유리한 방향으로 역사인식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가해자인 일본의 경우 간략한 사실의 기술형태이고 피해자인 중국이나 한국의 경우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그 당위성을 알리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자국과 직접적인 영향이 없다고 판단되는 사건에 대해선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이 간략하게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점이 잘못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하지만 아편전쟁으로 시작된 150년간의 사건들이 이들 4개국 상호간에 미친 영향은 대단했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그런면에서 세계사에 별도 분리한 동아시아사라는 항목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4개국의 역사는 단절의 역사와는 무관하게 상호 연결된 카테고리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동아시아를 만든 열가진 사건>이라는 책을 통해 새삼 근대화과정에서 발생한 역사적 사건들의 중요함과 그 여파에 대해 많은 점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들 열가지 사건을 통해서 4개국에 영향을 주었던 현실들은 좀더 他者的인 입장에서 견지해 볼 기회가 주어진것 같다. 그동안 우리도 일본에 대한 적대심이 역사 인식 저변에 뿌리 깊게 박혀있다 보니 당연히 역사인식에서도 상당한 왜곡을 가져온게 사실이다. 또한 한국사 이외의 동아시아사에 대한 관심도 적었던게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다소 편협한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한국, 중국, 대만, 일본 이들 4개국은 지리적 근접성이나 한자 유교 문화권이라는 공통된 카테고리를 가지고 있는 세계에서 보기 힘든 유대감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150년전 근대화라는 미명하에 자행된 서구열강의 침탈은 겪었다는 아픈 기억 또한 가지고 있다. 이제 그러한 서구중심에서 무게 중심이 동양으로 기울고 있다. 특히 이들 4개국이 위치한 동아시아쪽의 무게감은 날로 커져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세계사에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이들 국가의 역사적 기원은 오래되었다. 수천년의 역사중 극히 작은 부분이 150년간의 역사가 이들 4개국의 현주소를 말해주고 있다는 것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단순한 시간적인 잣대를 적용하자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요즘 제기되고 있는 식민지근대화론을 수용하자는 말도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4개국이 편협된 역사관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다가 온 것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언제까지 정치적인 도구로 이용하고 단순한 민족감정에만 의지하여 동아시아 역사를 인식할 것인가? 좀더 열리 가슴으로 역사인식을 할때라고 생각된다.

당연히 이러한 시발점에는 몇가지 전제조건이 있어야 한다. 일본의 정확하고 성숙된 역사인식이 최우선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그러한 선행과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태에서 공통으로 합의도출 되었다고 하는 인식은 의미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나머지 3개국 역시 열린가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진정한 가슴으로 악수하지 않는한 이러한 의도는 모두 공염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도 갈길이 멀기만 하다. 지금도 간간히 들려오는 일본 극우파의 망발과 자국내의 비뚤어진 역사관, 갈수록 역사에 대한 관심이 적어지는 세대들... 하지만 이번 책은 그래서 더욱더 많은 점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은 출발이라도 없다면 정말 이들 4개국의 역사인식은 세계사에서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지난 150년 보다는 향후 150년이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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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 악녀 이야기
시부사와 타츠히코 지음, 이성현 옮김 / 삼양미디어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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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통틀어 전무후무한 각종 악행과 비행으로 세계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한 여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녀들은 클레오파트라, 엘리자베스, 메리 스튜어트, 마리 앙트와네트, 측천무후, 서태후등 익히 알려져 있는 인물도 있고 프레데군트, 브룬힐트, 루크레치아 보르자, 브랑빌리에 후작 부인처럼 다소 생소한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후대의 평가는 이들에 대해서 후하지 않은 편이다.  심하게는 이 책의 제목처럼 악녀라는 불명예까지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녀들이 권력의 최고정점에 가까이 있었고 그러한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죽음의 문턱으로 몰아갔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녀들의 권력행사로 인해 한국가 좌초의 위기에 봉착하거나 전쟁이라는 극단의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더욱더 좋지 않은 평가를 받게 된 것 같다. 특히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점에서 그런 악행이나 비행이 더 부각된 것 같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 책의 주인공중 에레체베트 바토리, 브랑빌리에 후작 부인 두명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에게 악녀라는 평가는 한번 제고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에레체베트나 브랑빌리에부인의 경우 극히 개인적인 사이코패스라는 희대의 살인마로써 악녀라는 기준에 적합할 지 몰라도 그외 나머지 인물의 경우는 다른 평가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절대권력의 쟁취를 향한 권력투쟁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스캐들을 개인적인 치부로만 몰아가기엔 왠지 무리가 있다고 여겨진다. 권력이란 피를 나눈 부모, 형제와도 나눌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지 않는가. 단지 이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러한 권력투쟁의 과정을 개인적인 치부의 과정으로 매도할 수 는 없을것이라 본다. 오히려 뒤에서 온갖 부조리와 악행을 자행하면서 보이는 면에선 성군인양 행세하는 남성들보다야 더 자신의 감정 표현에 솔직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권력이라는 마약에 중독이 되면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는 동전의 양면같은 모습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필자의 의도 처럼 선과 악의 구분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종교적, 문화적 잣대로 과연 규정할 수 있을까?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어찌보면 선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지 모른다. 성 바르톨로메 대학살의 주범으로 평가하는 카트린느 드 메디치의 경우 카톨릭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녀들은 악을 제거한다는 신념으로 후세에 악행으로 평가받는 행동을 했던 것이다. 과연 누가 누굴 악녀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차라리 그녀들을 악녀라고 매도하는 우리에게 대리만족이란 미묘한 감정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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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자연사 - 동물과 식물, 그리고 인간의 섹스와 구애에 관한 에세이
애드리언 포사이스 지음, 진선미 옮김 / 양문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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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식물, 그리고 인간의 섹스와 구애에 관한 에세이 

구라는 행성에서 존재하는 생명체는 섹스를 한다. 박테리아에서 부터 이 행성의 주인라고 자부하는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는 섹스를 한다. 물론 약 1000여종의 생명체가 무성생식을 통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종들은 유성생식 즉 섹스를 통해서 후손을 번식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생명이라는 숭고한 개념이 바로 이러한 생식의 과정을 통해서 발현되는 것이다. 

<<성의 자연사>>에서 필자는 다양한 종들의 생식형태를 통해서 자기종을 효과적으로 보존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탄생단계에서 부터 생명의 유지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을 간략하면서도 과학적인 실험과 관찰을 통해서 성()에 대한 개념을 확립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인간사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단어인 성도착자, 간강범, 카니발리즘, 낙태와 영아살해등의 표현을 빌려서 좀더 실감나게 현상들을 설명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생식에 대한 현상을 경제학적인 비용과 이익관점에서 설명한 부분은 독자들로 하여금 내용을 단숨에 각인 시켜준다. 

물론 필자는 생물학적인 견해와 사회학저인 견해를 적절히 대비하면서 이러한 생식이 가져다 주는 의미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있다. 특히 인간을 비롯한 유성생식을 하는 종에 대한 비용발생과 이익취득의 면에서 그들 종 나름의 진화방식을 설명해주고 있다.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대부분 유성생식을 하는 종의 경우 암컷이 수컷보다 비용면에서 많은 부담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수컷들 역시 비용을 부담하고는 있지만 암컷에 비해서 그 책임은 작게 마련이다. 또한 자식을 성장하는데 대한 비용과 위험의 감수 또한 암컷의 경우가 크고 많다. 그럼 이들 종은 왜 이런 비용과 위험부담을 가지면서 유성생식을 고집하고 있는 것일까?  

진화론적 관점에서 자연선택이라는 개념과 상반된다고 볼 수 도 있지만, 무성생식을 통한 번식보다 유성생식을 통한 번식을 선택했던 것은 다름 아닌 개체의 다양성 확보라는 것이다. 암컷이 이러한 비용을 무릅쓰고도 유성생식을 고집하는 이유중에 하나가 바로 유전적으로 다양한 자손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유전자를 가진 후손을 확보함으로써 다양한 자연의 선택에 적응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 진다는 것이다. 또한 단순한 돌연변이가 없어도 환경 및 생물학적 변화에 적응하기 위하여 새로운 유전형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장점이 바로 유성생식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굳이 무성생식이 유성생식에 비해 좋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특히 생물학적으로 번식력이 떨어지는 종일수록 숫자보다는 확률적으로 유성생식을 통해서 번식을 한다는 것이다.

이점 우리 인간에게도 적용되는 부분이다. 

생태계는 끊임없는 경쟁의 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쟁이 일방의 멸종을 이끄는 경쟁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는 것을 우리는 지구의 역사를 통해서 확인했다. 상호 경쟁적 진화를 통해서 종들은 다른종의 희생을 바탕으로 기회를 획득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상호 경쟁적 진화는 지구가 멈추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섹스라는 개념은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보편적으로 유성생식을 하는 모든 종은 지금도 끊임없이 섹스를 하고 있다. 단지 그들과 인간의 차이점은 섹스에 대한 사회학적 인식의 차이에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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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참하라 - 상 - 백성 편에서 본 조선통사 우리역사 진실 찾기 1
백지원 지음 / 진명출판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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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사학자인 필자의 <<왕을 참하라>>는 조선통사이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통사와는 사뭇다른 시각에 저술된 역사서이다. 그동안 조선사를 군주내지는 권력층의 시각에 바라봤다면 이번 시각은 조선민중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조선통사라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을 준다.

<<왕을 참하라>>를 읽고 느끼는 감정은 통쾌함과 서글픔이라고 해야겠다. 
우선 통쾌함이란 학창시절 역사시간을 통해서 배웠고 각종 역사서를 통해서 알고 있었던 조선사에 대한 일종의 역사적사유를 송두리채 흔들었다는 점(그렇다고 필자가 말하듯이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들이 신화나 소설은 결코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과 그 어느 역사서에서 볼수 없는 필자만의 거침없는 언어선택(죽일놈의 왕, 견공지자제분등)나 역사서에는 일종의 금기로 여겨지는 필자의 감정이입등이 마치 읽는 이로 하여금 대리만족의 기쁨을 주고 있다. 물론 조선시대이래로 당당한 양반가의 자손이라고 하는 이들이 보기엔 무척 당혹스럽고 소위 말해서 열이 받게지만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는 정말 통쾌함을 감출수 없다.

두번째는 서글픔이다. 이점은 필자가 머리말에서도 밝혔듯이 조선사 500여년을 통틀어 27명의 군주중에 세종과 정조를 제외한 세월은 일반 민중에겐 암흑같은 시간이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역사를 인식하면서 알게 모르게 우리는 사고는 고정된 관념에서 역사를 보아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것이다. 어두운면보다는 부각되는 부분을 더 조명하게 되고, 군주와 사대부층을 중심으로 보는 역사적 관념이 거의 도식화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인식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한 일반민중에 대한 역사적 배려나 인식은 소홀히 될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이 이번 책을 읽고 나서 느껴지는 감정이 서글프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가지 측면에서 <<왕을 참하라>>는 책 제목처럼 상당한 반향을 불러오리라 여겨진다. 조선의 역대 군주 27명에 대한 평가나 지배계층이었던 사대부들의 무능과 부패등 그들의 치부를 고스란이 들어내고 있고, 민란등을 통한 일반 백성들의 삶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필자의 집필의지를 알 수 있다. 또한 그런 점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단지 몇가지 점에서 필자의 의도가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조선은 절대군주의 나라인 왕조국가이다. 군주를 중심으로 형성된 권력층 일부가 국가전체를 이끌어 가는 구조이다. 이는 조선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역대 왕조국가의 공통된 특징이다. 이러한 구도를 부정하고 소위 우리가 말하는 만인이 평등한 국가라는 개념은 최근래에 들어선 국가개념일 뿐인 것이다. 사회구조가 이러하다 보니 역사적인 서술방식에서 일반 백성의 반영비율을 떨어질수 밖에 없는 것이고 일부 권력층의 시각으로 역사를 서술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후대의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역사는 행간을 읽을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필자의 집필의도는 아마도 이 책을 대략 몇페이지 만 읽어봐도 알수 있을 만큼 그 의지가 대단히 강하다. 단지 아쉬운 점은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뉘양스(그러니까 군주을 비롯한 지배계층과 민중과의 관계설정에서 너무 이분법적인 대립구도로 설정했다는 점)와 필자 개인의 감정이입이 책 전반에 걸쳐 너무 많이 실려있다는 점이다. 필자뿐만 아니라 조선사를 읽고 있노라면 입에서 좋은 소리나올 경우는 드물다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 만큼 안타까운 장면도 수없이 많고 필자의 표현처럼 입에서 개거품물고 싶은 장면 또한 많은 것이 조선사이다. 오죽하면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그 만큼 가정이라는 것이 개입되면 필자가 평가하는 세종이나 정조에게도 적지 않는 부분이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동안 역사학자들이 담지 못했던 면을 총대를 메고 만천한에 고한점에 대해선 높이 평가하고 싶다. 하지만 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자칫하면 오류의 함정에 빠질수도 있다는 점이 심히 걱정된다. 특히 역사에 대해 아직까지 제대로된 개념이 성립되지 않는 청소년이나 일반인들에게 오히려 편협된 시각의 역사관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가 역사를 바라보는 눈은 좌,우 두눈의 균형감각으로 통해서 봐야함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또한 우리가 역사를 통해 얻는 교훈은 과거의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 미래의 바탕이 되고함임을 잊이 말아야 할 것이다.

조선사는 필자의 말대로 수탈의 역사라고 해도 틀린것은 아니다. 왕조국가에서 당연히 민중은 수탈과 착취의 대상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사회적 구조인 것이다. 세계사 유래를 찾기 힘들정도로 오래 유지되었으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민중들이 고생하였겠는가 이는 말안해도 알고 있는 사실인 것이다. 다만 이러한 조선사 또한 엄연한 우리의 역사라는 점에서 이제는 더이상 감출필요 없는 성숙된 역사인식을 가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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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이후의 한국경제 - 글로벌 금융위기와 MB노믹스를 넘어 새사연 신서 4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지음 / 시대의창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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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3.88 ( 35.67) , 1,516.30(▲27.30) 다름아닌 오늘 장마감은 대한민국 경제지표이다. 코스피지수는 3%넘게 급락했고 원달라 환율은 다시 1500원대에 재진입했다. 지금의 경제상황을 단지 주가와 환율로만 대변할 수 없지만 경기선행역활을 하는 주가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는 점과 환율의 상승은 새삼 한국경제가 태풍속으로 진입했다고 하는 증표이다. 

1927년 세계대공황으로 전세계는 정말 공황이라는 것이 이런것이구나 하는 경험을 하게되었다. 이후 세계2차 대전과 케인즈학파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정책등을 대표로 하는 경제사조로 어둠의 끝을 벗어나게 되었다. 이후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정부의 출범과 동시에 새로운 경제사조가 등장하게 된다. 그 이름이 바로 신자유주의라는 것이다. 다아시다시피 신자유주의 대표적인 주장은 바로 시장의 자유이다. 모든 경제활동은 시장에 맡겨두고 정부의 역활은 작을수록 좋다는것이 이사조의 논조이고 그 본색이다. 한마디로 시장자체에 자정능력과 치유능력있다는 소리이다. 미국을 필두로 주창된 신자유주의는 급속히 전세계적으로 번져갔고 그 성과는 대단했다. 냉정시대의 종말을 고한 구소련의 몰락을 가져왔고 세계는 그야말로 산업혁명이후 최대의 부의 폭발시대를 향유하게 되었다. 

이런 신자유주의가 급제동이 걸렸다. 다름아닌 고향인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서브프라임모기지사태로 번진 금융위기는 삽시간에 미국 월가를 마비시키고 유럽으로 그리고 아시아로 번져가고 있다.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내놓는 정책의 약발이 그야말로 하루를 넘기기 힘들정도로 그 깊이를 재단할 수 없을 정도이다. 부랴부랴 미국은 국유화조치를 단행하고 긴급자금을 수혈한다는 정책을 발표하지만 정말 그 끝이 어디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 일개 주택담보대출정도인 서브프라임모기지가 이리도 큰 영향을 미칠까하고 의구심이 자연이 들 것이다. 여기에 바로 신자유주의 막강한 힘이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이전의 경제성장은 실물경제(제조업중심)을 기반으로 경제발전을 해왔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태마는 금융자본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동안 산업금융의 역활을 강조했던 부분을 수익창출모델로 확장하면서 발생하게 된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수익창출모델로 전환되면서 다양한 금융상품이 창출되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뮤츄얼펀드에서 부터 사모펀트, 헤지펀드등의 상품이 고수익을 가져오면서 다양한 파생금융상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서브프라임모기지로 보면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 금융기법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서브프라임모기지를 유동화한 CDO(부채담보부증권), 부채담보부증권을 헷지한 CDS(신용디폴트스왑)이란 형태를 띠고 헤지펀드, 투자은행, 상업은행등 가리지 않고 판매되었었던 것이다. 그 만큼 고수익을 가져오기 때문에 세계금융자본이 몰릴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제조업을 통한 수익창출보다 손쉽고 또한 빠르게 수익을 가져다 주는 상품을 누가 마다 하겠는가? 오죽했으면 한국의 산업은행에서 파산할뻔한 미국의 5대 투자은행을 인수한다고 해서 시끄러운때가 있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런 고수익은 이면에 고리스크라는 반대급부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경제의 정확한 법칙인것이다. 이렇게 고공성장한 신자유주의 급제동이 걸린것은 미국의 경기하락과 부동산가격의 폭락으로 발단이 되었다. 부동산가격의 폭락은 서브프라임모기지로 대출받은 이들의 파산으로 이어지고 이를 유동화한 CDO/CDS의 부실 그리고 이에 투자한 각종펀드와 투자은행, 상업은행의 부실로 이어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파생상품이 복잡하다 보니 만든사람도 이해하기 힘들고 또한 어디까지가 부실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술을 받아야 할 경우가 있는데 의사가 어디까지 수술을 해야할지 모른다는 상황과 같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한국과 같이 대외비중이 높은 나라의 경우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이다. IMF를 거치면서 내실을 다졌다고 자부했던 우리경제가 결국 신자유주의라는 덪에 걸리 꼴이 되었다. 지금의 경제는 금융이 지배하고 있는 형국이다. 산업금융의 역활을 마다한 수익창출모델을 추구했던 금융방식이 고스란히 금융시장 개방으로 한국경제에도 적용되었다. 그러다보니 국내금융기관역시 수익창출모델로 카드,펀드,부동산P/F등을 통한 고수익을 창출했다. 하지만 결국 이런 고수익이 고리스크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왔고 이는 국가경제기반을 뒤흔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시점에서 한국경제가 과연 미국도 포기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고수해야 하는가? 그리고 정부의 시장개입의 방법이 과연 적절한가라는 점에 미네르바라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하면서 전국이 시끄러운 것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아닌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것이다. 한국경제의 현주소를 정확히 파악해야한다는 것이다. 정부개입으로 감세정책을 비롯한 재정정책의 확대, 고용창출을 위한 SOC사업의 확대 및 공기업의 민영화등이 과연 유효적절한 정책인가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인 자료와 근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물론 정부가 주장하는 정책이 다 틀렸다는 소리도 아니고 이 책에서 주장하는 논거가 다 맞다는 소리도 아니다.

단지 이제는 범국민적인 합의에 의한 신중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멀쩡한 공기업의 민영화가 과연 올바른 판단인지, 법인세 종부세등의 감세정책이 부가세나 소비관련 세제의 감세보다 그 효과가 크게 작용할지, 사회복지시설의 지출과 SOC지출로 인한 고용창출의 크기가 어느쪽이 더 확실한지에 대한 냉철한 판단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가 IMF를 극복했던 이유중에 하나는 비록 IMF사태를 초래했던 실물경제에 대한 과투자라는 원인이 있었지만 이러한 실물경제에 대한 투자가 바탕이 되어서 세계경제에 유래없는 빠른시기에 IMF를 졸업했던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더욱이 지금은 국가경제의 기반이라는 개인과 자영업, 그리고 중소기업이 위기에 놓여있다. 경제의 가장 근간을 이루는 요소를 배제한 경제정책이 과연 어느정도 효과를 가져올수 있을까에 대해선 삼척동자라도 그 해답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세계경제를 넘어선 위기감은 그대로 한국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우리에겐 1997년의 아픈경험이 있다. 그래서 더욱더 이번 위기가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도 않고 들려서도 않되는 것이다. 당시 장롱속에 간직했던 자식의 돌반지을 들고 나라살리겠다는 마음으로 십시일반 금반지를 모았던 기억은 한번으로 족하다는 말이다. 물론 대한민국 국민은 경제살리기 확신만 있다면 금반지 보다 더한 것도 서스럼없이 내줄 국민들이다. 하지만 이제는 정확한 비전제시가 없는한 그 누구도 호응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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