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 헤 리비 비씨 노흐 블레 .... 학창시절 화학시간에 주기율표에 나온 원소들이 잘 외워지지 않아서 이런한 방식을 동원해서 머리속에 담아둘려고 노력했던 생각이 난다. 수소에서 시작하여 우누녹튬에 이르기까지 주기율표상의 화학기호만 보더라도 눈앞이 막막했던 시절 화학은 그다지 쉽게 다가오던 그런 분야가 아니였던 기억이 강하다. 노벨을 비롯하여 이후 퀴리부부등 노벨화학상을 받은 학자들의 업적을 보면서 그 대단함을 느끼지만 화학과 난 그저 평행선을 그리듯이 가까울 수 없는 존재로 남아 있었다. 특히 화학공식에 법칙들 그리고 개별원소들의 상이한 반응들은 지금은 기억저편으로 가물거리지만 아직도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기억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화학은 산업화와 근대화를 발판으로 성장한 분야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우리 인류와 함께했던 분야이다. 근대현사를 비롯하여 좀 더 역사를 확장하여 중세 그리고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각종 역사적 기록과 더불어 화학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다. 특히 금을 만들 수 있다는 연금술분야와 더불어 누군가를 제거하는 독약에 이르면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다. <세상을 바꾼 독약 한 방울>은 바로 나와 같이 화학에 문외한이나 한때 절망감을 가졌던 독자들에겐 더욱 더 기쁜 소식으로 다가온다. 고리타분하기만 할 것이라는 선입관을 한꺼번에 넘어서 일사천리로 책장을 넘기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특히 독약으로 지칭되는 유해한 원소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 흥미가 배가 되고 있다. 조선왕들 중 1/3 정도가 독살설에 휘말려 있고 르네상스시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이상형이었던 체사레 보르자와 그의 누이동생이자 연인이었던 루크레치아의 엽기적인 정적 제거 방법, 당나라 측천무후가 애용했다던 정적 제거 방법중 가장 인기 있는 대상이었던 독살과 독약에 대한 내용을 스토리텔링방식으로 전개하고 있어 책을 읽는 속도감과 집중력을 더해주고 있다. 여기에다 한때 동서양을 막론하고(아마도 지금도 이런 야망을 져버지 못한 이들이 있겠지만) 황금을 향한 열정에 부응한 연금술과 내력 및 그들이 즐겨사용했던 방법등을 소개하여 과학서적으로 다소 딱딱해질 수 있는 부분을 걷어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의 사망원인이 수은중독이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그리고 이에 더해 뉴턴이 죽는날까지 금을 만들기 위한 연금술에 매진했다는 사실은 또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20세기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수은중독자중에 형사들이 많았다는 사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모자장수 역시 수은중독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 온도계,형광등,치광용 아말감 충전재등 우리 주변엔 유독한 독금물들이 넘쳐나고 있고 이를 섭취한 동식물이 우리의 식탁에 오르고 있다는 사실등 독약은 먼 옛날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은밀한 물건이 아니라 바로 지척에 있는 평범한 원소들이라는 사실들에서 상당한 충격을 주기도 하지만 그래서 이 점은 오히려 우리에게 더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어버려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히치콕 감독이 이 책을 읽었다면 이 한 권으로 몇 편의 스릴러가 탄생했을거라는 뉴욕 타임스의 리뷰처럼 저자는 역사적 사건들에서 사용되었던 독약의 활용방법과 그 사례들 그리고 마치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방불케하는 남다른 추론을 통해서 화학의 세계를 세롭게 조명하고 있다. 부록으로 화학전문용어에 대한 친절한 해석을 덧붙여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있는 배려도 잊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저자는 화학의 세계를 일반 대중 독자들에게 쉽게 그리고 아주 재미있게 풀어나가고 있는 점이 눈에 들어오며서 화학 전문가로서의 견해를 곁들여 자칫 가십거리로 흘를 수 있는 주제에 대해 무게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예로부터 수은, 비소, 납, 안티모니등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의료용으로 많이 사용되어 왔을 정도로 인간에겐 친밀한 원소들이다. 물론 이러한 원소는 우리의 몸에도 존재하고 있다. 단지 그 양의 과다에 따라 치료용이 되느냐 죽음을 재촉하는 독약이 되는냐의 판단은 인간 스스로에게 있는 것이다.
이미 국내에 소개된 <마녀의 한 다스>라는 책을 통해서 저자인 요네하라 마리여사의 감칠 맛 나는 문필과 기발한 발상 그리고 문화인류학에 해박한 지식을 엿 본 국내 독자라면 그녀만의 남다른 매력을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비록 故人이 되었지만 마리여사의 글들은 지금도 일본내에선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고 국내에도 마니아층을 형성할 정도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아마도 그녀의 유니크하고 시크한 문체와 더불어 유년시절 유럽과 러시아에서 생활한 관계로 흔히 우리들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일본스럽다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마리여사의 글들은 문화인류학적인 시각에서 보더라도 그동안 서양학자들이나 저널리스트들의 오리엔탈리즘적인 편견에서 벗어나 동양적인 시각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독자들의 공감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팬티 인문학>이라는 책 또한 역시 마리여사가 아니면 가히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마저 가지게 하는 어쩌면 가장 저자다운 상념의 표출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우선 책표지에 나온 볼세비키혁명의 아버지인 레닌의 근엄한 모습 그리고 대조적으로 하체는 팬티만 입고 있는 모습에서부터 이번 책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게 될지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있다. 저자는 팬티 즉 속옷에 대한 메타포를 거침 없으면서도 적나라하게 또는 그동안 터부시 되어왔던 프로파간다에 대해서 문화 인류학적인 지식과 저자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극히 사적인 영역을 지상밖으로 끄집어 내고 있다. 팬티에 무슨 인문학적 의미가 담겨있겠는가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지만 팬티의 역사와 그 기원 그리고 지금의 팬티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적나라하게 서술하면서도 전혀 거부감을 주지 않는 저자만의 필력으로 인해 절로 수긍하게 만들고 있다. 아담과 이브의 주요부위를 가렸던 무화과 나무의 잎, 십자가나 성화에서 묘사되고 있는 예수의 모습에서 그의 하체를 가리고 있는 것은 팬티일까 아님 그냥 옷일까? 또한 유물에서 보이는 북방기마민족의 의상에서 팬티의 기원을 찾아야 하는걸까? 등등 문화인류학적인 저자만의 접근이 눈에 띄는 책이다. 고쟁이,훈도시,드로즈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이어온 속옷의 변천은 산업화 현대화를 거치면서 팬티라는 것으로 대체되어 왔고 지금 현대인들에게 출장이나 여행등 집을 잠시라도 떠날때는 어김없이 가장 먼저 챙기는 필수품이자 현대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팬티이다. ""속옷은 특히 하반신에 입는 속옷은 사회와 개인, 집단과 개인 그리고 개인과 개인 사이를 분리하는 최후의 물리적 장벽이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하반신의 속옷은 개인들에게는 최후의 자기 방어용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개인을 넘어선 사회적으로 누구나 공유하고 있는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접근이 가능한 것일 것이다. 이러면에서 저자는 속옷에 대한 그 어떠한 사회적 미학적 정치학적인 담론을 걷어내고 보통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누구나 한번쯤은 궁금해왔던 사안에 대해서 흥미롭게 팬티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내고 있다. 극히 개인적인 영역이기에 가능한 저자의 소소한 이야기가 오히려 심각한 역사적 사건과 연결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역사라는 거대한 강에서 개인의 사소한 영역은 그저 묻히기 마련이지만 개인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지금의 역사라는 거대한 강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속옷에 대한 저자의 담론들은 그저 흥미거리로만 치부하기엔 많은 점들을 시사해 주고 있는 것이다.
또 다시 하버드다. 세계초일류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어린시절부터 맞춤교육을 받고 특목고를 거쳐 아이비리그 최정상의 학교 하버드로 보내는 것이 부모들의 소원이자 출세와 부의 예비상징으로 비쳐지는 하버드, <정의란 무엇인가>로 하루아침에 비소설분야로는 보기 드물게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마이클 샌델 역시 하버드 교수이다. 그리고 세계적인 석학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리더들이 졸업한 학교 바로 하버드 하버드하는 하버드이다. 그러면 한번쯤은 왜 세상사람들이 하버드라고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오랜전통, 뛰어난 교수진, 우수한 재정지원등 여러가지 이유를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요즘 왜만한 대학교육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려나기 쉽상이다. 그것보다 다른 견인차역활을 하는 무엇인가가 하버드에 있기 때문에 세상은 하버드를 주목하는 것일게이다. 아마도 어쩌면 <하버드 인문학 서재>가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군주론],[수상록], [아이네이스],[국부론]등 50여편의 서양고전을 한데 묶어 출간한 하버드 클래식 시리즈는 한번쯤은 누구나 들어보거나 읽어보았던 전형적인 서양고전들이다. 마치 우리에게 [연암집],[한중록],[북학의]등의 고전에서 볼 수 있듯이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쉽게 접근할 수 없거나 이해하기 난해한 고전들의 목록자체만 접하는 것으로도 일반적인 독자들에겐 그저 부담으로 와닿을 수 밖에 없는 책들이 즐비하다. 솔직히 이중 과연 몇권의 책이나 읽어나 봤을까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그나마 한때 인문학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접근으로 인해 인문학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이 증폭되어 학계나 출판계 전반에 걸쳐 고무된 적이 있다. 물론 지금도 뜻있는 학자들이나 출판계에서는 꾸준하게 인문학 출간에 매진하고 있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거리이지만 아직도 선진산업국에 비하면 갈길이 멀기만 한것 역시 사실이다. <하버드 인문학 서재>는 하버드 클래식의 50여권의 고전에 대한 저자의 리뷰중심으로 1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독서계획에 의해 읽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살아있는 독서기록들로 구성되어 있는 보기 드문 책이다. 그때 그때 읽었던 책들을 정리한것이 아니라 컬럼비아대학의 교양수업을 통해 고전의 참맛을 일깨워 주었던 데이비드 덴비의 <위대한 책들과의 만남>처럼 자신이 직접 읽고 느낀 바를 간략하게나마 정리해서 같은 책을 읽었던 독자라면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비단 접해보지 못했더라도 각 고전에 대한 리뷰와 그 책을 읽게되는 동기 및 주변여건등의 설명만 미루어 짐작하더라도 충분히 가슴에 와닿는 표현들과 책에 대한 느낌을 가져오게 한다. 다만 접해보질 못했던 책들이 너무 많아 리뷰자체가 어렵기도 하고 구름잡는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고전을 이해하는 폭을 넓혀주기엔 부족함이 없다. 인문학에 지속적인 관심과 더불어 왜 인문학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 가에 대한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하버드라는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가 출세와 부의 상징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제대로 된 학문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여길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인것 같다. 저자처럼 인문학이라는 바다속에서 한 1년쯤은 허우적 거려 보는 것 또한 그 다지 나쁘지 않을것 같다는 생각만 간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