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티 인문학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속옷 문화사 지식여행자 10
요네하라 마리 지음, 노재명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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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미 국내에 소개된 <마녀의 한 다스>라는 책을 통해서 저자인 요네하라 마리여사의 감칠 맛 나는 문필과 기발한 발상 그리고 문화인류학에 해박한 지식을 엿 본 국내 독자라면 그녀만의 남다른 매력을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비록 故人이 되었지만 마리여사의 글들은 지금도 일본내에선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고 국내에도 마니아층을 형성할 정도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아마도 그녀의 유니크하고 시크한 문체와 더불어 유년시절 유럽과 러시아에서 생활한 관계로 흔히 우리들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일본스럽다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마리여사의 글들은 문화인류학적인 시각에서 보더라도 그동안 서양학자들이나 저널리스트들의 오리엔탈리즘적인 편견에서 벗어나 동양적인 시각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독자들의 공감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팬티 인문학>이라는 책 또한 역시 마리여사가 아니면 가히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마저 가지게 하는 어쩌면 가장 저자다운 상념의 표출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우선 책표지에 나온 볼세비키혁명의 아버지인 레닌의 근엄한 모습 그리고 대조적으로 하체는 팬티만 입고 있는 모습에서부터 이번 책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게 될지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있다. 저자는 팬티 즉 속옷에 대한 메타포를 거침 없으면서도 적나라하게 또는 그동안 터부시 되어왔던 프로파간다에 대해서 문화 인류학적인 지식과 저자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극히 사적인 영역을 지상밖으로 끄집어 내고 있다. 팬티에 무슨 인문학적 의미가 담겨있겠는가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지만 팬티의 역사와 그 기원 그리고 지금의 팬티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적나라하게 서술하면서도 전혀 거부감을 주지 않는 저자만의 필력으로 인해 절로 수긍하게 만들고 있다. 아담과 이브의 주요부위를 가렸던 무화과 나무의 잎, 십자가나 성화에서 묘사되고 있는 예수의 모습에서 그의 하체를 가리고 있는 것은 팬티일까 아님 그냥 옷일까? 또한 유물에서 보이는 북방기마민족의 의상에서 팬티의 기원을 찾아야 하는걸까? 등등 문화인류학적인 저자만의 접근이 눈에 띄는 책이다. 

고쟁이,훈도시,드로즈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이어온 속옷의 변천은 산업화 현대화를 거치면서 팬티라는 것으로 대체되어 왔고 지금 현대인들에게 출장이나 여행등 집을 잠시라도 떠날때는 어김없이 가장 먼저 챙기는 필수품이자 현대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팬티이다. ""속옷은 특히 하반신에 입는 속옷은 사회와 개인, 집단과 개인 그리고 개인과 개인 사이를 분리하는 최후의 물리적 장벽이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하반신의 속옷은 개인들에게는 최후의 자기 방어용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개인을 넘어선 사회적으로 누구나 공유하고 있는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접근이 가능한 것일 것이다. 이러면에서 저자는 속옷에 대한 그 어떠한 사회적 미학적 정치학적인 담론을 걷어내고 보통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누구나 한번쯤은 궁금해왔던 사안에 대해서 흥미롭게 팬티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내고 있다

극히 개인적인 영역이기에 가능한 저자의 소소한 이야기가 오히려 심각한 역사적 사건과 연결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역사라는 거대한 강에서 개인의 사소한 영역은 그저 묻히기 마련이지만 개인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지금의 역사라는 거대한 강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속옷에 대한 저자의 담론들은 그저 흥미거리로만 치부하기엔 많은 점들을 시사해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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