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혹은 한 남자의 자살 노트 2
마틴 에이미스 지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돈과 인간의 탐욕에 대해서 이 보다 솔직한 표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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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혹은 한 남자의 자살 노트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25
마틴 에이미스 지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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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인간의 탐욕에 대해서 이 보다 솔직한 표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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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혹은 한 남자의 자살 노트 2
마틴 에이미스 지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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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산업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머니 즉 돈 만큼 친숙한 대상도 없을 것이다. 자연발생적인 관계인 가족과 인간관계만큼이나 돈은 우리 인간들에게 너무나 당연시 다가오는 존재이기도 하다. 인류가 경제라는 개념을 터득하면서 발명한 화폐는 당초의 교환가치의 표방을 뛰어넘어 자산증식의 축적가치로 변질되었고 더 나아가 가족이나 사회나 문화나 종교에서보다 오히려 더 포근함과 인간다움, 우월성 그리고 믿음 아닌 확신을 가져오고 있다. 하루를 마감하고 침대에서 잠들고 다시 아침에 일어나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선 돈을 등한시 할 수 없는 그런 세상을 우리는 그다지 인지하지 못하면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세상은 돈에서 시작해서 돈으로 끝난다.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죽을때 입는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라는 금언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세상이기도 하다. 매일같이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는 얼청없는 사건들의 이면에는 항상 돈이라는 묘한 존재가 깔려있고 톱기사로 제단되는 스캔들에도 어김없이 돈이 그 흉한 얼굴에 살며시 미소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서 돈을 버는 것인가? 돈을 벌기 위해서 사는 것인가? 라는 명제에 대해서 이젠 무어라 단언하기도 힘든 세상이 되어 버렸다. 

<돈 혹은 한 남자의 자살 노트>는 바로 면도날 같은 돈의 양면성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나름 잘나간다는 런던의 광고감독이 우연히 비행기에 알게된 뉴욕의 영화제작가의 제의에 따라 영화제작을 수락하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탐욕과 이로 인한 끝도 없는 추락의 나락 그리고 자살시도 그야말로 돈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쏟아내고 있는 아주 시니컬한 작품이다. 특히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서 그동안 도스또예프스끼나 톨스토이등의 대문호들 통해서 문학작품하면 떠올리게 되는 작품성내지는 그와 거의 동격으로 간주되어버린 품의에 대해서 심각한 도전장을 던져주고 독자들로 하여금 과연 문학작품이 이렇게 막나가도 되는가에 대해서 살짝 혼란을 가져다 준다. 포르노영화를 생중계하는 듯한 표현들 그리고 거의 모든 대사에 등장하는 육두문자와 낯뜨거운 성기의 표현들에서 독자들은 과연 이놈의 소설을 어디까지 읽어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걱정은 한때의 낯뜨거움으로 남고 끝까지 독자의 눈을 잡아둔다. 그만큼 내러티브가 상당히 재미 있으면서 뭔가를 끌어 당긴다는 반증이기도 하면서 주인공 존 셀프가 타락해 가는 과정에서 어쩌면 우리의 단면을 보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경쟁자 하나가 사라져 간다는 위안을 받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문학작품에서 성행위의 묘사는 활자화라는 제약도 있었지만 왠지 현실성이 다소 결여된 그러면서도 미화된 행위로 독자들에게 다가왔고 독자들은 이러한 표현들에 자연스럽게 빠져드는 매너리즘같은 절차를 반복해왔다. 또한 육두문자의 사용 역시 내러티브의 긴장감이나 화제설정의 변경 내지는 강화를 위해서 사용되는 조미료 정도의 장치로 등장했지만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서 이러한 통념들을 과감히 벗겨 버렸다. 솔직히 나체 그대로 보여주면서 소설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낯뜨거움을 넘어 수치스러운 느낌마져도 자아내게 하지만 실상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돈만큼이나 섹스 그리고 욕 역시 자연스럽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오히려 이러한 막나가고 자연스러운 표현들이 이 작품을 완독하게 하는 매력중에 하나이다. 물론 이러한 하드웨어적인 기법에서 다소 특이하게 보이는 작품정도로 치부될 수 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30여년전의 작품이지만 작가가 통찰하고 있는 돈에 대한 탐욕과 중독성은 지금의 시대에 딱 맞는 예견으로 다가온다는 점에서 많은 생각을 갖게 하는 작품이다. 비록 소설이지만 소설속에 녹아있는 각종 인간군상들이 상상하는 탐욕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고 책을 읽는 내내 공감이 간다는 그 자체만을도 왠지 섬뜩함을 지울수 없게 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투자했던 시간을 돈으로 환산해보고 책표지 뒤편의 책값을 보고 얼마나 팔리면 BOP에 도달할 것인가, 그리고 작가는 얼마나 인세를 챙겼을까, 불안한 금융시장에서 어디에 투자해야 그야말로 따뜻한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들이 오버랩되는 자신을 보면서 나 역시 돈이라는 마력에 중독되어 있구나라는 쓴 웃음을 짓게 하는 작품이다. 돈에서 시작에서 돈으로 끝난다 아니 돈의 끝은 없는지도 모른다. 사회진화학의 입장에서 보면 돈만큼 제대로 된 진화를 해온 존재는 없어 보인다. 오늘도 지금 이 시각에도 돈에 대해서 생각한다. 과연 돈은 무엇인가? 그리고 돈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결국 답은 없다 라고 자위해보고 싶어 진다. 왜 이미 우리도 그 중독성의 감미로움을 떨쳐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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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산업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머니 즉 돈 만큼 친숙한 대상도 없을 것이다. 자연발생적인 관계인 가족과 인간관계만큼이나 돈은 우리 인간들에게 너무나 당연시 다가오는 존재이기도 하다. 인류가 경제라는 개념을 터득하면서 발명한 화폐는 당초의 교환가치의 표방을 뛰어넘어 자산증식의 축적가치로 변질되었고 더 나아가 가족이나 사회나 문화나 종교에서보다 오히려 더 포근함과 인간다움, 우월성 그리고 믿음 아닌 확신을 가져오고 있다. 하루를 마감하고 침대에서 잠들고 다시 아침에 일어나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선 돈을 등한시 할 수 없는 그런 세상을 우리는 그다지 인지하지 못하면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세상은 돈에서 시작해서 돈으로 끝난다.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죽을때 입는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라는 금언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세상이기도 하다. 매일같이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는 얼청없는 사건들의 이면에는 항상 돈이라는 묘한 존재가 깔려있고 톱기사로 제단되는 스캔들에도 어김없이 돈이 그 흉한 얼굴에 살며시 미소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서 돈을 버는 것인가? 돈을 벌기 위해서 사는 것인가? 라는 명제에 대해서 이젠 무어라 단언하기도 힘든 세상이 되어 버렸다. 

<돈 혹은 한 남자의 자살 노트>는 바로 면도날 같은 돈의 양면성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나름 잘나간다는 런던의 광고감독이 우연히 비행기에 알게된 뉴욕의 영화제작가의 제의에 따라 영화제작을 수락하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탐욕과 이로 인한 끝도 없는 추락의 나락 그리고 자살시도 그야말로 돈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쏟아내고 있는 아주 시니컬한 작품이다. 특히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서 그동안 도스또예프스끼나 톨스토이등의 대문호들 통해서 문학작품하면 떠올리게 되는 작품성내지는 그와 거의 동격으로 간주되어버린 품의에 대해서 심각한 도전장을 던져주고 독자들로 하여금 과연 문학작품이 이렇게 막나가도 되는가에 대해서 살짝 혼란을 가져다 준다. 포르노영화를 생중계하는 듯한 표현들 그리고 거의 모든 대사에 등장하는 육두문자와 낯뜨거운 성기의 표현들에서 독자들은 과연 이놈의 소설을 어디까지 읽어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걱정은 한때의 낯뜨거움으로 남고 끝까지 독자의 눈을 잡아둔다. 그만큼 내러티브가 상당히 재미 있으면서 뭔가를 끌어 당긴다는 반증이기도 하면서 주인공 존 셀프가 타락해 가는 과정에서 어쩌면 우리의 단면을 보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경쟁자 하나가 사라져 간다는 위안을 받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문학작품에서 성행위의 묘사는 활자화라는 제약도 있었지만 왠지 현실성이 다소 결여된 그러면서도 미화된 행위로 독자들에게 다가왔고 독자들은 이러한 표현들에 자연스럽게 빠져드는 매너리즘같은 절차를 반복해왔다. 또한 육두문자의 사용 역시 내러티브의 긴장감이나 화제설정의 변경 내지는 강화를 위해서 사용되는 조미료 정도의 장치로 등장했지만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서 이러한 통념들을 과감히 벗겨 버렸다. 솔직히 나체 그대로 보여주면서 소설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낯뜨거움을 넘어 수치스러운 느낌마져도 자아내게 하지만 실상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돈만큼이나 섹스 그리고 욕 역시 자연스럽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오히려 이러한 막나가고 자연스러운 표현들이 이 작품을 완독하게 하는 매력중에 하나이다. 물론 이러한 하드웨어적인 기법에서 다소 특이하게 보이는 작품정도로 치부될 수 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30여년전의 작품이지만 작가가 통찰하고 있는 돈에 대한 탐욕과 중독성은 지금의 시대에 딱 맞는 예견으로 다가온다는 점에서 많은 생각을 갖게 하는 작품이다. 비록 소설이지만 소설속에 녹아있는 각종 인간군상들이 상상하는 탐욕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고 책을 읽는 내내 공감이 간다는 그 자체만을도 왠지 섬뜩함을 지울수 없게 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투자했던 시간을 돈으로 환산해보고 책표지 뒤편의 책값을 보고 얼마나 팔리면 BOP에 도달할 것인가, 그리고 작가는 얼마나 인세를 챙겼을까, 불안한 금융시장에서 어디에 투자해야 그야말로 따뜻한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들이 오버랩되는 자신을 보면서 나 역시 돈이라는 마력에 중독되어 있구나라는 쓴 웃음을 짓게 하는 작품이다. 돈에서 시작에서 돈으로 끝난다 아니 돈의 끝은 없는지도 모른다. 사회진화학의 입장에서 보면 돈만큼 제대로 된 진화를 해온 존재는 없어 보인다. 오늘도 지금 이 시각에도 돈에 대해서 생각한다. 과연 돈은 무엇인가? 그리고 돈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결국 답은 없다 라고 자위해보고 싶어 진다. 왜 이미 우리도 그 중독성의 감미로움을 떨쳐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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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8기 서평단 대타로 지난달부터 참여했는데 이거 너무 금새 시간이 흘러가버리네요 

이번 9기에 지원은 했는데 잘되야 할텐데 말이죠^^ 

그나저나 마지막 추천 도서는 채택되었으면 합니다... 

 

정조시대와 그 이후를 구획하는 선은 무엇인가
이 책의 제1부 1장은 정조의 개혁조치들이, 조선왕조를 오랫동안 지탱시켜온 메커니즘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장기 지속의 근간이 된 ‘공론정치’의 특징과 구조를 다뤘다. 제2장과 3장에서는 세도정치기의 전사(前史)인 영조와 정조시대의 공론정치의 양상과 국왕들의 대응방식을 살폈다. 영조와 정조의 친민(親民)정치, 즉 국왕이 언관과 신료들을 거치지 않고 직접 백성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그전 시대와 다른 소통방식을 볼 수 있다. 특히 제4장에서는 국왕 정조의 공론에 대한 인식과 언관들의 관료에 대한 탄핵조치를 실증적으로 분석했다.
제2부는 이 책의 중심부로서 세도정치기의 국내외 정치를 다섯 장으로 나누어 살폈다. 먼저 제5장에서는 당시의 핵심 인물이던 국왕, 대왕대비, 외척 세도가의 말을 정치보복과 민생논의의 실종이라는 측면에서 고찰했다. 그리고 침묵과 동원의 널뛰기라는 특징을 보인 그 시기 언론의 탄핵 내용을 통계로 살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정이 부닥친 첫번째 도전은 대규모 반란이었다.
제6장에서는 순조정권의 최대 위기라 할 수 있는 ‘홍경래의 난’이라는 119일간의 반란사건을 다루었다. 조정의 공론정치 메커니즘의 마비와 순조정권의 무능력, 그로 인한 민심의 이반현상 등 순조 정권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 사건이었다. 제7장에서는 세도정치기의 언론구조를 경색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황사영백서사건을 다루었다. 제8장에서는 정조시대와 순조시대를 관료이자 지식인으로 살았던 정약용이 진단하는 시대인식과 정치비전을 살폈다.
제3부에서는 세도정치기 이후의 조선정치를 이해하기 위한 세 개의 글을 실었다. 먼저 제10장에서는 흥선대원군의 집권과 고종의 친정(親政)체제하에서 시도된 공론정치의 복원 시도가 몇가지 국내외적인 사건들을 겪으면서 무산되고, ‘대한제국’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체제가탄생하는 과정과 그 의미를 살폈다. 제11장에서는 1898년의 만민공동회에서 나타난 근대적 공론정치의 양상을 살핀다. 정조시대에 통청(通淸)으로 나타났고, 세도정치기에는 민란(民亂)의 형식으로 표출되었던 백성들의 저항과 목소리가 표출되는 만민공동회는 바로 직전의 철종시대까지와 전혀 다른 역동성과 근대적 공론장의 탄생을 보여준다. 마지막 제12장에서는 조선왕조가 일제에 의해 패망한 이후 등장한 복벽(復?)운동, 다시 왕정체제를 복구하려는 움직임과 그에 맞서 공화정이라는 새로운 정치노선을 걸으려는 세력 사이의 대립과 충돌을 살핀다. 

 

 

이 책은 메이지 지대의 상고주의, 국체사관, 랑케식 실증주의, 황국사관, 근대주의, 문화사 그룹, 강좌파, 전후역사학, 사회사, 향토사, 마이노리티의 역사 등 근현대 역사학이 지향한 거의 모든 부류를 분석과 평가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 가운데 20세기 일본 역사학의 흐름은 지은이는 크게 사관을 중심으로 실증주의, 근대주의, 마르크스주의 세 갈래로 나누어 시대사와 분야사를 검토한다.
시게노 야스쓰구(重野安繹), 구로이타 가쓰미(?板勝美) 등을 출발점으로 한 실증주의 역사학은 근대 역사학의 토대가 되었을 뿐 아니라 국학이나 신토 황국사관의 역사 왜곡에 맞서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건이 그때까지 성역이던 신토(神道)를 객관적인 연구 대상으로 삼게 됨에 따라 발생한 ‘구메 구니다케(久米邦武) 사건’이다. 하지만 고증과 사료에 따른 ‘있는 그대로 서술’을 강조한 실증주의 역사학은 ‘무사상과 탈정치’의 성격을 띠며 사실상 천황제와 군국주의에 눈을 감기도 했다. 

 

 

1860년에서 1890년대까지 서부개척기의 미국은 황금과 마차와 총잡이의 시절이었다. 인디언들은 땅을 소유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고, 그들의 땅으로 들어온 백인들은 황금을 위해 땅을 반드시 차지해야 했다. “신은 진정 우리에게 축복을 내렸다. 황금은 여기 우리의 발치에 널려 있어 그저 주워 담기만 하면 된다”고 했던 미군 소령의 말이 당시 백인들의 신념을 대변한다. 땅을 빼앗기 위해 워싱턴의 정책입안자들은 ‘명백한 운명’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명백한 운명’이란 유럽인과 그 후손들이 신대륙을 다스리도록 운명 지어져 있으며, 지배민족으로서 당연히 인디언의 땅과 삼림과 광산을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디언들은 ‘백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양도 서류에 백인 식으로 서명을 했다. 백인들이 땅 값으로 건넨 것은 인디언들이 신기해하는 ‘구슬 몇 개’가 전부였다. 그 후 30년간 인디언들의 씨를 말릴 때까지, 백인들은 계속 거짓말로 땅을 차지했고, 꾸준히 백인의 말을 믿었던 인디언들은 결국 멸족당한다. 

 

 

 

영장류학자에서 세계적인 환경운동가로 거듭난 제인 구달,
그녀가 걸어간 희망의 여정 50년을 스케치하다

"인간이 개성과 마음, 감정을 지닌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지구상에 있는 감각과 지혜를 지닌 모든 생명을 이용하고 학대하는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로 최소한 저 자신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제인 구달의 강연 한 대목이자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다. 이러한 이야기는 구제역 파동으로 300여만 마리의 가축을 땅속에 묻고 몸서리 치고 있는 우리 사회에 더욱 강렬하게 들린다. 소, 돼지의 불행이 수질 오염과 토양 황폐화로 우리의 불행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 제인 구달이 이야기하는 인간과 동물의 '공존'은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가치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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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1-03-14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학쪽에 관심이 많으신가봐요. 조금 전문적인 것 같지만, <20세기 일본의 역사학> 같은 책은 저도 관심있게 보았습니다. 이 책 옮긴이의 말을 보니, 미래의 역사학을 내다보는 이 책의 시각을 살피며, 우리는 어떠한가라는 질문을 하고 있는데, 우리의 역사학은 아직 과거의 문제에 너무 매여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책을 읽으면, 우리의 미래 역사학에 대해서도 고찰해 볼 수 있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