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죽음과 불멸 - 의사와 시인

 

죽음은 어린 시절부터 지바고에게 낯설지 않은 것이었다. 소설은 어린 지바고인 유라의 어머니의 장례식으로 시작된다. “지바고(부인)의 장례식을 치루는 겁니다라는 문장은 그 중의적인 의미 산 자를 매장한다’(‘지바고Zhivago’산 자의 목적격이기도 하다)로 인해 삶과 죽음의 복합적 관계를 암시하고 있다. 곧이어, 조만간 유라의 벗이 될 미샤 고르돈과 그의 아버지가 동승한 기차에서 지바고의 아버지가 투신자살하는 장면이 묘사된다. 부모의 때 이른 죽음을 겪으면서 지바고는 삶과 죽음에 대해 남달리 초연한 태도를 갖게 된다. 그의 외숙이자 대학자인 니콜라이의 영향도 일정 부분 작용하는 바, 비단 종교적인 차원의 논의를 떠나서 죽음의 대극에 서 있는 것은 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불멸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에게 연일 죽음과 대면하는 의사라는 정체성 외에, 부활과 불멸을 향한 욕망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공간인 문학과 시인이라는 정체성이 필요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문학마저도 혁명과 정치에 봉사하도록 강요되었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지바고와 그의 시 및 산문(일기)는 가히, 작가 파스테르나크에게 붙여졌던 퇴폐적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었을 터이다. 한 인간으로서의 유리 지바고도 다분히 기회주의적이며 그것이 아니라면 최소한 무기력하고 나약한 인물로 읽힐 수 있겠다. 1차 세계 대전에 군의관으로 참전했으나 그에게 어떤 거국적 이념이나 명분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혁명 이후 내란 중 파르티잔들 틈에서 활동하게 된 것도 이미 그의 애인이 된 라라를 만나러 가던 도중 납치되었기 때문이었다. 전쟁과 혁명에 대한 그의 태도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여인에 대한 사랑에서도 그는 능동적인 행동의 주체로서의 면모를 거의 보여주지 못했다. 지바고가 자신의 삶의 주체로서 활동한 유일한 영역은 그러니까, 문학-시였다.

 

 

 

 

 

 

 

 

 

 

 

 

 

 

 

 

 

<닥터 지바고>의 마지막 장인 17장에 수록된 유리 지바고의 시들은 혁명의 가두리에 머물고 있다가 불가피하게 그 물결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던 귀족 태생 지식인의 역사와 문학, 자신의 소명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가령 첫 번째 시 햄릿을 보자. 러시아문학사에서 물론 양가적인 의미를 띠긴 하지만 대체로 행동하기보다는 사유하는 인물로 받아들여졌던 햄릿은 파괴를 통한 재건을 슬로건을 내세운 혁명기의 러시아-소비에트에서는 결단코 긍정적인 인물상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지바고는 여러 다른 시에서도 보이듯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햄릿의 형상을 결합시키되, 이 문학적이고 종교적인 형상을 궁극적으로는 혁명과 마주한 시인의 이상적인 표상으로 제시하고 있다. 혁명이 아니었다면 그는 의사와 시인으로서의 직분에 충실하면서 평온한 삶을 살았을 것이며, 그에게는 어떤 순간적인 충격으로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을 수 없으며 요동치는 역사 위에 존재하는 뭔가 더 높고 더 숭고한 원칙이 있었다. 최소한 그러한 믿음이 있었다. 따라서 아버지, 나의 아버지 만일 할 수만 있으시다면, /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주소서 () 그러나 연극의 순서는 이미 짜여져 있고, / 길 끝은 피할 수가 없다라는 시구는 역사의 테러를 무조건 회피하거나 무기력하게 수용하는 것으로 읽혀서는 안 된다. 햄릿-그리스도의 처절한 고백은 차라리, 인간 개인의 힘으로는 어떻게 뒤바꾸어 놓을 수 없는 절대 법칙에 대한 작가 지바고-파스테르나크의 심오한 통찰과 고뇌의 산물이며 그의 일견 우유부단해 보이는 삶 역시도 이 법칙에 맞서 그가 취할 수 있었던 가장 적극적인 대응책이었던 것이다.

 

3. 붉은 마가목 열매 - 사랑과 혁명

 

유리 지바고가 성장기를 보낸 그로메코 집안의 파티에서는 빨간 마가목 열매로 담근 보드카를 선보이곤 했다. 마가목 열매는 아직은 대러시아제국이 존재했던 그 시절, 유년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뭔가였던 것이다. 하지만 󰡔닥터 지바고󰡕의 주인공들이 성장하고 이와 맞물려 역사의 흐름이 거세질수록 마가목 열매의 의미역은 혁명 전반으로까지 확대된다. 특히 12눈 속의 마가목의 첫 장면에서 파르티잔 부대의 주둔지 근처 눈 밭 위에 홀로 우뚝 솟은 산마가목 나무에 달려 있는 빨간 열매들은 혁명으로 인해 희생된 피들, 그들의 선혈의 직접적인 상징으로 기능한다. 러시아의 하얀 설원을 배경으로 한 붉은 산마가목 열매는, 또한 그 눈부신 아름다움과 신비스러움에 있어서 라라와 합치되기도 한다. 파르티잔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살육과 광기를 견디다 못해 탈출을 결심하고 방황하던 중 지바고의 눈에 들어온 눈밭의 또 다른 산마가목 나무는 나의 마가목 아가씨라라의 다른 이름이었던 것이다.

 

(계속...)

 

-- 왜 우리는 계속 이 소설을 읽는가. 영화화되는 것 포함.

 

 

 

눈 덮인 설원을 달리는 썰매. 데이비드 린의 <닥터 지바고>는 어린 시절 러시아문학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는데, 실제 영화 속 배경은 러시아가 아니었다는..-_-;; 최근 BBC에서 만든 <닥터 지바고>. 키이라 나이틀리가 라라 역을 맡았는데, 어떨지 궁금하다. 이미지만 봐서는 너무 안 어울리는 캐스팅..ㅠ.ㅠ

 

 

 

물론 더 잘 만든 건 (끝까지는 못 봤지만)  러시아 판 <지바고>이다. 단, 올렉 멘쉬코프가 아무리 훌륭한 배우라도, 중년의 나이로 이십대 유리 지바고(유라)를 감당하는 건 아무래도 역부족. 특히, 라라 역을 맡은 젊고(어리고!) 예쁜 여배우와 너무 대조되어 몰입이 잘 안 될 정도였다..ㅠ.ㅠ 

 

 

 

-- 마가목(Рябина)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신지. 러시아 가면 한 번 보고 싶었는데, 떠날 즈음에 알았다, 기숙사 건물 옆에 줄창(!) 서 있던 바로 그 나무가 마가목이었음을...-_-;; 

<지바고>의 이미지대로 하얀 눈을 묻히고(^^;;) 있는 사진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눈과 함께 있으면 진짜 '선혈'이라는 단어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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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혁명의 시:

- 파스테르나크(1890-1960)의 <닥터 지바고>(1957)

 

 

 

 

0. 들어가며: 문학과 이데올로기

 

20세기 러시아-소비에트 문학사를 논할 때 독자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코,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가 되겠다. 특히 우리나라 독자들의 머릿속에는 데이비드 린의 영화 닥터 지바고(1965)까지 더해져서 소설가로서의 파스테르나크가 20세기 러시아문학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런데 그는 소설가이기보다는 시인이었으며 <닥터 지바고>는 그의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그 때문에 이 소설은 문학사적 관점에서 이것과 자주 비교되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와 달리 소설적 문법보다는 서정시적 문법에 충실한 작품이며, 다소 과장해서 말하자면 아름답고 세련된 산문으로 쓰인 한 편의 긴 서정시라고 할 수 있다.

 

 

 

 

 

 

 

 

 

 

 

 

익히 알려진바, 1955년에 완성된 이 작품은 혁명의 이데올로기를 전격 부정하고 있다는 이유로 국내에서 출판이 거부되어 1957년 이탈리아에서 먼저 출판되었다. 작가가 노벨상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른바 사회주의 리얼리즘(socialist realism)의 원칙 하에 문학과 이데올로기 간의 위계질서가 확고하게 굳어져버린 정치적 정황과 밀접하게 닿아 있었다. 어쩌면 스캔들과도 같은 일련의 사건 때문에 <닥터 지바고>는 지나치게 폄하되거나 혹은 반대로 지나치게 과대평가되는 경향도 없지 않다.

 

실상 파스테르나크는 문학과 예술과 학문 외적인 어떤 것, 즉 정치나 혁명에는 원칙적으로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소비에트 혁명을 전후하여 많은 작가들이 소비에트의 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망명하는 일이 적지 않았지만(<롤리타>의 작가 나보코프(1899년생)가 대표적인 예이다) 소위 반체제 작가들에게 있어 추방 명령을 이겨가면서까지 고국에 남아 소비에트-러시아를 살아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따라서 내적 망명 문학’, ‘유배 문학이라고 불릴 수 있는 <닥터 지바고>를 이해함에 있어서 문학과 정치, 예술과 이데올로기 간의 역학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출발점이자 종결점이 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1. 파스테르나크와 지바고: 대러시아제국에서 소비에트 연방으로

 

파스테르나크는 1890년생으로서 <닥터 지바고>의 주인공 지바고와 마찬가지로 1905<피의 일요일 사건>, 1차 세계 대전, 19172월 혁명과 10월 혁명, 백위군과 적위군 간의 전쟁, 즉 내란에 이르기까지 천년의 울림을 자랑하는 대러시아제국이 하루 아침에 소비에트 연방으로 바뀌는 과정을 살아 있는 역사로 체험했다.

 

이 역사의 격동 속에서 파스테르나크 연배의 작가들 대부분이 부닥쳤던 딜레마는 문학과 이데올로기 간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였다. 혁명 전야, 젊은 작가들은 혁명을 새로운 세계의 도래로 생각하면서 환영했다. 세기말과 세기초 러시아문학에서 혁명이 거의 종교적이고 비의적인 색채마저 띠면서 신비화되는 것은 봉건적 러시아에 대한 이들의 환멸과 새로운 것에 대한 이들의 갈망이 얼마나 도저했는지를 보여준다. 20세기로 접어들면서 대문호 체호프가 사망하고(1904) 톨스토이가 이미 문학 활동을 접고 종교적 교시자로 나섰던 만큼, 러시아 특유의 메시아주의는 이제 젊은 작가들의 손으로 넘겨졌던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를 거의 신화화하면서 새로운 미학을 구축하고자 했던 상징주의자 그룹은 대표적인 예이다. 소비에트 비평가들의 범주에 의할 때 부르주아 문학으로 명명된 상징주의자 그룹보다 조금 늦게 등장한 미래파라는 이 점에서 훨씬 더 과격했다. 미래파가 레프(LEF: 예술좌익전선), 나아가 레프(REF: 예술혁명전선)로 바뀌는 지점은, 곧 문학이 다분히 낭만적인 개념인 혁명이 아닌 극히 사실주적 개념인 정치와 뒤섞였다가 결렬되는 지점이기도 했다. 이 과정의 중심에 섰던 혁명의 시인마야코프스키의 자살이 보여주듯, 이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자체가 아니라 혁명이라는 개념이 담고 있는 세계 창조의 기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러시아의 이런 떠들썩한 분위기는 온화하고 조용한 성품의 소유자였던 파스테르나크에는 생경한 것일 수도 있겠다. 톨스토이의 <부활>의 삽화를 그리기도 한 저명한 화가와 저명한 피아니스트였던 부모 밑에서 귀족문화를 충분히 향유하면서 성장한 그는, 일련의 전기적 사실들이 보여주듯, 대러시아제국의 귀족주의와 엘리트주의를 문학 속에 담아낼 수 있는 자양분을 지닌, 수용력이 넓은 자였다. 어쩌면 그러했기 때문에 상징주의의 두 거두인 시인 알렉산드르 블록과 안드레이 벨르이를 좋아했으며, 동시에 상징주의와는 정반대되는 미학적, 시학적 전략을 표방했던 미래파와 가깝게 지낼 수도 있었으며 심지어 미래파, 나아가 레프의 일원이 되기도 했다.

 

파스테르나크의 이러한 문학적, 정치적 활동에는 마야코프스키에 대한 그의 각별한 애정이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닥터 지바고>에도 마야코프스키의 이름이 직접 언급되는데, 유리 지바고는 (마야코프스키)는 모든 점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계승자라고 할 수 있으며 그의 시는 라스콜리니코프를 포함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젊은 주인공들이 쓴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말한다. 이는 정치 전반에 냉담한 태도를 취했으며 볼셰비키 혁명과는 무관한 삶을 살았거나 최소한 그러고자 했던 그가 혁명에 투신한 자들에 대해 가졌던 동정적인태도와 연결되어 있다. 마야코프스키가 적극적으로 혁명에 가담했으며 결국엔 혁명에 대한 환멸과 좌절로 인해 자살했다면, ‘동반자 작가파스테르나크는 차라리 혁명과 무수한 마야코프스키들의 형상을 문학 속에 남기는 쪽을 택한 것이며 그 산물이 자전적 소설’ <닥터 지바고>였다. 여기에는 그 시대와 그 시대의 순수한 희생자들에 대한 파스테르나크의 부채의식이나 죄의식도 적잖이 개입되었을 것이다. 작가 파스테르나크의 의심의 여지없는 분신인 지바고가 작가와는 달리, 군의관으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볼셰비키 혁명 및 내란 과정에서 파르티잔으로 활동하도록 그려진 것은 이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터이다.

 

(계속.)

 

-- 아주 오래 전에 쓴(더욱이, 좀 많이 못 쓴 것 같다..ㅠ.ㅠ), 저 책에 수록된 원고인데, 왜 꺼냈느냐.

 

-- <죄와 벌>에 이어, <닥터 지바고>를 번역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척 하기 싫다! 모든 번역을 나는 다 하기 싫은데 억지로, 마지 못해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럼 왜 하냐. (어느 원로 시인의 말마따나) 다른 일보다는 덜 하기 싫기 때문이다 운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번역이야말로 최근 내 존재(혹은 부재?)의 알리바이인 것 같다.

-- <닥터 지바고>를 상대로 열애를 했던 밤이 물론, 있었다. 중학교 때. '구덩이 오막살이' 단칸 월세방에서 두 칸 짜리 방으로 이사 간 다음. 햇볕이 들어오는 방이라 너무 좋았다. 아무튼 그때 내가 읽은 번역은 오재국 것.  한데 머리가 굵어지면서 이 작품을  좀 얕잡아 보게 됐다. 몇년 전부터는 아주 대놓고(!) 그리했다. (강의 커리큘럼에서도 뺐다.)  한데 나이가 더 드니, 다른 식의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 왜 우리는 계속 이 소설을 읽는가. 그러니까 잘 쓴 여타 러시아 소설에 비하면 못 쓴 소설인데 왜 계속 읽느냔 말이다. 요컨대, 러시아문학 연구자(^^;;)로서의 나는 이 질문에 답할 필요가 있다.

-- 번역가로서는? 여러 말 할 것도 없다. 무조건 쉼 없이, 열심히, 잘, 옮겨야 한다.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 그것이 거기 있는 건 다 이유가 있음을, 심지어 구둣점이나 행간에도 작가의 (때론 무의식적인!) 의도가  들어 있음을 명심하면서.   

-- 소설가로서는? ... 역시, 번역은 너무 하기 싫은 일이고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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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커>에 열광하고 있는, 예나 지금이나 진정한 만화광인 남편에게 아이를 맡겨두고 나와 있다. 시간이 철철 남아돌 때와는 달리(그래서 어떨 때는 12시간씩 자기도 했다!), (당장 밥벌이와 상관이 없는!) 뭘 읽고 뭘 쓰는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암튼 진즉에 읽었어야 마땅한 이 책을 어쩌다 보니 이제야 읽는다. 대체로 예술에 문외한이고, 발레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3년 동안 러시아, 그것도 모스크바에 살면서 <볼쇼이> 한 번 안 갔다면, 뭐..-_-;;

 

 

 

 

 

 

 

 

 

이 책은 10년은 자라고 10년은 배우고 10년은 춤추고 나머지 30년은 암흑 속에 살다 간, 그렇다고 정리되는 천재 무용수가 말하자면 정신줄을 완전히 놓기 직전 6주에 걸쳐 남긴 일기인데, 그 도입부부터가  압도적이다.

 

점심 식사는 아주 좋았다. 살짝 익힌 달걀 두 개와 기름에 튀긴 감자와 콩을 먹었으니까. 나는 콩을 좋아하지만, 그것들은 메마르다. 나는 마른 콩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 속엔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스위스는 병든 땅이다. 온통 산들로 가득 차 있으니까. 스위스 사람들은 메마르다. 그들 속에는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내 시중을 드는 하녀는 메마른 인간이다. 그녀는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너무 많이 생각한다.”(103)

 

첫 느낌은 고골의 <광인 일기>. 하지만 고골이 아무리 광기의 작가라고 할지라도, 그리고 이 소설이 아무리 걸작이라고 할지라도, 정녕, 진짜 광인이 정신의 완전한 죽음으로 넘어가기 직전 광기의 정점에서, 필사적인 속기의 느낌으로 내면의 흐름을 줄줄이 써나간 이 기록을 어찌 따라가겠는가. 촘촘히 들어찬 대책 없는 1형식과 2형식의 문장들, 논리도 뭣도 없는 어마어마한 시적인 비약, 논증도 뭣도 없으되 엄청난 통찰을 담은 아포리즘들. 

 

춤꾼이 이 정도의 지성과 감성과 문체를 갖춘 나라, 역시, 러시아답다. 도중에 다윈, 니체, 톨스토이, 도..키, 졸라, 셰익스피어 얘기도 중구난방으로 나오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이 모든 말(!)을 줄줄이 풀어내는 발레리노의 광기에 찬 필력이다.

 

인간은 신을 위해 죽는다. 신은 움직임이다. 그러므로 죽음은 필요한 것이다. 육체는 죽지만 정신은 산다. 나는 살고 싶다. 하지만 내 손은 힘이 빠지고 있다. 손이 내게 복종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오랜 시간을 쓰겠다. 신은 내게 나의 삶을 기술하기를 원한다. (...) 나는 내일 계속해서 쓰겠다. 신은 내가 쉬기를 바라기 때문에...”(127)

 

나는 신의 방법으로 쓰고 싶다. 따라서 나는 나의 저작을 교정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글을 고치지 않는다. 나는 고의로 서투르게 쓴다. ”(168)

나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176)

나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하지 않는 철학자이다. 나는 감정을 지닌 철학자이다. 나는 인공적인 일들을 쓰고 싶지는 않다.”(185)

 

 

나는 고독을 무서워할 테지만 울지는 않을 것이다. 신이 나를 사랑하니까 나는 외롭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만약에 신이 나를 버린다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나는 미리 느낀다. 만약에 신이 나를 버린다면 나는 죽을 것이라는 걸 안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그러니 나는 사람들이 나를 이해할 수 있도록 다른 사람들처럼 살겠다. 신은 사람들이다. 신은 자신의 목적을 방해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그의 목적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다. 나는 신의 도구이다. 나는 신의 사람이다.”(190)

 

나는 니진스키이다. 니진스키는 나이고, 나는 그가 자신을 걱정하기 때문에 그가 걱정된다. 나는 그의 힘을 안다. 나는 그의 선량한 신이다. 나는 나쁜 니진스키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나쁜 신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신이다. 니진스키는 신이다. 니진스키는 선량한 사람이지 사악한 인간이 아니다. (...) 신은 통상적인 용모가 아니다. 신은 얼굴에 깃들인 감정이다. 꼽추는 신이다. 나는 꼽추를 좋아한다. 나는 못생긴 사람들을 좋아한다. 나는 감정을 지닌, 못생긴 남자이다. 나는 곱사등이를 춤추고 똑바른 등의 사람의 춤도 춘다.”(199)

  

유감스럽게도, 이 책의 원본을 갖고 있지 않다.  주문하려고 하니 다 품절. 암튼, <감정>이라는 제목으로 적절히 편집되어 나온 모양인데, 이 제목 역시 <일기>의 한 구절을 참조한 듯. 이렇다.

 

나는 이 책을 감정이라 부르고 싶다. 나는 이 책을 감정이라 부르겠다. 나는 감정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많은 것을 쓰겠다. 나는 감정에 관한 방대한 저서를 원한다.”(197-198)

 

번역도 참 좋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다운받은 원문과 대충 비교를 해 봐도 그렇다. 그럼에도 러시아어에서 곧장 번역한 우리말 버전이 있으면 좋겠다 싶고, 한 번 해보고 싶다. 당장엔  너무 바빠, 그냥 읽어가며 느끼는 수밖에.  겸사겸사, 니진스키의 이름인 '바슬라프'는 그렇게 일반적인 건 아니다. Vatslav Nizhinsky. 바쯜라프 니쥔스키. 그대로 전사하면 이 정도의 발음.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 라는 말답게, 니진스키의 일기 속에서도 속된 부분이나 생리적 얘기를 쓴 대목이 와닿기도 하다. 이러나저러나, 책장을 넘기다 멀리 훌쩍 가서 발견한 익숙한 구절. 절친한 선배가 곧잘 인용하는 부분이다.

 

"나는 울고 싶은데 신은 내게 쓰라고 명령한다. 그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바라지 않는다. 아내는 울고 또 운다. 나 역시 운다. 나는 프랑겔 박사가 내게 와서 내가 쓰고 있는 동안 아내는 울고 있다고 말할까봐 두렵다."(347) 

 

 

유명한 사진 중 하나.(좌는 '목신'으로 분장한 니진스키.) 160이 겨우 넘는 단신이었다는데...흠. 겸사겸사 예브게니 플루셴코가 빙판에서 니진스키를 재현하기도. 이 동영상도 볼 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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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ssbaum 2013-06-29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혹시 네이버캐스트에 <위대한 개츠비> 에 관해 쓰신 분이 아니실지요?
간결하면서도 의미를 담은 글 감사히 잘 보았는데, 알라딘 서재에서 이렇게 또 뵙게 되네요.

종종 들려 쓰신 글, 읽도록 하겠습니다 : )

푸른괭이 2013-06-29 14:14   좋아요 0 | URL
예, 자주 오세요^^;;
 

망각의 저 편에서 건져 올린 연인과 가족의 초상: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뒤라스, <연인>

 

 

 

 

 

 

 

 

 

 

 

 

 

 

 

 

전쟁이 끝나고 몇 해가 흘렀다. 몇 번의 결혼과 몇 번의 이혼에서 아이들을 낳고 몇 권의 책을 펴냈을 즈음이었다. 그가 부인과 함께 파리에 왔다. 그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요. 그녀는 목소리에서 이미 그인 줄 알았다. (중략) 그는 겁을 먹고 있었다. 예전처럼 두려워하고 있었다.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떨리는 음성 속에서, 갑자기, 그녀는 잊고 있던 중국 억양을 기억해 냈다. (중략) 그는 잠깐 뜸을 들인 후 이렇게 말했다. 그의 사랑은 예전과 똑같다고. 그는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으며, 결코 이 사랑을 멈출 수 없을 거라고. 죽는 순간까지 그녀만을 사랑할 거라고.(136-137)

 

이런 말로 끝나는 <연인>은 물론 연애소설이다. 두 연인 모두에게 이국인 베트남, 오직 사랑을 위해 존재하는 중국인 거리의 집, 열다섯 반 나이의 가난한 프랑스 소녀와 삼십대 후반의 부유한 중국인이 만들어내는 대조의 효과, 무엇보다도 사랑에만 몰입하려는 의지 등. 상당히 절제된 문체에 간접화법이 주를 이루기는 하나,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애초부터 미래를 꿈꿀 수 없는(혹은 그러지 않으려는) 그들의 열애는 더욱더 낭만적인 색채를 띤다. 1984, 소녀는 이미 노인이 되었고, 이렇게 설정된 화자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 첫 사랑, 아니 첫 남자의 추억은 극적이고 관능적일 수밖에 없으리라.

 

나의 삶은 아주 일찍부터 너무 늦어버렸다. 열여덟 살에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늦어버렸다. 열여덟 살과 스물다섯 살 사이에 내 얼굴은 전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변해갔다. 열여덟 살에 나는 늙어 있었다. (중략) 늙어 간다는 것은 가혹했다. 나는 늙음이 내 얼굴에 찾아와 내 모습을 하나씩 하나씩 변화시키는 것을 목격했다. 얼굴 모양이 일그러지고, 두 눈은 더 커지고, 시선은 더 슬픈 빛을 띠고, 입 모양은 더 고집스러워 보이고, 이마에는 깊은 주름이 패었다. 그런 변화에 진저리치기는커녕 나는 오히려 내 얼굴의 노쇠 현상을 마치 이야기의 줄거리가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 하는 것 같은 호기심을 품고 지켜보았다.(10)

 

노인은 구태여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건을 엄정하게 배치하려고 하지도, 기억의 빈 곳을 메우려고 하지도 않는다. 추억은 펜을 따라 자유분방하게 흘러가 제멋대로 겹치기도, 엇갈리기도 한다. 소녀의 조숙을 넘어선 조로는 물론 엄밀한 의미의 늙음이 아니라 그 당시 소녀가 감당한 욕망경험’, 그 크기와 깊이를 말해주는 것이리라. 성장기의 기억 속에 외딴 섬처럼 자리 잡은 이 사랑의 추억은 실은 소녀를 옥죄던 현실과 얽혀 있다. 다름 아니라 가족이다.

 

안녕, 잘 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등의 인사는 결코 나누지 않는다. 고맙다는 인사도. 전혀 말을 하지 않는다. 말할 필요가 없다. 모두가 말없이, 멀찍이 떨어져 산다. 돌로 된 가족이다. 어떤 접근도 불가능한 두꺼운 퇴적물 속에서 화석이 되어 버린 가족이다. 날마다 우리는 자살을, 혹은 살인을 기도한다. 우리는 서로 말을 걸지도 않지만 보지도 않는다. 어쩌다 눈이 마주쳐도 시선을 돌려 버린다. 바라본다는 것은 한순간 그 대상을 향한, 그 대상에 대한 호기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불행에 빠지는 행위이다. 누군가를 바라본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그 시선에 합당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여전히 그는 불명예스러운 사람일 수도 있다. 대화라는 단어는 허영이다. 이 집에 가장 잘 어울리는 어휘는 수치와 자만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68-69)

 

심각한 도벽과 폭력적 성향에 아편까지 시작한 망나니 큰 오빠, 그와 정반대로 계집애처럼 연약한 작은 오빠, 무엇보다도 큰아들을 지나치게 편애하는 어머니. “나는 내 가족들에 대해 많이 썼다. 하지만 그렇게 쓰는 동안에도, 그들, 나의 어머니와 오빠들은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그들 주위에서, 다가가지 않고서 그 사물 같은 인간들 주변에서 글을 썼다.”(14) 그들로부터 공간적, 시간적 거리를 유지하며 글을 씀으로써 사물같은 그들을 인간으로 만들고 동시에 그녀 자신도 저 애증의 굴레로부터 벗어난다. ‘연인에 대한 그녀의 태도도 비슷하리라. 기억 속을 헤적이며 글을 쓰는 행위만이 우리에게 잃어버린 시간을 되살려줄 수 있으니까.

 

이런 불멸성이 살아 있을 때에만, 삶은 불멸의 것이 된다. 불멸성이 삶 속에 있을 때, 그것은 길게 사느냐 짧게 사느냐 하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모르고 있는 또 다른 그 무엇인 것이다. 불멸성은 시작도 끝도 없다고 말하는 것도, 불멸성은 정신의 삶과 함께 시작되어 그것과 함께 끝난다고 말하는 것도 똑같이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불멸성은 정신에도 관여하고 또 바람을 쫓아가는 것에도 관여하기 때문이다. 사막의 죽은 모래들, 어린아이들의 시체를 보라. 불멸성은 거기로 지나가지 않는다. 그것은 거기에 머물렀다가 우회한다.(125)

 

 

-- 네이버캐스트

 

-- 오랜만에 뭘 올릴까 찾아보니, 이런 것도 있더라. 뒤라스의 소설은 항상 기대 이하(?)였는데, 그녀의 (너무나 개성 있는!) 얼굴에서 풍기는 포스가 너무 강한 탓인지도 모르겠다..@_@

뒤라스의 <연인>은 저 글을 쓰려고 처음 읽었다. 그러니까 소설 이전에 영화가 먼저 있었는데, 대학 시절에 본 제인 마치 주연의 <연인>은 (학력고사 치고 나서 본 <원초적 본능>에 이어) 가장 '야한' 영화로 머릿속에 남아 있다. 소설을 읽은 다음 오랜만에 다시 보니 역시나 야했지만(^^;) 연애 라인보다는 가족소설적 측면이 더 눈에 들어오더라. 덧붙여, 유학 시절 만났던 베트남 친구들에 대한 기억(그 흔적은 <내 아내의 모든 것>에 수록된 한 단편에 좀 남아 있다) 때문인지 베트남의 풍경.

 

 

 

 

그리고 공간적 배경 때문에 비슷한 인상으로 남아 있는 이 영화! 카트린느 드뇌브는 <쉘부르의 우산> 시절보다 중년 이후가 더 멋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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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화해와 상생을 위하여:

- 투르게네프(1818-1883), <아버지와 아들>(1862)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원래 제목을 직역하면 아버지들과 아들들’, 즉 복수이다)은 제목이 암시하듯 세대 간의 갈등과 화해의 문제를 다룬 소설이다. 표층적으론 1860년대에 이르러 더욱더 첨예해진 사상 대립이 부각된다. ‘60년대 세대’, 즉 민주 진영을 대표한 젊은 지식인의 입장인 부정’(否定)니힐리즘이라 불렸는데, 이는 단순히 이론이 아니라 극히 정치적인 개념, 일종의 행동 강령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많은 니힐리스트들이 유형이나 추방, 망명까지도 감수한 혁명가였고 <무엇을 할 것인가>을 쓴 체르니셰프스키, 투르게네프와도 친분이 있던 바쿠닌은 대표적인 예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이런 시대적 분위기를 십분 반영할 뿐더러 이후 러시아문학의 큰 흐름 중 하나를 예고한 문제작이다. 가령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은 이 작품에 대한 그 나름의 답변으로서 시작된 소설이다. 한편 사상적 갈등과 맞물린 세대 간의 갈등의 이면에는 계급간의 갈등이 깔려 있다. 심지어 파벨 키르사노프(귀족 - 아버지 세대)와 바자로프(‘잡계급’ - 아들 세대)의 반목이 소설의 구성적, 사상적 축을 이룬다고 볼 수도 있다.

 

 

 

 

 

 

 

 

 

 

 

 

 

바자로프는 친구 겸 후배인 아르카디의 정의대로 니힐리스트”, “모든 것을 비판적 관점에서 보는 사람”(39)이다. 파벨과의 논쟁에서는 훌륭한 화학자는 그 어떠한 시인보다 스무 배는 더 유익”(44)하다며 유물론과 경험론, 공리주의를 역설한다. 니힐리즘의 근거도 유익함에 있다. 오딘초바와의 대화에서는 예술 무용론을 주장하는데, 그와 더불어 피력하는 인간관도 상당히 과격하다. 인간도 다른 동식물과 같아서 표본 하나만 있으면 충분히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각각의 인간을 따로 연구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 이렇게 극단적이고 편협한 유물론은 물론 속류라고 비난받을 소지가 있으며 그가 대인 관계에서 보이는 날선 계급의식과 냉소주의도 곱게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체로 그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개구리를 비롯한 각종 동식물 채집과 해부, 실험에 열을 올리는 부지런한 의학도이자 파벨과의 결투에서 보이듯 의사로서의 자부심이 무척 강한 청년이다. 이런 그를 작가는 두 번에 걸쳐 시험에 들게 한다.

 

(러시아 작가 중에서는 체호프와 더불어 빛나는 미모인데...-_-;;)

 

바자로프의 이론에 따르면 사랑은 호르몬의 작용일 뿐이다. 오딘초바에 대해 그 귀부인이 어떤 종류의 포유동물에 속하는가 두고 보세.”(120)라든가 참 실한 몸뚱이야.() 지금 당장 해부대에 올려놓고 싶은 걸.”(125)과 같은 냉소적인 말을 던지지만, 자신이 사랑에 빠졌음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사랑을 신경이 약한 구세대의 낭만주의자나 부유하고 나약한 귀족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온 만큼 그의 사랑 고백은 증오와 닮은, 아마도 증오와 비슷한 강하고 고통스러운 욕망”(163)의 분출처럼 읽힌다. 다시 오딘초바를 찾아갔을 때는 사랑의 감정과 사랑에 빠졌다는 분노에 덧붙여 부유한 귀족 부인을 향한 잡계급 출신 청년의 열패감마저 보인다. 너무 오랫동안 나와 인연이 없는 세상을 돌아다닌 것 같아요. 날치는 얼마 동안 공중에 떠 있을 수 있지만, 곧 물속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지요.”(282)

 

(바자로프. 이렇게 온순한 이미지??)

 

바자로프의 사랑보다 더 극적인 것은 바자로프-죽음이다. 성실하고 명민한 의학도가 전염병으로 사망한 농부의 시신을 해부하던 중 감염이 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사망한다는 결말을 두고 말이 많았다. “죽음은 오래된 농담이지만 누구에게나 새롭지요.”(306)라고 말하며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의연해 보이기도 하다. 실연 이후의 우울과 무기력증을 생각한다면 반쯤 의도된 자살의 가능성도 엿보인다. 어떤 경우든 그가 추구한 이익과는 무관한 죽음이, 니힐리즘(허무주의)’의 아이러니한 변용인 허무한죽음이 돼 버렸다. 과연 온건파 귀족 작가의 손으로 그려낸, 야망에 사로잡힌 잡계급 청년의 형상과 운명은 아이러니에 귀속될 수밖에 없다. 그의 죽음과 흡사 그것을 대가로 성취된 것 같은 키르사노프 집안의 행복(아르카디와 카탸(오딘초바의 여동생)의 결혼, 니콜라이와 페냐의 결혼, 파벨의 출국, 오딘초바의 성공적인 재혼 등)이 씁쓸한 대조를 이룬다. 자식을 앞세운 바자로프의 부모들이 자식의 무덤을 찾아 흐느껴 우는 마지막 장면이 주는 여운도 오래 지속된다. 결국 작가가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영원한 화해와 무궁한 생명”(316)이었으리라.

 

 

 

 

 

 

 

 

 

 

 

 

 

 

 

 

투르게네프는 다소 방탕했던 아버지와 그보다 연상인 다소 히스테릭한 성격의 어머니의 불화, 그로 인한 심리적 상처에도 불구하고(이런 가정사가 첫 사랑에 표현된다) 19세기 러시아 귀족의 일반적인 특권을 두루 향유하며 자랐다. 작가가 된 후에는 인생의 많은 시간을 유럽에서 보냈으되, <아버지와 아들>이 보여주듯, 조국의 현실과 젊은 세대의 사상적, 문학적 동향을 꾸준히 관찰하고 기록했다. ‘인텔리겐치아’(지식인)와 민중의 화합 문제에 대한 관심 역시 그의 문우이기도 했던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를 비롯하여 19세기 러시아 지성계의 보편적인 문제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그가 말년에 쓴 산문시 거지늙은 거지의 화합을 통해 총체적인 형제애를 강조한 작품인데, ‘와 세 명의 소년 거지의 서늘한 엇갈림을 보여주는 윤동주의 투르게네프의 언덕에 영감을 제공하기도 했다.

 

-- <책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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