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화해와 상생을 위하여:
- 투르게네프(1818-1883), <아버지와 아들>(1862)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원래 제목을 직역하면 ‘아버지들과 아들들’, 즉 복수이다)은 제목이 암시하듯 세대 간의 갈등과 화해의 문제를 다룬 소설이다. 표층적으론 1860년대에 이르러 더욱더 첨예해진 사상 대립이 부각된다. ‘60년대 세대’, 즉 민주 진영을 대표한 젊은 지식인의 입장인 ‘부정’(否定)은 ‘니힐리즘’이라 불렸는데, 이는 단순히 이론이 아니라 극히 정치적인 개념, 일종의 행동 강령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많은 니힐리스트들이 유형이나 추방, 망명까지도 감수한 혁명가였고 <무엇을 할 것인가>을 쓴 체르니셰프스키, 투르게네프와도 친분이 있던 바쿠닌은 대표적인 예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이런 시대적 분위기를 십분 반영할 뿐더러 이후 러시아문학의 큰 흐름 중 하나를 예고한 문제작이다. 가령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은 이 작품에 대한 그 나름의 답변으로서 시작된 소설이다. 한편 사상적 갈등과 맞물린 세대 간의 갈등의 이면에는 계급간의 갈등이 깔려 있다. 심지어 파벨 키르사노프(귀족 - 아버지 세대)와 바자로프(‘잡계급’ - 아들 세대)의 반목이 소설의 구성적, 사상적 축을 이룬다고 볼 수도 있다.
바자로프는 친구 겸 후배인 아르카디의 정의대로 “니힐리스트”, “모든 것을 비판적 관점에서 보는 사람”(39)이다. 파벨과의 논쟁에서는 “훌륭한 화학자는 그 어떠한 시인보다 스무 배는 더 유익”(44)하다며 유물론과 경험론, 공리주의를 역설한다. 니힐리즘의 근거도 유익함에 있다. 오딘초바와의 대화에서는 예술 무용론을 주장하는데, 그와 더불어 피력하는 인간관도 상당히 과격하다. 인간도 다른 동식물과 같아서 표본 하나만 있으면 충분히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각각의 인간을 따로 연구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 이렇게 극단적이고 편협한 유물론은 물론 ‘속류’라고 비난받을 소지가 있으며 그가 대인 관계에서 보이는 날선 계급의식과 냉소주의도 곱게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체로 그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개구리를 비롯한 각종 동식물 채집과 해부, 실험에 열을 올리는 부지런한 의학도이자 파벨과의 결투에서 보이듯 의사로서의 자부심이 무척 강한 청년이다. 이런 그를 작가는 두 번에 걸쳐 시험에 들게 한다.
(러시아 작가 중에서는 체호프와 더불어 빛나는 미모인데...-_-;;)
바자로프의 이론에 따르면 사랑은 호르몬의 작용일 뿐이다. 오딘초바에 대해 “그 귀부인이 어떤 종류의 포유동물에 속하는가 두고 보세.”(120)라든가 “참 실한 몸뚱이야.(…) 지금 당장 해부대에 올려놓고 싶은 걸.”(125)과 같은 냉소적인 말을 던지지만, 자신이 사랑에 빠졌음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사랑을 신경이 약한 구세대의 낭만주의자나 부유하고 나약한 귀족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온 만큼 그의 사랑 고백은 “증오와 닮은, 아마도 증오와 비슷한 강하고 고통스러운 욕망”(163)의 분출처럼 읽힌다. 다시 오딘초바를 찾아갔을 때는 사랑의 감정과 사랑에 빠졌다는 분노에 덧붙여 부유한 귀족 부인을 향한 잡계급 출신 청년의 열패감마저 보인다. “너무 오랫동안 나와 인연이 없는 세상을 돌아다닌 것 같아요. 날치는 얼마 동안 공중에 떠 있을 수 있지만, 곧 물속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지요.”(282)
(바자로프. 이렇게 온순한 이미지??)
바자로프의 사랑보다 더 극적인 것은 바자로프-죽음이다. 성실하고 명민한 의학도가 전염병으로 사망한 농부의 시신을 해부하던 중 감염이 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사망한다는 결말을 두고 말이 많았다. “죽음은 오래된 농담이지만 누구에게나 새롭지요.”(306)라고 말하며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의연해 보이기도 하다. 실연 이후의 우울과 무기력증을 생각한다면 반쯤 의도된 자살의 가능성도 엿보인다. 어떤 경우든 그가 추구한 ‘이익’과는 무관한 죽음이, 즉 ‘니힐리즘(허무주의)’의 아이러니한 변용인 ‘허무한’ 죽음이 돼 버렸다. 과연 온건파 귀족 작가의 손으로 그려낸, 야망에 사로잡힌 잡계급 청년의 형상과 운명은 아이러니에 귀속될 수밖에 없다. 그의 죽음과 흡사 그것을 대가로 성취된 것 같은 키르사노프 집안의 행복(아르카디와 카탸(오딘초바의 여동생)의 결혼, 니콜라이와 페냐의 결혼, 파벨의 출국, 오딘초바의 성공적인 재혼 등)이 씁쓸한 대조를 이룬다. 자식을 앞세운 바자로프의 부모들이 자식의 무덤을 찾아 흐느껴 우는 마지막 장면이 주는 여운도 오래 지속된다. 결국 작가가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영원한 화해와 무궁한 생명”(316)이었으리라.
투르게네프는 다소 방탕했던 아버지와 그보다 연상인 다소 히스테릭한 성격의 어머니의 불화, 그로 인한 심리적 상처에도 불구하고(이런 가정사가 「첫 사랑」에 표현된다) 19세기 러시아 귀족의 일반적인 특권을 두루 향유하며 자랐다. 작가가 된 후에는 인생의 많은 시간을 유럽에서 보냈으되, <아버지와 아들>이 보여주듯, 조국의 현실과 젊은 세대의 사상적, 문학적 동향을 꾸준히 관찰하고 기록했다. ‘인텔리겐치아’(지식인)와 민중의 화합 문제에 대한 관심 역시 그의 ‘문우’이기도 했던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를 비롯하여 19세기 러시아 지성계의 보편적인 문제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그가 말년에 쓴 산문시 「거지」는 ‘나’와 ‘늙은 거지’의 화합을 통해 총체적인 형제애를 강조한 작품인데, ‘나’와 세 명의 ‘소년 거지’의 서늘한 엇갈림을 보여주는 윤동주의 「투르게네프의 언덕」에 영감을 제공하기도 했다.
-- <책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