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아직은 방학이라 좀 느긋하게 읽는 나폴레옹 평전에서 그의 사생활 부분.

 

 

 

 

 

 

 

 

 

 

 

 

 

 

"점심 식사는, 황제가 잊어버리거나 받아쓰는 작업으로 밀리지 않을 경우, 10시 정각에 했다. 아침 인견이 끝나면 다시 집무실로 돌아가 일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점심 식사는 주로 작은 테이블에서 혼자했다. 궁정 사무장 한 사람만 참석하고 급사장 뒤낭이 서비스를 한다. 나폴레옹은 소스가 묻을까 걱정하는 일 없이 격식을 차리지 않고 빨리 먹는다. 그러다 보니 손으로 먹는 경우도 있다. 프로방스식 닭고기 요리를 좋아해서 마렝고라는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양고기구이나 갈비구이, 생선튀김, 이탈리아 파스타, 그리고 강낭콩이나 렌즈콩도 좋아했다. 빵에 대해서 말고는 음식에 대해 까다롭지 않았다. 여러 메뉴 가운데서 쉽게 골랐다. 반주로는 부르고뉴산 와인 샹베르탱에 물을 타서 마셨다. 나폴레옹은 식도락가도 아니고 고급 포도주 애호가도 아니었다. 식사는 에너지를 충원하기 위한 것일 뿐이고 15분이면 끝났다."(334-335)

 

정말 저렇게 살았을 법하다. 정녕 쌍놈(!)의 식사법. 머슴들이 저렇다, 후다닥 먹고 또 일하다고 잠깐 시간 나면 먹거나 눈 붙이고 또 후다닥 일하고. 보통 나폴레옹 하면 수면법이 유명한데 대략 하루 4시간 정도 자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중간중간 잠을 보충하는 식. 의도한 측면이 없지 않겠지만 그의 신체적 흐름, 직업의 특수성(군인 - 때론 며칠씩 철야), 성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 식의 수면에 저런 식사라면, 응당, 위장병이 없을 리 없다. 요즘처럼 위내시경 하면 만성위염, 뭐 이런 거 아닐까 싶다. 식사의 즐거움, 먹는 기쁨, 이런 것에 큰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저 부분을 읽으며 나의 식사법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고등학교부터 점심 도시락을 친구들과 함께 먹어본 적이 없다. 왕따? 절대 아니고, 오직 그 시간도 아까워서, 딱 저런 이유. 정녕 "쌍놈"의 자식답다. 지금은? 오히려 반대다. 최대한 하루 한 끼는 맛있게, 천천히 먹으려고 한다. 결과는? -_-; 지금도 못 참는 건 밥 늦게 먹는 사람과 식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 아이가 그렇다, 이런 식의 천벌.^^; 밥 먹는 속도만 놓고 보면 우리 아이야말로 제국의 황제 수준이다.  

 

아무튼 이런 평전을 쓰려면 저자는 그 무엇보다도 자신의 연구 대상을 사랑해야 한다. 그를 둘러싼 무수한 평가들을 섭렵하고 자신의 입장을 세우고 엄청난 서지, 정보를 정리 요약하고 등등. 한동안은 그놈하고 같이 사는 격. 스탈린, 히틀러가 나쁜 놈(!)인 줄 모르는 사람 어디 있나, 하지만 연구자이자 평전 작가는 그와는 다른 지점에 서서 보다 핵심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는 누구인가, 그의 탄생과 성장을 가능하게 한 역사적인 원동력은 무엇인가 등등. 이 점에서 이 책을 꽤 쓸만하다. 한 권 더 주문했는데, 식탁에 얹힌 모습을 보고 남편의 한 소리. 심지어 한 손에 들어보기도 한다.

 

- "이건 뭐야, 도둑 들어 오면 쳐죽이려고 샀냐? 너는 들지도 못하겠다."

 

그러게 나도 저렇게 두꺼운 줄 알았으면 안 샀을 걸. ㅠ 그래도 어쩌냐, 샀으니 들춰봐야지. 다 본 다음에는 팔든지 버리든지, 처분해야 한다. 요즘은 책을 빨리 처분하려고 어떻게든 읽으려/만지려 한다. 무덤에는 돈도 못 들고 가는데 하물며 책이야 말해서 뭣하랴. 도서관이 제일 싫어하는 것도 기증도서란다 ㅠ.ㅠ 이 사실을 명심해야 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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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스크바 북쪽, <베덴엔하> 역 주변의 햇볕이 따사로웠다. 한 시간이 넘도록 음습한 지하를 질주하는 동안 11월의 지독한 습설이 수그러들었다. 이곳에는 역의 명칭 그대로 소비에트연방 시절의 부귀영화를 보여주는 거대한 박람회장이 있었지만 나의 목적지는 반대쪽이었다. 고가 도로를 옆으로 낀 채 눈길을 쭉 걸어가니 아름다운 교회가 보였고 한참 뒤에 야트막한 주택가가 나왔다. 조금 더 걸어가자 P대학의 자연대 건물이 나왔다. 담배부터 피우려고 건물의 후문을 찾아갔다. 후미진 곳,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엮어놓은 울타리 옆에서 담배를 꺼내는데 손놀림이 영 둔했다. 햇볕이 아무리 그윽해졌어도 장갑을 벗기가 겁날 정도로 쌀쌀한 날씨였다.

공터 한가운데에 한 중년 남자가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의 손에는 싸구려 보드카 병이 들려 있었다. 내가 담배를 한 모금 빨았을 때 그는 울타리에 어설프게 기대다시피 하며 일어났다. 그러고는 이미 반쯤 벗겨진 바지를 마저 내린 뒤 엉거주춤 선 자세로 엉덩이를 뒤로 쭉 뺐다. 싯누렇고 두툼한 똥 덩어리가 모락모락 김을 풍기며 중력의 법칙에 따라 무던히, 서서히 눈 덮인 땅 위로 떨어졌다. 그는 뒤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몸을 대충 바로 세우고 배를 약간 앞으로 내밀었다. 두 다리 사이에 헐렁하게 달려 있는 조그만 생식기에서 싯누런 오줌 줄기가 흘러 나왔다. 그대로 땅바닥에 떨어져버릴까 봐 전전긍긍하며 그는 벌벌 떨리는 두 손을 그리로 가져갔다. 햇볕을 가르는 이 고마운 오줌에 꽁꽁 언 두 손을 싹싹 비비며 혹한의 고통을 달래는 그의 표정이 천진난만하고 행복해보였다.

울타리 안 벤치에는 여학생들이 전깃줄의 참새들처럼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젊은 담배 연기들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정신없이 수다를 떠는 와중에도 흡연하는 동양인 여자에게 잠깐 호기심을 보였다.

에잇, 쳐다보지 마세요! 항상 저러는 걸요.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거기서도 여자애들이 담배 피워요?”

 

서류 하나를 처리하고 나니 오후였다. 한층 더 그윽해진 초겨울의 햇살이 얼굴을 간질였다. 고픈 배를 움켜쥐고 거북이처럼 걷다보니 아침에 본 교회가 나왔다. 근처 벤치에 몇 겹의 누더기를 두른 카자크 노파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나에게 손짓을 했다.

이봐요, 아가씨, 조만간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데? 내 말 맞지? 아이쿠, 하지만 이를 어째, 마가 끼였어, 마가! 액땜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는걸?”

논문 심사를 앞둔 나는 낯선 노파의 꾐에 넘어가고 말았다. 노파는 내 두 손을 잡고 주문을 외우더니 조그만 실몽당이를 꺼내 손안에 꼭 쥐어주었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말고 소중히 간직하다가 사흘 뒤에 역시나 아무도 모르게 불로 태우라고 덧붙였다. 이어 복채를 요구하는 노파의 표정이 살벌했다.

안 그러면 아가씨 인생에 큰 재앙이 닥친다! 내놓으면 복 받을 거야. 좋은 신랑감도 나타나고 아들도 낳고. 많이 내놓으면 큰 복 받고 적게 내놓으면 작은 복만 받는 거야.”

노파의 말이 군데군데 썩고 빠진 잇새로 새나오는 바람과 함께 기괴한 주문이 되어 살가운 겨울 공기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나는 노파에게 100루블짜리 지폐 한 장을 주고 지하철역을 향해 걸어갔다. 그때만 해도 다시 이곳에 오게 될 줄은 몰랐다.

 

*

 

모스크바의 남쪽, <유고-자파드> , 다시 습설이 퍼붓고 있었다. 기숙사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802호로 올라갔다. ‘은 지난달에 일본인 룸메이트가 이사를 간 다음 31실에 조카뻘 되는 대학생 과 둘이 살고 있었다. 빈 침대를 보며 불안 섞인 자유의 쾌감을 맛보는 것도 잠시,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새 룸메이트는 중국인이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방안에는 중국 대륙처럼 거대한 그림자가 깔렸다. 190센티미터는 족히 될 것 같은 키에 둥그렇고 넙적한 배가 한 눈에 들어왔다. 각종 소가 가득 든 중국식 왕만두를 서너 배 부풀려 놓은 것 같은 얼굴, 조막만한 입과 얇은 입술, 끝이 둥글둥글한 조그맣고 나지막한 코, 새카만 검은 까까머리, 그리고 검은 깨 가루처럼 작은 두 눈에는 두툼한 오목렌즈가 끼워진 안경을 쓰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도피유학을 온 아이였다. 아이의 첫 번째 트렁크 안에서 화구가 와르르 쏟아졌다. 두 번째, 세 번째 트렁크, 몇 개의 가방도 속을 드러냈다. 10인용 전기밥솥, 믹서, 프라이팬, 식기국자주걱뒤집개 등 주방 용품이 마룻바닥과 비어 있던 침대를 가득 채웠다. 국수 뽑는 기계, 어묵 만드는 기계, 전자레인지까지 튀어나왔다. 각종 향신료와 양념, 밑반찬, 납작하고 쫄깃한 두부 전병과 육포, 죽순을 비롯한 밀봉된 나물 등 먹거리의 틈새에서 화구가 초라해졌다.

훙은 반쯤 혀를 끌끌 차며 이름을 물었다.

, , 리첸첸, --.”

중국 아이는 커다랗고 넙적한 얼굴 가득 웃음을 띠우며 한자도 또박또박 써주었다.

李沈沈. 이 침침한 아이는 겨우 열여섯이었다.

(...)

 

(- 2015년 ??호 <문학나무>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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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불문, 문제는 '사랑'이다.

 

세계사에 문제적인 인간이 많지만 나폴레옹은 과연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법하다. 특히 19세기 소설을 전공한 나에게는 더 그렇게 여겨진다. 비단 러시아문학만이 아니다. 나폴레옹 이후 얼마간 문학(다른 예술도 그렇겠지만)은 이 이름, 이 신화에 무척이나 매달렸던 것 같다.

 

 

 

 

 

 

 

 

 

 

 

 

 

 

 

 

 

세 소설 모두 공히 '나-옹' 신화를 다룬다. 누가 제일 잘 썼나?^^; 이런 질문은 이미 무의미하고, 세 작가(소설)의 나-옹 신화에 대한 접근법을 논해야 할 것이다.

 

사실, 나폴레옹을 가장 객관적으로(과연? 러시아 작가가?) 그린 소설은 물론 <전.평.>이다. 아시다시피, 나-옹의 러시아 침공과 몰락, 러시아 입장에서는 대조국전쟁(1812), 특히 보로지노 전투 등을 다루니까. 그러나, 내가 괄호 속에 썼듯, 러시아 귀족 작가의 눈에 나-옹은 프랑스 군인도 아닌, 코르시카 섬 출신의 꼰질꼰질하고 천박한 출세주의자, 야만적인 살인자, 애면글면 아등바등 천민에 지나지 않았다. 그에 반해, 러시아의 총사령관이었던 쿠투조프는 허벅지 위에 얹힌 물렁물렁하고 두툼한 뱃살과 (늙어서!!!^^;) 작전 회의에 꾸벅꾸벅 조는(아마 침도 흘렸을^^;;) 모습까지 포함하여 러시아적, 민중적 '지혜'를 대변한다.

 

반면, <적과 흑>은 쥘리앙 소렐을 내세워, 나-옹 신화의 내면을 추적한다. 대처로 나가 성공하고자 하는 목수 아들(기억이 맞나?)의 야망, 그것이 문제다. 한편으론, 연애 소설이다. 남자나 여자나, 19세기나 지금이나, 밑천 없는 자가 소위 '성공'하려면, 일단은 공부와 학력(자신의 머리, 재주), 그 다음은 결혼(흔히들 '취집'이라고 하지만 남자에게도 적용될 법하다)이다. 아시다피, 이 소설은 소렐이 레날 부인이 쏘고 그 일로 인해 사형 당하는 걸로 끝난다. 뱃속에 그의 아이를 담은 남작의 딸(?) 마틸다는 승승장구, 이 점을 지적하는 소렐을 통해 당시 프랑스의 계급 갈등이 드러나기도 한다. 여기서도 나-옹의 흔적이 보인다.

 

나아가, <죄와 벌>. 러시아땅에 정착한 나-옹은 프랑스 본토의 그것(<적과 흑>)보다 더 신화스러운 신화가 된다. 이게 참 아이러니. 아마 러시아의 특성인 것 같다. 가령, E. T. A. 호프만은 독일 작가이지만, 러시아 작가들에게 더 큰 영향을 준다. 바이런 역시 마찬가지. 그는 영국시보다 러시아 낭만주의 시에 더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 다들 그 자체로, 그 문학으로가 아니라, 뭐랄까, 아우라로, 요즘으로 치면 '브랜드 가치'라고 할까. (영국, 혹은 프랑스 브랜드라면, 일단 사본다, 그리고 입는다^^;)

 

그래서 <죄와 벌>에는 나-옹은 고사하고 그의 초상화조차 나오지 않지만(소렐은 그의 초상화(?)를 간직하고 있다)  주인공 라스-프의 존재 자체, 그의 욕망 자체가 통째로, 지라르의 분석대로, 나-옹에게서 오는 것이다. 천재 = 나폴레옹. '이'가 아닌 '천재'를 꿈꾸는 가난한 청년에게 '나-옹'은 훌륭한 매개자가 된다. 그리고 소설은 그의 '형이상학적 욕망'을 통렬하게 단죄한다.

 

문제는, '사랑'.

스탕달과 도-키는 나폴레옹을 좋아한 것 같다. 그의 주인공들도 그렇다. 톨스토이는 나폴레옹을 무척 싫어했고, 그 역시 대놓고 드러난다. 그를 반영한 세 명의 남자 주인공이 공히 그러한 신화에 빠졌다가 이내 환멸을 느낀다. 니콜라이 로스토프 백작의 경우, 이런 욕망은 알렉산드르 황제에게로 향한다. 피에르(베주호프 백작), 안드레이(볼콘스키) 공작에게 있어 나-옹은 (극복되어야 마땅한) '청춘'과 거의 동의어이다.

 

 

 

 

 

 

 

 

 

 

 

 

 

 

(마지막 책은 지금 검색해보고 알았다, 사봐야지.)

 

주경철의 책에 묘사된 나폴레옹은 조금도 매력이 없다. 아마 저자가 나-옹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 않나, 추정해본다. 그래서, 그의 신화를 벗기는 데(탈신화화^^;) 도움을 받은 글이다.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된 나-옹을 얘기하면서, "눈꺼풀을 드는 데도 힘이 필요한(?)" 곳이라고 나-옹이 썼다는 말이 왠지 기억에 남는다. 어릴 때는 '세인트헬레나 섬'하면 유럽 근처 어디인 줄 알았는데, 말이 대서양이지, 뭐, 당연하지만, 아프리카. 아, 더웠겠다! 지난 여름의 폭염을 상기해보면, 정녕 눈꺼풀을 드는 데도, 눈을 뜨고 있는 데만도 엄청난 힘이 필요한 곳이리라.

 

다시금, 사랑.

나는 톨스토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음, 굳이 싫은 건 아니지만 음, 아무튼 좋지 않다. 이런 화법은 어째 시댁과 시댁 식구들에 적용되는 것 같은데(^^;) 역시나 비슷한 맥락에서 '도리'라는 것이 있다. <전쟁과 평화>에 대한 그 '도리'를 다 해보려고 하는데, 연구서들도 썩 재미있지 않다. 이른바 '소련' 학자들의 연구서들은 심지어 서문부터 '레닌' 어쩌고 아주 참을 수 없는 수준이다. 곧 죽어도 제사는 자정에 드려야 하고 곧 죽어도 삼년상을 차려야 한다는 꼰대 느낌^^;; 하지만 이런 과정 없이는 논문은 또 쓰일 수 없는 것도 맞다. 이게 싫으면("인용과 각주", 흑 ㅠ.ㅠ) 논문을 쓰지 말아야...

 

  

 

 

 

 

 

 

 

 

 

 

 

 

 

그래서 다시 나폴레옹. 오래 전에 본 소설인데 읽지는 않았다. 아마 이제는 영영 못/ 안 읽겠다. 복지관 옆 헌 책방에서 싼값에 팔던데... 음.

 

 

 

 

 

 

 

 

 

 

 

 

 

 

*

 

(Avenue-Of-The-Baobabs-Madagascar-By-Todd-Gustafson-740x497)

 

아프리카 하면 아무래도 <어린왕자> 덕분에 바오밥 나무가 떠오른다. 저건 마다가스카르 섬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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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읽다, 쓰다

 

 

 

 

* ‘얕고 넓음에서 좁고 깊음으로: 학자의 책읽기

 

올해 출간될 독서에세이집의 서문을 구상하던 중 나의 44년 인생을 요약해보았다.

 

19751, 태어났다.

10, 공부했고, 자랐고, (부모) 집 떠났다.

20, 공부했고, 소설 썼고, 담배 피웠고, 연애했고, 번역했다.

30, 공부했고, 강의했고, 논문 썼고, 소설 썼고, 번역했고, 결혼했고, 담배 끊었고, 아이 낳았다.

40, 공부하고, 강의하고, 논문 쓰고, 소설 쓰고, 번역하고, 책 내고, 아이 키우고,

암과 치매와 실명 없는 노년을 꿈꾼다.

 

십대부터 지금까지 빠지지 않는 것이 공부였다. 공부가 진척될수록 그 대상은 문학에 집중되었다. 누군가에게는 하강일 수 있는 문학이, 경상남도 거창군의 으슥한 산골에서 의무 교육만 간신히 받은 농부의 장녀로 태어난 나에게는 시종일관 상승이었다. 여섯 살이 되던 해 여름, 부산에 사는 삼촌의 결혼식에 가던 길에 아빠의 손을 잡고 조만간 내가 다닐 학교를 구경 갔던 일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해 겨울 우리 가족은 고향을 떠나 부산의 어느 산동네에 단칸방을 얻었다. 이듬해 봄, 나는 학교에 들어갔다. 이 역사적인 1981년에 읽고 쓰는 법을 배웠고 책의 세계에 진입했다. 질 나쁜 종이에 조잡한 그림이 들어간 교과서가 전부였음에도 그것은 문학의 형식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 문학은 놀이가 아니라 공부였지만, 신통방통하게도, 공부가 곧 놀이이기도 했다.

이른바 책읽기는 대략 중학교 시절 문고판으로 시작되었다. 장학금과 과외비 덕분에 현금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된 대학 시절에는, 과장하건대, 읽고 쓰는 일만 했다. 고전에 한정되었던 독서에서 이청준, 김승옥, 최인훈, 박완서 등 현대 작가로 영역을 넓혔다. 각종 사회과학 서적은 물론 명화집과 사진집도 많이 사보았다. ‘얕고 넓은독서의 절정이었다.

19973,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독서의 양상이 달라졌다. 3년에 걸친 유학 기간 동안에는 일부러 우리말 책을 보지 않으려고 했다. 러시아의 도서관은 대부분 폐가제인데, 최대한 일찍 기숙사를 나서서 하루 종일 도서관에 틀어박혔다. 빛바랜 원서를 읽고 요약하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독서의 범위는 더 한정되었다. 러시아문학, 19세기 소설,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분신혹은 분신 테마. 2001, 레닌 도서관 귀퉁이에 앉아 서지를 훑어보는 데만도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좁고 깊은책읽기의 쾌락을 최대한 만끽하던 시절이다.

20043, 처음으로 모교의 강단에 섰다. 이후 15년 동안 러시아문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선생으로, 그것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번역가로 살았다. 여전히 비정규직 신분임에도 어느덧 스무 살 이상 차이가 나는 아이들 앞에서 강의하고 그들의 마음에 들고 싶어 하는 나의 모습을 사랑한다. 스물다섯 살에 <악령>을 시작으로 <죄와 벌>,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등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번역한 것에 대한 자부심도 크다. 년 초에 출간된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 번역 역시 이 소설을 아끼는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리라 생각한다.

 

* ‘좁고 깊음에서 얕고 넓음으로: 소설가의 책읽기

 

나름대로 아카데미즘을 고집하던 내가 대학 밖의 공간에서 틈틈이 강의를 시작한 것이 2010년쯤이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카프카의 변신, 이광수의 <무정>과 염상섭의 <삼대>까지 다시 읽었다. 이런 식으로 좁고 깊은독서에서 얕고 넓은독서로의 회귀를 시도해보았다.

2016년부터는 서울대 국문과에서 개설하는 소설 창작 강좌를 맡게 되었다. 커리큘럼의 절반 이상이 동서양의 고전 중단편인지라 여중고시절 같은 세계문학 공부의 쾌감을 다시 맛본다. 더불어, 대학 시절에는 방학 때 강의실 밖에서 읽었던 요즘 소설들을 강의실 안에서 학생들과 함께 읽는 호사를 누린다. 보르헤스 말마따나 읽기는 쓰기 후에 일어나는 행위”, “보다 체념적이고, 보다 문화적이고, 보다 지적인 행위이다. 요컨대 읽기가 지적노동이라면 쓰기는 육체노동이다. 대학교 4학년이었던 1996년 소설가로 등단, 곧바로 첫 소설집(<고양이의, 고양이에 의한, 고양이를 위한 소설>)을 낼 무렵에는 몰랐던 사실이다.

작품의 수준을 떠나 일단 쓰고 보는 학생을 보면 이십여 년 마흔을 넘기면 소설이 한 줄도 쓰이지 않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라던 스승의 말이 떠오른다. 나 역시 마흔을 넘긴지 오래, 한 문청을 통해 내 꿈을 환기해본다. “꿈을 꿀 무렵의 나, 꿈속의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꿈꾼 것은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다시, 스침들>(2018, )) 어쨌든 사람은 원래 자기가 원하던, 그래서 걸어가던 그 길의 끝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성취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자기가 원하던 모습을 하고 있다. 소설가로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죽을 때는 소설가로 죽고 싶다.

 

* 동물-인간에서 사람-인간으로: 아이 엄마의 책읽기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가자. 2010121일을 맞이하는 새벽,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에 관한 글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담배냐, 아이냐.’ 열아홉 살부터 15여년을 하루 두 갑, 명실상부한 골초로 살아온 나에게는 사느냐 죽느냐수준의 문제였다. 결국 아이를 선택했으나 솔직히 담배가 피우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문제는 출산 이후였다. 담배를 안 피워도 나는 사람이지만 책을 읽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새끼를 낳아 젖을 먹이는 포유류의 암컷일 뿐이었다. 물론 이 역시 숭고한 실존이지만 그 와중에 책의 삶이 또한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스레 깨달았다. 조리원에서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을 읽었다. 9월부터는 강의 준비 차 러시아명작을 다시 훑었다. 2학년이 될 아이 역시 책을 읽기 시작한지 오래다. 동물-인간에서 사람-인간으로 진화한 것이다.

지금껏 공부는 내 인생의 거의 전부였다. 이제 와서 뭘 어쩌겠는가. 우리는 언제까지나, 여전히 모범생일 필요가 있다.

 

https://blog.naver.com/todayslibrary

 

지면이 좁아 많이 못 썼다. 나중에 책 나올 때 마저 써야지, 했는데 지금 보니 딱히 더 안 써도 되겠구먼. 그게 말의 본성이기도 한지.

원고료가 설 연휴 전에 들어왔다. 20만원 넘었다, 캬아! 너무 오랜만에 받아보는 것이라 무척 기뻤다.

 

*

  

 

 ландыш покупаем. 은방울 꽃. 할머니들이 근처 숲, 들에서 꺾어와 시장에서 들고 다니며(가만히 서서) 판다. 너무 약해 보여 산 적은 없는데, 지나고 나니 그립다.  들꽃을 많이 꺾어본, 그래서 집안까지 많이 가져와 본 경험상, 들꽃은 그렇게 피어 있을 때(만) 아름답다. 정말 금방 시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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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서사의 매혹>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략(1812년 대조국전쟁)을 다룬 역사소설인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로스토프 집안과 볼콘스키 집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두 집안은 각각 작가의 친가, 외가로서 그의 입장에서는 가 어떻게 생겨나 성장했는지를 추적하는 과정이 곧 소설 집필 과정이었다. 이 압도적인 분량의 책이 주목하는 것도 실은 남성적 서사인 전쟁’(국가의 역사)보다는 여성적 서사인 평화’(‘개인의 이야기’)이다. 특히, 열세 살 소녀에서 시작하여 네 아이의 엄마, 아줌마가 되는 여주인공 나타샤 로스토바는 톨스토이의 인간관과 세계관을 오롯이 보여준다. 로스토프 백작 집안의 이 귀염둥이는 볼콘스키 공작의 두 번째 아내가 될 뻔했으나 결국 모스크바의 대부호인 베주호프 집안의 안주인이 된다. 볼콘스키 공작 집안과 혼인관계를 맺는 자는 그녀의 오빠인 니콜라이 로스토프 백작이다. 그로써 나타샤는 남편(안드레이 볼콘스키)의 여동생이 될 뻔한 마리야 볼콘스카야와, 정반대로, 오빠의 아내로 다시 만난다. 이런 개인()의 성장의 이야기가 곧 일국의 역사이기도 한바, 개인사와 보편사의 총합에 관한 파노라마는 대하소설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반면, 제목만 놓고 보면 가족서사의 전범처럼 보이는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작가의 독특한 시간 사용법이 돋보인다. 그는 대하처럼 흐르는 시간의 총체가 아니라 그러한 시간의 한 순간을 포착하여 그 단면을 확대한다. 주인공들의 성장은 한 순간에 완성된다. 드미트리는 하루아침에 아비 죽은 패륜아로 전락하고 이반은 그로 인해 광인이 되고 스메르쟈코프는 자살하고 알료샤는 이 모든 것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모두 하루아침에 망하거나 흥한다. 톨스토이의 교과서와 비교하면 성장 없는 성장소설, 가족 없는 가족소설에 가깝다. 그럼에도 세계문학사에서 단연코 돋보이는 것은 바로 이 이 독특한 서사 구조 덕분이다.

 

 

 

 

 

 

 

 

 

 

 

 

 

 

 

우리 문학의 근대소설사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성취인 염상섭의 <삼대> 역시 잘 쓴 가족소설의 전범이다. 조의관, 조상훈, 조덕기 등 조 씨 집안 삼대를 대표하는 세 남자들의 흥망성쇠, 성장에 관한 기록은 동시에 그들이 속한 세계의 백과사전이기도 하다. 최서희의 성장소설인 󰡔토지󰡕 역시 그녀 주변의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가족서사이자 역사대하소설로서 앞으로도 추월을 허용하지 않을 법하다. 물론, 가치평가 여부를 떠나, 이미 이런 규모의 소설이 읽히지도, 쓰이지도 않는 시대가 왔음도 기정사실이다.

 

어릴 때부터 성장소설을 쓰려는, 나아가 가족서사를 축조하려는 꿈이 있었다. 대학교 4학년 때 등단한 이래 일곱 권의 소설책을 냈다. 지난 9월에는 작은 장편 <다시, 스침들>이 나왔다. 그동안 러시아문학 전공자로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비롯하여 작년 말에 출간된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까지 굵직한 러시아 소설을 번역해왔다. 올해는 러시아문학 연구서와 독서에세이집이 출간될 예정이다. 한 달만 있으면 마흔 다섯 살이다.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 최근에 이 말을 곧잘 되뇌는 것은 가족 구도 속에서 나의 생물학적, 사회적 입지를 비로소 실감한 탓인 듯하다. 나에게 가족은 양친과 두 동생, 이렇게 다섯이었다. 서른여섯, 결혼한 뒤에도 그랬다. 서른일곱, 아이를 낳았을 때도 그랬다. 20183,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나보다 먼저 결혼한 두 동생도 아이()의 부모가 된 지 오래다. 지금 나의 가족은 남편과 아이다. 과거의 가족은 문학적 현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우리 삼남매의 고향은 경상남도 거창군 수내 마을이다. 내가 태어난 것은 19751월이다. 여동생은 2년 뒤 한창 바쁜 모내기철에 태어났다. 막내인 남동생이 태어난 이듬해인 19811, 우리 가족은 부산으로 이사 갔다. 11월생인 막내 동생은 문자 그대로 핏덩어리였다. 우리의 첫 정착지는 부산진구 전포동 기찻길 위 산동네의 단칸방이었다. 1920년생인 할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해인 2007, 당시는 육십 대였던 아버지와 함께 우리가 살았던 곳을 답사하며 쓴 소설 초고의 1장은 이렇듯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 거창과 부산을 배경으로 한다. 과거는 우주보다 더 멀고 낯설다. 성장소설은 그 시간을 상대해야 한다. 다시금 문제는 새로운 시간 사용법의 발견이다.

 (<월간에세이> 2월호: http://www.essayon.co.k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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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잡지 한 권이 배달되었다. 나는 "할 일 없는 사람"이라서 이 에세이 역시 언제 나오나 열심히 기다렸다. 원고료 10만원. 이렇게 '원고'에 대한 '료'를 받으면(아직 안 들어왔지만!) 작가(글쟁이, 혹은 매설(문)가)로서의 정체성을 실감한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도 기분이 좋은 것이다.

'책'(=판매상품)과는 엄연히 다르다. 원고료는 진짜 한 자, 한 자 쓴 글에 대한 대가이다. 저 글은, 지난 학기 시간표가 애매한 탓에, 학교 커피숍과 도서관을 오가며 쓰고 다듬은 것이다.

솔직히 청탁 받을 때는 귀찮았다. 아, 이런 대책 없는 거드름, 좋아, 너무 글쟁이스러워, 잃을 것은 하나도 없고 얻을 것은 온 세상인 프롤레타리아-작가의 본성!

하지만 막상 쓰다 보면 또 글을 쓰는 그 행위 자체가 너무 좋은 것이다. 그 다음, 이렇게 잡지에 실린 내 글을 보면(실은 안 보는데) 또 기분이 묘하다.

종이가 재생지. 그 느낌도 좋았다. 요즘도 나오는지, <좋은 생각> 같은 잡지.

 

'에세이' 아닌 '수필'. 이 단어 역시, 어딘가 아늑한 데가 있다.  

하지만 저 글은 좀 많이 매정하다. - 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아닌가.

 

   *

 

게티이미지 뱅크에서 하나 찾아왔다. 모양새는 튤립과 비슷한데, 들꽃이고 왜 이름이 할미꽃인지. 아무튼 좋아하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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