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주신 투티프루티, 잘 받았습니다.
찰흙이라 하기엔 너무 이뻐서 가지고 놀기 아까워 보이네요.
오늘 저녁 마로에게 전달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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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08 1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06-02-08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본전 생각 때문에 고무 찰흙을 잘 안 사줬었는데, 앞으로는 꼬박 꼬박 사줘야겠어요. 고맙습니다.
 

보내주신 책, "풀과 벌레를 즐겨 그린 화가 신사임당" 잘 받았습니다.
마로가 좀 더 크면 사주려고 생각했던 책인데, 수암님이 선수를 치셨네요.
늘 손녀처럼 대해주시는 정을 마로가 기억하도록 책 안에 큼지막하게 써뒀어요.
"수암 할아버지의 마로 4돌 선물"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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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巖 2006-02-08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 책 미리 사 주는게 전 좋더라고요. 그 책들을 읽고 볼 때쯤이면 녀석들이 어떤 생각을 할까 하는 생각에. (진석이도 오래 전에 사 둔 책이랍니다.)

미설 2006-02-08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로 네돌이 되었군요! 마로야. 축하한다. 그리고 조선인님 키우시느라 욕보셨어요^^

조선인 2006-02-08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암님, 앞으로 저도 어린이 미술관 시리즈는 모으려구요. 참 좋데요.
미설님, 헤헤 고맙습니다.
 
곤충 감식관 파브르 1 - 사냥벌의 유혹
키타하라 마사키 지음, 아키야마 히데키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사체에 붙은 벌레로부터 살해시간이나 현장을 추리하는 법의곤충학의 스페셜리스트가 주인공이란다.
누구나 대번 CSI의 길 그리썸과 같은 활약을 기대한다.
하지만 막상 들춰보니...

실제 법의곤충학자로서의 활약은 구더기의 성장상태로 사체가 숲에 옮겨온 시간을 맞추는 사건 하나뿐.
나머지는 죄다
'사냥벌처럼 약물을 써서' 여성만을 노리는 연속살인범 사냥벌,
살해된 여동생과의 어릴 적 추억에 얽힌 '쇠똥구리',
'개미처럼' 감식관에게 추적을 당하는 폭력단원,
소꿉친구와의 '장수풍뎅이 체험'이 폭로하는 유부녀살인범,
'심신 상실을 가장한 사마귀 같은' 잔인한 강간살인범,
딸을 생각하는 아빠의 '거위벌레 같은 무조건적 사랑',
'유지매미처럼 7년만에' 탈옥한 남자의 마지막 결의,
즉 범죄자의 특징을 설명할 때 곤충을 비유하는 것이 전부다.
이 점에서 조금 실망.

하지만 곤충 그림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고, 곤충의 살이 해설이 풍부하다는 장점이 있어,
CSI가 아니라 파브르 곤충기를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훨씬 재미나게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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薯童謠(서동요) - 백제 무왕

善化公主主隱
他密只嫁良置古
薯童房乙
夜矣卯乙抱遣去如
善化公主니믄
그즈기 얼어두고
맛둥바 
바  몰 안고가다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사귀어(통정하여) 두고
맛둥[薯童] 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신라 진평왕 때 백제 무왕(武王)이 지은 4구체 형식의 향가. 향찰(鄕札)로 표기된 민요적 성격을 띠고 있다. 이 노래는 <삼국유사> 무왕조에 수록되어 있는 서동설화(薯童說話)에 끼어 전한다. 이 설화에 의 하면 이 노래는 백제 무왕이 소년 시절에 서동으로서 신라 서울에 들어가 선화공주를 얻으려고 지어 부르게 되었다 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서동설화를 여러 모로 분석, 검토한 결과 그 설화의 역사적 주인공은 무왕이 아니라 백제 동성왕(東城王)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왜냐 하면 어느 기록에도 신라 진평왕에게 셋째 딸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기 때문이다. 반면 신라 왕족의 딸과 결혼한 사실이 있는 유일한 왕이 동성왕이다.

또한 신라의 원효(元曉)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 서동설화를 익산미륵사연기전설(益山彌勒寺緣起傳說)로 취급하면서 그 역사적 주인공은 백제 무령왕이 지만 그 설화상의 민담적 주인공은 서동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사실 이 설화는 서동과 선화공주의 애정담을 핵심으 로 하는 민담의 형태를 지니고 있으므로 그 허구적 주인공 서동이 백제 동성왕.무령왕이나 신라 원효 등이 지닌 소 년 시절의 모습.이름일 수는 없다. 따라서 이들 역사적 인물 중의 어느 누구도 이 노래의 작가가 될 수는 없을 것이 다. '서동'은 서여(薯 , 마)를 비롯한 산약, 산나물을 캐어 생활을 이어가던 소년의 무리를 지칭하던 보통명사로서 초동(樵童).목동(牧童) 등과 동류의 집합 명칭이라고 볼 수가 있다. 그러므로 이 <서동요>는 서동들에 얽힌 이야기, 그 속에 들어 있는 하나의 노래로 전승된 것이라 하겠다. 즉 <서동요>는 구체적인 작자를 찾지 못하고 서동들의 노 래로서 공동으로 제작.전승된 민요적 성격을 띠고 있다. 이 노래는 서동설화의 내용을 절묘하게 집약하였으며, 산문전승의 존재와 전개를 좌우하는 '사랑의 주사'로서 문학 성과 주술성을 잘 조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 노래는 그것 자체만을 분리시켜 별도로 고찰하기보다는 그 산문전승 의 문맥 위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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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라겐 2006-02-08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 요즘 제가 빠져서 보는 드라마가 서동요예요... 이런 깊은 뜻이^^

조선인 2006-02-08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은 마로랑 옆지기가 팬이에요. 아주 웃겨요. ㅋㅋㅋ
 

무왕(? - 641년, 재위 600년 - 641년)은 백제의 제30대 왕이다.

삼국 사기에 따르면 백제 법왕의 아들이다. 위덕왕이 죽을 무렵 그의 장자 아좌태자는 일본 쇼토쿠[聖德] 태자의 스승으로 있었다. (아좌태자가 그려 준 일본 쇼토쿠 태자의 초상화는 1300년 이상 일본의 국보로 특별관리되어 오다가 1949년 호류사의 화재로 불타고 말았다) 그런데 즉위를 위해 귀국하는 아좌태자를 사촌동생 부여선이 죽이고서는 자기 아버지이자 위덕왕의 동생을 왕으로 추대하였는데 왕위에 올라 만 1년만에 죽었고(혜왕), 그 혜왕의 아들 부여선이 왕위에 올랐으나 또 1년만에 죽고(법왕), 그 뒤에 무왕이 즉위했는데, 그 재위 기간이 무려 41년이었다.

무왕이 정권을 잡던 시기는 신라와 백제가 서로 대립하고 있었으며, 중국에서는 통일제국 수가 반란군에 의해 멸망당하고, 이연이 세운 당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 때 무왕은 당나라와 친선관계를 강조하였으며,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어 신라의 팽창정책을 막으려고 하였다. 또한 불교를 믿어 현재 익산 자리에 미륵사를 건설하고 별궁을 짓는 등 백제의 국력과 왕권강화를 위해 크게 노력했다. 백제 역사상 무왕만큼 신라를 집요하게 공격한 왕은 없었다. 무왕은 무려 12번이나 신라를 침공했는데, 익산은 가장 적합한 공격의 전초 기지였다. 이 전초기지 익산에 무왕은 백제의 국력을 결집시켜 미륵사를 창건했다. 또한 무왕은 자신의 고향인 지금의 익산으로 천도하려고 왕궁을 건립하였으나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은 다시 사비성으로 수도를 옮긴 후 서기 660년에 결국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하며 678년의 백제왕국은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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