薯童謠(서동요) - 백제 무왕

善化公主主隱
他密只嫁良置古
薯童房乙
夜矣卯乙抱遣去如
善化公主니믄
그즈기 얼어두고
맛둥바 
바  몰 안고가다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사귀어(통정하여) 두고
맛둥[薯童] 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신라 진평왕 때 백제 무왕(武王)이 지은 4구체 형식의 향가. 향찰(鄕札)로 표기된 민요적 성격을 띠고 있다. 이 노래는 <삼국유사> 무왕조에 수록되어 있는 서동설화(薯童說話)에 끼어 전한다. 이 설화에 의 하면 이 노래는 백제 무왕이 소년 시절에 서동으로서 신라 서울에 들어가 선화공주를 얻으려고 지어 부르게 되었다 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서동설화를 여러 모로 분석, 검토한 결과 그 설화의 역사적 주인공은 무왕이 아니라 백제 동성왕(東城王)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왜냐 하면 어느 기록에도 신라 진평왕에게 셋째 딸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기 때문이다. 반면 신라 왕족의 딸과 결혼한 사실이 있는 유일한 왕이 동성왕이다.

또한 신라의 원효(元曉)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 서동설화를 익산미륵사연기전설(益山彌勒寺緣起傳說)로 취급하면서 그 역사적 주인공은 백제 무령왕이 지만 그 설화상의 민담적 주인공은 서동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사실 이 설화는 서동과 선화공주의 애정담을 핵심으 로 하는 민담의 형태를 지니고 있으므로 그 허구적 주인공 서동이 백제 동성왕.무령왕이나 신라 원효 등이 지닌 소 년 시절의 모습.이름일 수는 없다. 따라서 이들 역사적 인물 중의 어느 누구도 이 노래의 작가가 될 수는 없을 것이 다. '서동'은 서여(薯 , 마)를 비롯한 산약, 산나물을 캐어 생활을 이어가던 소년의 무리를 지칭하던 보통명사로서 초동(樵童).목동(牧童) 등과 동류의 집합 명칭이라고 볼 수가 있다. 그러므로 이 <서동요>는 서동들에 얽힌 이야기, 그 속에 들어 있는 하나의 노래로 전승된 것이라 하겠다. 즉 <서동요>는 구체적인 작자를 찾지 못하고 서동들의 노 래로서 공동으로 제작.전승된 민요적 성격을 띠고 있다. 이 노래는 서동설화의 내용을 절묘하게 집약하였으며, 산문전승의 존재와 전개를 좌우하는 '사랑의 주사'로서 문학 성과 주술성을 잘 조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 노래는 그것 자체만을 분리시켜 별도로 고찰하기보다는 그 산문전승 의 문맥 위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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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라겐 2006-02-08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 요즘 제가 빠져서 보는 드라마가 서동요예요... 이런 깊은 뜻이^^

조선인 2006-02-08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은 마로랑 옆지기가 팬이에요. 아주 웃겨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