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할 일 : 추석에 선물받은 치마와 스타킹과 양말을 신고, 공주시계를 차고, 키티머리끈으로 머리를 하나로 묶어야 하고, 키티 머리핀을 꽂아야 하고...
중요 준비물 : 돈
그외 준비물 : 쥬쥬 선글라스, 치카님의 인형,쥴님의 슬리퍼, 그리고 장난감비행기와 여분의 리본머리핀과 음료수뚜껑과 바비카드를 넣은 로드무비님의 핸드백

"자, 이제부터 내가 혼자 마트에 갈거야. 엄마는 내 뒤를 몰래 따라와. 내가 잘하는지 숨어서 보는 거야."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는 거야 걱정 없고 바로 앞 아파트 상가에 가는 거지만, 주차장을 가로질러야 하기 때문에 혹시나하고 마로 말대로 숨어서 따라갔다. 하아, 어째 책 설정 그대로이다. 돌멩이에 걸려 넘어졌다가 잠깐 울고 일어나서는 옷을 툭툭 털고, 다시 가다가 돈을 떨어뜨려서 줍다가 인형마저 떨어뜨리고. 결국 마로가 나를 불렀다.

"엄마, 이리 와서 인형 좀 잠깐 들고 있어봐."

내게 인형을 맡긴 뒤 돈을 줍고 선글라스를 고쳐 쓴다.

"자, 이제 인형 줘. 그리고 엄마는 다시 숨어."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 일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마트에는 마침 손님 한 분뿐. 마로는 마트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녀보지만 식혜 큰 통을 못 찾자, 손님이 계산을 끝마치길 기다린 다음, 식혜를 달라고 말했다. 고맙게도 계산대 아주머니가 직접 식혜를 찾아와 비닐봉투에 넣자 그제서야 돈을 내밀고 영수증과 거스름돈은 비닐봉지에 같이 넣어 나왔다. 그런데 마트에서 나오자마자 나를 부른다. 무거웠던지 낼름 비닐봉지를 건네더라.

무사히 첫 심부름을 마친 게 자랑스러웠던걸까? 아파트에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말한다. "저요, 식혜 샀어요." 영문을 모르면서도 일단 아이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사람들. 그래, 세상은 아직 흐뭇한 거야.



심부름을 나서는 딸의 자신만만한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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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7살 해람의 생애 첫 심부름
    from 마로, 해람, 그리고 조선인 2012-05-20 12:20 
    바나나우유4개랑 해람이가 먹을 쥬스 하나.딱 맞게 돈을 주어 거스름돈은 챙길 일은 없었지만, 영수증도 잘 챙겨왔다.난 1층에 숨어서 건너편 수퍼가는 거, 돌아오는 거 몰래 훔쳐 훔쳐 보기 ^^낑낑거리고 장바구니 들고 오는 게 안쓰러웠는데,제 심부름이라고 끝까지 제 힘으로 장바구니 들고 오는 대견함까지. 아쉬운 건 내가 미처 사진을 못 남겼다는 거.
 
 
Mephistopheles 2006-11-05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아이구 깜찍해라...!!
이대로 발전하면 마로는 내년에 가계부 쓸지도 모르겠어요..^^

BRINY 2006-11-05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전에 그런 TV 프로그램 있지 않았나요? 첫 심부름!

조선인 2006-11-05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내년이 되면 혼자 심부름 보낼 수만 있어도 좋겠어요.
브리니님, TV프로그램은 잘 모르겠는데, 책이 있어요. ㅎㅎ

하루(春) 2006-11-05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웃음이 절로..

클리오 2006-11-05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심부름 나가는데 준비할게 너무 많아요. 얼굴이 정말 이쁘게 나왔어요...

水巖 2006-11-05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아버지도 식혜 먹고 싶은데, 마로는 너무 멀리 있구나 .
키 큰것 좀 보게, 못 본 사이에 숙녀다운 모습으로 서 있군요.

서연사랑 2006-11-05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연이는 아이스크림을 혼자 사러 보낸 적이 있는데 500원짜리가 냉동고에 빠져버려서 마냥 울고 있더라구요. 하도 아이가 안 와서 찾으러 갔더니 눈물콧물 범벅이 되서 서 있는 안스러운 모습이란...(아니, 어른들이 그냥 보고 지나치기만 하는 거 있죠! 애가 울면 왜 우냐고 좀 물어봐주던지...)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첫 심부름에 욕심내지 않기로 했어요. 대신 외가집(걸어서 3분거리)에 혼자 가는 건 이제 잘 한답니다 -_-+

비로그인 2006-11-05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씩씩한 여전사 같군요.이뻐라~!^^

조선인 2006-11-06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히히, 이젠 거의 다 키웠다 라는 뿌듯함이 조금 생기긴 하더군요.
클리오님, 심부름 준비하는 데만 1시간도 넘게 걸렸어요. 에고고고
수암님, 이대로 얼음 땡~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하루가 다르네요. 아쉬워요.
서연사랑님, 에구구구, 정말 속상하셨겠어요.
흑백티비님, 저 아이에겐 아주 중요한 통과의례였답니다. 히히.

chika 2006-11-06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로가 점점 더 이뻐지고, 똘망해지고... 미치겄어요~! 어쩜 저리 앙증맞은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