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농사를 짓는 후배가 가끔 직거래를 신청받는다.
이번 품목은 단호박. 가격도 저렴하고 믿을 수 있는 곳이고 덤까지 준다고 하니 좋다고 신청했다.
우리집, 형님, 큰오빠, 작은오빠, 한꺼번에 4상자를 어제 주문.
현관문은 열어두고 방충망문만 닫아놨는데,
안방에 있다가 "택배요" 소리에 대답하며 쫓아나갔더니, 현관문 밖에 4상자를 부려놓고 그냥 가려는 아저씨.
징하게 비가 오는 중이라 복도는 물범벅이고 도저히 내가 들어 옮길 수 없는 무게.
서둘러 가시려는 아저씨에게 집 안으로 들여놔달라고 부탁했더니 현관에 들여놓고 또 몸을 돌리신다.
문제는 아파트 전체가 한창 에너지 절약공사중이라 오후면 공사하시는 분들과 장비가 들이닥칠 예정이라
현관에 짐을 쌓아둘 수 없는 상황.
"저, 죄송하지만 마루 위까지만 옮겨주시면 안 될까요? 지금 공사중이라 입구를 막으면 안 되거든요?"
아저씨는 대꾸없이 휭하니 문을 나서면서 명백히 나 들으라는 혼잣말을 한다.
"에잉, 누굴 지 종으로 아나? 별 걸 다 부려먹으려 들어."
순간 왈칵 서러움.
제가요, 보통 때 같으면 좀 무거워도 제가 치우거든요. 힘도 센 편이구요.
근데요, 지금은 무거운 걸 들으면 안 되는 상황이거든요. 수술 날짜까지 안정을 하라고 해서요.
저 입으로 사람 부리는 거 좋아하는 사람 아니에요.
오해하시기 전에 불만 있으면 그냥 대놓고 말씀하시지, 꼭 그렇게 찬바람 일으키고 가실 건 없잖아요.
혼자서 눈물까지 글썽이며 푸념하다가 결국은 여기에 끄적끄적 하소연. ㅠ.ㅠ
<덧붙임>
이렇게까지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건 사실 딴 이유도 있다.
비 때문에 미뤄질 수 있다고 했던 우리 라인 공사가 오늘 예정대로 시작했다.
방송도 없었고, 안내문도 없었던 터라 아침부터 작은방을 치우느라 허겁지겁.
게다가 언제 공사하시는 분들이 올지 몰라 쉬지도 못하고 오전 내내
그동안 못 읽은 브리핑을 읽어가며 마루에서 기다렸는데 영 오실 생각을 안 하시는 거다.
드디어 오시나 했더니 쓱 지나치고 말길래, 다른 호수를 먼저 하나 조금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택배 오기 직전에 인터폰이 울렸더랬다.
"공사중인 거 모르세요? 집을 비우시면 어떡해요. 문 열어주세요."
"저 계속 집에 있었는데요. 문도 열어놨구요."
"아침에 잠깐이라도 비운 거 아니에요?"
"(몹시 억울함) 아니에요. 제가 계속 집에 있었구요, 안 그래도 우리집을 지나치길래 왜 그런가 했어요."
"(그제서야 수그러진 목소리) 착오가 있었나 보네. 어쨌든 집 비우지 말고 문 열어놓고 기다리세요."
인터폰을 끊고 돌아서는데, 이번엔 전화가 왔다.
"(옆지기) 어디 나갔었어? 문 안 열어줘서 공사에 착오가 있다고 나한테 전화왔어."
"나가긴 어딜 나가? 계속 있었는데, 억울하네."
"(옆지기) 인터폰도 안 받았다는데?"
"진짜 기가 막혀서. 인터폰 온 적도 없고, 현관문도 열어놨어. 게다가 마루에서 계속 기다렸다고."
"(옆지기) 짜증내지 말고, 공사하는 분들이랑 연락하는 분들이 다르니까 말이 와전됐나보네."
그렇게 억울하고 짜증난 기분에, 택배 일까지 겹치니 서럽기까지 했나 보다.
음, 이제야 심사가 좀 정리가 되네.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