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준비를 하다가 세째 외숙모의 전화를 받았다.
외할아버지의 부고.
당신이 포항에 내려가 계셨던 터라 빈소도 그냥 포항에 차리기로 했단다.
다섯 며느리중 유일한 전업주부인 터라 할아버지를 모셔야 했던 네째 외숙모가
이래저래 큰 일을 맡게 되어 마음이 쓰이지만,
산달이 다음달인데 움직이면 안 된다는 어른들의 일갈에
장지가 안양이니 발인을 끝내고 올라오면 찾아뵙기로 하고 난 그냥 집에 머물러 있는 중.

단 한 차례도 다정한 대화를 나눈 기억이 없을 정도로 엄격하기만 하던 외할아버지였고,
출가외인이 드나드는 걸 질색하셔 외손녀인 나는 대학 졸업 이후 뵙지도 못했던 분인지라
슬픔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강렬한 감정은 부러움?

올 2월 초 아흔 두 수로 집에서 주무시다 돌아가신 외할머니에 이어,
착한 며느리가 삼시 세끼 새로 해올리는 밥과 국을 차린 상을 받고 지내다가
아침상 잘 잡수시고 방에 들어가 낮잠을 주무시나 했더니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아흔 한 수.
두 분 다 장수하셨고, 집에서 주무시다 돌아가셨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별 후 일년을 넘기지 않았고,
자식 중 사위까지 합치면 넷을 앞세우긴 했지만, 아들 다섯, 며느리 다섯, 딸 하나에,
손주는 물론 증손주까지 당신 가시는 길을 배웅할 터이니,
이 정도면 겉치레 인사가 아닌 진짜 호상인 것이다.
더욱이 당신들의 딸의 쓸쓸하고 어이없는 길 떠남에 비해 두분의 마지막은 한없이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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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6-07-02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호상이네요.

水巖 2006-07-02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세상에서도 편안한 세월을 보내실것 같은 마음이 듭니다. 명복을 빕니다.
그런데, 그 외할아버지는 왜 그렇게 엄격하셨을까?
마로를 보셨던들 그렇게 엄격하시지도, 출가 외인을 말하시지도 않었을걸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마태우스 2006-07-02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댁에 계시기 다행입니다. 산달 전엔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죠. 더구나 호상인데...^^

미설 2006-07-03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몸조심하고 계시다니 다행입니다. 아직 출산전이신지 궁금해서 들어와 봤지요.
울영우는 결국 선천성거대결장으로 수술했습니다. 한달넘게 병원에 있다 퇴원한지 이제 일주일 좀 넘었네요.. 아직 경과를 보는 중이긴 하지만 앞으로는 큰 탈은 없을 것 같아요. 아직 갈길이 멀긴 하지만요.. 그래도 그동안 아토피는 눈에 보이게 좋아졌답니다. 아.. 그동안의 우여곡절을 쓰자면 밤을 새도 모자라서 엄두가 안나네요.. 그래도 이제 조금은 정신이 드는지 알라딘 생각이 나네요.

조선인 2006-07-03 0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 네,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수암님, 딸이건, 친손녀건, 외손녀건, 할아버지 눈에 든 여식은 없었죠. 외증손녀라고 달랐을까 싶습니다.
마태우스님,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한다니, 고맙습니다.
미설님, 이럴 수가. 그간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어요. 이젠 괜찮아진 건가 보죠? 영우도, 미설님도 큰 일 치르셨습니다.

비로그인 2006-07-03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호상이네요. 조용히, 주무신 가운데 가신 것. 평안히 가셨다는 말이 어울립니다. 그리고 모쪼록 마태우스 님 댓글처럼 조심, 조심..

조선인 2006-07-04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쥬드님, 어제 안성 유토피아추모당으로 모셨습니다. 전 장지에서 합류했구요.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본 가장 화목하고 조용한 장례식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