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통지표와 2학년 통지표의 통신란 때문에 지금까지도 오빠들에게 놀림을 받는다.
안타깝게도 2학년 통지표가 안 보여 1학년 통지표만 공개해본다.

<행동발달사항>
1학기 : 이기적이나 친구와 잘 지냄
2학기 : 용모단정하며 자기 할 일을 잘 처리함.

<특별활동상황>
1학기 : 차츰 발전하나 성실성이 부족함.
2학기 : 활동적이고 의욕적임.

<통신란>
1학기 : 매우 영리하고 학업성적도 좋으나, 어린이답지 않은 신경질을 가끔 부리며, 얼굴을 잘 찌푸립니다. 가정에서의 정서 지도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2학기 : 항상 용의 단정하고 명랑하나 가끔 짜증스러운 표정을 잘 지으며 친구와 잘 놀다가도 약간의 언쟁을 합니다.

솔직하게 고백하면 선생님의 혹평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다.
늦둥이 고명딸로 오냐 오냐 자라서 이기적이었을 뿐 아니라
지는 걸 싫어해 작은 일로도 말싸움해서 이겨야 직성이 풀렸다.

그나마 궁색한 핑계를 찾을 수 있는 건 특별활동.
하늘처럼 까마득한 6학년 언니 오빠 뒤에 꼼짝도 못 하고 서 있는 게 지루할 법도 한데
유일한 1학년 선도반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꽤 열심히 했다.
그런데 딱 한 번 선도선생님이 자리를 비운 사이 한 오빠의 꼬임에 넘어가 교문을 타고 놀다가,
하필 담임 선생님에게 걸린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불성실하다고 낙인찍힐 일은 그거 밖에 없는 듯 하다. 조금 억울. ^^;;

뒤늦게나마 선생님이 알아주셨으면 하는 것도 있다.
부모님은 새벽장사를 나가고, 터울 많은 오빠들은 자기들끼리 아침 일찍 휘잉 나가버리고,
자기 할 일은 자기가 해야 한다는 집안 분위기 때문에
나 혼자 옷 입고, 준비물을 챙기고, 숙제를 했다.
1학년은 친구들과 잘 지내고 열심히 뛰어놀 줄 알면 그만이라는 담임 선생님 신조에 따라
방학숙제 외에는 숙제가 없었고, 준비물이라고 해봤자 음악 시간과 미술 시간 준비물 정도였지만,
선생님의 복장 단속이나 손톱 단속에 한 번도 안 걸리고, 준비물 빼먹은 적 없는 게
나로선 큰 자랑이었고, 은밀한 자부심이었다.
서정희 선생님을 천사라고 여기며 한없이 존경하고 사랑하고 따르며 잘 보이고 싶어 용을 썼던
그 시절의 내가 지금도 대견스럽게 여겨진다면 우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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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늘의 태그
    from 조선인과 마로, 그리고 해람 2007-12-07 13:22 
    오늘의 태그에 한 번도 참여는 못 했지만, 진행상황은 재미나게 보는 편이다. (쓰고 싶은 페이퍼와 리뷰도 밀렸는데 이벤트 참여까지는 역부족. 흑흑) 오늘도 어김없이 올라온 태그에 참여글 보기를 눌렀더니, 어마낫, 내 글이 나온다. 서재 2.0 개편 후 이래저래 테스트해본다고 예전 글도 수정하여 몇 개 태그를 남긴 적이 있는데, 작년 2월에 올린 글도 그 중 하나였나 보다. 그런데 자화자찬 모드는 아니지만 다시 읽어봐도 재미난 페이퍼다. 친구에
  2. 첫번째 성적표
    from 조선인과 마로, 그리고 해람 2008-07-30 09:27 
    당연한 얘기지만 일단은 좋은 이야기만 잔뜩 있다. 감동한 대목은 국어, 수학, 바른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 우리들은 1학년 등 과목별 의견은 물론, 창의적 재량활동, 특별활동, 봉사활동에 대한 의견까지 아이에 맞게 다 다르게 쓰셨다는 것. (같은 반 엄마들끼리 성적표를 돌려봤기 때문에 알게 됨) 하이라이트는 종합의견.  
 
 
2006-02-28 0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eylontea 2006-02-28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굉장히 적나라하게 쓰셨네요.. ^^

세실 2006-02-28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아직도 생활통지표를 보관하고 계시는군요~~ 제껀 어디에 있을까요?
점점 좋아진 조선인님~~ 1학년 2학기는 넘 완벽하네요. 언쟁이란 표현을 쓸 정도면 그때부터 논리적이셨나봐요.

2006-02-28 1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6-02-28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아직 그걸 갖고계시네요. 저도 뭔가 고민스러운표정의 아이였던 것 같은데요. 아무튼 조선인님 강단있는 성격이 잘 보이는 것 같아요^^

털짱 2006-02-28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초등학교 통지표를 들쳐봐야겠어요.^^

아영엄마 2006-02-28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정말 아직도 갖고 계시는군요.@@ 우리 애들꺼는 학실히~ 보관해서 물려줘야지..^^

Mephistopheles 2006-02-28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없어져 버렸을 가능성이 높군요..어머니의 치마바람 덕인지..
다쁜말은 안써있던 기억이 나네요..^^

책읽는나무 2006-02-28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어릴적부터 범상치 않은~~^^;;

저도 님과 중복되는 단어가 보여요!
이기적이라는 단어요..ㅡ.ㅡ;;
전 초등 3학년때 담임샘이 그렇게 적으셨더라구요. 4학년때도 적혀 있었던가?
"남에게 지기 싫어하며 욕심과 의욕이 너무도 강하여 약간 이기적인 면이 있으니 지도 부탁드립니다" 그문구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네요..ㅠ.ㅠ
전 그때 이기적이란 말이 뭔지도 몰랐다는~~ㅋㅋ
그래서 단어를 파악하고 나서 그다음해부터는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었더니 5학년,6학년때는 급우들과 유대관계가 좋고, 신망이 두텁다라는 문구를 써주시더군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약삭빠른 성격을 지녔다"라고 적는 것이 더 정확할 법한데 말입니다..ㅎㅎㅎ

조선인 2007-07-23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분, 나도 버럭!
실론티님, 넵, 적나라하죠?
세실님, 어려서부터 따따부따했을 생각하면 부끄러워서. ^^;;
속삭이신 분, 자꾸 그러시면 아예 님을 외면해버리는 수 있어요. 잉잉
배혜경님, 강단이라뇨. 얼마나 물러터진 바보였는데요.
털짱님, ㅎㅎㅎ 님도 다 보관하고 계시군요. 공개해주사와요.
아영엄마님, 제가 쥐띠라 그런지 뭘 못 버립니다. ^^;;
메피스토펠레스님, 그게 아니라 이미 머슴 기질이 있어서 선생님 말씀 잘 들었던 건 아니구요?
책읽는나무님, 사실 이기적이라는 말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잖아요? 히히히

Mephistopheles 2006-02-28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는유 마님에게만 머슴이구만유...~~ㅋㅋ

水巖 2006-03-01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당히 구체적이군요. 사진으로 올려야 성적도 좀 보죠. ㅎㅎㅎ

조선인 2006-03-02 0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시토펠레스님, 아주 바람직한 자세인데요? 헤헤
수암님, 어머? 학업성적도 좋으나~라는 구절도 있다구요. 단, 체육은 제외.ㅎㅎ

2006-03-02 17:3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