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우스님의 페이퍼를 읽고 : http://www.aladin.co.kr/blog/mypaper/778813

2) 발렌타인 쵸코렛; 이요원은 김주혁에게 전해달라면서 봉태규에게 쵸코렛을 건낸다. 하지만 술을 먹고 착각한 봉태규는 그걸 다른 놈한테 전한다. 영화를 보면 운명이 갈리는 게 바로 여기서부터다. 이해가 안가는 건 첨부한 편지에 받는 사람 이름을 안썼다는 거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광식이 오빠, 쵸코렛 맛있게 먹으세요. 윤경."이라고 쓰지 "쵸코렛 맛있게 먹으세요 윤경"이라고 쓰진 않는다. 그렇지 않습니까?

마태우스님의 페이퍼를 읽다 이 대목에서 추억 한 자락이 떠올랐다.
나는 어려서부터 큐피드 역할을 많이 했다.
남녀 모두에게 중성적 존재였고,
비밀엄수의 신의로는 꽤 믿을만한 친구로 인정을 받았었던 것.

그러다 중3때.
중1때 같은 반이었던 여자친구가 우리반 남자반장을 짝사랑하게 되었다.
그녀는 꽤나 활달한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짝사랑 앞에서는 무척이나 수줍음을 탔고,
나를 통해 편지나 자그마한 선물을 전달하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내성적인 반장의 반응도 참 재밌었는데, 편지나 선물을 전달해주면 얼굴이 새빨개지는 것이었다.
난 내심 반장도 그녀를 좋아하나 보다 짐작했고, 참으로 답답한 맹꽁이 둘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중학교를 졸업하는 날에도 그녀는 나를 통해 직접 짠 목도리를 선물하며 먼 발치에서 훔쳐보기만 했고,
졸업 후 3명이 다 다른 학교로 배정받는 바람에 그녀의 어설픈 짝사랑은 흐지부지 되버렸다.

그녀는 졸업 후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반장이야 한 아파트 한 동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딱히 친하게 지내지 못했는데,
대학교 낙방 후 유학을 가버리는 바람에 못 보고 지내다가 다시 보게 된 건 아이러브스쿨 열풍 덕분.
중3 반창회에 나타난 반장은 무척이나 적극적이고 활달하여, 가장 많이 변한 친구라고 모두를 놀라게 했다.
두런두런 옛 추억을 이야기하다 문득 그녀 생각이 떠올라 얼굴 빨개지던 반장을 놀렸다.
야릇하게 변하는 반장의 표정.
맙소사. 반장은 내가 그를 짝사랑했다고 알고 있었다!
수줍은 그녀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못해 이름조차 쓰지 않았던 거고,
반장은 나에게 제 이름만 적힌 편지와 선물을 받으니, 당연히 내가 보내는 건 줄 알았던 거다.

그 때만 해도 중학생이 대놓고 이성교제를 하면 입에 오르내리던 때라,
반 아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 편지며, 선물을 주던 나 때문에 반장은 부끄러웠고,
워낙 내성적인 성격이라 거절 못 하고 받기만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학교 졸업 후에는 내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칠 때마다 인사만 까닥하고
선물도 편지도 더 이상 안 주길래 내심 안도했다나?

받을 사람 이름은 써도 제 이름을 빼먹는 게 여자의 수줍음이라면,
이요원은 제 이름 쓸 용기를 쥐어짜느라 받을 사람의 이름을 빼먹은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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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5-12-03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그런 일이... 조선인님이 중성적 존재였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하여간 제보 감사드려요

세실 2005-12-03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조선인님. 혹시..내심 그 반장을 좋아했던거 아니세요???? 후다닥~

하늘바람 2005-12-03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사랑에는 꼭 실수가 있지 않을까요? 그런실수 한 기억너무 많아서^^

깍두기 2005-12-03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지도 선물도 안주다니 내심 안도했다, 는 그 반장이 아주 괘씸하군요!

조선인 2005-12-03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중석적 존재였다는 걸 못 믿겠다는 말의 진의가 궁금합니다만.
세실님, ㅎㅎ 생각해보면 큐피드 노릇만 하고 그 흔한 풋사랑도 못한 제가 젤 맹꽁이일 듯.
하늘바람님, 털어놔욧!!!
깍두기님, 그 친구가 그때만해도 무지하게 수줍음이 많은 데다가 어머님께서 엄청 엄격한 사람이었거든요. 늘 어머님한테 걸릴까봐 전전긍긍했었데요.

paviana 2005-12-03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그 반장은 조선인님이 준거로 착각하고 있으면서도 한번도 좋은 내색을 안한거래요? 괴씸한 지고...

숨은아이 2005-12-03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괘씸 3.
그런데 조선인님은 뭐라고 말하면서 선물을 전해주었을지 궁금해요. 그냥 "야, 너 이거 가져." 그랬나요?

조선인 2005-12-03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비아나님, 제가 남자들 사이에 마귀할멈으로 명성을 떨쳤던지라 ^^;;
숨은아이님, 별 말 안 했던 거 같아요. "어이, 반장, 받아." 뭐 이런 식.

비로그인 2005-12-03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 님, 그 반장이 혹시 조선인 님을 짝사랑한 건 아닐까요?

검둥개 2005-12-04 0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 반장 받아"라구요? ^^ 으하하 그 반장이 무쩍 쫄았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