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괴로워 - 우리 시대 엄마를 인터뷰하다
이경아 지음 / 동녘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지난 목요일 수원영재교육원 개강식에 참석했다. 그 연락을 수요일 오후에서야 받았기에 팀장님에게 휴가원 결재를 받으며 몹시 민망했고, 그때부터 이미 기분은 좀 상했다. 맞벌이 부부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행정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어쨌든 간단한 설명회인줄 알고 참석했는데, 허걱. 수원 교육장님까지 참석해 행사가 거창했다. 게다가 어쩜 그리 진지하신지 이 자리의 아이들은 다 미래의 아인슈타인이요 에디슨이요 처칠이 되어야 하는 존재였다. 내 생각에는 그 세 사람의 공통점은 대머리라는 것밖에 없는데 말이다. 어쨌든 미래의 인재들을 위해 부모님들은 수업시간에 늦지 않게 픽업을 잘 해야 하고(주차장 안내가 참 여러번 장황하게 반복됐다 @.@), 중간에 먹을 애들 간식도 각자 알아서 준비해야 한다는 걸 알고 낙담했을 뿐이다.

 

가장 괴로웠던 건 주변 어머니들의 열의였다.다른 엄마들은 2차, 3차 시험볼 때 따라다니며 서로 얼굴을 익힌 듯 했고(아무래도 애 혼자 가서 시험본 건 우리 아이뿐인 듯 싶다 ㅠ.ㅠ), 같은 학원을 다니며 원래 친한 경우도 꽤 있는 듯 했다. 제일 황당했던 건 이미 나를 아는 엄마가 있었다는 것.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아이와 엄마'라서 누군지 궁금했다나? 그 분은 그러나 궁금하기만 했고 친해지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지 명함을 드리고 인사를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본인 연락처는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 아직 고등학교를 정하지 않았다는 내 대답에 어색해하던 그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5학년인데 고등학교를 어디 갈지 내가 어떻게 아냐고요. OTL

드디어 개강식과 설명회가 모두 끝나고 혹시 궁금한 게 있으면 질문 하라는 사회자의 말에 난 다 끝난 줄 알고 벌떡 일어섰는데... 아뿔사. 사방에서 엄마들이 손을 드는 게 아닌가. 민망한 마음으로 도로 의자에 앉았는데, 봉사학점 대상기관이니 과학캠프 프로그램이니 수원과학정보축제 보강이니 발명대회 TO니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내용이 질문으로 마구 쏟아졌다. >.<

 

심란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정초에 읽고 리뷰를 미뤄왔던 책을 도로 꺼냈다. 이제 선미엄마나 희윤엄마의 이야기를 읽으면 그날 본 엄마들의 얼굴이 막 떠오른다. 왜 이 나라는 아이들을 '제조해낼 수 있는 존재'라 여기는 걸까. 제조의 결과는 고작 자본주의 사회 내의 물질적 성공인데, 그게 우리가 바라는 미래인걸까. 왜 대다수 엄마는 그 절반의 성공을 위해 스스로 악역을 자처하며 아이를 공부로 내모는걸까.

 

<엄마가 괴로워>가 한없이 불편한 책인 건 나 역시 선미엄마나 희윤엄마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내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일거다. 난 차마 귀농을 결심하지 못 하는 도시인이고, 난 차마 대안교육을 수용하지 못하는 학력주의자다. 애를 공부학원으로 뺑뺑이 돌리지 않는다는 걸 변명으로 삼으면서도, 아이가 나와 달리 수학을 재미없어 한다는 걸 수긍하지 못해 끊임없이 수학동화를 사들이는 엄마인 것이다. 80년대의 헐리우드 키드가 세계적인 영화감독을 만들어낸 걸 강조하면서도 아이들이 아이돌에 빠질까 겁내하는 어리석은 존재인 것이다.

 

내가 <엄마는 괴로워>를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건 내가 아는 사람이 이 책을 썼다는 게 발단이었다. 하지만 같은 책을 한 해에 두번이나 읽게 되는 건 이 나라의 미친 교육열이 엄마들을 얼마나 괴롭히고 있는지에 대한 반증이기에, 난 더 열심히 이 책을 사람들에게 권할 수 밖에 없다. 부디 더 많은 엄마들이 이 책을 읽고 더 괴로워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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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3-11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디슨이나 처칠이 대단한 사람인 줄 아는 이들이 있는데...
두 사람 발자국을 조금이라도 살핀 적이 있다면...
어머니들이나 강사라는 사람이 그리 말하지 않을 터이나...
그런데 아이가 그곳에 다녀야 하나 보지요... 에고...

반딧불,, 2012-03-11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닥토닥. 그 부분을 걱정했는데 아니나다를까군요. 그냥, 딱 눈감고 마로를 위해 그러녀니 하세요. 사람들 가치가 다 다르듯 아이들도 다 다른것을 말입니다.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지 않으면 괜시리 마음만 다치니 그냥 잊으세요. 그런 사람도 있고 이런 사람도 있는거죠. 우리 아이들은 다행히 이런 쪽엔 관심도 없고 소질도 없다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는건지..
교육받는데 아이들이 전화를 잘 안하니 신기해하더이다. 저희 아이들이야 벌써 7년이 넘게 적응이 되어서 알아서들 잘 챙겨서 하거든요. 가끔은 아이들이 너무나 잘 알아서 하니 미안하기도 하지만 결국 제가 원한 부분도 그것이니 그러려니 합니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너무 많이 죽인 것은 아닌가 걱정도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들 잘 자라고 있는걸요. 힘내시고요. 저도 마찬가지로 괴로운 엄마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조선인 2012-03-11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된장님, 이게 기회인지 독인지 잘 모르겠어요.
반딧불님, 최대한 귀닫고 다니는 게 상책이지 싶어요. 흔들리는 제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책읽는나무 2012-03-12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제 그만 괴롭고 싶어요.ㅋㅋ
그곳의 분위기는 그렇군요.음~
여기 중소도시에도 와이즈만인가? 영재육성학원이 생겼더라구요.전 그저 과학실험하는 학원인줄 알았는데 영재육성하는 곳이라 해서 그렇군! 고개를 끄덕여준적이 있었더랬어요.
그러한 학원을 보내는 것도 참 대단한 엄마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또 그곳에 보낸 엄마들은 더하군요.참 대단한 엄마들 보면서 의연해야할텐데 기가 팍 죽고 들어가니~~ㅠ
암튼...님은 그저 마로 하나만 믿고 의연해질 필요가 있어요.기죽지 말아요.제발~(제가 힘내시란 뜻으로다 추천까지 눌렀어요.^^)

지금도 님은 좀 심각하실텐데..왜 전 님의 리뷰에서 자꾸 웃음이 터지는지..
아~ 정말 죄송해요.
아인슈타인님과 에디슨님 그리고 처칠님은 대머리 아저씨였군요.ㅎㅎ
(근데 대머리면 다들 훌륭한 위인이 될 수 있는건가요?(나름 심각!))

조선인 2012-03-12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읽는나무님, 대머리가 모두 위인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는 양가 집안이 다 대머리기 때문에 해람이는 확실히 대머리 보장!이거든요. ㅋㅋ

2012-03-12 1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12-03-18 11:34   좋아요 0 | URL
아~ 정말요???
안그래도 이웃집 언니 한 명이 시댁에 대머리 유전이 있어 아들 머리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던데...ㅠ
해람이...잘생긴 대머리 아저씨라니~~
이거 진짜 해람이도 아인슈타인과 에디슨의 대를 잇겠어요.^^

조선인 2012-03-18 21:32   좋아요 0 | URL
결혼후 첫 추석때 그야말로 뿜을 뻔했어요. 큰아버님부터 결혼안한 도련님까지 일제히 절 하는데 모두 정수리 탈모. 친정은 M자 탈모. 해람이는 숙명을 받아들여야... ㅋㅋ

조선인 2012-03-12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닥님, 호호 해람이를 안타까워하지 마세요. 전 만약 해람이가 딱히 재주가 없으면 이덕화씨나 박영규씨 뒤를 잇는 가발모델로 키우겠다는 야무진 꿈이... ㅋㅋㅋ

Arch 2012-03-12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는 엄마를 멀티플래너, 가족관리 플래너로 만드는 것 같아요. 이 얘기는 엄기호 책에도 잠깐 나왔던 것 같은데...

세 위인의 공통점이 웃겼는데 조선인님의 댓글을 보고 웃어야할지 어째야할지 살짝 고민이 됐어요. 해맑은 해람이에겐 너무 가혹한 유전이에요.

조선인 2012-03-12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님, 그냥 웃으면 되요. 대머리 유전 정도야 웃어넘겨도 되는 시련이잖아요. ㅎㅎ

같은하늘 2012-03-13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엄마는 괴로워요~~ㅜㅜ
적당히 알아갈건 알아가면서 눈감고 귀막는거 정말 힘들어요.
저도 아이를 학원으로 뺑뺑이 돌리지 않고 있다는거로 위안하지만...
아이가 수학을 싫어라하는 모습을 보면 흔들려요.

조선인 2012-03-13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하늘님, 우리 서로 용기내요. 아자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