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춘 박은옥 30주년 콘서트
정태춘씨가 데뷔한 것은 1978년이라고 하니 내 나이 7살 때다.
그 때 내가 그의 노래를 들었을리 만무하지만 데뷔앨범에 실린 '시인의 마을'과 '촛불'은 지금껏 공중파를 타고 있고, 1979년에는 MBC신인가수상과 TBS 작사상까지 받았다 한다.
'시인의 마을'이 공연윤리위원회의 시정명령에 의해 가사를 바꿔야 했었다는 사연을 대학 입학 후 알게 되었는데, 이 아름다운 노래의 원래 가사가 뭐였길래 싶어서 궁금해 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원래 가사로 녹음된 곡을 듣고도 이 가사가 왜 심의대상이었나 싶어 황당했었는데, 자라 보고 놀란 놈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옛말 하나 틀린 것 없다.
'깃발' '동무'란 말이 들어가면 무조건 빨갱이고, '텅빈' '번민' '방랑자'라는 말이 들어가면 사회불안 조성이란다. 어쨌든 내게 정태춘과 박은옥은 80년대를 대표하는 포크가수였고, 둘이 부르는 사랑 노래에 가슴 떨려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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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괄호 안이 수정된 가사)
창문을 열고 음, 내다봐요
저 높은 곳에 우뚝 걸린 깃발 펄럭이며
(푸른 하늘 구름 흘러가며)
당신의 텅빈(부푼) 가슴으로 불어오는
더운 열기의 세찬 바람(맑은 한줄기 산들바람)
살며시 눈감고 들어봐요
먼 대지 위를 달리는 사나운 말처럼
당신의 고요한 가슴으로 닥쳐오는
숨가쁜 벗들의 말 발굽 소리(자연의 생명의 소리)
누가 내게 손수건 한 장 던져 주리오(따뜻한 사랑 건네 주리오)
내 작은 가슴에 얹어 주리오(내 작은 가슴 달래 주리오)
누가 내게 탈춤의 장단을 쳐주리오
(생명의 장단을 쳐주리오)
그 장단에 춤추게 하리오
나는 고독의 친구, 방황의 친구(자연의 친구, 생명의 친구)
상념 끊기지 않는 번민의 시인이라도 좋겠오
(사색의 시인이라면 좋겠오)
나는 일몰의 고갯길을 넘어가는
고행의 방랑자 처럼(수도승 처럼)
하늘에 비낀 노을 바라보며
시인의 마을에 밤이오는 소릴 들을테요
우산을 접고 비 맞아 봐요
하늘은 더욱 가까운 곳으로 다가와서
당신의 울적한 마음에 비 뿌리는
젖은 대기의 애틋한 우수
누가 내게 다가와 말 건네 주리오
내 작은 손 잡아 주리오
누가 내 운명의 길동무 돼 주리오(내 마음의 위안 돼주리오)
어린 시인의 벗 돼 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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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대학에 입학해보니 '아, 대한민국'과 '일어나라 열사여'의 가사가 집회장마다 울려퍼지고 있었고, 그 노래를 부른 가수가 정태춘이라는 것에 깜짝 놀랐다.
지금은 없어진 학교 앞 민중서점에서 그의 테이프를 산 뒤 한 곡 한 곡 들으며 울던 기억이 난다.
특히 '우리들의 죽음'은 지금껏 나를 공포에 사로잡히게 하는데, 애들이 제법 큰 지금도 불 근처는 얼씬도 못 하게 하고 있다.
노래가 과격해서 불법테이프였던 게 아니라, 사전검열 철폐를 위해 일부러 심의를 안 받고 불법테이프로 제작했다는 것을 안 건 훨씬 더 뒤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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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대한민국
우린, 여기 함께 살고있지 않나 사랑과 순결이 넘쳐흐르는 이 땅 새악시 하나 얻지 못해 농약을 마시는 농촌의 총각들은 말고
특급 호텔 로비에 득시글거리는 매춘 관광의 호사한 창녀들과 함께 우린 모두 행복하게 살고있지 않나 우린 모두 행복하게 살고있지 않나
아, 우리의 땅, 아, 우리의 나라…
우린 여기 함께 살고있지 않나 기름진 음식과 술이 넘치는 이 땅 최저임금도 받지 못해 싸우다가 쫓겨난 힘없는 공순이들은 말고
하룻밤 향락의 화대로 일천만원씩이나 뿌려대는 저 재벌의 아들과 함께 우린 모두 풍요롭게 살고있지 않나 우린 모두 만족하게 살고있지 않나
아, 대한민국, 아, 우리의 공화국…
우린 여기 함께 살고있지 않나 저들의 염려와 살뜰한 보살핌 아래 벌건 대낮에도 강도들에게 잔인하게 유린 당하는 여자들은 말고
닭장차에 방패와 쇠몽둥이들 싣고 신출귀몰하는 우리외 백골단과 함께 우린 모두 안전하게 살고있지 않나 우린 모두 평화롭게 살고있지 않나
아, 우리의 땅, 아, 우리의 나라…
우린 여기 함께 살고있지 않나 양심과 정의가 넘쳐 흐르는 이 땅 식민 독재 맞서 싸우다 감옥에 갔거나 어디론가 사라져간 사람들은 말고
하루 아침에 위대한 배신의 칼을 휘두르는 저 민주인사와 함께 우린 너무 착하게 살고있지 않나 우린 바보같이 살고있지 않나
아, 대한민국, 아, 우리의 공화국…
우린 여기 함께 살고있지 않나 거짓 민주, 자유의 구호가 넘쳐흐르는 이 땅 고단한 민중의 역사 허리 잘려 찢겨진 상처로 아직도 우는데
군림하는 자들의 배 부른 노래와 피의 채찍 아래 마른 무릎을 꺾고 우린 너무도 질기게 참고 살아왔지 우린 너무 오래 참고 살아왔어
아, 대한민국, 아, 저들의 공화국!
아, 대한민국, 아, 대한민국…
<우리들의 죽음>
젊은 아버지는 새벽에 일 나가고 어머니도 돈 벌러 파출부 나가고
지하실 단칸방엔 어린 우리 둘이서 아침 햇살 드는 높은 창문 아래 앉아
방문은 밖으로 자물쇠 잠겨있고 윗목에는 싸늘한 밥상과 요강이
엄마, 아빠가 돌아올 밤까지 우린 심시해도 할게 없었네
낮엔 테레비도 안하고 우린 켤줄도 몰라
밤에 보는 테레비도 남의 나라 세상
엄마, 아빠는 한번도 안나와 우리 집도, 우리 동네도 안나와
조그만 창문의 햇볕도 스러지고 우린 종일 누워 천정만 바라보다
잠이 들다 깨다 꿈인지도 모르게 또 성냥불 장난을 했었어
배가 고프기도 전에 밥은 다 먹어치우고 오줌이 안 마려운데도 요강으로
우린 그런 것 밖엔 또 할 게 없었네 동생은 아직 말을 잘 못하니까
후미진 계단엔 누구 하나 찾아오지 않고, 도둑이라도 강도라도 말야
옆방에는 누가 사는지도 몰라, 어쩌면 거긴 낭떠러지인지도 몰라
성냥불은 그만 내 옷에 옮겨 붙고 내 눈썹, 내 머리카락도 태우고
여기 저기 옮겨 붙고 훨, 훨 타올라 우리 놀란 가슴 두 눈에도 훨, 훨
(엄마, 아빠! 우리가 그렇게 놀랐을 때 엄마, 아빠가 우리와 함께 거기 있었다면…)
방문은 꼭 꼭 잠겨서 안 열리고 하얀 연기는 방 안에 꽉 차고
우린 서로 부둥켜 안고 눈물만 흘렸어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우린 그렇게 죽었어 그 때 엄마, 아빠가 거기 함께 있었다면… 아니, 엄마만이라도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 우리가 방 안의 연기와 불길 숙에서 부둥켜 안고 떨기 전에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 방문을 세차기 두드리기 전에,
손톱에서 피가 나게 방 바닥을 긁어대기 전에, 그러다가 동생이 먼저 숨이 막혀 어푸러지기 전에,
그 때, 엄마, 아빠가 거기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야, 우리가 어느 날 도망치듯 빠져나온 시골의 고향 마을에서도 우리 네 식구 단란하게 살아 갈 수만 있었다면…
아니, 여기가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축복을 내리는 그런 나라였다면…
아니, 여기가 엄마, 아빠도 주인인 그런 세상이었다면…
엄마, 아빠! 너무 슬퍼하지마 이건 엄마, 아빠의 잘못이 아냐, 여기, 불에 그을린 옷자락의 작은 몸둥이, 몸둥이를 두고 떠나지만
엄마, 아빠! 우린 이제 천사가 되어 하늘 나라로 가는 거야 그런데 그 천사들은 이렇게 슬픈 세상에는 다시 내려 올 수가 없어
언젠가 우린 다시 하늘 나라에서 만나겠지 엄마, 아빠! \\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배운 가장 예쁜 말로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어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이제, 안녕… 안녕…
<일어나라 열사여>
더이상 죽이지 마라 너희 칼 쥐고 총 가진자들 싸늘한 주검 위에 찍힌 독재의 흔적이 검붉은 피로, 썩은 살로 외치는구나
더이상 욕되이 마라 너희 멸사봉공 외치는 자들 압제의 칼바람이 거짓 역사되어 흘러도 갈대처럼 일어서며 외치는 구나
여기 하나이 죽어 눈을 감으나 남은 이들 모두 부릅뜬 눈으로 살아 참 민주, 참 역사 향해 저 길 그 주검을 메고 함께 가는 구나
더이상 죽이지 마라 너희도 모두 죽으리라 저기 적 민중 속으로 달려 나오며 외치는 앳된 목소리들 그이 불러 깨우는구나
일어나라, 열사여, 깨어나라 투사여 일어나라, 열사여, 깨어나라 투사여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바람이 분다, 저길 보아라 흐느끼는 사람들의 어깨 위 광풍이 분다. 저길 보아라 죽은 자의 혼백으로 살아온다
반역의 발굽아래 쓰러졌던 풀들을 우리네 땅 가득하게 일으켜 세우는구나
바람이 분다, 욕된 역사 위 해방의 깃발되어 저기 오는구나
자, 부릅떠야 하네, 우리들 잔악한 압제의 눈빛을 향해 자, 일어서야 하네, 우리들 패배의 언 땅을 딛고
죽어간 이들 새 역사로 살아날 승리, 부활의 상여를 메고 자, 나아가야 하네, 우리들 통일, 해방 세상 찾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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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집의 충격이 워낙 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92년 장마, 종로에서>는 싱겁게 여겨졌다.
6집 역시 불법테이프로 제작되었는데, 5집과 비교하면 과격한 가사가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역시 사전검열 반대를 위해 그리 했다고 한다. 내 생각에는 만약 심의를 했다 해도 정말 문제가 될 만한 노래는 '나 살던 고향' 정도?
정태춘씨에 비해 상대적으로 활동도 뜸하고 대중에 나서지 않던 박은옥씨도 이 앨범에는 참여했다.
그래서일까? 집회 무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박은옥씨였지만, 이 앨범 이후로는 대학 공연일 경우 공동 출연을 곧잘 하셨고, 운 좋게도 4학년 대동제에 이 분들을 나란히 초청해 뒷풀이까지 걸지게 나눌 수 있었다. 그날 술자리에서 아직 이런 노래 부를 때는 아니지만 오늘은 기분이 좋아 특별서비스를 한다면서 두 분이 함께 기타치며 '촛불'과 '봉숭아'를 불렀던 기억은 지금도 훈훈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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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살던 고향>
육만 엥이란다
후꾸오까에서 비행기 타고
전세 버스 부산 거쳐, 순천 거쳐
섬진강 물 맑은 유곡 나루
아이스 박스들고, 허리 차는 고무 장화 신고
은어 잡이 나온 일본 관광객들
삼박 사일 풀코스에 육만 엥이란다
초가 지붕 위로
피어 오른는 아침 햇살
신선하게 터지는 박꽃 넝쿨 바라보며
리빠나 모노 데스네, 리빠나 모노 데스네
까스 불에 은어 소금구이
혓바닥 사리살살 굴리면서
신간선 왕복 기차값이면
조선 관광 다 끝난단다 음, 음
육만 엥이란다
초가 지붕 위로
피어 오른는 아침 햇살
신선하게 터지는 박꽃 넝쿨 바라보며
리빠나 모노 데스네, 리빠나 모노 데스네
낚싯대 접고, 고무 장화 벗고
순천의 특급 호텔 싸우나에 몸 풀면
긴 밤 내내 미끈한 풋가시내들
써비스 한 번 볼만한데 음, 음
환갑내기 일본 관광객들
칙사 대접받고, 그저 아이스 박스 가득, 가득
등살 푸른 섬진강 그 맑은 몸 값이
육만 엥이란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나니나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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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씨는 결국 사전심의가 위헌이라고 1993년 소송을 거는데, 1995년 비로소 위헌 판결을 받고, 1996년에는 사전심의를 폐지하는 법 개정이 된다.
아이러니한 건 당시 소송을 맡았던 천정배 변호사가 2005년에는 법무부 장관으로써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대추리 지키기 운동에서 정태춘씨와 반대 입장에 섰다는 거다.
또 하나 짚어볼 건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이 가사 없이 연주곡으로 녹음되었던 사건이 정태춘씨보다 더 널리 기억된다는 것이다.
물론 서태지와 아이들을 무시하는 건 아니고 정태춘씨와 박은옥씨의 삶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는 거다.
이상이 내가 정태춘, 박은옥 30주년 콘서트에 가야 하는 이유다. 하나 더 덧붙인다면. 정태춘씨, 박은옥씨는 윤도현씨, 김제동씨, 김C, 강산에씨와 같은 기획사 소속이다. 아마 30주년 콘서트를 가면 다른 분들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