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현의 연애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평점 :
나는 무척이나 수다스럽다.
내 생각을, 내 느낌을, 더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 수다를 떤다.
때로는 수다에 전력을 다하느라 진이 빠져 아찔한 현기증을 느낄 정도이다.
하지만 알라딘 블로그에서 난 덜 수다스럽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서재 역시 '기록'이다.
그 순간에 맞장구쳐가며 때로는 함께 울고 웃으며 나눈 이야기라도 '말'은 기억 속에 희미해지고 왜곡되지만,
굳이 활자화되지 않고, 널리 회람되지 않는다 해도 '글'은 반영구적인 기록이 됨을 알기에 두려운 것이다.
내가 끄적인 생각은 그대로 틀이 되어 나의 행동을 제한하며,
내가 순간 욱하며 끄적인 최고조의 감정은 삭제하지 않는 한 쇠된 아우성을 그칠 줄 모른다.
이처럼 기록을 하는 일은 항상 두려운 일인데, 다른 한편으로는 기록을 남기고 싶어 버둥대는 내가 있다.
블로그에 끄적이는 몇 줄의 일상, 몇 절의 감상으로는 택도 없는 긴긴 이야기.
그건 바로 내 어머니의 이야기.
아무리 수다스러운 나라고 해도 차마 구구절절 다 풀어낼 수 없는 어머니의 긴긴 이야기.
혹은 너무 갑자기 세상과 이별해버린 어머니의 짧은 이야기.
내 속된 재주로는 도저히 그미의 이야기를 풀어낼 자신이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하기에 소설가를 지망하는 한 선배를 만나면 난 지겹도록 어머니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언젠가 그녀의 소설에 우리 어머니가 등장하는 날이 오길 기대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고, 나의 은밀한 욕망 역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난 새로운 꿈을 꾼다.
이진.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가 생령 대신 내 어머니의 넋을 만나는 날을 꿈꾼다.
혹은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 심윤경을 내가 만나는 날을 꿈꿔 보는 것이다.
어쩌면 심윤경은 이미 나와 내 어미를 만난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달의 제단>에서 그미의 한은 다양한 변주를 보여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책 속의 <창세기>는 내가 생각한 에덴 동산 그 자체였기도 하다.
* 동갑내기 작가에 대한 전작주의를 표방하고 이번 소설 역시 흡족스럽게 읽었으면서 별을 하나 뺀 이유
- 심윤경은 따박따박 자로 잰 듯한 기승전결과 확실한 클라이막스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체험적 자산이 없다고 초조해하는 것일까? 그녀는 이미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인데 무얼 더 바라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