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개정안 통과땐 불법 규정
MMORPG 게임머니 중개도 포함
아이템 현금거래사업 타격 예상

아이템 현금거래 사이트를 통한 '한게임 머니' 거래나 '아데나'(리니지 게임머니)와 같은 MMORPG 머니 거래가 전면 금지될 전망이다.

22일 문화관광부에 따르면, 최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문광위)를 통과한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게임머니 거래를 '중개'하는 행위가 불법으로 규정된다. 일반적인 온라인게임 아이템을 제외하고 고스톱과 포커게임 머니는 물론 MMORPG 게임머니 거래 중개도 전면 금지된다.

정부와 국회가 오랫동안 법의 테두리 밖에 있던 아이템(게임머니) 현금거래에 대해 처음으로 규제의 칼을 뽑아든 것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사업을 해 왔던 아이템 현금거래 중개 사업이 위기를 맞게될 전망이다.

정부와 국회는 사행성 게임 파문 이후 이를 근절하기 위한 일환으로 게임산업진흥법 발효와 동시에 개정안을 준비해 왔다. 개정안의 골자는 게임물 범주에서 사행성 게임을 제외하는 것과 성인게임에서 경품제공을 금지하는 것, 그리고 게임의 연령등급을 4단계로 세분화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정부는 온라인게임 분야에서 발생하는 사행성 근절을 위해 개정안 내에 '게임머니 환전업 금지' 조항을 추가했다. 누구든지 게임 이용을 통해 획득한 유무형의 결과물을 '환전' 또는 환전을 '알선'하거나 '재매입'하는 행위를 '업'으로 해서는 안된다는 규정이다.

여기서 말하는 '결과물'이란 온라인게임에서 획득한 게임머니를 포함해 점수(포인트), 경품 및 이와 유사한 것을 말한다. MMORPG에서의 장신구나 특수 장비와 같은 아이템은 제외되지만, 고스톱이나 포커와 같은 웹보드 게임 뿐만 아니라 MMORPG와 캐주얼게임의 게임머니는 포함된다.

즉, 개정안에 따르면 모든 온라인게임에서 획득한 게임머니를 거래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이를 영업하거나 직업의 수단으로 삼게될 경우 법에 의한 처벌을 받게 된다. 특히 아이템 중개 사이트들은 '환전을 알선'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강력한 처벌을 받게된다는 게 문화부의 설명이다.

국내 아이템 중개 사이트들은 지난 여름 사행게임 파문 이후 자의반 타의반으로 웹보드 게임머니 거래 중개를 중단했으나, '리니지' 게임머니와 같은 대표 MMORPG 게임머니 거래는 여전히 지속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일반 게임 아이템의 현금거래는 중개할 수 있지만, 게임머니 거래를 중개하다 적발된 경우에는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특히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은 공포 후 즉시 시행되는 것으로 별도 유예기간이 없기 때문에 통과 직후 곧바로 아이템 중개 사이트에 대한 단속도 가능하다.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은 자구 수정이 끝나는 대로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며, 정치적 이슈가 발생하지 않는 한 12월 중 국회를 통과할 것이라는 게 문화부의 예상이다.

한편, 문화부는 이번에 개정안에서 제외된 `아이템 현금거래'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규제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와 관련해 문화부는 공청회를 거쳐 민간 의견을 수렴한 뒤, 내년 9월 국회 통과를 목표로 2007년 초 또 한번의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택수기자@디지털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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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 2006-10-11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노 행사가 있을때마다 파주출판단지에 가보곤 했는데. 포노가 이렇게 되는군요. 아무래도 시디산업이 사양산업으로 접어드는 느낌이어서 기분이 착찹하네요^^ 알라딘에서 잘 운영해주시길...알라딘 만큼이나 자주 이용한 쇼핑몰이었는데...

marine 2006-10-11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아쉽네요 여기는 포장을 참 꼼꼼하게 잘 해서 좋아했는데...

비연 2006-10-11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이용하던 곳인데..알라딘에서 접수...

수퍼겜보이 2006-10-11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브리핑 보고 porno 인 줄 알았어요.

키노 2006-10-11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마린님/저두 넘 아쉬워요^^ 알라딘이 잘 운영해주었으면 하네요
비연님/그렇더군요.알라딘에서 접수^^
수퍼겜보이님/포르노라니..헉^^;;
 

옛날 비디오 찾아 황학동에 가다
사라져가는 그 공간에 가다
2006.10.02 / 허지웅 기자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의 보고, 청계천 황학동이 그 생명력을 다해가고 있다. 과거, 전국에 유통되는 비디오가 한 번쯤 반드시 거쳐 가야했던 부가판권시장의 황금어장 황학동. 옛날 비디오를 찾아 그곳을 다시 찾았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

3년 만에 다시 찾은 청계천 황학동은, 더웠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아니면 순서를 바꿔 가을 겨울 봄 여름 언제 찾아가더라도 정수리와 겨드랑이, 발가락 사이로 어김없이 차오르던 찝찔한 땀내가 기억 너머에서 불쑥 떠올랐다. 이 정체불명의 더위에 대해선 TV프로에 출연해 청계천 복원사업이 서울 도심의 열섬현상을 없애줄 거라며 적외선 지도와 도표를 곁들어 설명하던 안경잡이 박사조차 끝내 설명해주지 못했다. 번번이 거리 위에 깔려 있던 차분한 먼지안개와 노란색 셀로판지를 덧대어놓은 것 같은 풍경까지 시야에 들어오자 내가 비로소 황학동에 돌아왔음을 실감했다. 언뜻 둘러본 3년 만의 황학동은, 상당히 정돈됐다고나 할까. 어떤 록 스타를 무척이나 닮았던 시장의 선도 아래 질서정연하게 가로 잡히고 세로 잡히고 칸을 나누고 줄을 그어 '개선'된 청계천의 도로 한 가운데를, 인간미를 찾아볼 수 없어 인조인간 로봇 마징가Z를 연상케 하는 12만 톤 검은색 물길이 관통하고 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 마징가Z는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150마력짜리 모터펌프 4대가 없으면 주저앉는다 했다. 인생을 통틀어 이곳이 아니면 결코 다시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진귀한 물건들. 그 물건들을 손수레 가득 싣고 행인을 유혹했던 노점상들의 행렬은 공룡처럼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다.

당황스런 3년 만의 재회

풍경이야 어찌됐든, 오늘 내 목적은 추억의 옛날 비디오를 찾는 거다. 한때는 하루에 세 번 찾을 정도로 안방 같았던 황학동을 오랫동안 망각하고 있었다는, 어쩔 수 없는 다소간의 죄의식을 억누르며 오래 전의 단골이었던 비디오 가게를 찾았다. 2층에 위치한 그 비디오 가게는 아직 밀레니엄이 도래하기 전 시가 5만 원 상당의 희귀 비디오였던 한국 최초의 좀비영화 <괴시>(1980, 강범구)를 단돈 3천 원에 속여 산 기억 탓에 좋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당시만 해도 황학동엔 그런 낭만이 있었다. ‘3일 전에 죽었던 용돌이가 살아 돌아왔다!’는 충격적인 문구로 기억되는 <괴시>는, 굳이 상도를 어겨가며 어렵게 구했던 과정만큼 즐거운 영화는 아니었다. 전혀 중국사람 같지 않은 중국배우와 전혀 한국사람 같지 않은 한국배우가 등장해 해충을 없애는 첨단 과학기계가 시체를 되살려내는 비밀을 파헤치는 내용이었는데, 어째 뭔가 이상했다. 어디서 많이 보던 내용이다 싶었더니 <Let Sleeping Corpses Lie>(1974, 조지 그루)의 토시 하나 안 틀린 완전 표절작이었던 것이다.

문을 열자 지난 장마 동안 단 한 번도 환기를 시키지 않았음이 거의 확실시되는 짙은 곰팡내와 피사의 사탑 마냥 쌓여 있어 기침만 해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비디오테이프 무더기가 손님을 맞이했다. 내일 당장 홍수가 밀어닥치는데 방주에 시동 걸 열쇠를 잃어버린 노아의 눈빛을 한 사장이 나를 발견했다. 한때의 단골을 전혀 기억 못하는 눈초리다. 좀 섭섭한데. “황학동 비디오 시장에 대해 기사를 쓰고 있는데요, 잠깐 말씀 좀 나눠볼 수 있을까요?” 뭐야 이 자식, 하는 눈초리로. “망했어. 다 망했는데 무슨 얘기를 해. 그런 소리 할 거면 나가. 요 옆 가게도 있고 저 옆 건물 1층에도 있는데 왜 2층까지 기어 올라와 지랄이야. 심난해 죽겠는데.” 순간 얼어붙었다. 어마마, 티끌만치도 예상치 못했던 반응. 창피한 일이지만 눈물까지 찔끔 지려버리고 말았다.

도망치듯 매장을 빠져나와 거리 위에 우두커니 섰다. 이토록 격렬한 반응이라니. 어쩌면 <괴시>를 헐값에 산 것에 대한 때늦은 천벌인지도 몰라. 빨리 이 충격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하늘이라도 우러러보려고 고개를 들었더니,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는 TV광고로 기억되는 주상복합단지의 반쯤 만들어진 마천루 그룹이 황학동 하늘 구석구석 빽빽이 들어차 있다. 한창 공사 중인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건물 한 가운데에는 사기분양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차후 적법한 분양공고가 있을 예정이니 기다려 달라는 내용의 대형 플래카드가 부초처럼 나부끼고 있었다. 난 언제쯤 이런 아파트에서 살아보나. 그러고 보면 죽네 사네 하면서도 아파트 한 채씩은 꼭 가지고 있단 말야. 판교 신도시 2차 분양 이후에는 용인이 뜬다는군. 은평 뉴타운이 민간 분양보다 평당 95만 원이 비싸다던데, 그럼 서민은 다 죽으란 말이냐, 야 다 나와, 뭐 이런 어른스런 생각을 거듭하다 마주오던 행인의 어깨에 밀려 겨우 정신을 차렸다.

대한민국 모든 비디오는 황학동을 거쳤다

복원된 청계천 물길 주변의 난간에 기대 눈앞에 펼쳐진 상가들을 바라봤다. 청계천 황학동 시장은 일반적으로 황학동 삼일 아파트 13동부터 24동까지 펼쳐진 상가 건물들과 그 주변 풍물시장을 일컫는다. 아파트는 뭐고 상가는 또 뭐냐고 묻고 싶겠지만 아파트인 동시에 상가 건물로 허가를 받은 터, 그러니까 여기 삼일 아파트나 종로 3가 세운상가, 낙원상가가 모두 주상복합건물의 원조인 셈이다. 삼일 아파트 머리 꼭대기로 닭 벼슬처럼 치솟아 오른 새 주상복합단지의 건설현장은 그래서 더욱 아이러니한 풍경이다. 황학동 시장은 여러 가지 중고물품과 도매상권으로 오래 전부터 유명세를 떨쳐왔다. 1990년대 중반, 주말이면 진귀한 구경을 하기 위해 서울시민들이 몰려들었고 노점상과 상가들 모두 인파로 몸살을 앓다시피 했다. 그러니까 바야흐로 황학동의 시대였던 것이다, 라고 하면 과장이고 어쨌든 복잡한 서울시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문화지대였던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게 있어 황학동 시장이라 하면 그건 그저 ‘비디오 시장’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도소매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황학동 비디오 시장은 한국 영상물 부가판권 상권의 알파요 오메가다. 대한민국에서 유통되는 모든 비디오는 그 삶이 계속되는 한 반드시 황학동을 한 번쯤 거쳐야했다. 날마다 새로 등장하는 신간 비디오들이 황학동에서 전국 비디오 대여점으로 뻗어나가고, 몰락한 대여점의 중고 비디오들이 황학동으로 돌아와 헐값에 다시 대여점과 개인 고객에게 팔려나간다. 바로 이 중고 비디오야말로 황학동의 묘미라고나 할까, 혈혈단신 서울에 똬리를 틀고 대학생활을 시작했던 1990년대 중후반, 나는 거의 일주일에 두세 번씩 중고 비디오를 찾아 황학동을 찾았다. 딱히 할 일도 없었거니와 내가 좋아하는 영화라는 것이 대부분 정상적인 비디오 대여점에선 찾아볼 수 없는 종류였기 때문이다. 그런 류의 시시껄렁한 영화들을 여의도 공원 비둘기만큼이나 발에 채이게 발견할 수 있는 황학동은 내게 있어 그야말로 잭 스패로우의 카리브 해였다. 고전 한국영화나 B급 공포영화, 고전 한국공포영화면 더 좋고, 그런 필살의 비디오들을 찾아 먹색 봉지에 쳐 넣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면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르고 화장실에 가지 않아도 개운했으며 어떤 시리얼을 먹지 않아도 호랑이 힘이 솟아났다. 그런데 그 시리얼을 먹으면 성욕이 감퇴되고 정자 수가 준다는데, 진짜일까? 아무튼 그렇게 비디오를 사들고 오면 어김없이 피시통신에 접속해 “나 오늘 이런 저런 비디오 구했다, 부럽지?” 따위의 글을 올려놓고 저 혼자 좋아 킥킥대곤 했던 것이다. 가끔씩 나만큼 지독히 할 일 없는 인사가 답글을 달아 축하해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그저 자기만족에 불과했다. 추억은 그만두고 일 해야지, 하는 맘에 발을 뗐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황학동 최고 규모를 자랑하는 비디오 상점 ‘비디오 여행’으로 향했다. 삼일 아파트 18동 2층에 자리한 가게다.

“황학동 장사도 올해가 마지막인 셈이지”

‘비디오 여행’의 남진수 소장님이 반갑게 맞이한다. 살가운 반응에 코끝이 시큰하다. 먼저 간 가게에서는 문전박대에 욕만 듣고 쫓겨나왔다 하니 “그런 건 기자님이 이해해줘야지. 진짜로 망했는데 거짓말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하나, 그럼.” 하신다. 비디오 여행은 비슷한 이름의 공중파 영화 소개 프로그램과는 관련이 없다. 1986년부터 사업을 시작했으니 벌써 20년이 다 됐다. 비디오테이프 도소매 및 비디오 대여점 신규개업, 폐업관리로 시작해 2000년 들어서부터는 DVD 총판까지 병행하고 있다. 규모로 따지면 청계천 최고 아니냐고 물었더니 손 사레를 치며 대한민국 최고라고 강조하신다. 그냥 자랑은 아닌 것이, 인터뷰 하는 중에도 손님들이 꽤나 드나들며 불황을 무색케 했다. 그런데 어쩐지 주변에 비디오 가게가 많이 줄어든 것 같아요, 하고 묻자 팔짱을 끼며 자못 심각하게 말씀하시길 “처음엔 한 30여 군데 넘게 있었는데 IMF 지나면서 20개로 줄어들고, 이번에 청계천 복개공사로 노점상들이 전부 동대문운동장 안으로 쫓겨나면서 또 반으로 줄어버렸어. 그나마 신 프로 다루는 매장은 5군데 정도밖에 안 돼. 복개작업 이후에 공기는 좀 좋아진 것 같은데, 그럼 뭐하나. 장사치들이 장사가 잘 돼야 행복한 거지. 여기가 도깨비 풍물시장이라는 게 다 노점상들이 있어서 가능한 감투였는데, 이제는 노점상 구경하러 왔다 비디오 구입해가는 손님들도 없고, 그저 주말에 청계천 구경하러 왔다 곱창이나 먹고 돌아가는 가족들밖에 없어. 그래서 요 앞에 먹자골목만 성황이지 다른 데는 업종 안 가리고 전부 망했어.”

유사 이래 황학동 시장을 지배해온 것은 돈, 시장논리였다. 거미줄 같은 골목길을 따라 전체를 관통하는 보이지 않는 질서다. 누구네 아들, 누구네 조카, 사돈 팔촌의 조카의 동서, 무슨 고등학교, 대학교 출신, 그리고 그 출신의 아들과 친구들이 주름잡는 한국 주류사회와는 달리 황학동만큼은 돈의 논리로 일어서고 쓰러지고 재기해왔다. 그랬던 황학동이 이젠 개발논리에 의해 고난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이제는 그 명맥조차 유지하기 힘들게 생겼다. 황학동 시장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까지 모조리 다 철거될 예정이다. “우리 머리 위로 주상복합건물 짓고 있잖아. 개천복원에 방해돼 노점상들 내보내고, 이젠 우리 차례인 거지. 아직 시에서 공식적으로 통보가 내려온 건 아닌데, 조합 쪽으로 해서 다 얘기가 전달됐어. 청계천에서 장사하는 것도 올해가 마지막인 셈이지 뭐.”

삶과 생존의 문제가 왔다갔다하는 와중에 옛날 비디오 찾는 미션 따위가 뭐가 그리 중요해, 라지만 결국 한쪽 구석에서 몇 개 테이프를 골라내고 말았다. <고무인간의 최후>와 <네온 익스프레스> <악마의 씨> 그리고 <마견>. 한국 비디오업계의 눈부신 작명 철학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하는 대목인데, 피터 잭슨의 데뷔작 <배드 테이스트>를 <고무인간의 최후>로, 로만 폴란스키의 <로즈메리의 아기>를 <악마의 씨>로, 그리고 사무엘 풀러의 <화이트 독>을 <마견>으로 바꿔 대중성과 오락성을 고루 겸비한 제목을 창조해낸 것이다. 그게 무슨 궤변이냐 묻는다면 <화이트 독>을 곧이곧대로 <백구>라고 했을 때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긴장감이 떨어졌을지에 대해 논하고 싶다. <배드 테이스트>라고 하면 언뜻 감이 안 오지만 <고무인간의 최후>라 했을 때는 도대체 고무인간이라는 것이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매우 근원적이고 본능적인 충동으로 인해 비디오를 꺼내들지 않을 수 없지 않나. 피터 잭슨은 한국 비디오업계에 감사해야 한다. 싸구려 제목에도 불구하고 꽤나 잘 만든 좀비영화 <네온 익스프레스>는 <네온 매니악>(1996, 조셉 맨자인)의 제목을 좀 더 그럴싸하게 바꿔놓은 것인데, 미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 영화가 하물며 한국시장에 버젓이 출시돼 있다는 것은 이래저래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역시 한국 비디오 시장만이 가지고 있는 낭만이랄까. 이제는 모두 옛날 일이지만.

내 인생 마지막으로 보는 비디오들

동대문 방향으로 쭉 걸어 내려오는데 반가운 이름이 눈에 띈다. 삼일아파트 15동 2층의 ‘젊은 남자’. 이 비디오 가게는 과거 김기영의 <화녀 82'>를 구입한 곳이라 잘 기억하고 있다. 그때 나랑 같이 간 사내는 보지도 않을 비디오 10편을 4천 원에 구입해 녹화용으로 쓰며 “이것이 IMF 시대를 살아가는 사나이의 진정한 삶의 지혜”라고 자랑했었다. 내부 정경은 진열대의 비디오와 포스터들이 좀 더 낡고 희미해졌음을 빼면 3년 전과 거의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척 보기에도 마지막으로 손님이 드나든 지 꽤 됐음을 알 수 있어 사장님에게 말을 붙이기가 여간 고통스럽지 않았다. 결국 애꿎은 <총알탄 사나이>를 집어 들어 1천 원을 건네며 겨우 몇 마디 나눠볼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완전 망했다”는 반종섭 사장님은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하단다. “올해까지 상가들을 다 비우고 나가야 하는데, 장지동으로 옮겨준다고 하지만 그것도 세금자료나 기타 여러 가지를 종합해 시 차원에서 결정한 소수의 선택받은 인원들이 갈 수 있는 거잖아. 아직 장지동에 상가건축도 안 들어갔는데 뭐. 들어가도 문제인 게, 청계천처럼 시내 한복판에 있어도 장사가 될까 말까 한 마당에 성남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장지동까지 누가 비디오를 사러 가나. 이젠 전부 끝난 거지. 끝.” 사장님은 아무래도 몇 편 더 샀으면 하는 눈치지만, 그냥 가게를 빠져나왔다. 매장을 가득 채우고 있던 느릿하게 짓눌린 과거의 공기가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망가져버린 과거를 목격하게 되면 사람은 흔히 도망치기 마련이다. 딱히 비겁해서라기보다,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국 고전영화가 많기로 유명한 삼일 아파트 21동 1층의 ‘무비월드’를 찾았다. 한쪽 구석의 최신영화 DVD를 제외하면 매장 사 면과 가운데 선반 모두가 비디오로 가득 채워져 있는 가게다. 한국 고전영화를 찾는다면 황학동 무비월드나 을지로 쁘렝땅 백화점 지하 ‘청춘극장’을 찾는 것이 별 대단스럽지도 않은 상식이던 시절이 있었다. 임강우 사장님은 “손님이 거의 없지만, 그래도 고전 한국영화를 찾는 고객들이 꾸준히 찾아온다”며 과거의 명성이 지금도 여전히 통하는 상식임을 확인시켰다. 주로 40, 50대 마니아들이 주로 찾는 이곳도 과거만큼 많은 고전영화를 보유하고 있진 않다. 이젠 더 이상 한국 고전영화 비디오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젠 더 이상 중고도 나오질 않다보니 여기 있는 비디오들이 다 팔리고 나면 그걸로 끝인 거야. 지금 보고 있는 그 비디오들이 기자선생 인생에 마지막으로 보는 것들일 수도 있어.”

이만희의 <쇠사슬을 끊어라>와 신상옥의 <여수 407호>, 장일호의 <성형미인>, 그리고 전조명의 <서산대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정형미인'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성형미인>이나 박암의 대머리가 눈에 선한 <서산대사>의 비디오는 다른 데서도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쇠사슬을 끊어라> 같은 경우는 비디오가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작품이다. 황학동 시장이 한참 잘 나갔던 90년대까지만 해도 10만 원은 족히 받았을 이 비디오는 현재 4만 원에 팔리고 있었다. <일사-나치 친위대의 색녀> 류의 컨셉과 정통 탈옥영화의 장르적 특성, 그리고 한국적 신파 감성이 묘하게 버무려진 <여수 407호>는 곰털처럼 많은 신상옥의 영화들 가운데서도 나 같은 어둠의 아이들이 특별히 더 좋아했던 작품이다. 한쪽에서 왕지징의 <헬로강시>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홍콩의 유관위 류의 강시영화보다 대만의 헬로강시 시리즈를 더 좋아했던 나로선 무척 반가운 일이었다. 우와! 라든가 이햐! 라든가 오호! 라든가, 뭐 이런 탄성들이 오가는 시끌벅적한 재회의 기쁨도 잠시, 이 비디오들이 전부 내 생애 마지막으로 만나는 모습일지 모른다 생각하니 슬퍼져버리고 말았다. 왜 지상 위에 모든 것들은 그 소중함을 미처 깨닫기 전에 한 발 먼저 사라져버리고 마는 걸까. 아 이 짓궂은 인생이란. 어리석은 인간이란.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의 총체

“다운로드족들을 모조리 감방에 집어 쳐넣어야” “높은 가격에 DVD 출시해 판매율 낮추고, 그나마 수시로 할인 행사하는 바람에 소비자 우롱하는 DVD 제작사는 공중 폭파시켜야” “13장을 3천 원에 파는 이 따위 비디오들, 차라리 모조리 불 싸질러 버려야지”처럼 어느 정도 과격하거나 어느 정도 정의로운 외침도 있었지만, 3년 만에 찾은 황학동 사람들은 대부분 차분한 마음으로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뭔가 부조리하다는, 개발도 좋고 발전도 좋지만 그 땅에 살아가던 사람들은 어디서 개발하고 발전하느냐는 볼멘소리도 없다. 그 스스로가 20,30년 동안 자본의 논리에 따라 살아왔으니 니들이 정 그렇다면 이번에도 내 그러마하는 것일까. 황학동에서 동묘 방향으로 발길을 옮기는 길,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르잖아. 사라져가는 지상의 모든 것들, 그러니까 이를테면 황학동 같은 공간은 세상사에 너무 밝아져버린 나 같은 인간에게 잠시 잠깐의 추억과 애잔함, 애틋함 따위를 안겨주고 사라질 만큼 너그럽거나 유약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파고들어 터질 듯이 차올랐다.

다시 황학동 쪽으로 방향을 바꿔 삼일 아파트 맞은편에 있는 오래된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갔다. 시멘트 색이 그대로 드러난 구닥다리 아파트의 고르지 않은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소름>에서 광태가 살던 미금 아파트가 떠올랐다. 그만큼 무시무시하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초현실적이다. 옥상에 올라 황학동을 바라보니 저 멀리 종로의 빌딩숲에서부터 여기 황학동 상가를 양분 삼아 그 위로 뻗어 자란 듯한 주상복합빌딩 공사현장까지 한 눈에 다 들어왔다. 두말 할 나위 없이, 그건 현실이었다. 그제야 황학동에 올 때마다 느꼈던 사시사철 더위의 원인을 깨달았다. 사람 표정보다 더 빨리 그 모습을 바꾸는 서울, 그 서울의 한복판에서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을 우직한 표정으로 잡아 쥐고 지켜온 삶의 힘. 난 그 위대한 힘의 열기를 느꼈던 것이다. 황학동이 그립다.

사진ㅣ김수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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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까 말까 고민중이다. 드디어 블루레이 디스크가 출시되고 있으니 말이다.

잘못했다간 비디오테이프 짝 나지 않을까 싶어서...

그래도 한번 보고싶네. 어떤 식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지. 이전에 비디오테이프로 산 키아로스타미의 작품들을 전부 처분했는데, 이것도 그런 신세가 될까봐 고민중이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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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거리공연, 댄스 배틀대회, 뮤지컬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로 본 비보이의 세계

2002년 여름 대한민국 전체가 월드컵 4강 신화의 열기로 들끓고 있을 때, 독일에선 한국의 비보이(B-Boy) 열풍이 일어났다. 비보이 크루 익스프레션이 한국팀으로는 최초로 ‘배틀 오브 더 이어’(Battle of the Year, 이하 보티)에서 우승한 것. 보티(BOTY)는 스트리트 댄스 대회의 월드컵이라 불리는 세계 최대의 비보이 축제다. 4월부터 각 지역에서 예선이 진행되고 여기서 선발된 팀이 9월 독일 본선대회에 진출한다. 한국은 2001년 비주얼쇼크가 이 대회에서 4위를 차지한 뒤부터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이들의 대회 영상은 이후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화제가 됐고, 영국의 UK비보이챔피언십과 미국의 프리스타일 세션 등 세계 4대 스트리트 댄스 대회에서의 한국팀의 승전보도 연이어 들려왔다. “10회가 넘는 엘보 스핀”, “신기에 가까운 관절꺾기” 등, 네티즌의 열광은 주로 시각적인 충격에서 시작됐다. 더불어 세계대회에서 휘날리던 태극기와 한국팀을 응원하던 외국인들의 함성 소리. 이 낯선 광경은 한국의 네티즌을 비보이란 이름의 새로운 신화 속으로 몰고 갔다. 비보이에 대한 호기심보다 먼저 작동한 애국심. 2002년 월드컵의 광풍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의 비보이 열풍도 낯설게 시작됐다.

비보이 열풍의 낯선 시작

현재 우리나라에는 비보이 크루들이 셀 수 없이 많다. 익스프레션, 겜블러, 고릴라크루, 드리프터즈, 리버스, 라스트포원 등 세계대회 출전과 수상으로 유명해진 크루만 꼽아도 10팀이 넘는다. 대학의 동아리는 물론 지방의 서클도 활성화되어 있으며 인터넷상의 커뮤니티에서 운영하는 스쿨도 많다. CF와 뮤직비디오에 비보이들이 모델로 등장하고, M.NET의 <브레이크>, MBC의 <오버 더 레인보우> 등 이들의 삶을 소재로 한 드라마도 제작됐다. 세계대회에서의 낭보와 갑작스런 붐. 일반 국민에게 비보이는 일종의 신기루 같았다. 지하철역 내에서 바닥을 쓸고 다니던 시끄러운 놈들이 어느새 ‘문화’가 되어 나타난 것이다. 다시 한번 낯선 시작. 하지만 그들은 비보이 문화가 결코 갑작스레 나타난 유행이 아니라는 사실을 몸으로 보여준다. “정말 독한 애들 많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일까? 하나의 동작을 성공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지독하게 연습한다.” 10년 넘게 춤을 추고 있는 고릴라크루의 김우성씨는 현재 한국의 비보이들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에 대해 자신들의 연습기를 답변으로 제시한다. “예전에는 연습실이 없었다. 큰 거울이 없어서 혼자 연습할 때는 장롱을 보고 한다. 그게 조금 비치지 않나. 친구들이랑 같이 연습할 때는 지하철역에서 했다. 지금에야 이렇게 공연도 하지만, 그때는 힘들었다. 사실 앞으로 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있었고. 하지만 그냥 친구들과 춤출 수 있는 게 즐거웠던 것 같다.” 그는 윈드밀 동작을 성공하기 위해 1년을 연습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수많은 실패로 이뤄지는 하나의 무브. 고릴라크루의 한상민씨는 “물구나무서기를 한 채 회전을 하는 나인틴이라는 기술이 있다. 3바퀴를 성공하려고 무지 노력했다. 그런데 어쩌다 무대에서 갑자기 10바퀴 이상 돌아갈 때가 있다. 우린 이걸 이른바 ‘꽂혔다’고 한다. 그렇게 실력이 조금씩 늘어가는 것 같다”고 말한다. 성공과 실패 사이의 보이지 않는 선, 이 미지의 공간에서 한국의 비보이 문화는 태어난 셈이다.

거리 공연의 생동감을 무대 위로~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공연 현장

서울의 홍익대 근처, 2005년 12월부터 한 비보이전용극장에선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란 공연이 계속되고 있다. 우연히 비보잉을 본 발레리나가 비보이와 사랑에 빠진다는 줄거리. 이 공연은 비보잉을 본격적인 무대 공연으로 옮겨왔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공연은 매우 역동적이다. 발레리나가 등장하는 부분은 한순간 휴식처럼 느껴질 정도. 무대 위와 아래를 오가며 펼쳐지던 기묘한 광경들은 어느새 음악과 함께 흥겨운 리듬을 연출해내고, 두명의 비보이가 함께 호흡을 맞추는 루틴 동작은 매우 활기찬 조화를 만들어낸다. 관객의 호응은 추임새다. 공연의 연출을 맡은 문주철 감독은 “비보이 문화에 대한 경영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들의 문화를 좀더 대중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한 시도”라고 밝혔다. <비보이를…>이 보여주는 것은 단지 비보잉뿐만이 아니다. 디제이(음악을 틀고, 스크래치를 통해 음악을 재편집하는 사람), MC(랩을 비롯 리듬에 따라 말을 하는 사람), 그래피티(벽 등에 하는 낙서) 등 힙합의 모든 요소가 총동원된다. 흔히 비보이를 위의 세 가지와 함께 힙합의 4대 요소로 꼽는데 여기서의 비보이는 좀더 넓은 의미의 스트리트 댄서를 가리킨다. 그래서 <비보이를…>에는 비보이뿐만 아니라 스탠딩 댄서도 함께 출연한다. 실제로 이 공연에 출연하고 있는 고릴라크루는 비보잉을 하는 에이블크루팀과 스탠딩 댄스를 하는 브루클린 몽키즈팀이 함께 있는 프리스타일팀이다. 이에 대해 문주철 감독은 “힙합 문화를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관객 중에 나이가 좀 있는 분들은 디제잉이나 비트박스를 싫어하는 것 같기도 하더라. 하지만 그게 힙합 문화고 비보이 문화인 걸 어떻게 하겠냐. 단순히 비보이를 데려다가 공연을 만드는 게 아니라면 이들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춤과 음악, 비보이의 추모 방식

비보잉은 거리에서 시작된 문화다. 1970년대 뉴욕 할렘가를 중심으로 흑인과 히스패닉계 청소년들이 거리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추던 춤이 비보잉의 시작이다. 음악의 간주 부분(Break)에 플로어에서 추는 춤. 말 그대로 브레이크의 B를 따서 비보잉이라고 한다. 나이키, 윈드밀 등이 여기에 속하는 동작. 거리에서 생겨났다는 의미에서 어반 스트리트 컬처(Urban Street Culture)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비보잉은 ‘홈 텔레비전 문화’에 더 가깝다. 많은 댄서들이 주로 TV를 보고 춤을 따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엠시 해머와 바비 브라운에서부터 나미와 붐붐과 서태지와 아이들까지.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비보잉은 TV 무대에서 노래의 간주 부분에 잠깐씩 보여지는 춤동작일 뿐이었다. 김우성씨도 “한 동작을 따기 위해 아는 형에게 자료(뮤직비디오)를 부탁해서 간신히 보며 춤을 췄다”고 회상했다. 한국에 비보이 문화가 좀더 확산될 수 있었던 건 그룹 피플크루의 등장이다. 이후에 가수로 데뷔하기도 한 이들은 그전부터 비보잉 비디오를 발매했다. 자료에 굶주렸던 비보이들은 이들의 영상을 보며 연습했고, 이후 홍익대와 이태원 등지를 중심으로 거리공연 문화가 생겨났다. 그리고 백화점 등의 행사공연. 한국에서 아직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비보잉의 공연 양식은 각종 이벤트와 행사의 축하공연이다. 8월12일 저녁, 홍익대 앞 놀이터에선 얼마 전 사고로 목숨을 잃은 비보이 양파의 추모공연이 열렸다. 고릴라크루, 리버스, 익스트림, T.I.P, 라스트포원, 갬블러 등 국내 유명 크루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공연을 진행한 디제이 고는 “이런 공연은 슬픈 일이기도 해서 마음이 좋지 않다. 여기 오신 분들 모두 세상을 떠난 양파에 대한 마음으로 함께 공연을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에도 참가했던 한상민씨는 “당연히 가야 하는 거다. 비보이들은 팀이 달라도 다 가족 같다. 거리에서 공연하며 마주치기도 하고. 예전에 우리 팀 리더였던 전나마 형도 지난해에 부산국제영화제 축하공연을 하러 가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때도 우리가 함께 추모공연을 했다”며 이날 공연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이들의 추모 방식은 매우 자유로워 보였다. 함께 뜻을 맞추고, 마음껏 춤을 추는 자리. 이날 놀이터에는 본 공연이 진행되는 옆자리에 작게 원을 만들고 춤을 추는 비보이들도 보였고, 무대 뒤에서 리듬에 맞춰 혼자서 춤을 추는 비보이도 있었다. 육체가 만들어내는 공간의 역동성이 놀이터의 밤을 묘한 함성 속으로 밀어넣고 있었다.

승패가 없는 배틀 현장

배틀의 현장. 8월20일 찾아간 홍대 근처의 클럽V에선 월간배틀이 열리고 있었다. 인터넷 모 댄스 커뮤니티에서 주최하는 댄스 배틀대회. 배틀은 말 그대로 누가 더 춤을 잘 추는지 겨루는 대회다. 댄서와 디제이, 엠시가 모두 출연하며, 심사위원이 댄서의 실력을 가늠한다. 80년대 미국에선 지역 세력간의 다툼이 배틀의 형식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공격적인 무브와 상대방의 약을 올리는 래핑. 이는 집회 현장에서 경찰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세계 4대 비보이 대회도 배틀의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여기엔 비보잉 배틀뿐 아니라 팝핀 배틀, 라킹 배틀, 혹은 이들을 혼합한 프리스타일 배틀 등 다양한 형식이 있다. 이날의 종목은 팝핀과 라킹. 배틀에는 총 150여명의 댄서가 참가했고, 예선을 통과한 8명이 1대1로 겨루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클럽의 무대와 플로어를 가득 메운 사람들의 열기. 냉방기는 이미 효과가 없었다. 그리고 계속되는 무승부와 재심. 원래 2시부터 4시까지 예정됐던 예선은 계속 지연됐다. “무승부는 자주 있는 일이다. 사실 배틀이란 게 절대적인 실력을 가리는 게 아니다. 그날 컨디션이나 분위기에 따라 승패가 많이 좌우된다. 또 디제이가 트는 음악은 무작위다. 자신이 좋아하거나 아는 음악이 나오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 예선 탈락한 사람이 다음엔 우승을 할 수도 있고, 오늘 우승한 사람이 다음엔 예선에서 탈락할 수도 있는 거다.” 이번 배틀을 기획한 정현섭씨는 배틀의 의미는 승패에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6시가 넘어 시작된 본선. 8명의 댄서들이 1대1로 대결을 펼쳤다. 가위바위보에서 진 사람이 먼저 시작한다. 음악과 함께 몸이 진동하기 시작한다. 무언가 “팝!”하고 터지는 느낌. 그야말로 팝핀. “리듬에 맞춰 온몸에 팝이 한번에 들어가야 해요. 몸이 팽창하는 느낌이죠.” 대구에서 올라왔다는 한 참가자는 팝핀의 느낌을 팽창이란 말로 설명했고, 정현섭씨는 이를 다시 “몸에 물방울이 떨어졌을 때, 튕겨나가는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1분간 춤을 추던 댄서는 상대방에게 차례를 넘긴다. 상대방을 가리키는 손짓, 혹은 허공으로 무언가를 불어넣는 동작. 상대는 다시 허공 속에서 바통을 이어받는 동작을 취한다. 그리고 다시 팝핀. 이렇게 두번씩 춤을 추고 즉석에서 심사가 발표된다. “심사기준이요? 여러분도 이제 다 알지 않나요? 저는 그냥 여러분 곁에 서겠습니다.” 심사위원의 말처럼 이날 배틀의 결과는 관객의 함성으로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세계대회에서도 심사위원의 결정에 관객의 반대 함성이 터져나오면 재대결을 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배틀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 심사위원보다 더 정확한 관객. 춤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만들어낸 시끌벅적한 조화. 어떤 의미에서 배틀은 춤을 매개로 재현되는 민주주의의 이상향이 아닐까.

대한민국의 새로운 무브를 꿈꾸며

한국문화관광공사는 올 상반기부터 한국의 비보이 문화가 제2의 한류가 될 수 있다며 비보이를 활용한 한류 마케팅을 하고 있다. 실제로 <비보이를…>은 이미 여러 여행사의 관광 코스로 지정되어 있고, 외국인 관람객도 평균 20%를 넘는다. 이 공연의 홍보 담당자인 SJ보이즈의 곽서연 대리는 <비보이를…>의 브로드웨이 진출에 대해서도 낙관한다고 말한다. 이 공연의 성공을 계기로 국내에선 비보이를 소재로 한 다른 공연들도 기획되고 있다. 세계대회에서의 선전도 계속된다. 이미 유럽에는 한국의 비보이팀을 응원하는 팬들이 생겨났고, 9월10일 한국에서 개최될 지역예선에도 10팀 정도가 참가할 예정이다. 비보이 자신들도 실질적인 생활이 많이 좋아졌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힘든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는 비보이 동생들한데 전화해보면 다들 바쁘다. 공연하러 다니느라. 이제 생활하는 데 힘들지는 않다.” 김우성씨의 말처럼 2006년 현재, 한국의 비보이들은 이른바 꽂혔다. 수많은 실패가 쌓이고 쌓여 만들어낸 하나의 무브처럼. 하지만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상업화되는 것에 대한 걱정이 있다. 실제로 90년대 미국에선 비보이들이 CF나 뮤직비디오, 영화에 출연하면서 비보이 문화가 거의 사장되다시피 했다. 한국의 경우도 하나의 트렌드로 지나갈 우려가 있다. 단순한 한류가 아니라 비보이 문화, 힙합 문화를 즐기는 분위기가 형성되야 한다.” 대다수의 비보이들은 김우성씨처럼 비보이를 이용하기만 한 상품의 기획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었다. 이에 국제스트리트댄스협회에서 이사를 맡고 있기도 한 문주철 감독은 “얼마 전 서울시에서 전화가 왔다. 비보이를 지원하고 싶다고 하더라. 그래서 갔더니 하는 말이 ‘뭘 도와주면 되죠?’였다. 한국에 비보이팀이 몇개나 있는지, 비보이를 배우려면 어디에 가야 하는지, 비보이가 어떻게 시작된 건지, 아무도 모른다”며 수없이 많은 과제들을 지적한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교육적인 사업이다. 우리 협회 하나만 사단법인이지, 나머진 다 사기업이다. 예술고나 대학교에 비보이학과를 개설하거나, 청소년들이 비보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드는 일에 어느 누구도 쉽게 나서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부분이 행해져야 비보이 문화의 정착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2006년, 한국의 비보이들은 분명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 있다. 하지만 이들이 그 자리에 어떻게 올라갔을까. 제2의 한류라고 포장된 신문기사와 인터넷에 펄럭이는 태극기 행렬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비보이들의 숨소리가 음소거되고, 그들의 땀방울이 제거된 낯선 열풍. 비보이들이 겁내고 있는 것도 바로 이것이 아닐까. 태극기를 흔들며 순위에 집착하기보다는 음악에 몸을 맞추고 비보이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 이것이 한국만의 비보이 문화를 만드는 새로운 무브가 될 것이다.

보티와 한국의 비보이들

영국의 UK비보이챔피언십, 미국의 프리스타일 세션, 나라를 옮기며 개최되는 레드불BC원을 보티와 함께 세계 4대 비보이 배틀대회라고 부른다. 보티는 1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배틀. 매년 10월 하노버에서 열린다. 참가팀들은 퍼포먼스를 통해 화해나 평화, 혹은 각국의 전통문화를 표현하고 이를 통해 결선배틀과 3·4위 배틀에 진출할 팀이 가려진다. 한국은 2002년 익스프레션이 우승, 2003년 익스프레션이 준우승, 갬블러가 3위, 2004년 갬블러가 우승, 2005년 라스트포원이 우승, 갬블러가 3위 등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엘보 스핀(Elbow Spin)

2004년 UK비보이챔피언십에서 리버스크루의 피직스(김효근)가 선보여 화제가 된 동작. 헤드 스핀이 머리로 몸을 지탱한 채 회전한다면 엘보 스핀은 팔로 균형을 잡은 뒤 회전을 하는 동작이다. 피직스는 이 대회에서 16회 회전에 성공하며 팀에 우승까지 안겨줬다. 지금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엘보 스핀을 검색하면 이 대회 동영상을 볼 수 있다.

비보잉에 대한 간단한 용어 정리

우선 비보이팀은 크루(Crew)라고 한다. 고릴라크루, 리버스크루 등 팀 이름에 크루라는 단어가 포함된 경우도 있다. 비보잉의 동작은 무브, 두명 이상의 비보이가 함께하는 동작은 루틴이라고 한다. 비보잉에는 수많은 무브가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나이키, 윈드밀 정도. 나이키는 한팔을 땅에 짚고 두 다리를 뻗은 모양이 나이키 로고의 모양과 비슷하다고 생긴 이름이며, 윈드밀은 등으로 몸을 지탱한 뒤 다리로 회전을 하는, 말 그대로 풍차돌리기다. 나인틴은 물구나무를 선 채로 회전을 하는 동작. 그 모습이 마치 꽃이 피고 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비보이들이 무브를 하다 갑자기 멈추는 순간이 있는데 이를 프리즈(Freeze)라고 한다. 실제로 음악과 프리즈의 순간이 절묘하게 맞았을 때, 관객의 함성이 쏟아진다. 비보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테크닉이 아닌 음악과의 조화다.

팝핀과 라킹

넓은 의미에서 팝핀과 라킹을 하는 사람을 비보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이들은 각각 파퍼와 라커다. 팝핑은 흔히 관절꺾기로 표현되는 동작들. 하지만 이는 사실 관절을 꺾는 게 아니다. 근육을 팽창시키는 것. 호흡을 통해 근육을 움직이기 때문에 동작을 하고 나면 매우 숨이 가뻐진다고 한다. 그래서 종종 팝핑 배틀에서 엠시들은 댄서들에게 “폐 괜찮아요?”라는 말을 남긴다. 라킹은 잠근다는 뜻의 록(Lock)에서 온 말이다. 따라서 춤의 동작들도 주로 무언가를 잠그는 행위를 연상시키는 것들. 가장 대표적인 게 양팔을 빠르게 돌리는 동작이다. 또 팝퍼들은 주로 정장에 가까운 복장을 입는 데 비해 라커들은 코믹한 의상을 입는다. 큰 사과를 연상시키는 빅애플캡과 줄무늬 스타킹이 그것. 활기차고 밝은 느낌의 동작들이 주를 이룬다.

팝핀현준

“드라마는 보고 있어요? 근데 왜 시청률이 안 올라?” 일요일 저녁 댄스배틀이 열리던 클럽에 팝핀현준이 나타났다. 게스트로 공연을 하기 위한 것. 팝핀계의 스타인 그는 현재 MBC 드라마 <오버 더 레인보우>에 출연하고 있다. 이주노가 만든 고릴라댄스팩토리의 초기 멤버이며 댄스그룹 영턱스클럽의 객원 멤버로 참여하기도 했다. 최근엔 <오버 더 레인보우>에서 보여준 불춤이 화제를 모았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유연하게 미끄러지다가 절도있게 꺾이는 몸. 현재는 1집 앨범을 내기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글: 정재혁
사진: 서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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