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비디오 찾아 황학동에 가다
사라져가는 그 공간에 가다
2006.10.02 / 허지웅 기자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의 보고, 청계천 황학동이 그 생명력을 다해가고 있다. 과거, 전국에 유통되는 비디오가 한 번쯤 반드시 거쳐 가야했던 부가판권시장의 황금어장 황학동. 옛날 비디오를 찾아 그곳을 다시 찾았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

3년 만에 다시 찾은 청계천 황학동은, 더웠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아니면 순서를 바꿔 가을 겨울 봄 여름 언제 찾아가더라도 정수리와 겨드랑이, 발가락 사이로 어김없이 차오르던 찝찔한 땀내가 기억 너머에서 불쑥 떠올랐다. 이 정체불명의 더위에 대해선 TV프로에 출연해 청계천 복원사업이 서울 도심의 열섬현상을 없애줄 거라며 적외선 지도와 도표를 곁들어 설명하던 안경잡이 박사조차 끝내 설명해주지 못했다. 번번이 거리 위에 깔려 있던 차분한 먼지안개와 노란색 셀로판지를 덧대어놓은 것 같은 풍경까지 시야에 들어오자 내가 비로소 황학동에 돌아왔음을 실감했다. 언뜻 둘러본 3년 만의 황학동은, 상당히 정돈됐다고나 할까. 어떤 록 스타를 무척이나 닮았던 시장의 선도 아래 질서정연하게 가로 잡히고 세로 잡히고 칸을 나누고 줄을 그어 '개선'된 청계천의 도로 한 가운데를, 인간미를 찾아볼 수 없어 인조인간 로봇 마징가Z를 연상케 하는 12만 톤 검은색 물길이 관통하고 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 마징가Z는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150마력짜리 모터펌프 4대가 없으면 주저앉는다 했다. 인생을 통틀어 이곳이 아니면 결코 다시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진귀한 물건들. 그 물건들을 손수레 가득 싣고 행인을 유혹했던 노점상들의 행렬은 공룡처럼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다.

당황스런 3년 만의 재회

풍경이야 어찌됐든, 오늘 내 목적은 추억의 옛날 비디오를 찾는 거다. 한때는 하루에 세 번 찾을 정도로 안방 같았던 황학동을 오랫동안 망각하고 있었다는, 어쩔 수 없는 다소간의 죄의식을 억누르며 오래 전의 단골이었던 비디오 가게를 찾았다. 2층에 위치한 그 비디오 가게는 아직 밀레니엄이 도래하기 전 시가 5만 원 상당의 희귀 비디오였던 한국 최초의 좀비영화 <괴시>(1980, 강범구)를 단돈 3천 원에 속여 산 기억 탓에 좋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당시만 해도 황학동엔 그런 낭만이 있었다. ‘3일 전에 죽었던 용돌이가 살아 돌아왔다!’는 충격적인 문구로 기억되는 <괴시>는, 굳이 상도를 어겨가며 어렵게 구했던 과정만큼 즐거운 영화는 아니었다. 전혀 중국사람 같지 않은 중국배우와 전혀 한국사람 같지 않은 한국배우가 등장해 해충을 없애는 첨단 과학기계가 시체를 되살려내는 비밀을 파헤치는 내용이었는데, 어째 뭔가 이상했다. 어디서 많이 보던 내용이다 싶었더니 <Let Sleeping Corpses Lie>(1974, 조지 그루)의 토시 하나 안 틀린 완전 표절작이었던 것이다.

문을 열자 지난 장마 동안 단 한 번도 환기를 시키지 않았음이 거의 확실시되는 짙은 곰팡내와 피사의 사탑 마냥 쌓여 있어 기침만 해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비디오테이프 무더기가 손님을 맞이했다. 내일 당장 홍수가 밀어닥치는데 방주에 시동 걸 열쇠를 잃어버린 노아의 눈빛을 한 사장이 나를 발견했다. 한때의 단골을 전혀 기억 못하는 눈초리다. 좀 섭섭한데. “황학동 비디오 시장에 대해 기사를 쓰고 있는데요, 잠깐 말씀 좀 나눠볼 수 있을까요?” 뭐야 이 자식, 하는 눈초리로. “망했어. 다 망했는데 무슨 얘기를 해. 그런 소리 할 거면 나가. 요 옆 가게도 있고 저 옆 건물 1층에도 있는데 왜 2층까지 기어 올라와 지랄이야. 심난해 죽겠는데.” 순간 얼어붙었다. 어마마, 티끌만치도 예상치 못했던 반응. 창피한 일이지만 눈물까지 찔끔 지려버리고 말았다.

도망치듯 매장을 빠져나와 거리 위에 우두커니 섰다. 이토록 격렬한 반응이라니. 어쩌면 <괴시>를 헐값에 산 것에 대한 때늦은 천벌인지도 몰라. 빨리 이 충격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하늘이라도 우러러보려고 고개를 들었더니,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는 TV광고로 기억되는 주상복합단지의 반쯤 만들어진 마천루 그룹이 황학동 하늘 구석구석 빽빽이 들어차 있다. 한창 공사 중인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건물 한 가운데에는 사기분양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차후 적법한 분양공고가 있을 예정이니 기다려 달라는 내용의 대형 플래카드가 부초처럼 나부끼고 있었다. 난 언제쯤 이런 아파트에서 살아보나. 그러고 보면 죽네 사네 하면서도 아파트 한 채씩은 꼭 가지고 있단 말야. 판교 신도시 2차 분양 이후에는 용인이 뜬다는군. 은평 뉴타운이 민간 분양보다 평당 95만 원이 비싸다던데, 그럼 서민은 다 죽으란 말이냐, 야 다 나와, 뭐 이런 어른스런 생각을 거듭하다 마주오던 행인의 어깨에 밀려 겨우 정신을 차렸다.

대한민국 모든 비디오는 황학동을 거쳤다

복원된 청계천 물길 주변의 난간에 기대 눈앞에 펼쳐진 상가들을 바라봤다. 청계천 황학동 시장은 일반적으로 황학동 삼일 아파트 13동부터 24동까지 펼쳐진 상가 건물들과 그 주변 풍물시장을 일컫는다. 아파트는 뭐고 상가는 또 뭐냐고 묻고 싶겠지만 아파트인 동시에 상가 건물로 허가를 받은 터, 그러니까 여기 삼일 아파트나 종로 3가 세운상가, 낙원상가가 모두 주상복합건물의 원조인 셈이다. 삼일 아파트 머리 꼭대기로 닭 벼슬처럼 치솟아 오른 새 주상복합단지의 건설현장은 그래서 더욱 아이러니한 풍경이다. 황학동 시장은 여러 가지 중고물품과 도매상권으로 오래 전부터 유명세를 떨쳐왔다. 1990년대 중반, 주말이면 진귀한 구경을 하기 위해 서울시민들이 몰려들었고 노점상과 상가들 모두 인파로 몸살을 앓다시피 했다. 그러니까 바야흐로 황학동의 시대였던 것이다, 라고 하면 과장이고 어쨌든 복잡한 서울시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문화지대였던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게 있어 황학동 시장이라 하면 그건 그저 ‘비디오 시장’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도소매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황학동 비디오 시장은 한국 영상물 부가판권 상권의 알파요 오메가다. 대한민국에서 유통되는 모든 비디오는 그 삶이 계속되는 한 반드시 황학동을 한 번쯤 거쳐야했다. 날마다 새로 등장하는 신간 비디오들이 황학동에서 전국 비디오 대여점으로 뻗어나가고, 몰락한 대여점의 중고 비디오들이 황학동으로 돌아와 헐값에 다시 대여점과 개인 고객에게 팔려나간다. 바로 이 중고 비디오야말로 황학동의 묘미라고나 할까, 혈혈단신 서울에 똬리를 틀고 대학생활을 시작했던 1990년대 중후반, 나는 거의 일주일에 두세 번씩 중고 비디오를 찾아 황학동을 찾았다. 딱히 할 일도 없었거니와 내가 좋아하는 영화라는 것이 대부분 정상적인 비디오 대여점에선 찾아볼 수 없는 종류였기 때문이다. 그런 류의 시시껄렁한 영화들을 여의도 공원 비둘기만큼이나 발에 채이게 발견할 수 있는 황학동은 내게 있어 그야말로 잭 스패로우의 카리브 해였다. 고전 한국영화나 B급 공포영화, 고전 한국공포영화면 더 좋고, 그런 필살의 비디오들을 찾아 먹색 봉지에 쳐 넣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면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르고 화장실에 가지 않아도 개운했으며 어떤 시리얼을 먹지 않아도 호랑이 힘이 솟아났다. 그런데 그 시리얼을 먹으면 성욕이 감퇴되고 정자 수가 준다는데, 진짜일까? 아무튼 그렇게 비디오를 사들고 오면 어김없이 피시통신에 접속해 “나 오늘 이런 저런 비디오 구했다, 부럽지?” 따위의 글을 올려놓고 저 혼자 좋아 킥킥대곤 했던 것이다. 가끔씩 나만큼 지독히 할 일 없는 인사가 답글을 달아 축하해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그저 자기만족에 불과했다. 추억은 그만두고 일 해야지, 하는 맘에 발을 뗐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황학동 최고 규모를 자랑하는 비디오 상점 ‘비디오 여행’으로 향했다. 삼일 아파트 18동 2층에 자리한 가게다.

“황학동 장사도 올해가 마지막인 셈이지”

‘비디오 여행’의 남진수 소장님이 반갑게 맞이한다. 살가운 반응에 코끝이 시큰하다. 먼저 간 가게에서는 문전박대에 욕만 듣고 쫓겨나왔다 하니 “그런 건 기자님이 이해해줘야지. 진짜로 망했는데 거짓말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하나, 그럼.” 하신다. 비디오 여행은 비슷한 이름의 공중파 영화 소개 프로그램과는 관련이 없다. 1986년부터 사업을 시작했으니 벌써 20년이 다 됐다. 비디오테이프 도소매 및 비디오 대여점 신규개업, 폐업관리로 시작해 2000년 들어서부터는 DVD 총판까지 병행하고 있다. 규모로 따지면 청계천 최고 아니냐고 물었더니 손 사레를 치며 대한민국 최고라고 강조하신다. 그냥 자랑은 아닌 것이, 인터뷰 하는 중에도 손님들이 꽤나 드나들며 불황을 무색케 했다. 그런데 어쩐지 주변에 비디오 가게가 많이 줄어든 것 같아요, 하고 묻자 팔짱을 끼며 자못 심각하게 말씀하시길 “처음엔 한 30여 군데 넘게 있었는데 IMF 지나면서 20개로 줄어들고, 이번에 청계천 복개공사로 노점상들이 전부 동대문운동장 안으로 쫓겨나면서 또 반으로 줄어버렸어. 그나마 신 프로 다루는 매장은 5군데 정도밖에 안 돼. 복개작업 이후에 공기는 좀 좋아진 것 같은데, 그럼 뭐하나. 장사치들이 장사가 잘 돼야 행복한 거지. 여기가 도깨비 풍물시장이라는 게 다 노점상들이 있어서 가능한 감투였는데, 이제는 노점상 구경하러 왔다 비디오 구입해가는 손님들도 없고, 그저 주말에 청계천 구경하러 왔다 곱창이나 먹고 돌아가는 가족들밖에 없어. 그래서 요 앞에 먹자골목만 성황이지 다른 데는 업종 안 가리고 전부 망했어.”

유사 이래 황학동 시장을 지배해온 것은 돈, 시장논리였다. 거미줄 같은 골목길을 따라 전체를 관통하는 보이지 않는 질서다. 누구네 아들, 누구네 조카, 사돈 팔촌의 조카의 동서, 무슨 고등학교, 대학교 출신, 그리고 그 출신의 아들과 친구들이 주름잡는 한국 주류사회와는 달리 황학동만큼은 돈의 논리로 일어서고 쓰러지고 재기해왔다. 그랬던 황학동이 이젠 개발논리에 의해 고난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이제는 그 명맥조차 유지하기 힘들게 생겼다. 황학동 시장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까지 모조리 다 철거될 예정이다. “우리 머리 위로 주상복합건물 짓고 있잖아. 개천복원에 방해돼 노점상들 내보내고, 이젠 우리 차례인 거지. 아직 시에서 공식적으로 통보가 내려온 건 아닌데, 조합 쪽으로 해서 다 얘기가 전달됐어. 청계천에서 장사하는 것도 올해가 마지막인 셈이지 뭐.”

삶과 생존의 문제가 왔다갔다하는 와중에 옛날 비디오 찾는 미션 따위가 뭐가 그리 중요해, 라지만 결국 한쪽 구석에서 몇 개 테이프를 골라내고 말았다. <고무인간의 최후>와 <네온 익스프레스> <악마의 씨> 그리고 <마견>. 한국 비디오업계의 눈부신 작명 철학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하는 대목인데, 피터 잭슨의 데뷔작 <배드 테이스트>를 <고무인간의 최후>로, 로만 폴란스키의 <로즈메리의 아기>를 <악마의 씨>로, 그리고 사무엘 풀러의 <화이트 독>을 <마견>으로 바꿔 대중성과 오락성을 고루 겸비한 제목을 창조해낸 것이다. 그게 무슨 궤변이냐 묻는다면 <화이트 독>을 곧이곧대로 <백구>라고 했을 때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긴장감이 떨어졌을지에 대해 논하고 싶다. <배드 테이스트>라고 하면 언뜻 감이 안 오지만 <고무인간의 최후>라 했을 때는 도대체 고무인간이라는 것이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매우 근원적이고 본능적인 충동으로 인해 비디오를 꺼내들지 않을 수 없지 않나. 피터 잭슨은 한국 비디오업계에 감사해야 한다. 싸구려 제목에도 불구하고 꽤나 잘 만든 좀비영화 <네온 익스프레스>는 <네온 매니악>(1996, 조셉 맨자인)의 제목을 좀 더 그럴싸하게 바꿔놓은 것인데, 미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 영화가 하물며 한국시장에 버젓이 출시돼 있다는 것은 이래저래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역시 한국 비디오 시장만이 가지고 있는 낭만이랄까. 이제는 모두 옛날 일이지만.

내 인생 마지막으로 보는 비디오들

동대문 방향으로 쭉 걸어 내려오는데 반가운 이름이 눈에 띈다. 삼일아파트 15동 2층의 ‘젊은 남자’. 이 비디오 가게는 과거 김기영의 <화녀 82'>를 구입한 곳이라 잘 기억하고 있다. 그때 나랑 같이 간 사내는 보지도 않을 비디오 10편을 4천 원에 구입해 녹화용으로 쓰며 “이것이 IMF 시대를 살아가는 사나이의 진정한 삶의 지혜”라고 자랑했었다. 내부 정경은 진열대의 비디오와 포스터들이 좀 더 낡고 희미해졌음을 빼면 3년 전과 거의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척 보기에도 마지막으로 손님이 드나든 지 꽤 됐음을 알 수 있어 사장님에게 말을 붙이기가 여간 고통스럽지 않았다. 결국 애꿎은 <총알탄 사나이>를 집어 들어 1천 원을 건네며 겨우 몇 마디 나눠볼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완전 망했다”는 반종섭 사장님은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하단다. “올해까지 상가들을 다 비우고 나가야 하는데, 장지동으로 옮겨준다고 하지만 그것도 세금자료나 기타 여러 가지를 종합해 시 차원에서 결정한 소수의 선택받은 인원들이 갈 수 있는 거잖아. 아직 장지동에 상가건축도 안 들어갔는데 뭐. 들어가도 문제인 게, 청계천처럼 시내 한복판에 있어도 장사가 될까 말까 한 마당에 성남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장지동까지 누가 비디오를 사러 가나. 이젠 전부 끝난 거지. 끝.” 사장님은 아무래도 몇 편 더 샀으면 하는 눈치지만, 그냥 가게를 빠져나왔다. 매장을 가득 채우고 있던 느릿하게 짓눌린 과거의 공기가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망가져버린 과거를 목격하게 되면 사람은 흔히 도망치기 마련이다. 딱히 비겁해서라기보다,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국 고전영화가 많기로 유명한 삼일 아파트 21동 1층의 ‘무비월드’를 찾았다. 한쪽 구석의 최신영화 DVD를 제외하면 매장 사 면과 가운데 선반 모두가 비디오로 가득 채워져 있는 가게다. 한국 고전영화를 찾는다면 황학동 무비월드나 을지로 쁘렝땅 백화점 지하 ‘청춘극장’을 찾는 것이 별 대단스럽지도 않은 상식이던 시절이 있었다. 임강우 사장님은 “손님이 거의 없지만, 그래도 고전 한국영화를 찾는 고객들이 꾸준히 찾아온다”며 과거의 명성이 지금도 여전히 통하는 상식임을 확인시켰다. 주로 40, 50대 마니아들이 주로 찾는 이곳도 과거만큼 많은 고전영화를 보유하고 있진 않다. 이젠 더 이상 한국 고전영화 비디오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젠 더 이상 중고도 나오질 않다보니 여기 있는 비디오들이 다 팔리고 나면 그걸로 끝인 거야. 지금 보고 있는 그 비디오들이 기자선생 인생에 마지막으로 보는 것들일 수도 있어.”

이만희의 <쇠사슬을 끊어라>와 신상옥의 <여수 407호>, 장일호의 <성형미인>, 그리고 전조명의 <서산대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정형미인'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성형미인>이나 박암의 대머리가 눈에 선한 <서산대사>의 비디오는 다른 데서도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쇠사슬을 끊어라> 같은 경우는 비디오가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작품이다. 황학동 시장이 한참 잘 나갔던 90년대까지만 해도 10만 원은 족히 받았을 이 비디오는 현재 4만 원에 팔리고 있었다. <일사-나치 친위대의 색녀> 류의 컨셉과 정통 탈옥영화의 장르적 특성, 그리고 한국적 신파 감성이 묘하게 버무려진 <여수 407호>는 곰털처럼 많은 신상옥의 영화들 가운데서도 나 같은 어둠의 아이들이 특별히 더 좋아했던 작품이다. 한쪽에서 왕지징의 <헬로강시>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홍콩의 유관위 류의 강시영화보다 대만의 헬로강시 시리즈를 더 좋아했던 나로선 무척 반가운 일이었다. 우와! 라든가 이햐! 라든가 오호! 라든가, 뭐 이런 탄성들이 오가는 시끌벅적한 재회의 기쁨도 잠시, 이 비디오들이 전부 내 생애 마지막으로 만나는 모습일지 모른다 생각하니 슬퍼져버리고 말았다. 왜 지상 위에 모든 것들은 그 소중함을 미처 깨닫기 전에 한 발 먼저 사라져버리고 마는 걸까. 아 이 짓궂은 인생이란. 어리석은 인간이란.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의 총체

“다운로드족들을 모조리 감방에 집어 쳐넣어야” “높은 가격에 DVD 출시해 판매율 낮추고, 그나마 수시로 할인 행사하는 바람에 소비자 우롱하는 DVD 제작사는 공중 폭파시켜야” “13장을 3천 원에 파는 이 따위 비디오들, 차라리 모조리 불 싸질러 버려야지”처럼 어느 정도 과격하거나 어느 정도 정의로운 외침도 있었지만, 3년 만에 찾은 황학동 사람들은 대부분 차분한 마음으로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뭔가 부조리하다는, 개발도 좋고 발전도 좋지만 그 땅에 살아가던 사람들은 어디서 개발하고 발전하느냐는 볼멘소리도 없다. 그 스스로가 20,30년 동안 자본의 논리에 따라 살아왔으니 니들이 정 그렇다면 이번에도 내 그러마하는 것일까. 황학동에서 동묘 방향으로 발길을 옮기는 길,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르잖아. 사라져가는 지상의 모든 것들, 그러니까 이를테면 황학동 같은 공간은 세상사에 너무 밝아져버린 나 같은 인간에게 잠시 잠깐의 추억과 애잔함, 애틋함 따위를 안겨주고 사라질 만큼 너그럽거나 유약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파고들어 터질 듯이 차올랐다.

다시 황학동 쪽으로 방향을 바꿔 삼일 아파트 맞은편에 있는 오래된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갔다. 시멘트 색이 그대로 드러난 구닥다리 아파트의 고르지 않은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소름>에서 광태가 살던 미금 아파트가 떠올랐다. 그만큼 무시무시하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초현실적이다. 옥상에 올라 황학동을 바라보니 저 멀리 종로의 빌딩숲에서부터 여기 황학동 상가를 양분 삼아 그 위로 뻗어 자란 듯한 주상복합빌딩 공사현장까지 한 눈에 다 들어왔다. 두말 할 나위 없이, 그건 현실이었다. 그제야 황학동에 올 때마다 느꼈던 사시사철 더위의 원인을 깨달았다. 사람 표정보다 더 빨리 그 모습을 바꾸는 서울, 그 서울의 한복판에서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을 우직한 표정으로 잡아 쥐고 지켜온 삶의 힘. 난 그 위대한 힘의 열기를 느꼈던 것이다. 황학동이 그립다.

사진ㅣ김수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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