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1세기에는 바꿔야 할 거짓말 ㅣ 인터뷰 특강 시리즈 3
김동광, 정희진, 박노자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우리는 어릴적부터 거의 무의식적으로 거짓말은 나쁘고,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라고 배워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런데 살아오면서 숱한 거짓말이 우리들 주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우리 자신도 의도하든 아니면 의도하지 않든 한번 쯤은 거짓말을 해봤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많은 거짓말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일 뉴스를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정치인들의 거짓말, 국민들을 상대로 불량식품을 파는 정직하지 못한 기업가들, 그리고 은연중에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화에 대한 거짓말 등 이루 헤아릴수 없는 거짓말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어느게 진실이고 어느게 거짓인지 분간이 안되는 모호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사전적 의미로 거짓말은 "사실과 다르게 꾸며서 하는 말"이다. 즉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사실을 자신의 기억에 반하여 다르게 이야기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분명 거짓말을 하는 것에는 어떤 의도 내지는 목적이 그 전제가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법적으로 거짓말을 처벌하는 경우는 형법상 위증죄가 있다(위증죄는 증인으로서 법정에서 선서하고 거짓진술을 한 경우 성립한다). 하지만 법적으로 처벌하는 특수한 경우 이외에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거짓말에 대해, 21세기를 맞이하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한번쯤 집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하겠다.
이 책은 그러한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로, '한겨레 21'이 주최한 세 번째 인터뷰 특강 "21세기에는 바꿔야 할 거짓말"을 정리하여 책으로 엮은 것이다. 강의를 옮겨 놓아서인지 지은이가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내용이 아닌, 청중들과의 쌍방향의 대화로 이루어진 내용이어서 더욱 생동감이 넘친다. 처음부터 계획된 강의나 글쓰기가 아니고, 강의를 들은 청중들이 느끼는 자신의 생각을 여과없이 질문하고 그에 대하여 강사들이 즉석에서 답을 하는 내용은 신선하기까지 하다.
강사들은 우리 사회에 횡행하고 있는 거짓말과 그 이면에 감추어진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과연 우리는 어떠한 자세가 필요하고 앞으로 21세기는 어떠한 사회가 이루어져야 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은 모든 인간은 '완벽하게' 불완전한 존재라는 점을 지적하며 사람에 대한 거짓말을, 과학사회학자 김동광은 황우석 사태 등과 관련하여 국가와 과학의 잘못된 만남으로 빚어진 과학에 대한 거짓말을, 한홍구와 박노자 교수는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이루어지고 있는 거짓말을, 김두식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신성하다고 여겨지는 학계와 종교계에서 이루어지는 거짓말을, 새터민 김형덕은 분단체제로 인하여 남과 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서로에 대한 거짓말을, 여성학 강사 정희진은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남성들의 거짓말과 말의 권력관계를, 프라풀 비드와이 교수는 중국과 함께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인도에 대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거짓말 등에 대해 자신들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거짓말에 대한 강사들의 이야기는 대체적으로 일맥상통하는 내용이 있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을 열고 여러 가지로 다양하게 생각한다면, 거짓을 좀더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드리고 싶네요, 결국 자기 인식이 필요한 이유는, 자기가 자기에 대한 확신 같은 것이 없으면 어떤 관계에서든지 불안정해지기 때문입니다(정혜신, 본서 제38쪽, 제55쪽 참조), 합리적인 의심, 근거가 있는 의심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나름대로의 시각을 다듬어서 갖고 계실 때, 정제된 정보를 갖고서 여러분들에게 제공되는 다양한 얘기들을 각자의 눈으로 걸러 보실 때 거짓말에 속지 않고 거짓말과 진실을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한홍구, 본서 제161쪽 참조), 기억을 복원하는 데 가장 필수적인 것이 자기 성찰과 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김두식, 본서 제186쪽 참조), 우리는 가까운 사람을 자신과 일치시키려고 하지만, 실제로 다름을 인정할 때 진정으로 공존하는 관계가 가능하다고 봅니다(김형민, 본서 제239쪽 참조), 결핍을 부정적으로 메우려는 생각보다는, 너의 결핍과 나의 결핍을 우리 자신의 일부로 긍정하고, 서로의 타자성과 연대하고 소통해서(정희진, 본서 제283쪽 참조)" 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책 전체에 대해 밑줄을 그으가며 읽고 싶을 정도로 좋은 말들이 많지만, 강사들이 위 말들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서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서로를 이해하고, 여러 정보를 통하여 우리 자신만의 눈으로 사물을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워 거짓말과 진실을 구별해 내는 능력을 키울 때 이 사회에는 더 이상 거짓말이 통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되면 지금의 우리 사회보다 좀 더 밝고 건전하고 투명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위에서 논의된 것들은 우리 사회에서 이전부터 그리고 현재에도 아니, 미래에도 계속해서 논의되어야 할 주제들이며, 이러한 주제에 대한 진지한 고찰은 우리 사회를 더욱 풍성하고 건강하게 해줄 것이다.
그런데 막상 이를 실천에 옮기기는 그리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는 앞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고 나갈 후손들에 대한 우리들의 책무이자, 우리들의 권리이기도 하다. 거짓말과 거짓말이 이루어지는 우리 사회를 탓할 것이 아니라, 거짓말이 이루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 대하여 우리에게도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고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경주하여야 할때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한다.
21세기는 문화가 지배하는 세기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 21세기에 뒤처지지 않고 앞서가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이 사회에 "양치기 소년"이 있어도 안될 것이고, 그 말에 현혹되어서도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