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에 관심이 생겨서 이런 저런 책을 보고 있다.
중고샵에서 품절인 밥 장의 책들을 구하게 되었는데,
읽다보면 '젠장~맞는 말이잖아'이런 생각이 드는 글이 있다.
그의 일러스트는 꽤 유명한데 딱히 마음에 든다 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니까... 이런 그림을 보면 자꾸 <망량의 상자>가 떠오른다.
한 순간 저 전선에 눈이 가게 되면, 전선과 연결된 의료기구같은 게 연달아 떠오르고
드디어 상자 속에 있는 가나코의 얼굴까지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좀더 따뜻한 그림을 찾아봐야겠다.
이런 그림같은...(어쩐지 욕같잖아~ㅡㅡ;)
그리고 이런 글도 발견했다.
날고 긴다는 예술가들마저 한심한 일상을 견디다 못해
소주 몇 잔에 천재성과 신념을 팔아 먹는 마당에
하루하루가 고달픈 보통 사람들에게
엄격한 자기 통제와 미래를 위한 희생,
그리고 건강을 위해 술을 끊으라는 건
정말 무자비한 요구가 아닐 수 없다.
어서 술잔을 들고 실컷 떠들고
누가 듣든지 말든지 내 이야기를 쏟아 버리자.
어차피 내일 아침이면 어젯밤 무슨 일 있었는지 조심스레 물어보며
너덜너덜해진 필름을 붙여가면서 낄낄거릴 텐데.
뭐 어때? 그냥 마시자.
골치 아픈 예술가들의 엄살은 싹 다 잊고.
아~마음 한켠이 따뜻해지는 글이다.
아둥바둥 살 것 없잖아. 세상 그렇고 그런데...
그런데 나는 또 그의 말대로,
술은 공정하지만 착하지 않다.
술 마시는 사람을 느리게 파괴한다.
그래서, 음주는 지연된 자살에 비유되기도 한다.
라는 말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술로 현실을 회피하지 말자! 맨정신으로 보자! 뭐 이런거...
그런데 나는 봄에 사이다에 중독되어 있었다.
요즘보다는 날씨가 꽤 괜찮았던 봄날, 동생과 나는 집 근처 다리 위를 산책했다.
이사를 와서 주변 지리를 잘 모르기 때문에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다.
다리 위에는 물류창고같은 건물이 있었는데
건물 앞, 뒤 할 것 없이 여러 가지 물건들이 그득그득 쌓여 있었다.
그.런.데 도로 가에 사이다가 내 키보다 더 높이 쌓여 있.는. 것.이.다.
나는 단지 '아~'라고 외마디 탄식을 했을 뿐이지만,
그걸 본 동생은 놓치지 않고 한 마디 했다.
"얼굴에 화색이 도는군~그래~~
사이다 중독인 사람은 언니 뿐일거야. 이틀에 한 병씩 마시니..."
그렇다. 나는 이틀에 1.5리터를 한 병씩 마시는 여자사람이었다.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사이다의 푸른색이 보이지 않으면 느껴지는 허전함이란...
학교를 다닐 때는 이런 저런 종류의 술을 다 맛보았는데,
20대 후반이 되자, 맥주나 데킬라로 마시는 술이 확~ 줄더니
30대가 되자 오로지 맥주만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맛있다던 와인을 마시고는 '왜 이런 술을 맛있다고 좋아하는걸까?'라고 살짝 진지하게 생각해보다가 '난 서민적인 미각을 가지고 있는게 틀림없다.' 라고 결론내렸다.
그리고 이제는 사이다를 소주처럼, 보리차를 맥주처럼 생각하고 마신다.
탄산을 알콜처럼...
차도 한 종류로만 마시면 심심하니까 매번 다른 차를 주전자 한 가득 끓여놓고 마신다.
나의 지루한 일상을 다채롭게 우러나는 차 색으로 승화시킨다.^^
녹차의 청정한 푸른빛, 감잎차의 예쁜 주황색, 카모마일의 연한 노랑색과 로즈힙의 발간빛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하지만 이제는 사이다도 끊었다.
한가지에 얽매이는 건 정말 재미없는 일이다.
오늘은 냉장고에서 사이다가 사라진지 2주째~
산책 중에 한 컷~
정말 할 것도 없고 볼 것도 없는 동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