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의 레만 호수. 칼빈의 발자취를 추적하기 위한 어행이었으나, 너무나 맑고 깨끗한 제네바와 레만호수에 넋이 빠져 한참을 머물러있었다. 이 곳으로부터 로잔까지의 드라이브도 정말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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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 2005-04-15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계신곳이 제네바? 공부중이신가요? 아님.....?

진현근 2005-04-15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지금 서울에 있습니다.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지요. 저 사진은 유학시절에 제네바 여행을 하면서 찍은 것입니다.

리안 2005-04-16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시군요. 저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답니다.
 

 

더 이상 그러지 말아라


레17:7 백성은 더 이상, 그들이 잡은 짐승을 숫염소 귀신들에게 제물로 바치는 음행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이것은 그들이 대대로 영원히 지켜야 할 규례이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살던 동안에 그 곳 거민들을 본받아 많은 우상을 숭배했었습니다. 숫염소는 당시 이집트에서 많이 섬기던 우상중의 하나로서 풍요와 다산, 음란과 무절제한 음행의 상징 이었습니다. 출애굽을 했지만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받은 영향으로 늘 ‘우상숭배’의 가능성을 안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어려운 일만 생기면 그들은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외쳤고, 급기야는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이집트에서의 옛 생활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행위를 음행이라고 경고하며, 더 이상은 그러지 말라고 권고 하셨습니다. 이집트에서 거할 때 하던 못된 우상숭배의 습관, 즉 음행을 다시는 행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출애굽을 한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새로운 생활방식(Life-style)으로 살아야 했으며, 옛날 방식을 단호하게 버려야만 했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구원받은 자신의 자녀들이 구원받기 전의 생활방식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새로운 생활방식으로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빈번하게 구원받기 전에 어두움의 나라에 머물 때 하던 못된 생활방식을 반복하고 있습니까? 미처 끊어버리지 못한 죄들은 얼마나 우리의 삶을 초라하게 만들고 있습니까?

 

잠 26:11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듯이, 미련한 사람은 어리석은 일을 되풀이한다.

벧후 2:22 개는 자기가 토한 것을 도로 먹는다. 돼지는 몸을 씻고 나서 다시 진창에 뒹군다

 

  우리 모두는 어쩌면 죄에 대한 회귀본능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서도 죄인으로 살던 때의 못된 습관을 그리워하는 노예근성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보다도 감각과 느낌을 따라 사는 것이 당장은 더 편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개, 돼지와 다를 바 없다고 하나님은 그림언어를 통해 경고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살 것인가? 아니면 개, 돼지로 살것인가? 우리 스스로 매일의 삶에서 결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안타까운 표정으로 “더 이상 그러지 말아라”라고 권면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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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란 무엇인가
김세윤 지음 / 두란노 / 200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특히 기독교 지도자들과 설교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이다. 신학의 오해는 신앙의 오류를 불러오고, 신앙의 오류는 선교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오랫동안 근본주의자들이 교권을 장악해 온 한국적 상황에서 신학적 교정은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과제이다. 이런 정황에서 김세윤 박사의 책들이 쉬운 해설판으로 나오기 시작하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본서는 무엇보다 복음의 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 애쓰고 있다. 예수가 전한 복음과 사도들이 전한 복음이 연장선상에 있으며, 다만 구원사적 시점의 차이와 관점의 차이가 있을 뿐임을 분명히 하고, 예수님이 전한 복음은 약속이었고, 그의 죽음은 약속의 성취였으며, 부활은 성취의 증거가 되었음을 논증한다. 그리하여 사도들은 부활의 증인으로 자신들을 인식하였던 것이다. 내어줌과 받아들임의 구조,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개념과 복음의 포괄성을 읽을 때는 감동이 밀려온다.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자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되고,  이중계명의  요구를 받게 된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회복된 관계에서 샬롬을 경험한 이들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샬롬을 이루어가야 한다. 특히 '이신칭의'의 문제에 있어서 법정적 개념만이 아닌 관계적 개념을 인식해야 한다. 즉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으로 인해 의를 획득하게 되는 것에만 머무르지 않고, 관계 안에서 의무를 다하는 관계적 의를 실현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종말론적 유보구조'를 인식하고,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게된 자녀로서 주권의 전이(Lordship transfer)를 확실히 하여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고 예배하며, 복음으로 인해 치유된 경험을 가진 사람들로서 이 땅에서의 삶은 '첫열매'의 의미임을 깨닫고 이웃들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샬롬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복음전파의 근거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선교적, 제자도적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이루어가는데 헌신해야 한다.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하고 그 주권에 순종하기를 서약한 사람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이 세상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주권을 실현해가는 일꾼(agent)이며, 주예수 그리스도의 사단과의 전쟁에 징집된 군사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스스로 예수의 주권에 의존하고 순종하여 하나님 나라의 샬롬을 확대해야 하고, 세상을 향하여 "예수가 주이시다"라고선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사단의 죄와 죽음의 통치에서 회개함으로 나와서 진정한 주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생명의 통치 아래로 들어오라고 촉구하여야 한다.

"성경에 무식하고 신학적 통찰력이부족한 가운데 오로지 "보수"만을 외치는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시대와 처지를 물론하고 오로지 종교개혁자들식으로만, 그러니까 바울의 "의인됨"의 범주로만, 그것도 포괄적으로 옳게 이해된 "의인됨"이 아니라 오직 "무죄선언됨"(acquittal)의 측면으로만 이해된 "의인됨"의 범주로만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그들이 "보수"한다는 성경의 많은 가르침을 무시해버리는 우를 범할 뿐 아니라, 복음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그리하여 복음이 가져다주는 구원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큰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p.210)

정확한 진단이 아닐 수 없다. 성경이 말하는 복음의 포괄성을 외면하면  신학과 신앙의 부조화, 신앙과 삶의 괴리로 인해 한국의 개신교는 갈수록 형식적인 종교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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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에 울고있는 내가 있어요 - 완결편
주서택.김선화 지음 / 순출판사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요사이 칼빈 신학을 근본주의적으로 따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기독교 상담가는 오로지 "성경적 상담"만 해야 된다면서 성경에서 그들이 터득했다는 몇 가지 신학적인 원칙들을 따르고 성경 말씀들을 직접 인용하면서만 상담을 해야지, 심리학이나 사회학 등 이른바 세속 학문들에서 얻은 통찰력들을 활용하면 안된다고 주장하여 많은 혼란과 해악을 가져오는 모양이다. 이러한 견해는 성경과 신학에 대한 무지의 소치이고 그들이 추종한다는 칼빈의 가름침에도 어긋나는 것이며, 자기모순적인 것이기도 하다. 성경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는 책이지 무슨 교본이 아니다. 상담의 교본도 아니고, 교육학의 교본도 아니고, 리더쉽 교본도 아니다. 때문에 성경에서 직접적으로 상담의 모든 원리들과 기법들을 도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성경의 가르침을 잘 해석하여 기독교적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을 덛고, 그 기준들에 맞추어 하나님과 이웃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며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 기독교적 상담가의 기본적인 자세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해석학적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문제들의 복잡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들의 에너지를 제대로 발휘하게 하여 그 문제들을 극복해가도록 돕기 위해 심리학이나 사회학이나 또는 예술을 통하여 얻은 통찰력들도 앞서 언급한 신학적 원칙들과 잘 융합하여 활용해야 한다. 이 융합의 과정 중 기독교적 관점과 배치되는 심리학이나 사회학 이론 등은 비판적으로 걸러내야함은 물론이다. 오로지 "성경적 상담"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이런 사람들을 Biblicists라 함)은 하나님의 이반계시와 일반 은총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무시함으로 해서 스스로 성경에 거스르는 일을 할 뿐 아니라, 칼빈을 따른다면서도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적절히 선언한 칼빈의 가르침에도 어긋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런 삶들도 아프면 약도 먹고 의사에게도 찾아가는 등 의학을 활용하며, 과학적으로 시공한 아파트에서 편안히 앉아서 과학의 산물들인 전기, 전화, 컴퓨터를 활용하고 모짜르트의 음악도 즐기고 텔레비젼으로 각종 정보도 얻고 자동차도 타고 다니며, 사회학, 심리학, 정치학, 경제학, 경영학, 행정학 등이 개발한 이론들에 따라 이루어 놓은 현대의 민주 복지 사회의 혜택을 단단히 누리면서 산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의 문제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돕는 상담에 있어 이런 과학들이 제공하는 통찰력과 편리를 이용하면 안된다고 하는 자기모순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루 빨리 성경을 율법주의적, 주술적으로가 아니라 올바로 해석할 줄 아는 신학적 성숙에 이르기를 절실히 바란다."

 이 책은 위의 김세윤 박사의 지적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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