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일까

들길을 걷다 보면
도랑가로 달개비꽃 피어 있지요.
달개비꽃 볼 때마다
달개비란 이름 맨 처음 붙인 사람
궁금하지요.

누구일까

산길을 걷다 보면
길섶으로 패랭이꽃 피어 있지요.
패랭이꽃 볼 때마다
패량이란 이름 맨 처음 붙인 사람
궁금하지요.

누구일까

 

4학년 2학기 읽기 교과서에 나오는 시.

얘들아, 니네 달개비꽃 아냐?

아무도 모른다. 무슨 색일까? 하는 질문에 노란색일 거라는 대답이 제일 많으니 정말 모른갑다.
인터넷에서 이미지 검색해서 보여주니 아, 저거, 나 본 적 있다, 떠들어댄다.

패랭이꽃은?

그것도 몰라서 검색해서 보여주고 나서,

진짜 저런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을까? 하고 물으니
묻는 말에는 대답도 안하고 한 녀석이 불쑥

선생님, 도둑놈의 지팡이, 라는 풀도 있어요!

하길래 그것도 검색해보고, 어떤 녀석이

선생님!!! 얘가 그러는데 개불알꽃도 있대요!!!! 하고 고함을 질러 그것도 이미지 검색을 해서 보여주었다.



개불알꽃은.......정말.......남자 아이들이 어쩔 줄을 몰라하며 몸을 비튼다 ㅎㅎㅎ
(여자애들은 저게 뭐? 하는 표정)

여기까지 이르자 나는 느낌을 살려 낭송하자느니, 되풀이되는 말을 찾아보자느니 하는 수업목표는 홀랑 까먹어 버리고는

얘들아! 며느리 밑씻개, 라는 풀도 있는 거 아니?

하고는 이미지 검색으로 그 풀을 보여주었다.

저게 왜 며느리 밑씻개냐면, 옛날에는 똥을 누고 휴지가 없어서 나뭇잎으로 닦았거든? 그 나뭇잎이 부드러워야 좋겠어, 꺼끌꺼끌해야 좋겠어? 당연히 부드러워야 좋겠지? 근데 어떤 시어머니가 며느리가 미워가지고는 가시가 엄청 많은 꺼끌꺼끌한 잎파리로 닦으라고 주었대. 그게 이 풀이야. 엄청 꺼끌꺼끌하거든.

교과서대로 수업하면 몸을 비비 트는 것들이 이런 얘기를 해 주니 숨도 안 쉬고 듣는다. 신이 난 나는 내친 김에

있잖아~ 밑씻개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 알고 있는데 해줄까 말까?

해주세요~~~~~!!!

내가 옛날에 TV에서 본 건데, 실화야. 50년대인가 60년대 쯤에 한 시골 마을에서 미군이 자기들이 있던 건물을 부수고 철수를 했대. 그 시절에는 물자가 귀해서 건물 철거하면 나오는 철근 같은 걸 사람들이 주워다 팔았어. 근데 사람들이 가보니까 이상한 솜 같은 것이 많이 있거든? 그게 뭔가 싶어 주워다가 이불솜도 만들어 덮고 했어. 그게 뭐냐면 '석면'이라고 건물 사이에 넣는 단열재야. 근데 이게 발암물질이 많아서 지금은 사용이 금지되어 있는 거거든. 아주 안 좋은 거지.
그런데 글쎄, 이 마을 이장님이 그걸 보고는 '이건 서울 사람들이 뒷간에서 쓰는 휴지라는 것이다' 해버린 거야. 그래서 사람들이 너도나도 이 석면을 휴지대신(그때 사람들은 휴지를 안 썼으니 신문지나 나뭇잎 대신) 사용하기 시작했어. 그런데 이 석면은 그냥 보면 솜 같지만 그 속에 아주 미세한 유리가루가 들어있거든. 그러니 사람들이 얼마나 똥꼬가 아팠겠어? 그래도 서울 사람들이 쓰는 거니 좋은 거라며 계속 사용하고 있는데, 하루는 서울로 유학간 대학생 아들이 고향에 와서는 '엄마, 뒷간에 있는 솜 같은 거 뭐예요?' 한단 말이야. 엄마가 얘기해주니 질겁을 하는 바람에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지. 그래서 사람들이 단체로 목욕탕에 갔어. 뜨거운 물에 담그면 유리가루가 좀 빠질까 해서.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도 몰라.

몇년 전에 테레비에서 본 얘기를 기억나는 대로 해 주었더니 신기해서 어쩔 줄 모른다. 부드러운 휴지도 모자라서 비데까지 사용하는 요즘 아이들에게(실제로 집에서 비데만 사용해서 학교와서 큰 것을 보고 뒷처리를 못하는 아이들도 있다) 신문지와 나뭇잎으로 뒷처리를 하던 그 시절이 신기할 수 밖에 없다.

선생님도 신문지로 했어요?

그럼, 신문지 말고 달력 중에서 하루씩 뜯는 아주 얇은 종이로 된 달력이 있거든? 그게 최상품이었지.
그리고 더 옛날에는 어떻게 했는지 알아? 뒷간 옆에 작대기 두개를 세우고는 거기다 새끼줄을 매달아. 볼 일 보고 나오면 거기다 가랑이를 착 걸치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쓰윽~ 통과하는 거지. 그럼 끝이야.

우욱~~~!
선생님, 그럼 새끼줄은 한번 밖에 못 쓰겠네요? 더러워지니까.

유난히 깔끔떠는 한 녀석이 묻는데, 그 옆에 있던 여자아이가

아니지. 똥이 마르면 밑으로 뚝뚝 떨어져. 그럼 또 써.

나도 거기까지는 모르겠다, 새끼줄은 사용 안해봤거든.

이러고 노닥거리며 예쁜 꽃 이야기를 하던 시 수업은 똥 이야기로 변질되고 말았는데.......이 변질을 눈치챈 똑똑한 한 녀석,

선생님, 근데 이게 아까 그 시랑 무슨 관계가 있어요?

어? 그러네? 아무 관계도 없지. 그럼 얼른 수업으로 돌아가자.

야!!!!!!! 너는~~~~!!!!!!!

반 아이들의 우뢰와 같은 원성 소리에 기가 팍 죽어 버린 똑똑한 녀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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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6-12-08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똘똘이 스머프가 생각나네요.그녀석 귀여운데요.
근데 새끼줄은 정말인가요? 첨 들었어요.^^

아영엄마 2006-12-08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후.. 수업 내용이 너무 너무 알찹니다그려~ ^^ - 저도 신문지랑 습자지처럼 얇고 부드러운 일일 달력 사용해 본 세대죠...(-.-)>

hnine 2006-12-08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기만 해도 재미있는 수업 광경이 상상되어요. 맨 위의 시는 아이가 쓴 시인가요. 어린 아이의 호기심이 그대로 드러나요. 개불알꽃은 이름 부르기가 좀 그래서 그런지 나중에 '복주머니꽃'이라고 개명이 되기도 했는데 아직은 덜 익숙하지요.

조선인 2006-12-08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끼줄은 정말이에요. 민속촌에서 본 적이 있걸랑요. 히히.

blowup 2006-12-08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수업은 삼천포로 빠져야 제 맛!(이 수업 재미있어요.)

chika 2006-12-08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수업받고 싶어요;;;;;;

플레져 2006-12-08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단대이 수업에 동참한 기분이어요.
달개비꽃은 단 일년에 단 하루만 피었다 지는 꽃이래요. 슬포요...

깍두기 2006-12-08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비아나님, 정말이라는군요. 조선인님이. 저는 어디서 들었는데 기억이 안나네요^^

아영엄마님, 그 때는 그 종이가 있으면 아주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에이치나인님, 아이가 쓴 시 아니고요, 윤동재 라는 분이 쓴 시입니다. 복주머니꽃....좀 덜 리얼하네요^^

조선인님, ㅎㅎ 그랬구나. 난 어디서 들었지?

나무님, 우리도 왜 어렸을때 받은 수업, 수업내용은 하나도 기억 안나고 선생님이 해 주신 곁가지 얘기만 생각나지 않나요?^^

치카님, ㅎㅎ 이거 읽으셨으면 한 시간 수업 받으신 것임^^

플레져님, 어머 그래요? 여름에 지천으로 피어 있어서 저는 꽤 오래 피는 꽃인줄 알았는데.

Mephistopheles 2006-12-08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기막힌 수업의 반전이군요..^^
아깝다..제주도 똥돼지가 왜 똥돼지인지도 나올 수 있었는데...^^ㅋㅋㅋ

하이드 2006-12-08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주도 '똥돼지' 얘기도 해주시지, 옆에 세워 놓은 작대기로 돼지를 쫓으면서 볼일을 봐야해. 안그러면 돼지가 와서 ........ 똥이 사방으로 튀니깐.

마법천자문 2006-12-08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 아이들의 우뢰와 같은 원성 소리에 기가 팍 죽어 버린 똑똑한 녀석이었다... 아아, 역시 한국에서 내부 고발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힘들어요. ㅠㅠ

깍두기 2006-12-09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똑똑한 녀석, 때문에 저 정도에서 끝냈지요^^

하이드님, 도쿄는 어때요? 메피스토님이랑 찌찌뽕 해야 되겠다 ㅎㅎㅎ

체셔강아지님, 님 댓글 왜 이리 웃깁니까.
갑자기 똑똑한 녀석의 위상이, 눈치없는 놈 ㅡ> 정의를 실현하려는 자, 로 높아져 버린 듯한.....^^

마태우스 2006-12-09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씻개라니 전 그런 식물이 있는지 첨 알았어요... 정말 보람찬 수업이었는 듯...

깍두기 2006-12-10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식물들의 이름은 매우 적나라한 게 많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