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 북클럽
커렌 조이 파울러 지음, 한은경 옮김 / 민음사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사랑 없이 결혼하는 것보다 참지 못할 일은 없다.

Written by Jane Austin


영국의 한 평론가는 이런 말을 했더랬다.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를 영화화하기는 코끼리를 가방에 넣는 것처럼 어려운데 비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스위스 시계처럼 잘 맞아 떨어진다.”

그칠지 모르고 유난히도 불어대는, 오스틴 열풍을 단적으로 꼬집는 글이라 난 한참을 박장대소 했더랬다. 정말 그렇다. 제인 오스틴 소설의 소설을 한마디로 평하자면 “패보고 치는 고스톱”이랄까?

그만큼 빤한 공식이 있다는 얘기다. 이미 레시피가 다 공개되어 있는 음식을 굳이 <제인 오스틴>이라는 레스토랑까지 가서 돈 주고 사먹을 이유가 어디 있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응! 사먹을 만 해.”라는 것이다. 멋지고 돈 많은 남자를 향한 지극히 속물스런 구애와 약간의 유머와 위트, 그리고 행복한 결혼으로 이어지는 오스틴의 공식은 속이 환히 들여다보이지만, 그 속에 넘쳐나는 위트와 맛깔스런 대사를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지독한 즐거움을 안겨다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스틴을 읽는다.


제인 오스틴 북클럽 또한 오스틴의 이런 글쓰기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들, 짜증나는 이웃과 친지들, 적당히 착한 남자와의 결혼으로 이어지는 구성은 작가가 괜히 제인 오스틴을 전면에 내세운 게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뭐 굳이 비꼬자면 ‘나 오스틴처럼 쓸 거니까 팬 북이라 생각하고 읽어!’랄까.

따분한 일상들과 누구나 한번 씩은 겪었을만한 얘기들로 무려 300페이지에 이르는 소설을 굳이 써야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건 대부분의 우리가 고대의 서사시에나 등장하는 장엄하고 위대한 영웅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우리는 따분하고 지루한 반복되는 일상들 속에서 고만고만한 이웃들과 요모조모 부대끼며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약간의 편견분별력과 감수성을 조금씩 갖춘 우리는 꽤 오만한 이웃들과 요모조모 부닥치며 때로는 설득하기도 하고 때로는 설득당하기도 하면서 나름대로는 괜찮다고 생각되어지는 배우자들과 행복한 결혼을 꿈꾸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작가는 분명 오스틴처럼 쓰면 팔릴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래서 우리는 <제인 오스틴 북클럽>을 읽는 것이고!

언제나 오스틴을 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니까. 그곳이 서울이든 뉴욕이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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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티즘은 죽음까지도 파고드는 삶이다.

Written by Georges Bataille


새벽 4시, 알콜 그리고 구토

토사물과 함께 치밀어 오르는 욕지거리를 참으며, 그렇게 난 4시의 밤을 삼켰다.

침대에 누워 한 얼굴을 떠올린다. 처음엔 웃음,, 때로는 분노... 하지만 결국엔 그리움이다. 그 그리움은 훼스탈 2정과 물로는 치유될 수 없는 슬픔이다.

바타이유가 말했던 서로 교통하려 애쓰지만 그 어떤 방법으로도 원래의 거리를 좁힐 수 없는 마치 거대한 심연과도 같은...


침대에 똑바로 누워 Baruzi의 글귀를 떠올렸다.


밤은 어두웠으며, 그리하여 밤이 밤을 밝히었다.


모든 종류의 위로받을 수 없는 비탄도 시간과 더불어 스러져 가는 법이라지만, 때론 그 시간을 기다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버거울 때가 있는 법이다. 그럴 땐 한 모금의 담배와, 방안에 조용히 울려퍼지는 음악만이 유일한 구원이다.


새벽 4시에 Mahler를 들었다. 그리고 그건 나에게 충분한 위로가 되어 주었다.

교향곡 5번의 Adagietto는 그렇게 조용히 내 방안의 밤을 밝혀주고 있었다.


 

말러의 아다지에토를 듣노라면 언제나 루키노 비스콘티의 <Death in Venice>가 떠오른다. 토마스 만(Thomas Mann)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탐미적이고, 에로틱한 영상과 더불어 처절하리만치 비극적인 정서가 말러의 선율로 완벽히 장식되어 있는, 정말 치명적인 작품이다.(아마도 여성분들에게는 더욱 치명적일 미소년 비요른 안데르센과 함께)



소설과 영화는 전체적인 구성에서는 크게 다를 것이 없지만, 비스콘티는 토마스 만이 말러의 죽음을 계기로 이 소설을 집필하게 된 것을 떠올리고 소설의 주인공인 구스타프 폰 아센바흐 라는 인물을 작가에서 작곡가로 바꾸어 놓았는데, 이는 철저히 말러를 염두에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에로티즘은 오로지 응시라는 수단만으로 표현되어지는데, 욕망의 대상을 끊임없이 바라봄으로써 사랑의 열정이 시작되고, 그 대상을 바라보는 가운데 죽음을 맞음으로써 끝을 맺는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라는 것은 “누군가를 끊임없이 바라보게 된다”라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인간의 존재는 근본적으로 고독하다. 태어나는 순간에도 혼자이며, 모든 사건들을 혼자 감당해야 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도 철저히 혼자일 수 밖에 없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한 구절처럼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은 각자 자신만을 가리킬 수 밖에 없다.”라는 말은 분명 진실일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바라보게 되고 또 사랑하게 됨으로써 그 순간만큼은 바타이유가 말했던 그 거대한 심연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 매혹의 과실이 그만큼 달콤했기에 구스타프 폰 아센바흐는 사랑하는 소년 Tazio의 곁을 떠나야만 하는 치욕적인 삶 대신 의연한 죽음을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혼자 누워있는 이 순간 난 영원을 떠올리고, 다시한번 그리움을 떠올린다.



영원(아르뛰르 랭보)


되찾았도다!

뭐가? 영원성이

태양과 함께

바다는 떠나가고


영혼, 나의 파수꾼이여

그토록 무가치한 밤과

불타는 낮의

고백을 속삭이도록 합시다.


인간적인 간구와

평범한 충동,

거기서 벗어나 그대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사탄의 잉걸불이여

그대에게서만

[결국]이라는 말도 없이

의무가 터져버린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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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3-20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영화 보고 싶어요.
이 책은 꼭 베니스에 들고 가서 읽을꺼에요. 이왕이면 토마스 만이 머무르며 썼다던 그 자그마한 호텔이서면 다 좋겠죠.

보르헤스 2006-03-20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디비디 나와있으니까 한번 보세요 가격도 싸던데... 그리구 잘못 기입된 주소때문에 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했어요. 그리고 책은 낼 온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소중하게 읽겠습니다.

하이드 2006-03-20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하두 잘못 보낸 전적이 많아서 ^^:; 주의 하는라 하는데, 제가 이렇습니다. ^^: 그런김에 목소리도 듣고 좋죠 뭐.알라딘에 유포되고 있는( 혼자 유포하고 있는) 하이드 섹쉬허스키고음 보이스의 진실은 비밀입니다. 흐흐
디비디는 거진 품절이던데, 한번 더 찾아봐야겠어요.
 



한밤중에 일어나 담배를 찾는 것은 나쁜 습관이다.

하지만 세상이 까마득한 새벽 4시에는 구원을 청할데가 없다. 식탁위에 놓인 아이리스는 꽃잎이 말린 채 시들어 가지만 여전히 투명하리만치 하얗다. 눈을 돌렸더니 깜빡이는 자동 응답기의 빨간 불빛이 보인다.

수키 김의 통역사 중에서

닐스 란드그렌(Nils Landgren)의 음울한 무드 보이스에 취해있다보면, 어느새 서글픈 눈물이 맺힌다.

그건 분노의 눈물도 아니요, 설움의 눈물도 아니다. 그건 상실의 눈물이다. 우린 무엇을 상실해버린걸까?

현대사회에서는 순수히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하다. 이른바 타인을 불편하게 만들어, 이른바 "소양이 없는"사람으로 취급되어 수치감을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인은 맘놓고 울지도 못한다. 때로는 비좁은 화장실에서 숨죽인 이불 밑에서 손가락을 깨물어가며 울음을 참아야만 한다. 그 눈물속에서 우린 자신의 존재를 서서히 상실해 간다.

현대인은 사랑도 cool 해야하며, 삶도 cool 해야한다. 구질구질하거나 찌질해서는 안된다.

cool하다라는 의미는 '철저하게 조작된(인위적인)'이란 말과 다름아니다. "내보기에 좋았더라"가 아닌 "남보기에 좋았더라" 라는 것이 cool 하다라는 것의 진정한 본질이다.

현대인이 느끼는 고독과 소외문제는 타인과의 소통의 부재에서 찾아야 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신을 찾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나는 "진정한 나"와 얼마나 떨어져 있나?

얼마나 오랫동안 "그"를 내버려 둔 걸까?

매우 도시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는 닐스 란드그렌의 2번째 발라드 앨범 
"sentimetal journey"는 
진정한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고 한없이 부유하고 있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려내고 있다. 
이 음반을 한마디로 평하자면...
"그저 입술을 꼭 깨문채 어깨로만 울어야만 하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밑의 가사를 조용히 음미해 보시길...
Ghost in this house
I don't pick up the mail
I don't pick up the phone
I don't answer the door
I'd just as soon be alone
I don't keep this place up
I just keep the lights down
I don't live in these rooms
I just rattle go around

I'm just a ghost in this house
I'm just a shadow upon these walls
As quietly as a mouse I haunt these halls
I'm just a whisper of smoke
I'm all that's left of two hearts on fire
That once burned out of control
You took my body and soul
I'm just a ghost in this house

I don't care if it rains
I don't care if it's clear
I don't mind staying in
There's another ghost here
He sits down in your chair
And he shines with your light
And he lays down his head
On your pillow at night

I'm just a ghost in this house
I'm just a shadow upon these walls
I'm living proof of the damage
Heartbreak does
I'm just a whisper of smoke
I'm all that's left of two hearts on fire
That once burned out of control
And took my body and soul
I'm just a ghost in this house
Oh, I'm just a ghost in this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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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3-14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지금이 밤 11시29분인것 같아요.
어제부터 슬픈노래들만 찾아듣고 있는데, 이곡 대놓고 슬프네요.
i'm just a shadow upon hese walls라니...

보르헤스 2006-03-14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 화창한 봄날 괜히 우울하게 만들어버린건 아닌지 죄송스럽습니다.

하이드 2006-03-14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우울한거 디게 좋아해요. 허우적허우적

보르헤스 2006-03-14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음반에는 대 문호 톨스토이의 증손녀이자 성악가인 Victoria Tolstoy도 뮤지션으로 참가하고 있어요. 사셔도 후회 안하실 겁니다.

하이드 2006-03-14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음반에 있는건가요? 대충 찾아봤는데, 이곡이 없네요.

보르헤스 2006-03-14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ils Landgren의 "Sentimental Journey"라는 음반입니다. 핫트랙에 가시면 구할수 있습니다. ^^

보르헤스 2006-03-14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음반의 또다른 곡 SPEAK LOW 도 하이드님 취향에 맞으실 듯 하네요. 뮤지컬 ONE TOUCH OF VENUS에 삽입되었던 곡인데, 정말 COOL하게 만들어졌어요 ^^ 하이드님 취향에 딱 이실 듯하네요..

2006-03-14 14: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06-03-14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감사합니다. ^^ 하나만 사기 뭐해서 다른음반도 살까 둘러보는 중입니다. ^^

2006-03-14 2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3-24 2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르헤스 2006-03-25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분나쁠 것 까지 있나요 ^^; 음악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네요
 


참나무 숲속의 수도원/ 내가 상상하는 키에브의 거대한 성문 이미지


 

더 이상 술에 취할 수 없다면 자신의 영혼은 타락한 것이다

Joseph Rudyard Kipling/여인들의 연인 중에서

 

 


“알콜 9단위... 담배 30개비...오전 9시. 오, 맙소사! 기분은 떡에다가... 신물이 시도때도 없이 올라오는 이 끔찍한 숙취.” 브리짓 존스의 고백이 남달리 느껴지지 않는 지독한 아침이다. 오늘 하루는 철저히 몸을 사려야 겠다. 또 술마시자고 꼬시는 놈은 구석진 장소로 끌고가 입구녕에다 큼지막한 돌멩이를 쑤셔버려야지...

 


어젯밤, 디오니소스의 강렬한 유혹에 당당하게 응했던 자부심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마크 트웨인이 말했던, 유혹을 물리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비겁함으로 <몸 사리기>에 들어가는 내가 비참하기 그지없는 아침이다.


예로부터 술은 신성시 되어왔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이 마시는 술, 넥타(Nectar)는 신들의 음식인 암브로시아(ambrosia)와 함께 영원한 젊음과 불멸의 생명을 상징했었다. 뭐 굳이 서양의 그리스/로마 신화를 들먹이지는 않더라도 술이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제물(祭物)로써 신성시 되었다는 건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화현상이라 하겠다.


이처럼 술이 성스러운 음료였기에 술을 즐긴다는 건, 신을 사랑한다는 뜻이기도 했었다. 그러했기에 술은 전장에선 용기로써, 예술에선 위대한 영감으로써, 생활에선 동지애의 상징이었다.

인류가 가장 신을 사랑했던 시기... 중세라 불리웠던 그 세기에 지구상의 모든 인류는 술에 찌들어 있었다라는 것은-여러 문헌을 통해 볼작시면-잘 알려진 사실이다.(그 시기에 물을 그냥 마신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였다. 왜냐하면 여러 질병의 감염원이 물이였으니까, 중세는 미개하고 야만적인 암흑의 시대가 아닌, 갈증을 위험한 물대신 안전한 술로 대신하던 매우 지혜로운 사람들이 살던 시대였다. 중세 시대의 사람들은 남녀노소 구분없이 1인당 평균 4ℓ의 맥주를 마셨더랬다.)


신을 사랑하는 자라면 어찌 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술잔을 앞에 두고 경외하는 자는 유다의 자식이요.

술잔에 물을 타는 자는 저주받을 자라.


오늘날 위대한 영감을 가진 예술가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은 “Fucking” Well-Being 때문일거라고 난 굳게 믿고 있다. 18세기 낭만파라 불리던 거리의 주정뱅이가 모두 사라진 지금 우리는 얼마나 각박하고 재미없는 삶을 살고 있나?

문학은 바람난 이웃집 김씨 아저씨 얘기보다 더 재미없어졌고, 음악은 이효리의 'Get ya'가 인기가요 1위랜다. 젠장!

다시한번 Fuck이다.


20세기엔 그래도 멸종되었다고 믿었던 몇몇 주정뱅이가 아직은 남아있던 시기였다. “언제나 뜨겁게 끓어올랐던”레이먼드 챈들러, “죽어서 누워있고 싶다던” 윌리엄 포크너, “총질을 유난히 좋아하던”어니스트 훼밍웨이, “샴페인만 줄곧 마셔대던”스콧 피츠제랄드, 아! 위대한 유진 오닐, “항상 터프해지던”더쉴 해미트, “욕망이라는 전차안에서 잠에 곯아떨어진” 테네시 윌리엄스,“술쳐먹고 끄적인게 틀림없는” 레이먼드 카버, “수전증으로 물감을 떨어뜨린게 분명한” 잭슨 폴락, “나발을 멋지게 불어대던” 존 콜트레인 등등


Anyway...

지금은 Mussorgsky(1839-1881)라는 주정뱅이 얘기를 해볼까 한다. 그 역시 타고난 술꾼이었고, 또 위대한 영감의 소유자였다. 그의 황홀한 작품 <전람회의 그림>이 김동률의 “전람회”에 영향을 주었는지 아니었는지는 나는 알 수 없으나, Jazz Piano의 원조 “드뷔시(Debussy)”에게 영향을 준 것 만큼은 확실하다고 알고 있다. “전람회의 그림”을 얘기함에 있어서 빼놓아서는 안될 두 사람이 있는데. “짜르(Tsar) 알렉산드르 2세(Aleksandr II)”와 “빅토르 하르트만(Victor Hartman)이다.


무소르그스키의 삶에 있어 이 두 사람의 존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들인데, 알렉산드르 2세는 무소르그스키의 알콜중독과 빅토르 하르트만의 죽음에 결정적 원인을 제공한 가해자라 할 수 있다. 크림전쟁의 패배 후 러시아는 급격한 근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해방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기치아래 1861년 농노 해방령을 선포한다. 이 농노해방령은 소지주 출신의 무소르그스키에게는 치명적인 경제력 상실로 이어졌다. 귀족출신의 넉넉한 집안에서 출생하여 별다른 걱정이 없었던 그는 생활을 위해 일자리를 찾아야만 했고, 뒤이은 어머니의 죽음은 그를 절망이란 술에 의지하게끔 만들었다. 근근히 빈곤한 관리생활을 하던 그에게 빅토르 하르트만이란 친구의 존재의 절망 속에 비치는 한줄기 서광과도 같은 것이었다. 하르트만은 부유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건축가, 화가로 활동하던 재능 넘치는 예술가였다. 하르트만은 가난했던 무소르그스키의 경제적 사정을 몇 번씩이나 살펴주면서 그에게 끊임없는 신뢰와 애정을 베풀어주었다.

 


1866년 운명은 절망처럼,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았던 그들의 어깨위에 나란히 내려앉았다.

 

알렉산드르 2세는 1866년 4월 4일 키에브(kiev)에서 벌어진 암살 시도로부터 가까스로 생명을 구하게 된다. 이에 황제는 “1866년 4월 4일의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거대한 성문을 건축하기로 마음먹고 러시아 전역의 건축가들을 대상으로한 “공모전”을개최한다. 치열한 경쟁 끝에 하르트만이 공모전에서 우승하게 되고, <전람회의 그림>의 마지막 곡의 모태가 되었던, ‘키에브의 거대한 성문(The Great Gate of Kiev)’은 이렇게 탄생했다. (옆의 그림이 실제 하르트만이 그렸던 키에브의 거대한 성문 조감도)

 

하지만 성문을 건축하기 위한 자금의 부족이어서인지, 아니면 그날의 사건이 일반 민중에게 알려지

 

기를 원하지 않았던 황제의 불편한 심사 때문이었는지 명확하지 않으나 그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이는 하르트만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하르트만이 31살의 나이로 심장병으로 요절해 버리자, 절친한 친구를 잃은 무소르그스키는 슬픔의 격정을 누르지 못하고 더욱 더 술에 탐닉하게 된다. 그는 러시아 국민악파의 대부 라 일컫어 지는 “V. 스타소프”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남겼다


여보게 친구,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말이나 개, 쥐 따위 동물도 살아 있는데 하르트만 같은 친애하는 사람이 죽다니! 이런 때 현명한 녀석은 우리처럼 어리석은 놈을 위로하는 말이랍시고, 이렇게 지껄일테지. “비록 하르트만이 죽었다 하더라도 그가 남긴 작품은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라고 말이야, 그러나 그렇게 머리 잘 돌아가는 녀석이나 죽어버리라지! 라고 하고 싶다네.


음악, 문예 비평가였던 스타소프는 하르트만을 추억하는 유작 전람회를 페테르부르크에서 개최하였고, 전람회에 참석한 무소르그스키 역시 친구의 마지막 유작들을 그리움의 눈으로 지켜보았다. 그리고는 어릴 적 어머니에게 배웠던 그에게 가장 친숙했던 악기, 피아노로 그날의 감동과 인상들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전람회의 그림”이다.

 


전람회의 그림은 10곡의 소품과 5곡의 프롬나드(promenade)로 구성되어 있는데, 프롬나드란 산책, 산책길을 뜻하는 것으로 본시 청중이 산책을 하면서 혹은 선채로 음악을 듣던 음악회를 일컫는 단어이다. 무소르그스키는 그날의 전람회에서 가장 큰 인상을 받았던 10개의 작품을 골라 피아노 조곡을 만들었고, 프롬나드는 그 각각의 그림이 걸려있는 회랑을 거닐면서 그가 느꼈던 감동과 인상, 생각의 단상들을 차분히 풀어내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곡의 중간 중간에 삽입된 프롬나드는 무소르그스키의 곡을 이해하는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형식이며, 그의 생각의 단상들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편린들이다.

 

무소르그스키가 전람회에서 느꼈던 자신의 인상을 표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악기로 '강하게 혹은 약하게'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었던 “피아노포르테”를 선택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오늘날 “전람회의 그림”은 라벨의 관현악 편곡으로 더욱 더 알려져 있는데, 라벨은 임의로 프롬나드를 생략해버림으로써 원곡의 의미를 상당부분 훼손해 버린 것이 사실이다.

 

위대한 교주님이신 “Sviatoslav Richter" 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라벨을 무척 좋아하지만,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그가 오케스트라를 위헤 편곡한 것은 혐오스러운 일로 여긴다. 전람회의 그림은 러시아 피아노곡 가운데 가장 심오한 걸작이다. 라벨의 편곡은 허울만 근사하게 해서 이 걸작의 품격을 떨어뜨린 끔찍한 졸작이다.


1881년 2월 과도한 음주와 이로 인한 신경장애, 지속적인 발작으로 괴로워하던 무소르그스키는 42세의 나이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같은 해 “무고한 학살자” 알렉산드르 2세 역시 나로드니키(Narodniki:인민주의자라는 뜻으로 급진적 혁명세력)의 계파 “인민의 의지파”에서 던진 폭탄테러로 인해 사망했다.

 

 


신은 어떤 의미에선 공평하다. 가해자건 피해자건 결국 그의 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니까.

 

다만 “위대한” 황제 알렉산드르 2세는 헬싱키의 알렉산테린 거리에서 쓸쓸히 비를 맞고 서 있지만, (밑의 사진은 헬싱키 원로원 광장 앞의 알렉산드르 2세 동상)

 

 

"비참했던” 무소르그스키의 음악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항상 연주되고 감상되어진다는 것이다.


 

<전람회의 그림>의 피아노 연주반으로는 호로비츠와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 나의 선택은 당연히 리히터다. 호로비츠는 글쎄.. 술로 따지자면 김빠진 샴페인이라고 해야 할까.

분명 탁월한 기교와 영롱한 음색 모두 뛰어나지만 무언가 핵심적인 것이 빠져있는 기분이다. 그에 비해 리히터는 “영웅의 술” 브랜디를 떠올리면 딱이다.

 

앰브로스 비어스는 <악마의 사전>에서 브랜디를 천둥번개 1, 리무버 1, 피 튀기는 살인 2, 죽음,지옥,무덤 1.정제된 사탄 4 로 이루어진 강장제로써 1회 복용량은 “항상 머리가 깨어지도록”  새뮤얼 존슨 박사는 영웅의 술이라고 말했다. 영웅만이 감히 이것을 마시는 모험을 할 것이다 라고 평했다. 그러면 이해가 쉽겠지?

 

사랑하는 그대여!

김빠진 샴페인을 마실 것인가 아니면 영웅의 술 브랜디를 마실 것인가?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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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 2006-03-13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에 음악파일 올리면 저작권법에 저촉되는지 모르겠네요. 아니면 리히터의 전람회의 그림 올리려고 하는데... 저작권법에 대해 잘 아시는 분 있으시면 알려주시길..
 


LOST

떠나가는 사랑은 철학적으로 대단히 풍부한 시련이어서

이발사까지도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만든다.

Written by Emile Cioran


겨울 그리고 다시 봄, 이제 내 나이도 마냥 화창한 봄날을 즐길 수만은 없는 나이에 와 버렸다. 화사한 봄날 그리고 시들어가는 내 청춘! 누구도 함께 울어줄리 없는 작은 비극이라면 비극이랄까...

문득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란 곡이 떠올랐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 만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이별은 언제나 찾아온다. 이별은 봄이든 겨울이든 가리지 않고 화창한 날씨든 우중충한 날씨든 가리지 않는다. 언제나 불청객처럼 불쑥 찾아왔다 또 그처럼 불쑥 가버린다. 이별은 항상 그러하다. 플로베르처럼 퐁텐블로 숲에서 Adieu! 라 외치며 목소리에 눈물이라도 양껏 담아내야지만 이별의 슬픔이 더해질까...


화사한 봄날에 찝찔한 이별얘기라니 나의 구질구질함에 나도 지친다.

봄날에 징징대는 소리를 했던 나만큼이나 구질구질한 친구가 하나가 있다.

그 친구의 이름은 브람스(Brahms).

이 친구는 봄에 너무나 어울리는 이름을 갖고 있으면서도(Brahms란 이름은 bram에서 그 어원이 파생되었는데, 이는 북독일 방언으로써 금작화 덤불을 지칭한다고 한다. 금작화는 양골담초(scotch broom) 라고도 하는데, 4월이나 5월 즈음에 피어나는 황금색의 꽃이 아름다운 작은 관목이다.)


 


브람스가 내 나이 즈음일때, 그는 어머니를 잃었다. 그의 가족 중 그를 가장 잘 이해해주었으며, 누구보다도 그를 사랑했던 어머니가 그의 곁을 떠났다. 평생을 혼자 살아야만 했던 고독한 운명을 타고났던 브람스에게(브람의 꽃말은 박애(博愛)이다. 박애주의자치고 평생을 고독하게 살지 않은 사람이 있던가! 진정한 인류애를 발휘하려면 세속의 영욕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야만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 아니던가, 박애는 고독과 비통의 다른 말에 지나지 않는다.) 어머니의 죽음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는 자애로웠던 어머니를 애도하며, 초월자에게 어머니 영혼을 맡기는 진혼곡을 써야겠다고 결심한다.(Father, into your hands I commit my spirit:아버지여, 당신의 손에 제 영혼을 맡깁니다/LUKE 23:46) 아마도 브람스에게는 그의 영혼이 아닌 어머니의 영혼을 부탁하는 것이었겠지만 그의 심정은 비통어린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간구처럼 절실했으리라는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나또한 그러했을 것이니까.

 


브람스는 성경에서 그가 가장 좋아했고 영감을 얻었던 구절을 레퀴엠의 가사로 삼기로 결심한다. 음악칼럼니스트 박종호씨는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에서 독일 레퀴엠이 슈만의 죽음을 계기로 쓰여졌고, 그 완성에 10년이 걸렸다고 하셨지만 내 생각은 그와 다르다. 물론 정신적 스승이었던 슈만의 비참한 죽음은 브람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었고, 또 그의 죽음에 애통하며 슬픈 선율의 곡을 착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독일 레퀴엠은 어디까지나 어머니의 죽음이 결정적인 계기였고, 브람스는 단지 예전에 썼던 선율의 일부분만을 다시 떠올렸을 뿐이다.


어머니의 죽음이 결정적이라고 보는 내 생각은 브람스가 마르틴 루터의 독일어판 성경에서 따온 가사에 있다.


Selig sind, die da Leid tragen,

denn sie sollen getröstet werden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요


Ich will euch trösten,

wie einen seine Mutter tröstet.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과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이니


Selig sind die Toten,

die in dem Herrn sterben,

von nun an.

Ja der Geist spricht,

das sie ruhen von ihrer Arbeit;

denn ihre Werke folgen ihnen nach.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가 행한 일이 따름이니라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과 같이”라는 구절은, 비통에 빠진 그를 돌아가신 고인이 오히려 자신을 위로해 주기를 마다하지 않으려는 그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1868년 부활절을 앞둔 성 금요일인 어느 화사한 봄날, 브람스는 브레멘 교회의 단상에 올랐다.

그의 손에는 작은 지휘봉이 들려있었다.

독일 전역에서 그의 진혼곡을 듣기 위한 수많은 청중이 몰려들었다.

그 수많은 청중 안에는 “평생을 바라만 봐야했던 戀人” 클라라 슈만도 있었고, 그의 친지, 가족들도 와있었다.


그의 손안에서 어머니의 영혼을 맡기며, 그의 영혼을 위로하는 숭고한 기도가 시작되었다. 어머니의 죽음이후 3년만에 비로소 완성된 <독일 레퀴엠>이 거대한 위용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당시 브람스의 지휘로 연주된 독일 레퀴엠이 어떠했는가에 대해선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브람스의 친구 디트리히는 그날의 연주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한마디로 압도적이었습니다.”


공자는 어버이가 3년동안 품에 안고 길러주신 은혜를 갚기 위해서 3년喪을 치른다고 말했다. 물론 그 의미는 3년이란 기간이 지나야만 비로소 어버이를 잃은 슬픔에서 어느 정도 편안해지기 때문이리라. 브람스가 6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레퀴엠을 완성해 낸 것도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나 딱 3년만이었다.


Brahms!  내 영혼의 친구

난 음대의 근처도 가지 못했다. 심지어 음대 다니는 친구조차 없다. 난 브람스의 교향곡 총보 또한 읽어내지 못한다.

하지만 감동은 흉내낼 수 있어도, 정서는 흉내낼 수 없다라는 말을 난 믿는다.

진정한 친구란 함께 웃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울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오늘 난 독일 레퀴엠을 들으며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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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3-09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이 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보르헤스 2006-03-09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광석의 서른즈음에 노래 링크할려고 했는데... 저작권법에 저촉될까 두려워 못했답니다. 아쉽네요. 물만두님이 좋아하신다니 저두 좋네요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