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OST
떠나가는 사랑은 철학적으로 대단히 풍부한 시련이어서
이발사까지도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만든다.
Written by Emile Cioran
겨울 그리고 다시 봄, 이제 내 나이도 마냥 화창한 봄날을 즐길 수만은 없는 나이에 와 버렸다. 화사한 봄날 그리고 시들어가는 내 청춘! 누구도 함께 울어줄리 없는 작은 비극이라면 비극이랄까...
문득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란 곡이 떠올랐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 만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이별은 언제나 찾아온다. 이별은 봄이든 겨울이든 가리지 않고 화창한 날씨든 우중충한 날씨든 가리지 않는다. 언제나 불청객처럼 불쑥 찾아왔다 또 그처럼 불쑥 가버린다. 이별은 항상 그러하다. 플로베르처럼 퐁텐블로 숲에서 Adieu! 라 외치며 목소리에 눈물이라도 양껏 담아내야지만 이별의 슬픔이 더해질까...
화사한 봄날에 찝찔한 이별얘기라니 나의 구질구질함에 나도 지친다.
봄날에 징징대는 소리를 했던 나만큼이나 구질구질한 친구가 하나가 있다.
그 친구의 이름은 브람스(Brahms).
이 친구는 봄에 너무나 어울리는 이름을 갖고 있으면서도(Brahms란 이름은 bram에서 그 어원이 파생되었는데, 이는 북독일 방언으로써 금작화 덤불을 지칭한다고 한다. 금작화는 양골담초(scotch broom) 라고도 하는데, 4월이나 5월 즈음에 피어나는 황금색의 꽃이 아름다운 작은 관목이다.)

브람스가 내 나이 즈음일때, 그는 어머니를 잃었다. 그의 가족 중 그를 가장 잘 이해해주었으며, 누구보다도 그를 사랑했던 어머니가 그의 곁을 떠났다. 평생을 혼자 살아야만 했던 고독한 운명을 타고났던 브람스에게(브람의 꽃말은 박애(博愛)이다. 박애주의자치고 평생을 고독하게 살지 않은 사람이 있던가! 진정한 인류애를 발휘하려면 세속의 영욕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야만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 아니던가, 박애는 고독과 비통의 다른 말에 지나지 않는다.) 어머니의 죽음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는 자애로웠던 어머니를 애도하며, 초월자에게 어머니 영혼을 맡기는 진혼곡을 써야겠다고 결심한다.(Father, into your hands I commit my spirit:아버지여, 당신의 손에 제 영혼을 맡깁니다/LUKE 23:46) 아마도 브람스에게는 그의 영혼이 아닌 어머니의 영혼을 부탁하는 것이었겠지만 그의 심정은 비통어린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간구처럼 절실했으리라는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나또한 그러했을 것이니까.

브람스는 성경에서 그가 가장 좋아했고 영감을 얻었던 구절을 레퀴엠의 가사로 삼기로 결심한다. 음악칼럼니스트 박종호씨는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에서 독일 레퀴엠이 슈만의 죽음을 계기로 쓰여졌고, 그 완성에 10년이 걸렸다고 하셨지만 내 생각은 그와 다르다. 물론 정신적 스승이었던 슈만의 비참한 죽음은 브람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었고, 또 그의 죽음에 애통하며 슬픈 선율의 곡을 착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독일 레퀴엠은 어디까지나 어머니의 죽음이 결정적인 계기였고, 브람스는 단지 예전에 썼던 선율의 일부분만을 다시 떠올렸을 뿐이다.
어머니의 죽음이 결정적이라고 보는 내 생각은 브람스가 마르틴 루터의 독일어판 성경에서 따온 가사에 있다.
Selig sind, die da Leid tragen,
denn sie sollen getröstet werden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요
Ich will euch trösten,
wie einen seine Mutter tröstet.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과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이니
Selig sind die Toten,
die in dem Herrn sterben,
von nun an.
Ja der Geist spricht,
das sie ruhen von ihrer Arbeit;
denn ihre Werke folgen ihnen nach.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가 행한 일이 따름이니라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과 같이”라는 구절은, 비통에 빠진 그를 돌아가신 고인이 오히려 자신을 위로해 주기를 마다하지 않으려는 그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1868년 부활절을 앞둔 성 금요일인 어느 화사한 봄날, 브람스는 브레멘 교회의 단상에 올랐다.
그의 손에는 작은 지휘봉이 들려있었다.
독일 전역에서 그의 진혼곡을 듣기 위한 수많은 청중이 몰려들었다.
그 수많은 청중 안에는 “평생을 바라만 봐야했던 戀人” 클라라 슈만도 있었고, 그의 친지, 가족들도 와있었다.
그의 손안에서 어머니의 영혼을 맡기며, 그의 영혼을 위로하는 숭고한 기도가 시작되었다. 어머니의 죽음이후 3년만에 비로소 완성된 <독일 레퀴엠>이 거대한 위용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당시 브람스의 지휘로 연주된 독일 레퀴엠이 어떠했는가에 대해선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브람스의 친구 디트리히는 그날의 연주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한마디로 압도적이었습니다.”
공자는 어버이가 3년동안 품에 안고 길러주신 은혜를 갚기 위해서 3년喪을 치른다고 말했다. 물론 그 의미는 3년이란 기간이 지나야만 비로소 어버이를 잃은 슬픔에서 어느 정도 편안해지기 때문이리라. 브람스가 6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레퀴엠을 완성해 낸 것도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나 딱 3년만이었다.
Brahms! 내 영혼의 친구
난 음대의 근처도 가지 못했다. 심지어 음대 다니는 친구조차 없다. 난 브람스의 교향곡 총보 또한 읽어내지 못한다.
하지만 감동은 흉내낼 수 있어도, 정서는 흉내낼 수 없다라는 말을 난 믿는다.
진정한 친구란 함께 웃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울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오늘 난 독일 레퀴엠을 들으며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