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퍼온글] 키보드를 마우스처럼 쓰는 법

알아두면 편리한 자판 사용법 입니다.

1. 인터넷을 검색하다 앞화면으로 가고 싶다면, 마우스 대신 ◀━를 사용(back키).
-마우스로 뒤로가기... 이제 그만...

2. F1 = 인터넷 도움말.

3. F3 = 파일찾기.
찾고 싶은 파일...이제 쉽게 찾을 수 있음.

4. F4 = 주소창.
주소를 고를 때도 자판의 화살표를 이용하면 무척 편함.
아래로 위로 잘 골라서 엔터키를 치고, 이동하고 싶은 주소로 이동.

5. F5 = 새로고침.
검색하다 빨리 새로 고치고 싶을 때 마우스 필요 없음.

6. F6 = 주소창 블럭 설정.
이 기능은 주소창에 저장되어 있지 않는 새로운 주소로 이동 할때 사용하는데, F6키를 누르면 블럭이 설정되고 이때 Delete키를 치면 주소창이 지워짐.

7. F11 = 화면을 넓게 보고 싶을때 사용.
위, 아래에 메뉴창이 사라지면서 화면이 아주 넓어짐.

8. Ctrl + N = 현재 페이지가 하나 더 생김.
로그인까지 되어서....

9. Ctrl + W = 화면 순간 삭제.
야한거 보고 있을 때 갑자기 누가 오더라도 보던 페이지가 사라지니까 뭐했는지 절대 알 수 없음.

**Alt 키와 Ctrl키의 사용**

1. Alt 키 + 왼쪽/오른쪽 화살표 키.
웹 페이지의 앞,뒤 전환.
-바로 앞에 보았던 페이지나 다음 페이지로 쉽게 전환이 가능.

2. Ctrl'키 + R키.
지금보고 있는 페이지의 내용을 다시 읽어 줌.

3. Ctrl + D.
여러 홈페이지를 돌아다니다 마음에 드는 홈페이지가 있으면 북마크 (Book-mark) 기능을 사용하지만, 'Ctrl + D'키를 누르면 더욱 쉽게 해결됨.

4. Ctrl 키 + B 키
북마크를(즐겨찾기 편집창) 편집하거나 정리할 때 사용.
바로 북마크 폴더로 이동.

5. Ctrl 키 + N 키.
현재의 창을 그대로 나두고 또 하나의 새로운 창을 만들 때 사용.
- 파일을 다운 받거나 서버로 부터 응답이 늦어질 때, 이 단축키를 열어 다른 링크 사이트로 접근이 가능.

6. Alt 키 + F4 키.
현재 열려있는 창을 닫을 때 사용.

7. Ctrl 키 + O 키.
웹 사이트의 주소창만 띄워 새로운 사이트를 열려고 할때 사용.

위에서 설명한 것 중 많이 사용하는 것.
Alt + <- (왼쪽 화살표) ▶ 이전 페이지로
Alt + -> (오른쪽 화살표) ▶ 다음 페이지로
Alt + F4 ▶ 열려있는 창 닫기(Ctrl + W 와 비슷)
Ctrl + R ▶ 문서 다시 읽어 들임
Ctrl + B ▶ 북마크(즐겨기 편집창) 폴더로 이동
Ctrl + D ▶ 북마크에 추가
Ctrl + N ▶ 새로운 창 생김
Ctrl + O ▶ 새로운 주소 입력창 열기

▷마우스 볼과 같은 기능◁
↑ ↓ 키는 볼을 굴리지 않아도 현재창을 위, 아래로 쉽게 움직일 수 있음.

 

 

마우스 고장시 키보드를 마우스처럼 사용하는 방법

 

키보드를 이용해서도 마우스 포인터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평상시 마우스와 동시에 쓸 수도 있지만, 마우스가 고장나서 작동하지 않을 때는 정말 유용하게 쓸 수 있겠죠? 윈도우의 마우스키 기능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 마우스키 설정 방법 ★

평상시 마우스를 이용해 설정해 두면 쉽게 되지만, 미리 설정해두지 않고 마우스가 작동 불능 상태가 된 경우 키보드를 이용해 설정하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Tip]아래 각 항목의 이동요령은 방향키와 엔터로 창을 열고, 열려진 윈도우창 내에서 필요한 아이콘으로 이동하는 방법은 Tab키를 몇 번 눌러 어느 아이콘 이름에 점선이 생기면 방향키로 해당아이콘으로 이동하고 엔터를 하면 열립니다.

1. 키보드의 윈도우키를 눌러 [시작] -> [설정] -> [제어판] -> '내게 필요한 옵션' 열기
2. '내게 필요한 옵션' 창에서 Tab키를 몇 번 눌러 위의 '키보드'탶에 점선이 생기도록 한 후 오른쪽 방향키로 마우스탶으로 이동 -> 다시 Tab키를 눌러 '마우스키 사용'이라는 아래 체크옵션 글씨항목에 점선이 생기도록함 ->여기서 '스페이스바키'를 한 번 눌러 '마우스키 사용'옆 □에 ∨표시가 되도록 함 ->다시 Tab키를 눌러 '확인'으로 이동 후 엔터하여 설정

이렇게 하면 화면 오른쪽 하단 작업표시줄[트레이]부분에 마우스 모양이 생기고 지금부터 키보드
오른쪽 숫자패드를 눌러 마우스 포인터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포인터의 상하좌우 대각선 이동은 1,2,3,4,6,7,8,9키
클릭하려면 숫자키 5
더블클릭은 +키
드래그는 0키를 한 번 누른 후 숫자패드 방향키로 이동
(드래그를 끝내려면 Del키를 누름)


만약, 마우스키가 작동하지 않으면 키보드 오른쪽 위에 있는 NumLock키를 눌러 램프에 불이 들어온 상태에서 작동해 보세요.

 

원문보기 : http://blog.daum.net/oldkp/9444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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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얼굴에 독을 발라라
오자와 다카하루 지음, 홍성민 옮김 / 미토스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난 남자지만 화장품에 꽤 관심이 많은 편이다. 이건 후천적으로 길러진 것인데, 근 6년간을 사귀어온 여자친구가 유난히 민감한 피부를 가지고 있어, 대충 아무거나 찍어바르면 바로 탈이 나버리는 체질의 소유자 이기 때문이다.

아무거나 찍어발라도 아무 이상이 없던 나아무거나 찍어바르면 뒤집어지는 여잘 만나 자연스레 천연화장품이나 천연비누등 자연 화장품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나게 되었고, 아무거나 찍어바르면 바로 탈이 버리는 여자친구의 피부가 유달리 특이한 것이 아니라 아주 뛰어난 경보체계를 갖추고 있다(?)라는 생각으로 천연덕스럽게 바뀌고 말았다.

왠 화장품에 그렇게나 유해한 성분이 많이 들어 있는 것인지...

주방세제로 설겆이를 끝내고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한다는 강박같은 것을 갖고 있던 "깔끔떨던 나"는 그동안 주방세제(화장품에 들어있는 계면활성제는 주방세제의 성분과 같다)를 얼굴에 줄곧 애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건강한 피부막을 강제로 뜯어내고 거기에 고무 라텍스같은 인조피막을 입히는 것이 이른바 명품화장품이 정체였던 것이었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는 하지만 이와 같은 사실을 뒤늦게 책으로 접하고 보니 집안에 있는 모든 화장품들이 때 아닌 전쟁통을 만나 난리가 났다. 조금이라도 오래된 것은 쓰레기 통으로 직행노선을 탔고, 로션이나 크림들은 구두 닦이용으로 전락해버렸다.

그동안 별 관심도 두지 않던 여자친구의 가내 수공업품인 천연 오이 스킨이 아직도 있냐고 넌지시 물어보는 단계에 까지 이르고 말았으니까... 때로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약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高價를 자랑하는 명품 화장품들이 실제로는 그 만큼의 가치를 지니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쓸데없는 소비를 줄이게 되었다는 것 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하겠다.

다만 저자가 일본인이다 보니 일본제품에 대한 성분조사와 소개만이 집중되어 있어서 아쉬웠다.(DHC! 너마저 ㅠㅠ 그동안 얼마나 애용해왔었는데...) 게다가 좋은 화장품이라는 것이 합성 계면 활성제가 안 들어간 것이라는 건 알겠는데 도대체 어떤 제품을 써야하는지에 대한 예시가 부족한 것이 흠이다.

모든 화장품을 일일히 다 손으로 만들 수는 없지 않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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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8집 - State Of The Art
신화 노래 / 스톤뮤직엔터테인먼트(Stone Music Ent.)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디지털 디스크라는 이름으로 신화가 다시 돌아왔다.

나는 신화의 음악보다는  디지털 디스크라는 새로운 매체(?)에  더 관심이 많았다.

1982년 소니와 필립스에 의해 compact disc라는 이름으로 CD가 발매된 이후 음반시장에 획기적인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LP에 비해 생산과정에서 음질의 열화가 적고, 자신이 원하는 곡을 맘대로 취사선택해서 들을 수 있게 되었으며, 또한 LP에 비해 가벼웠으며 단단했다. 콘크리트 벽에 집어던져도 깨지지 않았다 ^^

LP의 크고 아름다우며 때로는 장엄하기까지 했던 멋진 자켓은 사라져  버렸지만, 대신 휴대성이 더욱 용이해졌고, 시시때때로 LP의 표면에 뭍은 먼지를 털어내기 위해 "안경 닦는 천"으로 닦아내야만 했던 수고도 없어졌다. 그렇게 CD는 LP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최근 MP3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음원에 대한 손쉬운 copy가 가능해지면서 음반시장이 침체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소리바다를 비롯한 p2p서비스 업체에 대한 음악저작권단체의 무더기 소송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의 새로운 매체였던 CD가 등장하면서부터 기존의 LP시장을 획기적으로 변모시키고 기술이 수요를 이끌어 내었던 1990년대 초반과는 달리 MP3라는 새로운 매체는 수요를 전혀 이끌어 내지 못한 것이다. 음원에 대한 손쉬운 확보와 카피가 음원을 돈을 주고 구입해야 한다는 소비자의 패러다임 자체를 변화시켜 버린 것이다. 이제 아무도 음원을 돈을 주고 "굳이" 구입하려 하지 않게 되버렸다.

디지털 디스크의 외양은 일단 MP3와 유사하다. 가볍고 휴대가 용이하다는 점에서는 칭찬 받아 마땅 하지만 투박한 플라스틱으로 된 외양은 왠지 촌스럽다라는 이미지를 떨쳐버릴 수 없었다. 게다가 이어폰을 따로 갖고 다녀야 하며 건전지도 사서 넣어야 한다. 이쯤되면 디지털 디스크가 기존의 MP3를 대신할 수 없다라는 결론이 쉽게 도출된다. 디지털 디스크는 MP3 플레이어를 대신할 만한 매력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가볍고 휴대가 용이하지만 그건 MP3 플레이어도 이미 갖고 있는 장점이다. 게다가 MP3는 우주왕복선 "컬럼비아 호"처럼 반복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디지털 디스크는?

아마도 디지털 디스크가 기존의 MP3 플레이어나 CD 시장을 위협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여진다.

신화의 8집에 대해서는...

휴! 신화가 1998년 데뷔한 이래로 8년이 지났지만, 그들의 음악에는 변화를 찾아볼 수 없다.

음악이 만약 예술이라고 가정한다면 거기엔 예술 혼이라는 것이 존재할 것이다. 뛰어난 장인의 손에는 환타지가 있다라는 말 처럼 음악에도 환타지가 있어야 한다. 대중가요나 Classic 음악이든 음악에는 그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있어야 하며 혼이 들어 있어야 한다. 아이돌 그룹에게 예술 혼 까지 요구한다는 것은 지나친 요구일 수도 있으나, 8년이 지난 지금 그들에게 사회에 대한, 혹은 개인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사색을 요구하는 것이 과연 지나친 요구일 수 있을까?

음반이 아닌 사진집같은 컨셉! 그들은 진정으로 음악이란 예술을 하고 있나?

그나마 별3개라도 준 것은 리뷰어로 선정되어 받은 것이기에 차마 인륜을 거스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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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빛나면서 가장 약한 것이 둘 있다.

하나는 도자기요.

또 다른 하나는 여자의 얼굴이다.

Written by Jonathan Swift


새삼 마츠시마 나나코와 타키자와 히데야키의 뒤늦은 드라마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건 오늘의 이야기이고 또 내일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신문 사회면에서 나는 잔인하고도 치졸한 악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경악하고 말았다.

마치 할머니가 머리맡에서 들려주시곤 하던 아이를 삶아 먹는 무시무시한 “새 엄마”이야기 같은 거 말이다.


부모가 이혼한 뒤 새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던 세 살 바기 아기가 뇌사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진단결과 극심한 빈혈에 영양실조... 거기다 아동학대와 아동방임까지도 의심된다는 얘기였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아이를 솥에 넣어 삶아 먹어버리는 마녀로 만들어 버리는 걸까?


1486년에 두 명의 이단 심문관이 지은 “마녀의 망치(Malleus maleficarum)"에 묘사되는 마녀는 이러했다.


마녀들은 배우자가 깨지 않게 신경 쓰면서 몰래 침대를 빠져 나온다. 회합장소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 마녀들은 걸어서 가지만 멀리 사는 이들은 연고를 몸에 발라 동물로 변해 날아가거나, 아니면 빗자루나 울타리 조각을 타고 날아간다. 보통 열 명 내지 스무 명 정도의 마녀가 집회에 참가하는데, 이 집회는 나중에 사바트(Sabbat)라 불리게 된다. 의식은 신참 마녀가 집단의 비밀을 지킬 것을 서약하고 아이를 죽여 그 육신을 다음 집회에 가져올 것을 약속하면서 시작된다. 이 초심자는 기독교 신앙을 부정하고 십자가나 성체에 모욕을 가하게 된다. 이어서 마녀들은 악마 자신 혹은 그 현현물의 성기나 등에 키스해서 숭배의 마음을 나타낸다. 이와 같은 입문의례가 끝이 나면 마녀들은 악마에게 희생으로 바칠 어린 아이를 끌고 와 그 지방(脂肪)으로 하늘을 나는 데 필요한 연고를 만들거나 독약을 만든다. 그들은 성체 성사를 신성 모독적으로 흉내 내어 어린아이의 피와 살을 갈라 먹는다.


독일의 문호 괴테의 파우스트에도 이런 마녀들을 쉽사리 찾아 볼 수 있는데, 파우스트의 더러운 욕망과 탐욕을 부추기고자 마법의 비약을 건네주는 늙은 마녀와 파우스트와의 애정에 눈이 멀어 어머니를 죽이고 자신이 낳은 아기를 차디찬 강물 속에 내던져버리는 잔혹한 마녀로 전락하고만 순결의 처녀 마르가르테를 들 수 있겠다.


마르가르테는 결국 어머니와 아기를 죽인 죄로 사형을 선고 받고, 감옥에 갇혀 있는데 그런 마르가르테에게 한 때의 연인 파우스트가 찾아오자 그녀는 절망에 찬 절규를 부르짖는다.


왜 그러세요? 이젠 키스도 못 하세요?

잠시 떨어져 있는 동안에, 벌써 키스도 잊으셨나요?

당신 목에 매달려 있는데, 왜 이렇게 불안할까요?

전에는 당신의 말과 눈길에서,

하늘 전체가 포근하게 나를 덮쳐왔는데, 그리고 숨이 막히도록 키스해 주셨는데...

키스해주세요! 제발. 그렇지 않으면 제가 하겠어요!

당신의 입술은 이미 차디차 버렸군요. 벙어리가 되셨나요?

당신의 애정은 어디로 가버렸나요?

누가 나에게서 빼앗아 갔죠?


수필가 유달영 선생은 마녀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천사와 선녀가 젊은 여자로 그려지는 동시에 늙은 마녀가 전설 속에 많이 나오는 것은 동서(東西)가 일반이다.

왜 늙은 여자가 마녀로 변할까?

모든 사랑을 상실한 늙은 여자의 반발일 것이다.

여자는 사랑에 주리면 마귀(魔鬼)가 된다.


‘여자에게 있어 사랑은 생애의 역사이다. 하지만 남자에게 있어 사랑은 삽화에 불과하다.’라는 스탈부인의 말이 진리라고 가정한다면, 마녀는 어쩌면 마신의 사랑을 간구하고 독점하기 위해서 그의 곁에서 함께 악을 자행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분명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는 마녀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 마녀의 그림자에서 그녀로 하여금 잔혹한 악을 서슴스레 자행하게 만드는 魔神의 존재도 분명히 느낄 수 있을 터이다. 사람들은 뇌사 상태에 빠진 아기를 동정하며, 새어머니를 규탄할 것이 분명할 터이고, 또 그녀를 마녀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그림자 뒤에는 함께 악을 자행하고 방조한 친 아버지 또한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그녀는 어쩌면 마녀일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뒤에는 잔혹무비한 마신의 모습을 한 친아버지가 있었음을 우린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추잡하고 더러운 욕망으로 얼룩진 마신들이 거리를 활보한다. 여기에는 인간의 존재가 유한한 반면에 인간의 욕망은 영속적이라는 데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악의에 찬 더러운 욕망들이 마신들과 마녀들을 마구 양산해 내고 있는데도 난 어찌할 도리가 없기에 더욱 화가 난다.


유난히 청승스레 내리는 비를 맞으며, 나는 오늘 무척이나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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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벚꽃지다/ Malo 3집"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결국 세계는 한권의 아름다운 책에 이르기 위하여 만들어 진 것처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세계는 한 장의 아름다운 음반에 이르기 위해 창조된 것이다.”라는 말도 그리 지나친 언사는 아니라고 본다.


비록 첼리비다케의 말(레코드를 듣는 것은 브리지트 바르도의 그림을 들고 잠자리에 드는 것과 같다.)을 빌리지 않더라도 음악을 듣는데 있어서 직접 연주회장이나 공연장을 찾는 것 이상의 것은 없지만, 감상자의 입장에서 자신이 듣고 싶을 때 언제든지 들을 수 있고 혹은 각자의 경험과 결합되어 멋진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음반의 매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주 급할땐 바로 현금화 할 수 있다는 매력도 무시 못한다. ) 또한 창작자의 입장에서 음반은 자신의 음악적 창조물의 기록일 뿐 아니라 존재의 영원성을 획득할 수 있는 보물과도 같다.


근래에 소규모 재즈클럽이나 대학로, 혹은 여러 Jazz Festival을 통해 국내 재즈 연주자의 공연은 그리 적지 않은 편이지만, 국내 재즈 연주자의 음반은 정말 찾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희귀한 편이다. 음반 매장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인터넷 음반 사이트에서도 Korean Jazz는 검색목록에 조차 포함되어 있지 않다.


국내 연주자의 음반이 매우 희귀한 현상에는 국내 재즈계의 일천한 역사와 문화저변으로 인한 것이 크지만, 재즈 아티스트들과 비평과 평론을 담당하는 이른바 “업계”의 게으름도 크게 한 몫 한 결과라 하겠다. 국내 서점 그 어디에도 한국 재즈에 관한 단 한권의 책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에서 그들이 단지 국내의 일천한 재즈 저변만을 탓할 것이 아니라는 현실을 극명히 보여준다. 문화적 상품이 지속적으로 소비되기 위해서는 그 선호를 계속 유지하고, 확대되어 질 수 있는 깊이 있는 정보와 이론이 뒷받침 되어야만 하지만 국내의 재즈 “업계”는 이를 매우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한국의 재즈 저변이 동호회나 클럽을 통해서 조금씩 확대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바로 국내 재즈의 관심으로 이어질지 의문시 되는 점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시장에서 소비자의 구매의사결정에는 그 제품에 대한 깊이 있는 정보와 평가가 필수적인데 반해 국내 재즈업계에서는 아주 기초적인 탐색 정보마저 제공하고 있지 않으니, 음반이 팔리려야 팔릴 수가 없는 것이다.


더 말해봐야 갑갑하기 때문에... 각설하고

 




<피아노가 된 나무/ 임인건>


1988년 재즈 클럽 야누스에서 재즈 피아니스트로서 본격적인 재즈 연주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임인건이 무려 12년이라는 긴 세월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솔로 음반을 하나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현실은 갑갑한 우리 재즈의 현주소를 바로 볼 수 있게 해준다.


존 듀이는 <경험으로서의 예술>에서 ‘작가는 자아와 대상사이의 온전하고 생생한 경험을 통해 예술을 표현하며, 관객은 작가의 창조물을 통해 예술적 열정, 에너지를 함께 교감함으로써 예술을 비로소 구현해 낸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작가와 관객이 동일한 문화권에 동일한 언어, 동일한 체험을 공유하고 있다면 보다 깊이 있는 이해가 더욱 쉽지 않을까?


임인건 자신이 우리의 국토를 여행하면서 얻은 악상으로 작곡된 곡으로 가득한 이번 음반은 아름다운 선율과 맑고 순수한 서정성을 무기로 일단 대중과의 교감의 부분에 있어서는 분명 성공한 듯싶다. 하지만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한 강요된(?)선택으로 인해 Jazz 도 New Age도 아닌 다소 어정쩡한 위치에 이 음반을 놓이게 하고 말았다.


난 그의 이번 음반 중 “별 보는 밤”을 유난히 좋아하는 데, 한 밤 가만히 누워 그가 짚어내는 음들을 따라가다 보면, 알퐁스 도데의 “별”의 마지막 구절이 절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따금 이런 생각이 내 머리를 스치곤 했다. 저 수 많은 별들 중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별 하나가 그만 길을 잃고 헤매다가 지친 나머지, 내 어깨에 고이 잠들어 있노라고...”

 





Afterhours에서 500매 한정으로 판매되어 어렵게 구한 앨범에는


이사야 서 6장 9절 말씀이 이렇게 쓰여 있었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볼 테면 보란 듯이  버젓이 이런 구절을 써놓았다면 어떤 생각이 들어야 할까?

난 순간 이렇게 느꼈다.


“이런 XXX할 발칙한 년, 놈들을 봤나!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 이거냐? 아예 입 쳐 닫고 듣기만 하라는 거야? 뭐야!”


내 경험상 Free Jazz라는 것은 많이 안다고 해서 좋아지는 것이 절대 아니었다. 그저 딱 듣는 순간에 Feel이 딱 꽂히면 그걸로 된 것이지 괜히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솔직히 이 음반 자체도 그렇게 복잡한 형식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괜히 형이상학적인 뭔가가 있으려니 하고 집중해서 듣다보면 결국엔 지쳐 나가떨어지기 일쑤이다.


강태환(alto saxophone), 미연(piano), 박재천(percussion) 이 세 사람의 트리오는 무악보에 아무런 사전 약속 없이 즉흥연주만으로 50분이라는 길다면 상당히 길 수 있는 시간을 때워(?)나가고 있는데, 오랜 시간동안 서로 호흡을 맞추어가며 갈고 닦은 유기적인 인터플레이와 다양한 연주기법을 갖추지 못했다면 시도조차 힘든 일임은 분명한 사실이라 하겠다.


무악보, 무약속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즉흥연주는 공연장이나 당시 관객의 몰입도와 분위기, 연주자의 감성에 따라 직관적으로 이루어지는 예측 불가능한 것이기에 당시의 연주가 어떠했다라고 말하는 것은 연주자 자신도 확언하기 힘든 일이다. 바로 거기에 프리재즈의 매력이 존재하는 것이지만, 굳이 형언할 수 없는 어떤 것을 굳이 설명해 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주위에 있다면 노자의 도덕경의 한 구절을 살며시 읊어주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며, 이름 지을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 사실 나도 뭔 소린지 몰러 )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당신에게 설명을 바라며 귀찮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헤라클리토스의 유명한 명제를 다시한번 읊어주는 거다.  (너무나 사악한 나 흐흐)


“우리는 동일한 강물에 몸을 두 번 적실 수 없다.”

프리재즈를 듣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보다도 실험성이니 전위성이니 하는 프리재즈에 붙여진 기괴한 선입견을 과감히 떼고서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들어보는 거다. 그럼 그 안에 담겨진 무한한 소리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音樂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음을 즐기는 것이 아니었던가!

 




 

한국일보 신문에 그녀의 기사를 보았다. 기사의 전문을 잠시 실어보자면...


왜 딴따라 음악을 하느냐?” 피아니스트 송영주(32)가 재즈에 안착하기까지는 녹록하지 않았다. 정통 클래식을 전공했으니 거기 안착할 것이라는 부모의 기대를 보기 좋게 배반한 대가라면 대가다.


숙명여대 음대를 졸업한 뒤 본격 재즈 공부를 위해 유학 가는 데 골몰해 있던 딸을 보다 못 한 어머니는 그렇게 쏘아 붙였다. 2003년 맨해튼음대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까지 온 어머니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당시 출연 중이던 클럽 포스터스(Poster’s)에까지 모친을 데려 갔던 게 실수였다.


“네 음악이 술집 음악이냐? 이럴 줄 알았으면 유학 안 보냈을 거다.” 지청구를 듣다 못 한 그는 “재즈도 클래식처럼 자기 문화가 있다”며 버텼다.


이것이 한국 재즈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가장 서글픈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Turning Point라는 타이틀 곡명이 더욱 비장하게 와 닿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음반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곡을 하나 찾아보라면,

Prayer In the Day's End를 들 수 있는데 오랫동안 CCM계의 반주자로서 유명했던 그녀의 진가가 잘 드러난 작품으로 평가하고 싶다. 가스펠적 요소가 잘 담겨있는 곡으로 평온하면서도 아늑한 멜로디의 진행과, 조용하면서도 섬세한 피아노 터치가 더할 나이 없이 감미롭다. 하루의 끝을 마감하며 소소한 일상에 감사하는 그녀의 기도는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끔 해준다.


근래에 발매된 한국 재즈의 경향을 가만히 살펴보면, 곽윤찬, 임인건, 송영주, 여진, Malo에 이르기까지 자작곡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데, 그건 한국 재즈가 나름대로의 자생력을 서서히 갖추어 나가고 있다는 긍정적인 변화로 보고 싶다. 어차피 흑인 특유의 리듬감, 스윙감, 임프로바이제이션을 따라갈 수 없다면, 우리만의 정서를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음악적 언어인 작곡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유러피언 재즈가 그들이 쌓아온 광대한 클래식적 전통에서 그들이 나아가야할 바른 방향성을 정립했다면, 우리의 올바른 방향성은 바로 우리만의 정서에 충실한 작곡에 있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닐 듯싶다.

 



<벚꽃지다/ Malo>


순수한 Jazz 음반으로 평가하기에는 다소 미흡한 것도 사실이지만, Jazz 다, Jazz가 아니다를 떠나 이번 음반은 “정말로” 많은 매력이 담겨져 있다. 한국의 토속적 정서를 잘 표현한 선율과 멜로디, 정말 깊게 생각하고 쓴 시적인 가사들(요즘 가요를 보면 마치 “발”로 쓴 듯 한 가사가 너무 넘치는데 제발 좀 생각 좀 하고 가사 쓰자 응? 특히 월드컵 가수 미나랑 동방신기들아)


‘벚꽃지다’의 가사를 실어본다.

 

꽃잎 떨어지네 햇살 속으로

한세상 음 지네 슬픔 날리네

눈부신 날들 가네 잠시 머물다 가네

꽃그늘 아래 맑은 웃음들 모두 어디로 갔나


바람 손잡고 꽃잎 날리네

오지 못할 날들이 가네

바람길 따라 꽃잎 날리네

눈부신 슬픔들이 지네

언제였던가. 꽃피던 날이

한나절 음 웃다 고개 들어 보니

눈부신 꽃잎 날려 잠시 빛나다 지네

꽃보다 아름다운 얼굴들 모두 어디로 갔나



바람 손잡고 꽃잎 날리네

오지 못할 날들이 가네

바람길따가 꽃잎 날리네

눈부신 슬픔들이 지네

 

그녀의 2집 앨범 Time For Truth가 발매되지도 못하고 사장되었다는 점에서 그녀가 이른 바 “대중성”이란 요소를 마냥 무시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겠지만, 그녀의 이런 “대중성” 시도는 최소한 나에게만은 매우 성공적인 듯싶다.

 




우리나라의 악기교육이 몇몇 소수의 악기(피아노, 현악기)에 편중되어 있는 터라 고전음악부문에 있어서도 바그너, 브루크너, 말러 등 Brass band의 역할이 두드러져야 하는 후기 낭만파 음악의 연주에는 다소 쥐약인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Jazz에 있어서도 Piano Trio음반이 유난히 많이 발매되고 있는 실정이다. 화끈하면서도 광폭한 열정이 느껴지는 브라스 밴드만으로 이루어진 한국 JAZZ 음반을 과연 언제쯤 들을 수 있을 것인지...


그런 의미에서 임달균 퀸텟의 이번 음반은 무지 반갑다.

Trumpet과 Saxophone을 전면에 앞세운 이번 편성은 금관악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나로서는 쌍수 들고 반길 일임에는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임달균 퀸텟의 이번 음반도 자작곡 비율이 상당히 높은데, 그 중에서 Letter From Busan 이란 곡은 임달균이 연주차 부산에 내려갔을 때 얻은 영감으로 쓰인 곡으로 아마도 그가 느낀 부산은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고 활달한 젊은이의 모습이었나 보다. 내가 느낀 부산은 그가 느낀 부산과는 조금 달랐는데 말이다.


임달균과 데런 베넷의 2관의 멜로디 라인과 베이스, 드럼, 피아노의 리듬 섹션이 멋들어지게 맞물려 들어가면서 화끈하고도 열정적인 비밥 특유의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동안 한국 재즈음반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정통 재즈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만족할 만한 음반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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