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항복하다
데이비드 베너 지음, 김성환 옮김 / IVP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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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여유가 생길 일은 잘 없지만,
여유가 생기면 읽으려고 가지고 다니는 얇은 책.
분주한 마음으로 읽게 되는 것 같아서 좀 아쉽지만..

의탁이나 순종이 어려울 때 우리는 보통 그것이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것을 드리려고‘ 계속해서 노력한다. 매번 더욱 굳은 결심과 열정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진정한 순종이 명령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사랑에 먼저 의탁하고 사랑의 의무로 순종하는 것이라는 점을 보지 못한다.
궁극적으로 의탁과 순종의 문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에 관한 문제다. 그러므로 그것은 마음의 문제이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중략) 사랑에 의탁하는 것은 절대로 한 번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중략) 의탁하라는 요구를 계속 듣는다고 해서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로마서 공부할 때 머리로 깨달았던 ‘사랑해서 순종한다‘는 말. 2010년, 아이들을 통해 마음으로 조금이나마 깨달았던 그 말. 그럼에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여전히 사랑해서 순종하는 길이 참 멀게만 느껴진다.
내가 나 자신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유난히 강조하는 ‘책임‘이 떠올랐다.
책임이라는 말과 순종, 충성, 절제라는 덕목들을 일치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 성경에 책임이라는 말은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더더군다나 내가 사용하는 용어로는. 성령의 열매 같은 그런 덕목으로도 책임의 종류는 잘 보이지 않는다. - 꼭 같은 덕목은 아니라는 데 생각이 미쳤고, 그 밑바탕에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사랑 없는 책임‘만 강조하고 있는 건 아닌지도 생각해 보게 된다.
아이들에게 어떤 덕목을 가르쳐야 하는지 다시 생각한다.

#사랑에항복하다

2013.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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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퍼의 시편 이해 - 성경 속의 기도책
디이트리히 본회퍼 지음, 최진경 옮김 / 홍성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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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이해 #본회퍼 #홍성사 #한권으로꿰뚫는시편

두 번 날리고 쓰는 글이다.ㅠㅠ
요즘 글쓰기가 쉽지 않은데 많이 힘드네..ㅠㅠ

‘한 권으로 꿰뚫는 시편‘책에서 각주로 달았던 책이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샀다가 한참 지나서 읽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시편을 힘들어하는데, 한창 시를 배우던 나이에도 시를 힘들어했다. 좋아하는 시도 있지만, 해석이 너무 힘들게 여겨졌다.

이 책은 크기가 스마트폰보다 조금 더 크고 110쪽밖에 되지 않는 얇은 책이다. 하루 만에 읽기에 부담 없을 양이지만 요즘 들어 책 읽기가 버거운 나는 3일에 걸쳐 읽었다. 뒤에 20여 쪽은 본회퍼가 살던 시대 배경이 기술되어 있다. 본회퍼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서 살았다. 그때 당시 신학자로 칼바르트도 있었는데(칼바르트는 신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알고 있음), 본회퍼와 칼바르트의 신앙 노선이 비슷한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이 책을 읽다가 칼바르트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을 시대 배경을 읽으며 알 수 있었다.

본회퍼는 먼저 기도에 대한 관점을 다룬다. 이것은 본회퍼가 시편을 기도책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인데, 시편을 기도책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던 나는 좀 신선했다. 본회퍼가 말하는 기도는 대화의 측면이 부각되고 있는데, 대화이기에 스스로 기도할 수 없으며, 기도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시편이 기도책이기에 시편으로 기도할 수 있다고 하며, 주기도문의 내용이 시편에 다 담겨 있다고 한다. 시편으로 기도하고 싶다면, 그 시편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냐고 묻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고 했다. 이 부분이 마음에 많이 와닿았는데, 말씀을 읽으면서 ‘나와 이 말씀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만 너무 초점을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기도는 우리의 가난한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부요함으로 채워져야 한다고 말하는 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간구가 기도의 주요 내용을 차지하는 부분이 많은데 과연 하나님이 중심이 된 기도일까, 하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또, 본회퍼는 우리가 ‘예수님과 연합‘되었고 ‘예수님이 함께하심‘을 책 전체에서 얘기하고 있는데, 예수님과 연합된 자라면 예수님이 늘 기도하셨기에 기도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예수님과 연합된 자가 맞나.. 고민하게 되는 시점이다.
이후에는 시편을 개괄적으로 살펴보며 시편의 주제를 설명하는 것으로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어쨌든, 이 책을 통해 시편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된 것 같고, 조금이나마 시편을 개괄적으로 이해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어떤 의미인지 깊이 생각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7.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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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서의 숨결 새롭게 읽는 성서의 숨결 시리즈 1
우택주 지음 / 침례신학대학교출판부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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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서의 숨결](우택주, 침례신학대학교 출판부)

김기현 목사님 (피드에서) 추천으로 읽은 책이다. 아마 요나서 묵상하면서 갈피를 못 잡아서 샀던 것 같다.

요나서 강해설교집이다. 총 일곱 편의 설교로 구성되어 있다. 다섯 편은 성경 본문과 관련하여, 두 편은 생명신학과 요나서의 패러디에 대해 적고 있다. 요나서의 패러디는 따로 쓰지 않으셔도 괜찮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앞부분을 읽으면서 충분히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책은 [언어의 직공이 되라]였다. 히브리어 특유의 언어유희를 요나서에서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그래, 히브리인들이 안 쓸 리 없지.
유대인을 위한 복음서이지만 지극히 반유대적인 마태복음이 생각나기도 했다. 요나서를 1차로 읽는 사람도 유대인일 텐데, 이토록 신앙적인 이방인과 비신앙적인 유대인을 잘 대조한 책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1장에서 나타난 이방인들은 요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그렇게 애를 쓴다. 4장에서는 하나님이 요나에게 니느웨를 구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실 때,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12만여 명이라 아끼지 않을 수가 없다고 하실 만큼이나 니느웨 사람들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신다. 그런데 정작 요나는! 자신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다(1장에서도, 4장에서도. 어떤 점에서는 (아닌 것 같지만) 인클루지오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선민의식이 넘쳐 흐르는 사람인데 이토록 자신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 수가 있나. 자신의 생명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을 택했고, 니느웨 사람들 생명은 자신의 안중에 없었다. 아밋대(진리)의 아들이었지만, 신학만 존재할 뿐 삶은 없었다. ‘실천적인 신학과 신학적 실천이 균형을‘([이것이 복음이다], 288쪽) 이루지 못했다.
‘이 세계의 변화를 위해서 제일 먼저 개혁되어야 할 대상자 일 번은 바로 신앙지성인 요나로 상징되는 교회의 지도자들이다. 지도자들이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53쪽) [이것이 복음이다]로 독서모임 할 때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교회의 역할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교회 지도자라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다. 독서모임한 직후여서 그런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우리의 신앙은 날마다 새로워져야 한다.

‘과거의 경험에 근거한 신학은 하나님의 행동까지 재단하고 그 한계를 설정하려고 한다. 과거의 경험이 신앙인의 하나님 이해를 촉진시키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 이해의 전부일 수는 없다. 그러므로 과거와 전통은 하나님 이해의 시작과 밑거름일 뿐, 현재와 미래에 경험할 하나님의 모습을 제어하는 잣대로 사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77쪽)

‘신앙은 매일의 삶입니다.‘([이것이 복음이다], 3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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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복음이다](feat. 책가방 8기)

📚소감
라은성 목사님 책은 이번이 두 번째다. 첫번째 책은 [이것이 개혁신앙이다]인데, 겁나 두꺼운 책이다. 이 책 읽으면서 그때 읽었던 느낌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이 책은 설교집 같은 느낌도 있다. 각 시대별로 한 명씩 선택해서 18세기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교회사의 답을 청교도에서 찾은 저자의 생각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다. 뒤에 익힘문제가 있어 책의 내용을 한 번 더 되짚어볼 수 있게 하는 구성도 괜찮았던 것 같다.
책가방 8기의 주제는 ‘역사‘다. 나는 교회사를 선택했고, (우리 교회 전도사님의 추천을 받아) 이 책을 추천했다. 교회사를 알고 싶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목적 그대로, 교회사를 배우고 싶었다. 현재에도 과거처럼 교회의 역사가 똑같이 되풀이되고 있을 테니.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원하는 내용은 아니었다. 나는 사건을 중심으로 교회사를 알고 싶었는데, 이 책은 사람을 중심으로 전개가 된다. 속사도 교부 중 폴리캅, 이레니우스, 루터, 칼빈, 조나단 에드워즈 등등 한 번쯤 들어본 인물도 있고, 처음 듣는 인물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공부하듯 읽었던 것 같다.

📚독서모임+하지 못한 이야기

독서모임 시즌8이다. 이쯤 되면 굳이 책 내용을 파는 독서모임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책을 못 읽고 오신 분들도 있으셨고. 발제는 특별히 준비하지 않았다. 발제 두 가지만 해도 시간이 오버되기 일쑤여서, 이번에도 두 가지 발제를 해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으나 결론적으로는 하나만 가지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이미 시즌8까지 오신 분들이라, 특별한(?) 진행 방향이 없어도 술술 잘 이야기하시기 때문이다. 너무 준비를 안 했나. 아, 이 이야기를 자세히 쓰는 것은 내가 추천한 책이어서 내가 진행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할 말을 반도 안 했다.ㅋㅋㅋㅋㅋㅋㅋ 내 할 말은 여기서 적어보는 것으로. 시간 관계상 아마 다들 할 말을 삼키시지 않았을까.

📌발제: 신앙의 색깔을 가지고 있나요?(신앙이란 무엇인가요?)
신앙생활과 종교생활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며 물꼬를 틀어주신 소현학사님께 감사. 신자들이 자기 자신에게 속아 넘어갈 수 있는 장치(종교생활)를 교회가 제공하고 있는 것 같다며, 교회는 신앙이 좋을 수밖에 없는 대본을 가지고 있다는 말에 공감했다. 사실상 교회 내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신앙생활이 아니라 종교생활 아닌가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하려면 교회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교회의 역할에 대한 질문이 필연적으로 나오게 된다.
교회의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복음을 제시하는 것보다 교회에 적응을 돕는 데 치중하는 교회의 시스템. 독서모임에서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전에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야기 중에 장로고시를 치게 되면서 목사님과 공부하던 장로님이 신앙생활 수십 년 했지만 그제야 복음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요즘 안 믿는 분들이랑 성경읽기 모임하면서 내가 설명을 올려드리곤 하는데, 설명을 적으면서 내가 성경에 얼마나 무지했었나를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 성경을 숲의 관점에서 보게 되기도 하고, 여러 모로 내게 유익이 되고 있다. 이 모임을 통해서 성경을 더 조망하게 될 수 있었다고 해야 할까. 해석은 목회자에게 검증을 받아야 한다 하더라도, 성경을 탐구하는 시간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에서 이런 모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목사님 설교 나눔도 좋지만 말이다.
교회의 역할은 자연히 교회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다. 그렇다면 목회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목회자의 역할‘ 하면 나는 항상 아빠가 해주신 말씀이 생각난다. ˝목회자는 세 가지 준비를 항상 하고 있어야 한다. 설교 준비, 짐 쌀 준비, 죽을 준비.˝ 처음에는 목회자의 자질이랄까, 신앙적 고민에 대한 이해와 공감, 가르침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신앙적 고민을 손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교회 여건이면 좋지만, 그렇지 않은 교회도 많을 것 같다. 목사님이 물어보셔도 교회 밖 사람들에게 더 많이 마음을 열지, 일주일에 한 번 보는 관계에서 경계를 풀기란 쉽지 않고 말이다. 교회의 역할이 교회 지도자의 역할로 옮겨가는 것을 보니, 이 책이 왜 신자의 역사처럼, 사도행전을 뒤잇는 역사처럼 쓰였는지 이해가 되었다. 왜 교회 지도자의 역사처럼 쓰였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러면서 얼마나 목회자를 위한 기도에 소홀했던가를 생각했다.

‘이 책에서 마음에 남는 사람은 누구인가요?‘라는 발제도 생각했었는데, 다루지는 못했다. 나는 특별히 마음에 남는 사람은 없었지만, 루터 이전에 그 암흑의 시기에도 하나님이 남기신 사람이 있어서 진리를 알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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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모략 - 50쇄 기념 달라스 윌라드 하나님의 모략 시리즈 1
달라스 윌라드 지음, 윤종석 옮김 / 복있는사람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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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교육회 독서모임이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책을 다 못 읽고 독서모임에 참여했다. 11월 중순까지 벌인 일 수습하느라, 11월 큰 업무 진행하느라 책을 계속 못 읽었더니 이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 달, 이번 달 이렇게 책 못 읽으려고 8, 9월달에 책을 몰아 읽었나 싶을 정도.

<서평>

1. [하나님의 모략] vs.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이 책과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의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문 88.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유익을 전하시려고 나타내시는 보통 방법이 무엇인가?

답,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유익을 전하시려고 나타내시는 보통 방법은 그의 규례인데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와 기도이다. 이것이 모두 그 택하신 자에게 효력이되어 구원을 얻게 한다.(마태복음 28:19-20, 사도행전 2:41-42)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을 찾아오시는 방법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중략)
(1) 그분은 피조 세계를 통해 우리에게 오신다. (2) 그분은 인간 역사 속에서의 공적인 행동을 통해 우리에게 오신다. (3) 그분은 개인적 체험을 통해 우리에게 오신다.(495쪽)

개인적으로는 번호가 붙은 부분을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로 보았다. 뒷부분 설명도 비슷하다. 그런데 이렇게 방법적인 부분에서 인간의 이해에 차이가 나는 까닭이 뭘까? 이런 이해에 차이가 있는 것은, 인간이 무지하다는 방증 아닐까.

2. 인간의 의지와 결단
개인적으로 인간의 의지와 결단에 관심이 많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도하지 않으면 결심만 하지만, 기도하면 순종할 수 있다.˝는 한 목사님 말씀이 떠올랐다. 결심과 순종에는 차이가 있다. 의지가 있고 결단을 하더라도, 결심에는 행함이 없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러나 결단이란 어디까지나 우리가 내려야 하는 것이다.‘(453쪽)라고 하며 인간의 의지에 우호적 시선을 보낸다. 나는 이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첫 번째는, 인간의 의지는 항상 악한 방향으로 향하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결단이 곧 행함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에서는 ‘의지‘가 없기에 행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의지는 신념이 만들어내는 것이며, 신념대로 행동하고 있기에 행동으로 신념을 알 수 있다고. 즉, 내가 가지고 있다고 믿는 신념과 실제 나의 신념은 다를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는 동의. 하지만 신념과 의지가 타락했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선한 것을 선택할 수 없다고 믿는 나로서는, ‘결단을 내가 내린다면 선한 결단이 가능한가? 그 결단이 어떻게 의지로 이어지는가?‘가 궁금해지는 것이다. 또 궁금한 점은, 믿음과 순종 사이의 단절은, 어째서 의지의 문제가 아닌 걸까?(480쪽)

3. 학문적 접근
학문적으로 접근해서인지 이 책이 썩 와닿았던 것은 아니었다. 의지와 결단의 부분에서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고, 공부하고 있는 부분과 충돌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통합될 여지가 있는 건지 궁금하다.

<독서모임>

1. Doing vs. Being
좀처럼 변하지 않는 내 모습을 보면서,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의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의 태도와 행동을 보면서 많이 낙담했었다는 것을 알았다. 소현학사님 말처럼, 인간의 행동에는 소망이 없다. 꽤 오랫동안 묵상과 기도를 쉬면서, 잊고 있었다. ‘행동은 구원의 열매인 건데, 나아지기는 하는 걸까? 나는 구원 받은 사람이 맞는 걸까?‘ 생각하면서 하나님보다 행동에 무게중심을 두었다. 하나님을 보지 않고, 사람을 보았다. 초점을 다른 곳에 두고 있으니, 자기의에 빠져 있었다. 하나님이 필요한 죄인임을 잊었다. 묵상과 기도를 다시 회복해야 함을 서서히 깨닫고 있다.
˝내가 하는 것을 보면 소망이 없고, 내가 하나님 안에서 되어지는 것을 보는 것에 소망이 있다.˝

2. 아쉬움
월드컵으로 살짝 일찍 마쳐서 아쉽긴 했는데, 이 공간 아니면 어디서 이런 이야기할 수 있나 싶어 아쉬운 마음을 접는다. 우리 교회에도 이런 모임 있으면 좋겠는데, 다들 바쁘시니 말 꺼내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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