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서의 숨결 새롭게 읽는 성서의 숨결 시리즈 1
우택주 지음 / 침례신학대학교출판부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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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서의 숨결](우택주, 침례신학대학교 출판부)

김기현 목사님 (피드에서) 추천으로 읽은 책이다. 아마 요나서 묵상하면서 갈피를 못 잡아서 샀던 것 같다.

요나서 강해설교집이다. 총 일곱 편의 설교로 구성되어 있다. 다섯 편은 성경 본문과 관련하여, 두 편은 생명신학과 요나서의 패러디에 대해 적고 있다. 요나서의 패러디는 따로 쓰지 않으셔도 괜찮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앞부분을 읽으면서 충분히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책은 [언어의 직공이 되라]였다. 히브리어 특유의 언어유희를 요나서에서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그래, 히브리인들이 안 쓸 리 없지.
유대인을 위한 복음서이지만 지극히 반유대적인 마태복음이 생각나기도 했다. 요나서를 1차로 읽는 사람도 유대인일 텐데, 이토록 신앙적인 이방인과 비신앙적인 유대인을 잘 대조한 책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1장에서 나타난 이방인들은 요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그렇게 애를 쓴다. 4장에서는 하나님이 요나에게 니느웨를 구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실 때,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12만여 명이라 아끼지 않을 수가 없다고 하실 만큼이나 니느웨 사람들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신다. 그런데 정작 요나는! 자신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다(1장에서도, 4장에서도. 어떤 점에서는 (아닌 것 같지만) 인클루지오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선민의식이 넘쳐 흐르는 사람인데 이토록 자신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 수가 있나. 자신의 생명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을 택했고, 니느웨 사람들 생명은 자신의 안중에 없었다. 아밋대(진리)의 아들이었지만, 신학만 존재할 뿐 삶은 없었다. ‘실천적인 신학과 신학적 실천이 균형을‘([이것이 복음이다], 288쪽) 이루지 못했다.
‘이 세계의 변화를 위해서 제일 먼저 개혁되어야 할 대상자 일 번은 바로 신앙지성인 요나로 상징되는 교회의 지도자들이다. 지도자들이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53쪽) [이것이 복음이다]로 독서모임 할 때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교회의 역할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교회 지도자라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다. 독서모임한 직후여서 그런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우리의 신앙은 날마다 새로워져야 한다.

‘과거의 경험에 근거한 신학은 하나님의 행동까지 재단하고 그 한계를 설정하려고 한다. 과거의 경험이 신앙인의 하나님 이해를 촉진시키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 이해의 전부일 수는 없다. 그러므로 과거와 전통은 하나님 이해의 시작과 밑거름일 뿐, 현재와 미래에 경험할 하나님의 모습을 제어하는 잣대로 사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77쪽)

‘신앙은 매일의 삶입니다.‘([이것이 복음이다], 3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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