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 그림책 수업 - 쉽게 따라하는 열두 달 학급운영 길라잡이
생각네트워크 지음 / 비비투(VIVI2)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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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은 부담이다]

[달달 그림책 수업]을 읽고 있다. 생각 네트워크 지음이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 대표 선생님이 내가 작은책(비 전공자의 반주법 백과사전)쓸 때 교정을 봐준 선생님이다.-이 선생님이 쓴 작은 책도 부크크에 있다. 그리고 고질독에서 함께 독서토론하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나랑 동갑인데, 초등교사의 전문성을 잘 보여주는 선생님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그림책보다 동화책이나 소설을 더 좋아한다. 소설도 단편보다 장편을 더 좋아하고. 그런데 아이들에게 소개하거나 얘기해주려면 그림책이나 짧은 동화책부터 시작해야 하니 자기부인(?)을 해야 한다.
그림책이 왜 부담인지 생각해 봤더니 그림 때문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그림(미술)에 (안 좋은) 결정적 경험이 있고, 그림을 보고 감상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 희한하게도 조소 전공 신랑을 만나 그림 감상법을 (매우) 초큼 알게 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그림에 머무는 순간이 곤욕스럽다. 순간에 머무는 연습은 그림책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잘 나가는(?) 초등 선생님을 볼 때마다 아이디어가 기발하다는 생각을 한다. 고질독에서 칭찬샤워를 받을 때, 내가 직업을 잘못 선택했다는 우스개 소리를 들었는데, 최근까지도 그런 생각을 했던 터라 속으로 뜨끔했다. 내가 잘하는 분야는 아이들과 안 맞는 것 같아서. 잘하고 싶다는 욕심을 놔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15년 해도 아직 잘 모르겠다는 생각에 답답해진다. 교대 다닐 때 ‘후세대 선교회(지금의 GT)‘에서 걸어놓은 현수막, ‘하나님은 당신을 교사로 부르셨습니다‘ 생각하면, 그리고 기독교사대회에서 확신(?)받던 순간을 생각하면 교사로 부르셨지, 생각하다가도, 아이들에게나 나에게나 불만족스러운 나날들을 생각하면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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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똥누기 - 마음을 와락 쏟아 내는 아이들 글쓰기 살아있는 교육 43
이영근 지음 / 보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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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지도하는 것보다 우선인 것은 아이들 마음을 아는 일이다. 글똥누기가 발전할 수 있는 것은 삶을 가꾸어 나가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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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글쓰기 - 뉴베리상 수상 작가가 들려주는 글쓰기 비법 30가지
카슨 레빈 지음, 김연수 옮김, 백지원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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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글쓰기](게일 카슨 레빈/김연수 옮김, 김영사)

아마도 권일한선생님 책 목록에서 본 거 같다. 몇 달 전에 ‘교원역량강화도서‘를 구입한다고 해서 신청한 책이다. (권일한선생님 책 소개를 제대로 안 읽었나?) 읽고 보니 초등 고학년에게 적합한 책이었다. 하지만 소장 가치가 있는 책이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 글을 쓰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은 꼭 소장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번역도 잘 옮겼다고 생각한다.
글쓴이의 입담도 뛰어났지만(‘초록곰팡이악어눈깔국‘(184쪽)이 제일 웃겼다. 약간의 욕에는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그러니 입 닥쳐, 이 시끄러운 놈아!˝(24쪽)), 30가지 글쓰기 기술들이 다 좋았다. 중간 중간 ‘글쓰는 시간‘이라는 코너도 좋았다. 거기 나오는 예시들을 어떻게 다 생각해낼 수 있을까? 작가의 머릿속은 정말 기상천외하다.
제일 통쾌한 부분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다른 사람이 알아보지 못하는 캐릭터로 만들라는 내용이었다. 내가 지독한 우울감에 빠져 있던 시절에 일기로 감정을 드러내지 말고 캐릭터로 만들어버릴걸, 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랬으면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좀 날아가지 않았을까? 혼자서 킬킬거리면서.

‘이 세상에 완벽한 책이나 완벽한 이야기 같은 건 없다!‘(116쪽)

여러분을 살찌우는 글을 쓰세요.
여러분이 누구인지 말하는 글을 쓰세요.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말해 주는 글을 쓰세요.
세상에는 아직도 쓸 이야기가 정말로 많답니다.
그 이야기를 써 주세요.
즐글! 모든 글은 꼭 저장하세요.(219쪽)

글쓰기에 용기를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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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쓰기의 감각 - 삶의 감각을 깨우는 글쓰기 수업
앤 라모트 지음, 최재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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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의 감각](앤 라모트/최재경 옮김, 웅진 지식하우스)

작년 초에 읽다가 다시 이어 읽은 책이다. 앞 내용이 기억이 날 듯 말 듯 했다. 밑줄 그은 부분을 중심으로 다시 읽으면서 서평을 쓴다.
이 책을 권일한선생님 책 목록에서 봤는지, 최현아작가님 추천 도서 목록에서 봤는지 기억이 안 난다. 어쩌다 구입했더라? 책을 한 권 쓰고 보니, 글쓰기를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 걸까. 올해는 어찌 된 일인지 글쓰기에 대한 책을 계속 읽고 있다.
이 책은 글쓴이가 수업하는 형태로 서술되고 있다. 글쓰기의 기술도 적혀 있지만, 기술이 다가 아니다. 글쓴이의 삶, 존재 의미가 글 속에 녹아 있다. 권일한선생님이 왜 추천하셨는지 알 것도 같다. 다만, 한 가지 주제 안에 여러가지 비유적인 글과 글쓴이의 삶이 적혀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읽는 데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 건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이 책이 오랫동안 안 읽혔던 이유인 듯하다.
최현아작가님이 인용한 구절은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당신만의 브로콜리가 필요하다.‘(184쪽)이다. 그 브로콜리가 뭔가 했더니 ‘당신의 브로콜리가 하는 말을 들어보라.‘(189쪽)는 거였다. 이유인즉, ‘아마도 브로콜리는 올바른 방향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189쪽)‘나. 나만의 브로콜리는 무엇일까? 내 할 말이 너무 많아서(속에 담고 있는 말이 많아서) 브로콜리의 말 따위는 들을 생각 안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브로콜리가 아는 올바른 방향에는 관심 두지도 않고.

˝왜 우리가 그런 문들을 모조리 다 열어야 하죠? 왜 꼭 우리 자신의 목소리로만 진실을 말해야 하는 거죠?˝
그러면 나는 잠시 동안 그들을 응시한다.
˝그게 우리 본성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니까요.˝(297쪽)

브로콜리의 말은 본성의 목소리를 의미하는 것일까? ‘당신의 분노와 피해와 슬픔이 바로 진실에 이르는 길이다.‘(300쪽) 본성은 분노와 피해와 슬픔에서 드러남을 이렇게 표현한 거 같다. 그 ‘진실에 이르는 길‘ 때문에 ‘기독교 신자에서 시인으로 개종‘(340쪽)하는 사람이 생기는 거 같기도 하다. ‘그는 거기서 더 큰 영혼의 안식을 얻었다.‘(340쪽) 기독교가 하나의 종교인 이상, 영혼의 안식을 다른 곳에서 얻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는 왜 글을 써야 하는 거죠?˝
나의 대답은 이것이다. 바로 영혼 때문이라고. 마음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346쪽)

렉티오 디비나를 안 좋게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이렇게 읽고 보니 렉티오 디비나와 글쓰기는 연결되어 있는 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나님이 보실 때,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잘 모르겠다. 분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분별하려는 것이 분별의 대상인 건지도 헷갈린다.

글을 잘 쓰시는 분들의 공통점을 생각한 적이 있다. 자연을 사랑하고 관심이 많다. 자연을 벗하면서 살아서인지, (내게 없는) 특유의 감성이 있다. 나는, 도시의 삭막함 속에서,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면서 현실을 살지 못한 거 같다. 늘 무언가에 쫓기듯 살았던 거 같다. 후에 시골에 살게 되었을 때는, 이미 도시의 메마름에 길들여진 이후였다. ‘나는 이것이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실을 살 것, 그리고 감탄할 것.‘(169쪽)이라는 글을 다시 읽을 때, ‘도시에서 살면서 현실을 살 수 있나? 감탄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의 추억이라고는 인위적으로 만든 물질문명뿐이니, 메마른 감정은 어쩌면 당연한 걸까. 도시인에게도 감성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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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로 산다는 것 - 학교교육의 진실과 불복종 교육
조너선 코졸 지음, 김명신 옮김, 이계삼 해제 / 양철북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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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로 산다는 것](조너선 코졸/이계삼 해제/김명신 옮김, 양철북) 179쪽(누적 2449쪽)

성서교육회 독서모임 4기 첫 번째 책이다. (권일한선생님 픽으로) 내가 선택한 책이기도 하다. 책을 선택한 사람이 발제를 해야 했다. 내가 발제한 내용은 1.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시오. 2.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챕터는 어디인가요? 3. 우리나라 초등학교 현장에서는 이 책의 내용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였다. 이번 서평은 내 발제에 맞추어서 적어본다.
‘교육은 정치다.‘라고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글쓴이는 매우 정치적인(?!) 인물이었다. 솔직히 나는 정치에 별 관심이 없다. 어느 정당을 지지하지도 않는다. 정치꾼들은 이권만 챙기는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사람, 국가가 그렇듯이. 포스트모던이 우리 삶 속에 강하게 뿌리내린 이후로 더욱 자신들의 이권만 챙기기 바빠졌다는 생각이 든다(그냥 내 생각이다.).
교사는 정치와 종교에 중립을 지키라고 했던가. 그게 얼마나 멍청한 말인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매우 잘 알겠다. 과연 중립이라는 게 존재하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중립도 또 하나의 관점이라는 생각이다. 여기서 말하는 중립이 진보와 보수 둘 다 편드는 게 아니라는 말이라면 말이다. 어쨌든 이 책은 매우 진보적인 책이다. 같이 독서모임하는 선생님 중 한 분이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전교조 가입 필독 도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라고 요약했을 정도이니.

교사는 ˝자, 네가 조금만 양보하면 분위기가 좀 더 좋아질 거야˝라는 식으로 솔직히 말하지 않고, 제3의 입장이 양 극단의 입장보다 더 진실하다-˝중도에 가까울수록 진실하다˝-는 절대적인 암시를 준다.(34쪽)

독서모임에서는 사실 ‘중립‘, ‘중도‘의 의미가 혼용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교사에게는 귀에 박히도록 들어온 말이 ‘중립‘이라는 말이어서인지 오히려 ‘중립‘에 객관적이지 못하다고 해야 할까. 생각이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중립‘의 길에 서야 할(서도 좋을?) 것이 있고, ‘중립‘의 길에 설 수 없는 것이 있는데 혼재할 수 없는 그 둘이 섞여버린 그런 느낌이었다. 교사는 ‘중재‘해야 할 때가 많은데, 그 때문에 더욱 혼란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중재‘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니까, 갈등은 꼭 해소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한쪽 편에 서는 게 불안하게 여겨지는 것은 아닐지. (우리나라처럼) 정답으로 교사가 된 사람들에게 둘 다 인정하는 것은 모순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어서 가운데라고 생각하는 지점에 안주하고자 하는 걸까.- 실제로 뒤에서 이계삼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교사들이 중립적인 척, 객관적인 척하면서 드러내는 완곡한 표현들은 인내와 절제의 상징이 아니라 문젯거리를 만들지 않고 그저 무난하게 이 상황을 넘어가려는, 무기력과 안일의 적극적인 표현일 뿐이다.‘(172쪽)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생각은 더 엉켰다. ‘모든 것에 대안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전혀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도 있다.‘(43쪽) 정답을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마음에 담기 어려운 말이다.
위에서 언급한 두 구절은 ‘‘중도‘는 진실하고 ‘양 극단‘은 불온하다?‘라는 세 번째 챕터에서 인용했다. 그 챕터가 가장 마음에 와닿았더랬다. 중도에 대해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어 좋았다.
사람이 멍청하게 되는 데에는 국가의 교육과정도 한몫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의 업적 가운데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그녀가 죽을 때까지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투쟁했다는 사실이다.‘(59쪽) 누구의 이야기일까? 헬렌 켈러다. 이 문장만 봐서 그녀라고 생각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국가의 입맛에 맞는 책을 선택한다. 그 입맛에 길들여진 사람을 멍청하다고 표현했다. 누군가의 말처럼, ‘개돼지‘가 되는 셈이다.-뒤에 나오는 이계삼선생님의 해제를 인용한다. ‘지배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유형, ‘낮은 사고력과 높은 애국심의 아이들‘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복잡한 전략회의가 필요하지 않다고 조너선 코졸은 지적한다. 그저 학교에 십수 년간 붙잡아놓고, 공부로써 경쟁시켜 놓으면 십수 년 뒤에는 그들의 기대대로 ‘낮은 사고력과 쓸데없는 애국심‘으로 치장한, 절대로 지배자에 맞서 단결하지 않는 이기적인 존재가 만들어져 나오는 것이다.‘(170쪽) 내가 읽어왔던 위인전은 위인들의 좋은 점만 부각했고, 교과서에서도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런 부분까지 따지기에는, 내 정치적 수준이 아쉽다. 전체를 보는 통찰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말하지만, 진보 정당(도 아닌 것 같지만)의 관점으로 사안을 바라보고 싶지는 않다. ‘내가 아는 아주 정치적인 교사들은 학교에서 뚜렷한 이념을 펼칠 준비와 각오가 되어 있지만, 불행하게도 진정한 경쟁을 이끌어 내지 못하고 외려 다른 견해에 대해 경멸적이고 공격적이고 불관용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급진적인 견해만을 강요하는 우를 범한다.‘(133쪽) 어느 쪽 편도 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던 건, 양쪽 모두 타 관점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공격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글쓴이도 진보 쪽의 입장에서만 서술하고 있어서 ‘모든 교사를 ‘진보적‘으로 만들겠다는 건가?‘라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꼭 그런 의도로 쓴 책은 아닌 것 같았다. 어쨌든, 학교에서 길러진 아이들이 사회와 국가를 만들어간다. 국가가 자신의 입맛대로 선정하는 건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 책의 내용을 우리나라 초등학교 현장에 적용한다면? 내가 발제했지만 너무 어려운 질문이었다. 스스로에게 적용하기도 어려웠다. 나는 고작 학생들의 ‘아니오‘를 받아들이겠다고 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아직도 어렵다. 교사로서 십수 년 동안 ‘아니오‘를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하루 아침에 될 수는 없을 거다(그렇다고 이 책의 모든 부분에 동의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그에 앞서, 왜 그렇게 교육하고 싶은지도 더 생각해보아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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