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현실 너머 편 (반양장) - 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 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2
채사장 지음 / 한빛비즈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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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세상살이를 헤쳐가기 위해서는 타인과의 원만한 관계를 이어가야 하는데,그 촉진제가 경청과 설득이라는 대화의 기술이 아닐까 한다.너무 많이 알아서 상대방에게 위압감과 권위의식을 안겨 주는 언동보다는 편안하게 대화의 수수작용을 통해 소통의 장이 유익함으로 번져 간다면 이것 또한 상생의 묘미가 아닐런지.그래서 평소 자신의 전문 분야는 물론이고 모든 영역에 걸쳐 넓은 안목과 시각으로 많은 간접 경험을 해 놓을 필요가 있다.21세기는 지식을 바탕으로 한 소프트 웨어 시대의 한 가운데에 있기에 언제 어느 곳에서든 자신이 배양해 온 지식과 경험,교양물들을 필요할 때마다 마중물로 퍼 올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책읽기를 일관성과 지속성을 갖고 하지 못한 점을 늘 만시지탄으로 생각하는 한편 내가 책읽는 모습과 책읽는 소리를 듣는 내 자식들에게 먼 훗날 문화인으로 발전해 나가주기를 아버지로서 기대를 하고 있다.책을 읽고 간단한 정리 및 주관적 생각과 논리가 담긴 서평,나아가 손색없는 책 만들기까지 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뇌가 말랑말랑하고 감수성과 기억력이 오래가는 어린 시절에 다방면에 걸친 독서 이력을  갖춰 놓는 것이 좋은 이유는 가깝게는 글쓰기의 힘,논리력,소통의 힘을 배양시키면서 뿌리 깊은 교양인으로 혼탁한 세상을 밝게 비춰줄 수 있기 때문이다.나이가 들어가면서 뇌 신경세포가 사멸해 가지만 책을 읽고 생각하고 정리하며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뇌신경은 젊은이 못지 않은 견고하고 왕성한 지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채사장 저자가 쓴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두 번째 이야기는 현실 너머의 얘기를 다루고 있다.첫 번째 이야기도 신선한 지적 자극과 공감을 얻게 되었는데,이번 도서에서 이야기하는 철학,과학,예술,종교,신비와 같은 다소 추상적이지만 인간의 정신적 내면 세계를 강화하면서 삶의 진리란 무엇인가를 죽음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느끼고 깨닫는 시간을 갖게 해 준다.다섯 가지 파트의 주요 핵심 내용을 들려 주는 가운데,절대주의,상대주의,회의주의를 일관성 있게 구조화했다는 점이 특색이다.예를 들어 철학 파트에서 절대주의 흐름은 플라톤,교부 철학,합리론을 내세우고,상대주의의 흐름은 아리스토텔레스,스콜라철학,경험론을 내세우고 있다.끝으로 회의주의적 견해로는 소피스트,니체,실존주의 철학을 안내하고 있다.그 외 과학,예술,종교,신비에 이르기까지 개개인은 우주의 주인공으로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되,환경과 개인의 경험이 다르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대화와 소통의 장에서 역지사지하려는 자세와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어떠한 사물,분야를 놓고 볼 때 절대적인 것,상대적인 것,회의적인 것을 염두에 두고 사유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세상에는 절대적인 것이 있을 수도 있고,상대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 것도 있으며,(대부분의 것들) 회의주의적인 입장에서 관조해야 하는 것들이 부지기수다.진리라는 영역에서 보자면 원시시대엔 자연신,고대에는 신화,중세에는 유일신,근.현대에는 이성의 힘으로 변천하고 있다.물론 이것은 시대의 이념과 상(像)을 단면적으로 보여 주는 좋은 예다.학문의 위계는 수학에 철학,물리학이라는 단조로운 학문 영역에서 경영,경제,심리,의학에 이르기까지 현대 학문 영역은 매우 세밀하고 다양화하고 있다.탈산업화에 따라 돈과 물질의 풍요함에 급급한 나머지 인간의 가치의 회복과 사람들 간의 관계 회복이 빅 이슈로 대두되고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섯 가지 파트(철학,과학,예술,종교,신비)가 어울릴 듯 말 듯하지만 시대별로 놓고 보자면 다섯 가지 파트는 인류의 문명과 함께 줄곧 이어져 오고 있는 셈이다.현실 너머의 학문으로 치부하여 실용성의 유무를 따질 수도 있겠으나,개인의 삶의 방향과 의미를 다루는 문제이니 만큼 평소 이 분야에 대한 배경지식을 차곡차곡 쌓아 놓으면 즐겁고 유익한 대화와 소통의 장이 펼쳐지리라 기대해 본다.나 역시 이러한 분야에 대해 꾸준히 읽고 정리하면서 내 삶의 방향과 의미부여를 위해 힘써 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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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숙한 사람들의 사회 - 그들은 왜 세상 모든 게 버거운 어른이 되었나
미하엘 빈터호프 지음, 송소민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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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심신 피로,지속적 신경과민,수면장애,무기력증,창의력 상실,신경질,권태,능률 저하,부정적 사고,의욕 상실,면역력 저하,건망증,우울증,의기소침,압박에 시달리는 느낌,끊임없이 생각이 꼬리를 무는 상태,좌절감······. p7

 

 현대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상기와 같은 증상을 겪지 않은 사람은 극히 드물 것으로 보인다.그 원인이야 여러가지이겠지만 내부적인 것보다는 외부적인 환경 요인에 의한 것이 지배적인 것으로 사료된다.비근한 예로 일과 가정 사이에서 1인 다역을 해야 한다든지 성과를 내기 위해 휴식도 반납하고 마감 시간에 쫓기는 등 심신을 쇠약케 하는 주변의 환경이 현대인의 삶을 고달프게 만드는 이유가 아닐런지.게다가 내가 살고 상대를 죽여야 하는 치열한 경쟁 사회의 테두리 속에서 이상적인 인간관계는 때론 비현실적인 언어 유희에 다름 아니다는 것을 체감한다.

 

 현대사회는 1%의 계층이 99%의 계층을 지배.착취하는 사회구조를 형성하고 있다.안정되고 풍요로운 두터운 중산층은 이미 사라지고 전형적인 피라미드 구조의 사회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색이다.극히 소수 계층이 대다수 계층을 지배.착취하는 사회구조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울타리가 쳐져 있으니 힘없는 다수 계층은 바람직하지 못한 사회구조,사회계층에 대한 분노와 저항이 생길 수 밖에 없는 법이다.그래서 부의 분배,복지사회를 향한 실천적 정책이 더욱 시급한 현실이다.알바,일용직,계약직으로 죽어라 일해도 정규직에 있는 계층의 수입을 못따라 가는 '신자유주의'의 신화는 언제 무너질지,사회구성원들이 피부로 느끼는 상생의 시대는 그저 요원할 뿐이다.

 

 사회는 성과위주의 '창조 생산성'을 요구하고 있다.달성하기도 어려운 목표치를 연초에 짜서 상부에 보고하면 매달 목표 대비 결과치를 보고해야 한다.목표 대비 결과치가 시원치 않으면 별별 소리를 다 들어가면서 스스로 과도한 요구에 맞추려 다짐을 반복한다.인간의 몸과 마음은 리듬이있어 일할 때는 일을 하고 쉴 때는 쉬어야 창조 생산성이니 성과니 하는 말들이 현실감 있게 들릴 텐데, 시도 때도 없이 무리한 요구를 들어 주어야 하고,5분 대기조마냥 상시 연략 가능하게 자신의 위치가 노출되어야 한다.이러한 까닭에 언제 지친 심신을 릴렉스하고 힐링을 찾으러 마음 편하게 어디론가 떠날 수 있단 말인가.늘 분주하고 1인 다역을 해야 하고 일터와 가사(家事)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해야 하는 현실은 어쩌면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덫에 걸려 허우적거리고 있는 미성숙한 어른들의 소이는 아닐런지.

 

 지위 고하,경제적 능력의 고하 등을 막론하고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재충전해야 일과 가정,인간관계가 좀 더 원활하게 흘러간다.누군가 버튼 조작에 의해 기계가 움직이는 것처럼 현대인의 삶도 무표정하고 비인간적인 기계와 같이 작동되어 가는 것은 아닌지.몸은 어른이되 시시각각 결정해야 할 사안에 대해 주저하기를 수도 없이 하고,경륜과 지혜로 똘똘 뭉쳐 후세에게 사표가 되는 어른이 부족한 시대가 바로 오늘날 어른들의 모습은 아닐런지.정신적 내면을 채우기보다 겉모습과 이미지 관리에만 급급하는 극히 형식과 체면을 존중하려드는 어른들의 자화상은 바로 뒤를 따라오는 인생 후배들에게 되물림하고 만다.게다가 과정보다는 결과치를 두고 개개인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하고 평가해 버리는 사회풍조로 말미암아 남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을 매우 불안하고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워한다.이렇게 성과,생산성을 놓고 몸과 마음이 지질대로 지치게 되면 결국 '번아웃(Burn out)'하여 풀썩 주저앉기 마련이다.

 

 미하엘 빈터호프 저자는 정신과 의사이자 청소년 심리치료 분야의 권위자로 저자를 찾아 온 '신경쇠약자'로 진단하는 자들의 사례를 집중 분석.해설하고 있다.신경쇠약자들의 공통점으로 인식되는 점은 신자유주의 시대가 잉태한 '과도한 요구'가 현대인들의 삶과 심신에 다양한 증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사람은 일할 때와 쉴 때를 인식하고 구분해야 한다.무리한 요구에 어쩔 수 없이 따르기 보다는 시스템의 비합리적 오류와 부당함을 수정해서라도 어른이 어른답게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는 시의적절하게 다가온다.돈과 물질이 중요하겠지만 자신을 보살피지 못해 발생하는 각종 신체적 증상과 질병 앞에서는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또한 거르지 않는 수많은 스펨성 메일,불필요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눈과 뇌가 피로해질대로 피로해진 상태다.기술혁명,디지털 혁명 모두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문명의 이기(利器)임에 틀림없다.다만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정선되지 않은 정보들을 제한하는 법을 스스로 찾아나서야 한다.디지털 기기 문명을 떨쳐 버리고 단 며칠만이라도 대자연의 숨결을 호흡하는 것을 어떨까.이미지에 사로잡혀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SNS에서의 대화와 소통은 진정한 인간관계라고 보긴 어렵다.

 

 이 도서를 읽으면서 미성숙한 사람들이란 과연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를 되뇌여 보았다.기본적으론 자식에 대한 부모의 양호한 훈육법은 아닐까 한다.학교졸업 - 취업 - 분가 - 결혼 - 자녀출산 - 노후 -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생애의 일련 주기를 어떻게 준비하고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인가,적시적절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합리적이고 냉철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자신의 가치판단과 행위가 일치하여야 완전한 삶이 가능할 것이다.또한 인생의 목표 가운데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가족과 함께 하기,행복한 파트너 관계 등에 무게를 두어야 하지 않을까.물질적 풍요로움에 바탕을 둔 부(富)의 과시에서 삶의 가치판단과 책임의식,인생의 선배로서 인생의 후배에게 사표가 되려는 성숙한 의식과 실천력을 갖은 어른으로 거듭나야 하지 않을까.그러한 삶의 양식에서 평온한 일상의 의미있는 삶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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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인간인가 - 존엄한 삶의 가능성을 묻다
오종우 지음 / 어크로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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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간이 만든 문명은 물질적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동시에 삶의 질을 제고해 온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가 없다.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탈산업사회의 중심에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상대적으로 인간에 대한 존엄성과 배려와 같은 실천적 정신은 약하다.반면 생산성과 성과를 중시하는 사회 시스템으로 말미암아 일반인들이 느끼는 생각과 감정은 오로조 경쟁에서 타자를 이겨야만 하고 실적을 내야 하는 강박관념이 크게 작용한다.그래서 함께 일하는 동료와 상.하관계가 인간적으로 띠를 형성하는 것이 아닌 조직 속에서 하나의 기계 부품에 지나지 않는다 것이 지배적인 생각이다.

 

 정치적 색깔을 달고 사는 사람들은 입만 열면 민생을 챙겨야 하느니,국민들의 삶을 보다 더 풍료롭게 해야 한다느니,일자리를 더욱 창출해야 한다느니 등 요란한 과시적 광고,선전에 열을 올린다.그 속을 찬찬이 들여다 보면 실현 가능성이 큰 것보다는 정책 사항으로 희망 사항에 가까운 요식적이고 자기기만적 공약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정치인들이 한 나라의 정책과 살림을 좌지우지하는 큰 영향력과 권력을 갖고 있기에 그들이 국민과 사회에 대한 정책과 실천적인 움직임이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가느냐에 따라 대다수 국민들이 느끼는 삶의 질과 인간의 존엄성 등이 피부로 와닿기 마련이다.그런데 작금 한국 정치계의 풍향은 진보,보수 성향의 정치가를 막론하고 모두가 자기 밥벌이와 얼굴 알리기에만 급급하다는 인상이 농후하다.사회 안전망과 개개인의 삶의 질,인간의 존엄성 모두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사람은 사회적 실체를 통해서든 고전과 같은 문학작품을 통해서든 인간의 삶에는 밝고 희망이 넘치는 강구연월의 세태라기 보다는 개인의 안위와 안락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이기주의 풍토 속에 살고 있다.계층 간 빈부의 격차는 더욱 커지고 개개인의 부채도 점점 늘어만 가고 있다.부자는 돈이 많아 이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 지 주체를 할 수가 없고 그렇지 못한 계층은 근근이 살아가기 바쁘기만 하다.IT기기 산업이 발달하면서 타인과의 관계망도 간접적인 대면 형식을 빌리고 있다.소셜 네트워크망이 사람과의 거리감,소통의 부재를 매꿔주고 있는 셈이다.그런데 이러한 SNS망을 통해 알고 지내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굳이 말하지 않더라고) 극히 피상적이고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기호,거래,동호인 등의 모임이 주를 이루고 있기에 시간이 경과하고 심정적으로 변화를 일으키게 되면 그 관계는 단절되고 만다.첨단 기기를 활용한 인간 관계망을 통해 진정어린 타자에의 존경심과 배려가 얼마나 형성되어 갈까.그것이 의문이다.

 

 오종우 저자의 《무엇이 인간인가》는 시종일관 러시아 대문화 도스토옙스키의 대표작 《죄와 벌》을 비롯하여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백치》《악령》 등의 작품 속의 내용과 등장 인물들이 펼치는 어두운 풍경과 음모,모략이 뒤섞여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것이 싹트기를 기대해 보는 여정을 갖게 되었다.상기한 도스토옙스키 작가의 작품은 사 놓기만 하고 진지하게 읽지를 못해 저자의 해설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아야 하는 이유를 묻고 대답하게 된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는 늘 감내하지 못할 고통과 불시착에 가까운 좌절,분노 조절이 안되는 공황상태 등이 수도 없이 인간의 내면 세계를 휘젖는다.인체 하복부에서 상복부 그리고 발끝에서 머리 정수리에 이르기까지 신경 전달 체계가 마비가 될 경우가 종종 있다.당연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 최상이라고 생각한다.연후에 정신적 엔진을 서서히 가열시키면서 삶의 지향점을 향해 매진해 나가는 것이 현명하다.도스토옙스키 작가의 《죄와 벌》의 주인공 로쟈의 삶의 전반을 다루고 있다.로쟈의 초반적 삶과 중.후반의 삶을 인간의 속성,속물주의적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이것이 꼭 나쁘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인간이란 신(神)처럼 완벽하지 않는 존재이지도 않은 선과 악마가 마음 깊은 곳에 늘 상존(尙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을 중시하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일대 정치 개혁이 필요하다.말로만 떠들어 대는 인간의 존엄성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이념과 사상이라는 커다란 물줄기도 중요하겠지만 사람이 사람답게,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과 의지가 우선일 것이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삶의 지향점과 행동에 걸림돌이 될 제반 제도와 시스템에 문제는 없는지 예리하게 짚어 가고 개선해야 할 사항은 개선하고 발전 계승해야 할 사항은 인간의 삶의 향상에 기반을 두고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 아무리 좋은 정책일지라도 어떠한 세력,집단에 의해 좌초된다면 이를 믿었던 사람들의 비탄과 절망은 누가 위무하고 보상해 줄 것인가.그래서 정치 지도자의 힘과 권한이 커진 세상에선 그들의 이성적 의지와 냉철한 판단력,대세를 볼 줄 아는 중용의 힘만이 지도자다운 지도자이다.개개인도 마찬가지다.개개인의 가능성을 최대화하면서 열린 마음과 긍정의 힘으로 살아가려는 노력과 의지가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성실과 관용,뚜렷한 삶의 목표 즉 건강하고 행복한 경지를 오래도록 마음에 품고 삶의 너머까지의 영혼까지 고요한 향기를 품어낼 수 있어야 한다.《죄와 벌》이라는 고전 속에서 인간의 존엄한 삶을 사색해 보는 인문학적 시간을 갖게 되어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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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시간에 쫓기는가 - 삶을 변화시킬 새로운 시간의 심리학
필립 짐바르도.존 보이드 지음, 오정아 옮김 / 프런티어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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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 삶에서 시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막대하고 포괄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또한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의 위력을 갖고 있다.시간을 잊고 사는 사람보다는 시간을 의식하고 시간에 쫓겨 살아가야 하는 상황,처지에 놓여 있는게 현실이다.나 역시 늘 시간을 의식하고 시간에 맞춰 나가려는 의식 작용이 매우 크다.이것은 때로는 주어진 삶의 목표에 맞춰 나가야 하는 당위성과 몸에 배인 습관적인 시간 관념에 쫓기는 경향이 많다.하루 24시간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시간에 지배되어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현실은 독종이 살아 남는 시대이기에 치열한 경쟁,무한 도전이라는 삶의 생태 환경에서는 당연 시간과의 싸움을 소홀히 할 수 없는 법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시간을 내면의 중심 요소로 삼아 생각,감정,행동 등을 유발한다.그 가운데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분명하고 예리한 의사 결정 등의 판단력은 크고 작은 성공을 가늠할 바로미터가 된다.그것은 일상을 흥미롭고 활기를 불어 넣는 촉매제가 되고 때로는 어린 나무가 큰 나무로 성장해 가는 자기 존재를 이끌어 가는 방향타가 될 수도 있다.예리한 판단력과 발빠른 순발력이 더해져서 행동의 결과가 상대적으로 다르게 나올 것이다.행동의 결과가 좋고 후회없게 나오려면 의사결정을 위한 지혜와 분별력이 매우 필요하다.그렇게 되려면 시간을 허송세월하지 않고 크고 작은 삶의 목표를 세워 계획성 있는 삶을 꾸려 나가야 한다.

 

 인간은 보고 듣고 배우며 체험했던 범주 안에서 생각하고 감정을 터뜨리며 행동에 나서게 마련이다.즉 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시간적 범주나 시간대에 할당하는 과정인 시간관(Time perspective)을 들 수가 있다.시계적 시간과 심리학적,또는 주관적 시간의 한 측면을 일컫는다.심리학적 시간의 다른 유형으로 사건이 일어나는 지속 시간에 대한 감각,시간의 변화율에 대한 감각,리듬감,소요 시간이 초래하는 압박감을 꼽을 수 있다.특히 이 도서에서 중시하는 삶의 모든 경험을 과거,현재,미래로 분할하여 설명하고 있는데,과연 어떠한 삶의 방식이 자신을 행복으로 이끌 수가 있을까.필립 짐바르도 저자는 우선 심리적 특성과 관련하여 개인의 성실도와 수명의 비례관계를 나타내고 있다.아울러 성실한 사람은 미래 지향적인 부류가 많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어 생활의 본보기가 된다.30여 년간 시간 과학과 시간 심리학을 개발한 도서로 시간관을 어떻게 바라보고 행동해 나가느냐는 개인의 삶을 좌우하고 질적인 삶으로 이끌어 가는 힘이 된다.

 

 시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개인의 삶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으로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시간적 관념을 어떻게 조망하고 행동해 나가느냐에 따라 개인의 삶의 질은 크게 달라지리라.예를 들어 과거에 씻을 수 없는 스트레스 장애,외상,상처와 같은 과거 부정적 시간관과 현재 숙명론적 시간관에 갇혀 있는 자들은 현재 지향적이고 미래 지향적 시간관 모두를 외면한 채 비역동적이고 불균형적인 삶의 태도,방식으로 일관하지 않을까.이러한 과거 부정적 기억에 갇힌 채 현재와 미래를 의미 없게 살아간다면 삶이 끝나는 죽음 이후의 세계마저 부정하게 마련이다.인간만이 갖고 있는 생각과 사유의 힘은 삶다운 삶을 누리면서 행복하고 후회없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시간과 관련한 재미있는 통계 눈여겨 볼 만하다.미국에선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시간(Time)이다.깨어 있는 동안의 활동에 쓰는 평균 시간은 생산 활동과 매체로 나뉘어지는데 생산 활동은 일과 사회 활동이 우위를 차지하고,매체의 경우에는 TV와 인테넷,음악 등이 순위를 다투고 있다.시간에 관한 동화로는 《아기 돼지 삼 형제》《미운 오리 새끼》《피터 팬》 등이 있다.시간에 관한 노래로는 100Years,The Four Seasons,Yesterday 등이 있다.일반인들에게 꽤 익숙한 것들이다.나아가 시간관에 대한 정의도 눈에 띈다.사회심리학의 아버지쿠르트 레빈"시간관은 특정한 시간에 존재하는 개인의 심리적 미래와 심리적 과거에 대한 관점의 총체"라고 했다.특히 짐바르도 시간관 검사 문항을 체크하다 보면 자신의 시간관이 어디에 속하는지를 알 수가 있다.과거 부정적.긍정적 시간관,현재 숙명론적.쾌락적 시간관,미래 지향적,초월적인 미래 지향적 시간관 가운데 자신의 시간관은 무엇일까.스스로 시간관 검사를 통해 부정적 시간관에서 발을 떼고 긍정적인 시간관으로 태도 변화를 보이는 것이 삶에 유리할 것이다.

 

 인간은 과거의 어떠한 경험을 겪었느냐에 따라 현재와 미래에 대한 시간관이 달라질 수 있다.즉 인간의 뇌와 행동은 환경에 크게 지배를 받으며,일단 몸에 배인 습관,기억은 쉽게 변화하기 어렵다.또한 시행착의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다가오는 삶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마련이다.크고 작은 수많은 의사 결정 과정과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대한 경우의 수를 최대한 활용하여 실수와 후회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본다.프로이트가 말한 "과거와 현재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이 적을수록 미래에 대한 판단에 확신이 서지 않는다" 패트릭 헨리 말한 "내 발 앞을 비추는 등불은 하나뿐이다.그것은 경험이라는 등불이다.나는 과거 이외에는 미래를 판단하는 방법을 모른다" 등은 과거의 경험이 미래를 예언하는 척도라는 점이다.그런데 아무리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시간관을 갖고 있다고 해도 현실적인 삶의 생태계는 생각만큼 척척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그래서 칙센트미하이의 몰입 상태에 따라 예상되는 일과 규칙이 확실하고 목표는 달성 가능하며 개인의 기술과 능력이 시의적절한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

 

 시간관은 개인에 따라 상대적으로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우선 자신이 살아 온 환경과 현재 위치,입장을 냉철하게 바라보아야 한다.자신의 내면과 깊게 대화를 나누고 부정적이고 비생산적인 삶의 도그마(Dogma)에서 미련없이 탈출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살펴야 한다.그러한 자신의 기질,성격,재주와 능력,사회에서의 활용도 및 영향력을 충분히 고려한 연후에 자신과 사회와의 관계 설정을 최대화해야 한다.인간의 삶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 유한한 자원이다.시간관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통념적이고 추상적인 생각을 버리고 분명한 삶의 목표를 세워 나가야 한다.하고 싶은 일을 즐기고 여유로운 경제력에 주위와의 원만한 관계 형성에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인간은 궁극적으로 삶을 잘 살아야 삶의 본질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시간관에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삶의 방식,삶의 태독를 견지하는 것이야말로 사랑과 행복으로 가는 길은 아닐까.내게도 상처와 고통의 시간이 많았다.부정적이고 숙명적인 시간관을 갖었던 것이 사실이다.삶의 속도에 쫓기지 않고 스스로 시간을 관리하고 통제해 나가려는 시간관을 이 시간 이후부터 실행에 옮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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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세계는 불평등의 연속이 아닐까 생각한다.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말이다.사회적 신분의 고하,경제적 소득의 고하,그리고 더욱 사회 구성원 간의 갈등과 벽을 조장하는 '끼리끼리'뭉치기는 완전하게 해소할 수는 없겠지만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완화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주위를 넓게 보면서 자신을 성찰하고 타인에게 좀 더 사람답게 대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련다.물론 오랜 세월 자신의 입장과 신분에 따라 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굳어졌기에 쉽사리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그런데 자신의 주위에는 자신보다 나은 사람만  사는 것이 아니다.결핍되고 소외된 계층들이 너무 많이 존재한다.일반인의 입장에서 이러한 계층들을 챙기고 배려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만 하다.앞서도 얘기했듯 스스로 성찰하면서 결핍으로 가득찬 이들에게 따뜻한 마음과 배려한다는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지금의 이분법적인 삶의 단층(斷層)은 조금씩 접착되어 가지 않을까.

 

 인간은 천생 죄를 갖고 태어난 사람은 없을 것이다.결핍.결손된 가정환경과 삐둘어진 인성에 의해 돌이킬 수 없는 사회적 범죄를 저지르고 죄값을 치뤄내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이들도 한때는 잘나갔던 사람도 있을 것이고,이해관계,갈등,원망,복수심,좌절 등이 얽히고설켜 개인과 사회에 커다란 부작용을 안기고 만 케이스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사회에서 죄를 지어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하는 죄수들도 교도소 생활규칙에 의해 자신의 지난 날을 수없이 성찰하면서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 나겠다는 각오로 가득차 있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게중에는 개전의 정이 없는 이들도 물론 존재할 것이다.그런데 누군가 정신적 결핍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운 이들에게 자신에 대한 자존감과 자기 성찰의 시간을 부여하는 것은 상생을 위한 초석이 되고 안정적인 사회기반을 이끄는 토대가 되어 주리라.

 

 2013년 서울대학교와 법무부가 교도소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인문학 교육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고 한다.이후 3년 정도 서울대학교는 한국사회의 낮은 곳에서도 등불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재정과 (교수들의)헌신적 노력에 의해 교도소 수용자들을 위한 인문학 공부 모임을 이끌었다고 한다.이에 앞서 2005년 노숙자들을 위한 인문학 과정이 있었는데 성공회대학교 '성 프란시스 대학'이란 이름으로 삶의 결핍된 자들에게 자신의 자존감의 고양 및 자아 성찰의 계기를 마련했던 것이다.낮은 인문학 과정은 수용자들에게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글을 쓰는 과제를 요구했는데,주요 내용은 감명 깊은 강의 및 자기성찰적인 내용을 담는 것이었다.

 

 8인의 서울대 인문학 교수들의 강의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이루어졌다.철학,종교,역사,문학이라는 삶에 대한 고민과 삶의 방향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주된 강의 내용은 평범하게 보이지만 깊은 사색과 성찰을 요한다.삶의 최고의 가치,행복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삶의 존재 이유,'과거'의 기억은 미래를 만든다,나와 우리는 누구인가,우리가 추구할 가치,삶의 목표,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 등을 소개하고 있다.극히 자신 위주의 삶에서 탈피하여 나와 우리 그리고 타인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사유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수용소에 있는 자들이 인문학 강의와 과제를 통해 그릇된 생각과 감정,행동을 깊게 성찰하는 동시에 자신의 주변과 넓은 세상에 대해 바르게 인식하고 이해하는 촉매역할을 했을 것이다.또한 이러한 계기를 통해 수용자들은 사랑과 용서,자비의 정신의 참뜻을 인식하는 동시에 깊고 영원한 죽음 이후의 세계까지 수용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서울대학교와 법무부가 주체가 되어 교도소 수용자들에게 가르친 인문학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가야 할 길과 최종 목표 등을 새로운 시각과 관점에서 고찰했을 것으로 보인다.솔론이 말한 행복의 정의가 인상 깊게 다가온다. "잘 살아야 하고,명예롭게 죽어야 한다,그것이 행복이다."(P234) 또한 소유에서 삶의 의미와 목표를 찾으려는 현대인에게 프롬의 『건강한 사회』는 병적인 삶과 사회구조를 치유하기 위한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케 한다.특히 프롬은 자신이 속한 민족뿐 아니라 모든 민족과 인간을 똑같이 사랑하는 사해동포주의를 주창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아울러 인본주의적인 종교 및 철학이 목표로 하는 사랑과 지혜와 같은 인간의 이성적 잠재력을 충분히 실현하고자 하는 점에 의미를 두고 싶다.내 삶의 마아트(진리,가치,중용)는 무엇인가를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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