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 단편집 스티븐 킹 걸작선 5
스티븐 킹 지음, 김현우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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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대단한 상상력이라고 생각했다. 운전자 없이 사람들을 공격하는 트럭, 거대한 지하 공간에 도사리고 있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쥐떼, 손끝에 눈을 갖고 나를 조정하는 외계 생물체...하지만, 각도를 조금 달리 하면? 내가 만약 호러 단편을 쓰려고 하는 작가여서, 주변의 모든 사물을 공포의 모티브로 삼으려 든다면? 그리 기발하다고만은 볼 수 없다.
대단한 상상력이 이유가 아니라면, 이 단편들에게 이리도 매혹되는 이유는 뭘까? 찾을 수 있는 답은, 바로 '엄청난 필력'이다. 소재의 진부함 따위는 스티븐 킹에게 족쇄가 되지 못한다. 그 어떤 이야기도 그의 손을 거치면 한결 생생하게 되살아나므로!

그의 작품을 읽고 나면 항상 지쳐있는 나를 발견한다. 책에서 눈을 떼고 둘러보면, 세상은 알아채기 힘들만큼 미묘하게....명도와 채도가 조금씩 어두워져 있다. 그래서 내게 다가오는 모든 사건과 사물들을 한 번씩 다른 시각,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된다. 그것은 상당히 피곤하고 울적한 일이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다. 책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함께 휩쓸려 뛰어다니는 것은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닐뿐더러, 내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는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 체험의 정체가 무시무시한 공포일지라도.

마약같은 작가, 스티븐 킹...특히 이 단편집은, 버릴 글이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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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자 2004-09-10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요......? 0_0 이 책 살까 말까 무진장 고민하고 있었는데....;; 님 리뷰을 읽고 갈팡질팡하던 맘이 사라졌습니다...감사해요...(처음 뵙죠?...반가워요....^0^)

로드무비 2004-09-10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때 세일 크게 할 때 살걸.
후회가 밀려오네요.
버릴 게 하나도 없다니!

플레져 2004-09-11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저 이 책 있어요. 얼른 읽어야징. 무서운 얘기가 많다고 해서 책꽂이에 꽂아만 두었는데... ^^

진/우맘 2004-09-11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음, 독하게 마음 먹으면 그리 무섭진 않아요. 빠지기 직전에서 즐길만한 공포라고나 할까....
로드무비님> 저도 빌려 읽은 것이 통탄스럽네요. 하지만, 원체 제가 스티븐 킹을 좋아해서....조금 오바도 했습니다.^^
놀자님> 앗, 그래요? 결과가 좋아야 할텐데...^^
 
알에서 나온 할머니 보림문학선 2
이바 프로하스코바 지음, 마리온 괴델트 그림, 선우미정 옮김 / 보림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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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란 꼭 날씨 같다. 우리는 엄마 아빠를 마음대로 고를 수가 없다. 마음에 들건 안 들건 부모는 그저 우리 곁에 있다. 그러니 마음에 안 든다고 불평해 보았자 소용없는 일이다.

앗, 이거...시작부터 장난이 아니다. 꼬마 엘리아스의 투덜거림에, 왜 내 심장이 둥당둥당 뛰는 거지? 요 구절만 톡 떼어 읽어 보면, 마치 엘리아스가 피학대 아동이라도 되는 듯 하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엘리아스는 평범한 집의 꼬마 아이다. 아빠는 게임 프로그래머, 엄마는 고성의 그림이나 조각을 복원하는 분이다. 둘 다 엘리아스를 사랑하고 관용과 유머감각을 갖춘 멋진 사람들이다. 딱 한 가지, 항상 '너무 바쁘다'는 점을 제외하면. 그런데 이 한 가지의 단점이, 엘리아스에겐 너무도 치명적인가 보다.

왜냐하면 엄마 아빠란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들이 하고 싶은 것만 하니까. 부모들은 구제불능이다. 정말 못됐다. 하지만 엘리아스는 엄마 아빠를 제대로 가르칠만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ㅎㅎㅎ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레파토리다.
"엄마는 왜 맨날, 내 책은 안 읽어주고 엄마 책만 읽어?!"
맞다. 나도 항상 바쁘다. 인터넷 하느라 바쁘고, 내 책 읽느라 바쁘고, 텔레비젼 보느라 바쁘고, 바쁘지 않을 때는 피곤하거나 아프거나 졸리고....

엘리아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엄마 아빠 사정을 모르는 건 아니다. 아빠는 새로운 컴퓨터 게임을 생각해 내야 한다. 그게 아빠 직업이니까. 또 엄마는 여러 종류의 성에 대한 책을 읽어야 한다. 성에 있는 오래된 조형물이나 그림을 원래 모습대로 복원하는 게 엄마 일이니까. 하지만 그런 상황들이 엘리아스를 화나게 했다. 보드 게임이나 도미노 게임을 하고 공놀이 같은 걸 하는 것 또한 엘/리/아/스/의/일이란 것을 엄마 아빠는 이해하지 못했다. 더구나 이런 일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것도 말이다.

흐음...나도, 우리 집 꼬마 아가씨의 각종 업무(?)에 너무 비협조적이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에 잠시 심란해지려 할 때쯤, 엘리아스에게 노랗고 작은 알이 하나 생겼다. 엄마 아빠 몰래 꼬마 새친구를 키우고 싶었던 엘리아스는, 양말 상자에 알을 묻어 놓는데...뿅! 거기서 태어난 것은 새가 아니라, 작은 날개가 달리고 파란 옷을 입은 귀여운 할/머/니 였다!!
이제 엘리아스의 일상은 바빠지기 시작한다. 할머니를 보살피고 가르쳐야 하니까. 사실 나는, 알에서 다정하고 자애로운, 완벽한 할머니가 나와 엘리아스를 보살펴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엘리아스와 꼬마 할머니가 좌충우돌 벌이는 에피소드에 흥겨워하다 보니, 에그, 그게 얼마나 끔찍하게 지루한 상상이었는지 알겠다.^^

엘리아스는 말하자면, 입장 바꾸기를 해 보고 있었다. 꼬마 할머니를 먹이고 씻기고 가르치면서 엄마 아빠가 된 듯한 체험을 하게 되니까. 실제로도 할머니를 들키지 않기 위해 엘리아스는 방을 열심히 치우고 자기 일을 착착 알아서 하는 어린이가 되어 가고 있다. 이런 흐름에 작가가 자칫, '엘리아스는 엄마 아빠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엄마 아빠도 나를 이렇게 힘들게 기르셨고나~"하는 류의 언급을 끼웠다면 즐거웠던 상상의 세계는 비틀,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개입은 없다. 할머니가 저지르는 일련의 사고들이(할머니의 파란 옷이 아빠의 와이셔츠를 모두 좋아하는 파란색으로 물들인다던가...고장 낸 텔레비젼 때문에 성으로 소풍을 나가게 되는 등) 가족들의 생각과 일상을 변모시키는 과정은 유쾌하기 그지없다.

꼬마 할머니는, 누구나 어린 시절 한번씩은 상상해 보았을 법한 친구다. 움직이고 말하고 생각하는 나만의 인형. 하지만,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기에 인형 이상인 그 어떤 것. 만인의 유년에 공통분모로 작용하는 이런 소재라면,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전개와 신나는 모험의 요소가 포함되니 읽던 나까지 동심의 세계로 유입되는 듯 했다. 이젠 다 자라 엘리아스의 부모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책을 읽는 나조차도 이리 재미있는데, 또래의 아이들은 얼마나 신이 날까.^^ 많은 아이들에게 엘리아스와 꼬마 할머니는 좋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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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민담 전집 02 - 러시아 편 황금가지 세계민담전집 2
안상훈 엮음 / 황금가지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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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이거다. 내가 기대했던 민담의 세계. 어쩐지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 즐거운 이야기가 계속 계속 반복되고 있는 듯 한 행복한 기시감. 바로, 러시아 민담이 그랬다.

유럽 러시아 지역의 민담을 주로 추렸단다. 그런가....역시, 어린 시절 유럽에 치중한 <세계명작>을 읽고 자란 독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인가...그나마 절반은 동양인 터키의 민담보다, 한결 유럽풍인 러시아의 민담이 더 즐거웠다. 그러나 어쩌랴. 사실이 그런 것을. 묘하고 신비한 매력은 있었지만 기승전결은 약했던 터키의 민담과는 달리, 러시아의 민담들은 짜임새 있는 구조에 플롯도 한결 다양했다.

그리고, 여러 이야기에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등장인물들도 매력적이었다. 악마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둔하고 잘 속아넘어가는 <꼬마 악마>들은 어딘지 우리 나라의 도깨비들을 연상시킨다. 힘 센 보가트리를 보고는 애기장수가 떠올랐는데, 쌍둥이 이반의 이야기가 (민담 치고는 특이하게도) 비극적으로 끝을 맺자 그런 느낌은 더욱 강해졌다. 그럼, 여행자를 시험에 들게 하는 노파, 바바야가는 어디에다 붙이지? 산신령님?
참, 마지막 줄에 자주 등장하는 화자도 그렇다. "나도 그 잔치에 초대되어 꿀을 탄 술을 마셨지만, 수염을 타고 흘러내릴 뿐 목으로는 한 방울도 넘어가지 않았다."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이 화자가 등장함으로써 이야기가 허구임이 반어법 형식으로 밝혀진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이 할아버지가 마음에 들었다. 이야기가 끝나면서 읊조리는 이 두어줄의 문장은, 마치 화롯불 앞에 앉아 할머니에게 옛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민담 본연의 세계로 빠져드는 주문과도 같았다. ㅎㅎ 정작 내게는 화롯불 앞에서 옛이야기를 들어본 경험이 없는데도.^^

멋진 이야기와 더불어 중간중간 등장하는 삽화들은 또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삽화를 보고 또 보며 컬러 도판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에이, 얼른 지웠다. 그렇게 되면 책 값이 천정부지로 오를 것인데. 여기서 만족하자.
흠...이제 슬슬 잘 시간인가? 사람은 저녁보다는 아침에 더 지혜로워지는 법이니(러시아 속담) 얼른 잠자리에 들어야 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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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4-09-03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도 그 할아버지 너무 좋아요. 그러니까 내게 빨리 꿀을 탄 술을 내놓으란 말야! ㅋㅋㅋ
 
폴 오스터 - 인터뷰와 작품 세계
이노 도모유키 외 지음, 김경원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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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 '새로 들어 온 책' 코너에서 발견했다. 아직 아무도 손대지 않은 새 책을 공짜로 빌릴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유혹. 특별히 읽을 마음은 없었지만 '폴 오스터'라는 이름 때문에 충동 구매가 아닌 '충동 대출'을 해 버렸다.

 '나는 폴 오스터를 좋아한다.' 라고 생각해왔지만... 확실히 그런건지, 왜 그런건지는 항상 불투명했다. 하루키나 스티븐 킹을, 전경린을 왜 좋아하냐고 물으면 이런저런 이유를 쉽게 댈 수 있다. 하지만 폴 오스터는?
물론, 첫만남인 <달의 궁전>에서 꽤나 짜릿한 체험을 하긴 했다. 그러나 그 정도의 흥분은 그다지 희귀한 일도 아니고, 또 이후의 <빵굽는 타자기>나 <동행> 등에서는 기대만큼의 느낌은 없었다. 어쩌면 폴 오스터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아니라 '좋아하고 싶은 작가'일지도 모른다. 그가 가진 묘한 아우라, 지적이고 신비한 이미지를 흠모할 뿐인지도.
그렇다면, 도대체 그의 어떤 면이 나를 당기는걸까? 다른 사람들은 이 작가를 어떻게 느끼고 분석하고 있나? 이 책 속에서 그 답을 찾고 싶었다.

책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실제 인터뷰 내용을 기록한 '오스터와의 대화', 주요한 몇 개의 단어와 폴 오스터를 연결해보는 '키워드들', 그리고 작품의 줄거리와 평론으로 꾸려진 '작품들'.(키워드들과 작품들 사이에 "영화 속 장면들"이라는 사진 몇 장도 있지만, 여기선 제외하기로 하자.)

'오스터와의 대화'는 제법 근사했다. 인터뷰어와 저자의 손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나 윤색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세련되게 진행되는 대화 속에서 오스터의 매력이 사뭇 돋보였다.  
-궁극적으로 탐정 소설이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사람이란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이고, 독자는 얼마든지 오독할 권리가 있습니다. 흩날리는 먼지가 가라앉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고, 작자는 자신의 작품이 논의라는 도마에 오를 경우, 꽤나 말도 되지 않는 소리도 들을 각오도 되어 있어야 합니다. 원래 미국의 서평 상황은 한심하기 짝이 없으니까요. 우리나라의 유아 사망률은 서양 여러 나라 가운데 최악의 수준입니다. 그와 더불어 문학 저널리즘의 수준도 최하지요. 서평을 쓰는 사람 중에는 거의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여겨질 정도로, 손쓸 재간도 없이 저능한 놈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책이 나온 처음 시기에는 그런 놈들의 의견이 여기저기 판을 치는 법이지요. -
 이렇게 오만한 듯 한 그의 모습에 더욱 끌렸다면, 내가 이상한가?

하지만 '키워드들'로 넘어가자 책은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유대인, 미국, 프랑스, 야구, 정치성, 로맨스의 전통, 탐정소설, 메타픽션, 고아 문학, 시, 평론, 영화, 총 12개의 키워드와 오스터를 엮은 이 담론은 제법 참신한 시도이다. 오스터를 다각도에서 살필 수도 있을 이 대목을 읽어 내는 것이 그렇게 힘들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키워드 설정이 부적절 했거나 둘째, 키워드와 폴 오스터를 이을만한 정보와 논리가 부족(혹은 과다)하여 적절한 설명이 이루어지지 못했거나 셋째, 내가 너무 지적이지 못하거나...혹은 수면 부족 상태로 심하게 졸렸거나...^^;
이 세 이유 중의 하나일 것 같다. 아무래도 세번째 이유가 매우 유력하게 보인다. -.-

그렇게 어렵게 '키워드들'을 넘기고 '작품들'을 읽어나가다 보니...약간 짜증이 났다. 그의 작품들 각각의(근간인 환상의 책과 신탁의 밤은 빠졌다.) 줄거리를 요약하고 조금의 평론을 덧붙이는 구성이다. 그렇기에 읽어본 것의 기억을 되살려 보고 읽지 못한 작품에 대해서는 사전 정보를 얻어 다음으로 집어들 책을 고를 수 있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줄거리 요약의 수준이 너무 떨어졌다. 아니, 그것은 저자(들)의 문학적 소양의 문제가 아니었다. 애시당초 우연과 분위기를 묘사하는 탁월한 필력에 많은 부분을 기대고 있는 폴 오스터의 작품의 '줄거리'를 쓰겠다는 시도 자체가 그릇된 것이었다.
<거대한 괴물>의 줄거리를 대충 추려볼까? 아론과 삭스는 친구이다. 아론과 관계를 갖게 되는 마리아 터너는 우연히 주은 수첩의 주인에게 사랑을 느낀다. 그래서 그 주인을 찾아 나서는데, 수첩 속에 기록되어 있던 특별해 보이는 여인은 우연히도 마리아의 친구였다. 그리고 그래서 그런 후 삭스는 한 남자를 사고로 죽게 한다. 그는 우연히도 마리아가 찾던 수첩의 주인이었고, 삭스가 집을 찾아가니 아까 마리아의 친구였던 릴리와 결혼해 있었고, 삭스는 어쩌다 릴리와 사랑에 빠지고.....
이래서야. 이건,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 두 남녀가 이복 형제'라는 진부하디 진부한 한국 드라마보다 더 심해 보이지 않는가? 그냥 이 '줄거리'로 평가해 볼 때는 말이다. 게다가 폴 오스터의 작품들이 추리소설은 아니지만, 퍼즐 조각을 맞추듯 사건과 사람들을 이렇게 저렇게 끼워 넣는 재미가 쏠쏠한데, 이렇다 다 알아버렸으니....
대체 이 '작품들'은 누구에게 소용되는 글인가? 폴 오스터에겐 별 관심이 없지만, 문학적인 교양을 갖추자니 대충 줄거리라도 외워서 아는 척을 해야겠다는 사람들? 폴 오스터에게 관심이 있거나,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 아니었단 말인가?

책을 덮고, 처음 들여다봤을 때부터 계속 궁금했던 '편저'의 의미를 찾아보았다. 그냥, '책 따위를 엮어 지음' 이란다. 공저와는 무슨 차이가 있지?
여하간, 세 일본 문학 박사가 '엮어 지은' 이 책...나와는 궁합이 잘 맞지 않는다.
빌려 읽길 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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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9-02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네요. 빌려서 읽길 잘하셨어요.^^

진/우맘 2004-09-02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로드무비님이다! 아까 님의 페이퍼를 읽고, 이 리뷰를 쓰면서 괜히 뜨끔뜨끔 했는데...^^;;;
 
팔레스타인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논그림밭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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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읽어나가며 수시로, '부끄러움'이 나를 엄습했다. 나의 무지와 무관심에 대한 절절한 수치심.....
나는, 유대인과 아랍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시온주의, 무슬림, 아랍어, 히브리어들을, 치열하게 반목하고 있는 그들을 구분짓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리 부끄러운 일만은 아니라고 할지도 모른다. 아시아 끝 저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모를 수도 있다고. 하지만 잠시 생각해본다. 리비아나 헝가리, 대한민국과 떨어진 어느 즈음엔가 살고 있는 사람들이 "남한과 북한은, 뭐가 다른거죠? 그 둘은 서로 적인가요?"하고 묻는다면? 그런 질문에 닥치면, 나는 얼마나 황망할 것인가.

이 정도까지 생각이 흐르면서, 문득 이 입장바꾸기야말로 <팔레스타인>이 주는 가장 큰 깨달음이라 느껴졌다.
인간이 인간을 공격할때는(특히 전쟁) 상대를 비인간화 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고 한다. 사람보다는 벌레, 먼지를 없애는 것이 훨씬 수월하니까.
그리고 서문을 쓴 사이드가 설명한 <오리엔탈리즘>의 개념. 동양을 공격하고 억누르기 위해 서양이 새로 창조해 낸 <동양>의 개념. 그들은 무지하고 공격적이며 대충 신비주의로 버무려진 알 수 없는 존재 - 결론적으로 본인들보다 열등한 존재라는 설정.
이제까지 나도 서양의 입장, 강자의 곁에 서서 팔레스타인을 비인간화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테러나 좋아하고 - 이유가 뭐 있겠어, 원래 잔인한 민족이라잖아.- 무지몽매한 - 그 더운데 두건은 왜 두르고 다니는거야? 게다가 여자들을 꽁꽁 싸매고 소유물처럼 여기다니!- 민족이라 여기며, 그들에게 무지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도 않았던 것이다.
ㅎㅎ, 나와 내 민족 역시, 비인간화와 오리엔탈리즘의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실들을 깨닫고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자리를 바꿔 앉아 보는 것은, 매우 아팠지만 꼭 필요한 경험이었다.

사각의 컷으로 또박또박 나뉘어진 세련된 만화에만 익숙해 있던 눈에는, 굵은 선으로 아름다움이 아닌 분노와 절망을 담아 낸 이 그림이 낯설기만 했다. 꽤 많은 글자들, 그림 속에 파고 들듯이 흩어져 있는 그 지문들을 주워 읽는 것도 숨이 가빴고.
하지만 그런 거칠음에 어느정도 적응하고 나자, 슬슬 탄탄한 뎃셍 실력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혼란스럽고 과잉된, 꽉 짜여서 넘치는 화면 자체가 지구에서 최고로 인구가 밀집되어 있다는, 한 방에 여덟 아홉이 예사로 얽혀 산다는 가자 지구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책을 덮고 생각해본다. 그들이 겪는 고문, 폭력, 절망은 일본의 압제, 또는 민주주의를 표방한 독재 권력의 아래에서 우리가 겪었던 일에 비해 더 아픈 일은 아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팔레스타인, 그들이 겪는 일은 현재진행형, 내가 리뷰를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는 일인 것이다.
답답하다.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내가 느낀 이 답답함이, 과연 그들의 삶에 무슨 효용이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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뎅구르르르~~ 2004-08-28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1년전인가? '네 이웃을 사랑하라..' 읽고 엄청나게 충격받았는데. 그때당시 오빠랑 엄청난 설전을 벌였던게 아직도 기억날 정도.. 그런데 지금은 그게 어느사건이었는지.. 보스니아 내전? 사라예보?? 뭐였드라??? 머리속이 뒤죽박죽이야. ㅜ.ㅜ

진/우맘 2004-08-28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설전을..........끙. -.-;; 뎅굴, 어쩌냐. 그냥 <진정한 보수>로 네 성향을 바꾸는 편이...TT

뎅구르르르~~ 2004-08-28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앙.. 뭐.. 나는 전쟁의 참혹함, 인간의 고통.. 뭐 이런 관념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오빠는 어쩔수없는 현실, 전쟁에 임하는 자세(? 나름대로 심리적인것들..) 뭐 이런거에 중심을 두지.. 관점자체가 아예 틀리니까 똑같은 책을 읽어도 서로 뭔가 어긋나는.. 그런. 하하..;;;

진/우맘 2004-08-28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은, 관점 자체가 다르면 싸울 일도 없어야 하는데 말야.

뎅구르르르~~ 2004-08-28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로 강요하니까.. 자기 생각이 맞다고, 잘난체쟁이들.. 잘만났지뭐. ^^;;

진/우맘 2004-08-28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헐....^^

흐르는 강물처럼 2004-09-10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홍구님의 대한민국사 책을 읽고 난 뒤 한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왜 자신이 죽어야 했는지도 모르고 죽었던 양민들.
그것도 미군에 의한 학살과 조국을 구하려고 했던 그들의 이상 실현 때문에
그 수많은 파르티산의 젊고 어린 주검들을 바라보면서 답답함과 분노가 치밀었다.
그런데 어쩌란 말인가! 그 역사의 아픔은 여전히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평범한 내 자신이 너무나 힘겹고 싫다.
팔레스탄인들의 고통과 피흘림속에 우리의 아픈 과거사가 아니,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고통과 아픔이 생각나는 것은 나만의 고통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