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오스터 - 인터뷰와 작품 세계
이노 도모유키 외 지음, 김경원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도서관 '새로 들어 온 책' 코너에서 발견했다. 아직 아무도 손대지 않은 새 책을 공짜로 빌릴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유혹. 특별히 읽을 마음은 없었지만 '폴 오스터'라는 이름 때문에 충동 구매가 아닌 '충동 대출'을 해 버렸다.

 '나는 폴 오스터를 좋아한다.' 라고 생각해왔지만... 확실히 그런건지, 왜 그런건지는 항상 불투명했다. 하루키나 스티븐 킹을, 전경린을 왜 좋아하냐고 물으면 이런저런 이유를 쉽게 댈 수 있다. 하지만 폴 오스터는?
물론, 첫만남인 <달의 궁전>에서 꽤나 짜릿한 체험을 하긴 했다. 그러나 그 정도의 흥분은 그다지 희귀한 일도 아니고, 또 이후의 <빵굽는 타자기>나 <동행> 등에서는 기대만큼의 느낌은 없었다. 어쩌면 폴 오스터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아니라 '좋아하고 싶은 작가'일지도 모른다. 그가 가진 묘한 아우라, 지적이고 신비한 이미지를 흠모할 뿐인지도.
그렇다면, 도대체 그의 어떤 면이 나를 당기는걸까? 다른 사람들은 이 작가를 어떻게 느끼고 분석하고 있나? 이 책 속에서 그 답을 찾고 싶었다.

책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실제 인터뷰 내용을 기록한 '오스터와의 대화', 주요한 몇 개의 단어와 폴 오스터를 연결해보는 '키워드들', 그리고 작품의 줄거리와 평론으로 꾸려진 '작품들'.(키워드들과 작품들 사이에 "영화 속 장면들"이라는 사진 몇 장도 있지만, 여기선 제외하기로 하자.)

'오스터와의 대화'는 제법 근사했다. 인터뷰어와 저자의 손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나 윤색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세련되게 진행되는 대화 속에서 오스터의 매력이 사뭇 돋보였다.  
-궁극적으로 탐정 소설이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사람이란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이고, 독자는 얼마든지 오독할 권리가 있습니다. 흩날리는 먼지가 가라앉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고, 작자는 자신의 작품이 논의라는 도마에 오를 경우, 꽤나 말도 되지 않는 소리도 들을 각오도 되어 있어야 합니다. 원래 미국의 서평 상황은 한심하기 짝이 없으니까요. 우리나라의 유아 사망률은 서양 여러 나라 가운데 최악의 수준입니다. 그와 더불어 문학 저널리즘의 수준도 최하지요. 서평을 쓰는 사람 중에는 거의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여겨질 정도로, 손쓸 재간도 없이 저능한 놈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책이 나온 처음 시기에는 그런 놈들의 의견이 여기저기 판을 치는 법이지요. -
 이렇게 오만한 듯 한 그의 모습에 더욱 끌렸다면, 내가 이상한가?

하지만 '키워드들'로 넘어가자 책은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유대인, 미국, 프랑스, 야구, 정치성, 로맨스의 전통, 탐정소설, 메타픽션, 고아 문학, 시, 평론, 영화, 총 12개의 키워드와 오스터를 엮은 이 담론은 제법 참신한 시도이다. 오스터를 다각도에서 살필 수도 있을 이 대목을 읽어 내는 것이 그렇게 힘들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키워드 설정이 부적절 했거나 둘째, 키워드와 폴 오스터를 이을만한 정보와 논리가 부족(혹은 과다)하여 적절한 설명이 이루어지지 못했거나 셋째, 내가 너무 지적이지 못하거나...혹은 수면 부족 상태로 심하게 졸렸거나...^^;
이 세 이유 중의 하나일 것 같다. 아무래도 세번째 이유가 매우 유력하게 보인다. -.-

그렇게 어렵게 '키워드들'을 넘기고 '작품들'을 읽어나가다 보니...약간 짜증이 났다. 그의 작품들 각각의(근간인 환상의 책과 신탁의 밤은 빠졌다.) 줄거리를 요약하고 조금의 평론을 덧붙이는 구성이다. 그렇기에 읽어본 것의 기억을 되살려 보고 읽지 못한 작품에 대해서는 사전 정보를 얻어 다음으로 집어들 책을 고를 수 있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줄거리 요약의 수준이 너무 떨어졌다. 아니, 그것은 저자(들)의 문학적 소양의 문제가 아니었다. 애시당초 우연과 분위기를 묘사하는 탁월한 필력에 많은 부분을 기대고 있는 폴 오스터의 작품의 '줄거리'를 쓰겠다는 시도 자체가 그릇된 것이었다.
<거대한 괴물>의 줄거리를 대충 추려볼까? 아론과 삭스는 친구이다. 아론과 관계를 갖게 되는 마리아 터너는 우연히 주은 수첩의 주인에게 사랑을 느낀다. 그래서 그 주인을 찾아 나서는데, 수첩 속에 기록되어 있던 특별해 보이는 여인은 우연히도 마리아의 친구였다. 그리고 그래서 그런 후 삭스는 한 남자를 사고로 죽게 한다. 그는 우연히도 마리아가 찾던 수첩의 주인이었고, 삭스가 집을 찾아가니 아까 마리아의 친구였던 릴리와 결혼해 있었고, 삭스는 어쩌다 릴리와 사랑에 빠지고.....
이래서야. 이건,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 두 남녀가 이복 형제'라는 진부하디 진부한 한국 드라마보다 더 심해 보이지 않는가? 그냥 이 '줄거리'로 평가해 볼 때는 말이다. 게다가 폴 오스터의 작품들이 추리소설은 아니지만, 퍼즐 조각을 맞추듯 사건과 사람들을 이렇게 저렇게 끼워 넣는 재미가 쏠쏠한데, 이렇다 다 알아버렸으니....
대체 이 '작품들'은 누구에게 소용되는 글인가? 폴 오스터에겐 별 관심이 없지만, 문학적인 교양을 갖추자니 대충 줄거리라도 외워서 아는 척을 해야겠다는 사람들? 폴 오스터에게 관심이 있거나,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 아니었단 말인가?

책을 덮고, 처음 들여다봤을 때부터 계속 궁금했던 '편저'의 의미를 찾아보았다. 그냥, '책 따위를 엮어 지음' 이란다. 공저와는 무슨 차이가 있지?
여하간, 세 일본 문학 박사가 '엮어 지은' 이 책...나와는 궁합이 잘 맞지 않는다.
빌려 읽길 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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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9-02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네요. 빌려서 읽길 잘하셨어요.^^

진/우맘 2004-09-02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로드무비님이다! 아까 님의 페이퍼를 읽고, 이 리뷰를 쓰면서 괜히 뜨끔뜨끔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