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에서 나온 할머니 보림문학선 2
이바 프로하스코바 지음, 마리온 괴델트 그림, 선우미정 옮김 / 보림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부모란 꼭 날씨 같다. 우리는 엄마 아빠를 마음대로 고를 수가 없다. 마음에 들건 안 들건 부모는 그저 우리 곁에 있다. 그러니 마음에 안 든다고 불평해 보았자 소용없는 일이다.

앗, 이거...시작부터 장난이 아니다. 꼬마 엘리아스의 투덜거림에, 왜 내 심장이 둥당둥당 뛰는 거지? 요 구절만 톡 떼어 읽어 보면, 마치 엘리아스가 피학대 아동이라도 되는 듯 하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엘리아스는 평범한 집의 꼬마 아이다. 아빠는 게임 프로그래머, 엄마는 고성의 그림이나 조각을 복원하는 분이다. 둘 다 엘리아스를 사랑하고 관용과 유머감각을 갖춘 멋진 사람들이다. 딱 한 가지, 항상 '너무 바쁘다'는 점을 제외하면. 그런데 이 한 가지의 단점이, 엘리아스에겐 너무도 치명적인가 보다.

왜냐하면 엄마 아빠란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들이 하고 싶은 것만 하니까. 부모들은 구제불능이다. 정말 못됐다. 하지만 엘리아스는 엄마 아빠를 제대로 가르칠만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ㅎㅎㅎ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레파토리다.
"엄마는 왜 맨날, 내 책은 안 읽어주고 엄마 책만 읽어?!"
맞다. 나도 항상 바쁘다. 인터넷 하느라 바쁘고, 내 책 읽느라 바쁘고, 텔레비젼 보느라 바쁘고, 바쁘지 않을 때는 피곤하거나 아프거나 졸리고....

엘리아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엄마 아빠 사정을 모르는 건 아니다. 아빠는 새로운 컴퓨터 게임을 생각해 내야 한다. 그게 아빠 직업이니까. 또 엄마는 여러 종류의 성에 대한 책을 읽어야 한다. 성에 있는 오래된 조형물이나 그림을 원래 모습대로 복원하는 게 엄마 일이니까. 하지만 그런 상황들이 엘리아스를 화나게 했다. 보드 게임이나 도미노 게임을 하고 공놀이 같은 걸 하는 것 또한 엘/리/아/스/의/일이란 것을 엄마 아빠는 이해하지 못했다. 더구나 이런 일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것도 말이다.

흐음...나도, 우리 집 꼬마 아가씨의 각종 업무(?)에 너무 비협조적이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에 잠시 심란해지려 할 때쯤, 엘리아스에게 노랗고 작은 알이 하나 생겼다. 엄마 아빠 몰래 꼬마 새친구를 키우고 싶었던 엘리아스는, 양말 상자에 알을 묻어 놓는데...뿅! 거기서 태어난 것은 새가 아니라, 작은 날개가 달리고 파란 옷을 입은 귀여운 할/머/니 였다!!
이제 엘리아스의 일상은 바빠지기 시작한다. 할머니를 보살피고 가르쳐야 하니까. 사실 나는, 알에서 다정하고 자애로운, 완벽한 할머니가 나와 엘리아스를 보살펴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엘리아스와 꼬마 할머니가 좌충우돌 벌이는 에피소드에 흥겨워하다 보니, 에그, 그게 얼마나 끔찍하게 지루한 상상이었는지 알겠다.^^

엘리아스는 말하자면, 입장 바꾸기를 해 보고 있었다. 꼬마 할머니를 먹이고 씻기고 가르치면서 엄마 아빠가 된 듯한 체험을 하게 되니까. 실제로도 할머니를 들키지 않기 위해 엘리아스는 방을 열심히 치우고 자기 일을 착착 알아서 하는 어린이가 되어 가고 있다. 이런 흐름에 작가가 자칫, '엘리아스는 엄마 아빠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엄마 아빠도 나를 이렇게 힘들게 기르셨고나~"하는 류의 언급을 끼웠다면 즐거웠던 상상의 세계는 비틀,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개입은 없다. 할머니가 저지르는 일련의 사고들이(할머니의 파란 옷이 아빠의 와이셔츠를 모두 좋아하는 파란색으로 물들인다던가...고장 낸 텔레비젼 때문에 성으로 소풍을 나가게 되는 등) 가족들의 생각과 일상을 변모시키는 과정은 유쾌하기 그지없다.

꼬마 할머니는, 누구나 어린 시절 한번씩은 상상해 보았을 법한 친구다. 움직이고 말하고 생각하는 나만의 인형. 하지만,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기에 인형 이상인 그 어떤 것. 만인의 유년에 공통분모로 작용하는 이런 소재라면,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전개와 신나는 모험의 요소가 포함되니 읽던 나까지 동심의 세계로 유입되는 듯 했다. 이젠 다 자라 엘리아스의 부모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책을 읽는 나조차도 이리 재미있는데, 또래의 아이들은 얼마나 신이 날까.^^ 많은 아이들에게 엘리아스와 꼬마 할머니는 좋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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